“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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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五萬)이라는 숫자

우리는 숫자를 보면서도 생각에 잠깁니다. 숫자에는 우리의 감정이 담겨있기도 합니다. 특히 큰 숫자를 의미할 때는 간절함이 담기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면 큰 숫자일까요? 보통은 백(100) 정도만 되어도 아주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백화(百花)가 만발하였다는 말을 보면 그런 느낌이 납니다. 백이 들어가는 표현이나 고사성어도 많습니다. 우리말에서도 백에 해당하는 고유어 ‘온’은 많음을 의미합니다. 종종은 전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온갖’이라는 말은 원래 백 가지라는 뜻이었지만 거의 모든 것이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온통이나 온 누리, 온 마을은 전부를 의미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천(1,000)은 엄청나게 큰 숫자입니다. 천불천탑(千佛千塔)이라는 말에서 간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천불천탑은 천 개의 부처님 상과 천 개의 탑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많아도 1,000개나 될까 하고 이 말이 과장이 아닐까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는 오히려 1000개가 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의 정성은 참으로 끝이 없는 듯합니다. 천수관음(千手觀音)이라는 말에서도 손이 천 개나 있다는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천 년’을 살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합니다. 한편 3,000이라는 숫자도 자주 등장합니다. 삼천은 불교적인 용어로 알고 있습니다만, 삼천 리 금수강산에 삼천만의 백성이 우리나라에 살고 있다고 이야기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점점 숫자가 커집니다. 만(10,000)은 상상 자체가 어려운 숫자입니다. 사람이 만 명 모이면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사람이 만 살까지 사는 것은 상상의 한계를 의미했을 겁니다. 만세(萬歲)라는 말은 그래서 무한의 느낌이 있습니다. 대한독립만세(大韓獨立萬歲)의 느낌은 어떤가요? 만물(萬物)이라는 말의 느낌은 어떤가요? 만물은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느낌입니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도 하죠. 만은 모든 것이면서 영원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합니다.
kors5fx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는 오만(50,000)이라는 숫자를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오만상(五萬相)’이라는 표현입니다. 보통 오만상을 쓴다고 표현하는데 오만 가지 인상(人相)을 쓴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감정과 표정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보여주는 표현일 겁니다. 그런데 보통 오만상은 좋을 때 쓰는 표정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의 슬프고 괴로운 감정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슬프고 괴로운 일이 참 많기도 합니다.
새벽에 잠이 깨면 여러 생각에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오만 가지’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별의별 생각에 괴로운 것이겠지요. 지금 하지 않아도 되는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가 가라앉습니다. 지나가지 않고 머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박혀도 있습니다. 필요하지 않은 생각도 참 많네요. 쓸데없는 걱정도 몰려듭니다. 그럴 때 우리는 바로 오만상을 쓰게 됩니다. 오만 가지 생각이 만들어 내는 오만 가지의 인상입니다. 종종은 꿈속에서도 오만상을 씁니다. 가엾게도 우리는 잘 때마저 인상을 쓰고 자고 있는 겁니다. ‘오만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말 많은 소리네요. 잔소리를 더 잘게 부수어 상대에게 던지는 걸까요? 소리의 날카로운 조각이 서로에게 날아가 상처를 줍니다.
저는 오만이라는 숫자를 보면서 인간의 감정과 괴로움을 만납니다. 우리의 감정은 시시각각 변하고, 이렇게 변한 감정은 우리에게 헤어나기 어려운 괴로움을 줍니다. 하지만 오만 가지 감정 속에 숨어 있는 우리가 사랑하는 감정도 꺼내 보는 연습을 하면 어떨까 합니다. 사실 우리가 쓰는 오만상 속에는 기쁘고 행복한 표정도 있습니다. 웃는 표정이 있습니다. 힘들수록 좋은 생각, 좋은 표정이 필요합니다. 한번 입꼬리를 올리고 웃어봅니다.
▲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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