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외곽에서 만난 뜻밖의 시네마 천국 : 태국 영화박물관

2026/08/10 11:41:12

방콕 외곽에서 만난 뜻밖의 시네마 천국 태국 영화박물관 방콕에서 나콘파톰으로 향하는 길, 도심을 벗어나 차로 약 한 시간 남짓 달리다 보면 쌀라야(Salaya) 지역에 뜬금없이 거대한 테마파크 같은 공간이 나타난다. 바로 태국 영화박물관(Thai Film Archive)이다. 동선상 저녁 식사 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가벼운 마음으로 들르기 좋은 곳이지만, 막상 발을 들이면 생각보다 훨씬 방대하고 깊이 있는 태국 영화의 역사에 놀라게 된다. 바코드가 찍힌 레트로한 티켓을 들고 곳곳을 누비다 보면, 과거 뜨거웠던 태국인들의 영화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지금은 그 열기가 예전만 못한 것 같아 묘한 아쉬움도 남지만, 태국의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교민이나 여행자라면 반드시 들러봐야 할 숨은 보석 같은 공간이다. 놀랍게도 이 모든 시설이 무료 관람이다. ◈ 작은 테마파크에 온 듯한 몰입감, '무앙 마야(Maya City)' 박물관에 도착해 가장 먼저 시선을 빼앗는 곳은 야외 세트장인 무앙 마야(Maya City)다. 이곳은 단순한 전시관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오픈 세트장처럼 꾸며져 있다.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경험: 파리의 그랑 카페(세계 최초의 영화 상영장)부터 토머스 에디슨의 초기 스튜디오인 '블랙 마리아'까지, 세계 영화사의 중요한 이정표들을 실물 크기로 재현해 놓았다. ✽아날로그 감성의 끝판왕: 곳곳에 서 있는 태국인 큐레이터들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구경하다 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20세기 초반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구석구석 사진 찍기 좋은 스폿이 넘쳐나 처음엔 어리둥절하다가도 금세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바빠진다. ✽실내 박물관과 기차 전시관: 야외 세트장 외에도 시청각 자료가 가득한 실내 전시관, 옛 태국 영화 제작자들과 왕립 철도의 역사를 기리는 빈티지 증기 기관차 전시관 등 소소하지만 알찬 볼거리가 가득하다. 옛날 영화를 감상하며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여행 중 잠시 숨을 고르기에도 완벽하다. ◈ 100년이 넘는 깊은 뿌리, 태국 영화의 르네상스 영화박물관을 둘러보며 가장 놀라운 점은 태국 영화의 역사가 무려 100년이 훌쩍 넘었다는 사실이다. 1897년 방콕에서 처음으로 서양의 영화가 상영된 이후, 태국은 라마 5세 국왕의 동생인 통태임 삼파사트 왕자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왕실 의식을 촬영할 정도로 초기부터 영화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값비싼 35mm 필름 대신 저렴한 16mm 필름을 활용해 수백 편의 대중 영화를 쏟아내며 그들만의 황금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태국 영화는 서구권 영화와는 다른 독특한 질감을 가진다. 인구 대다수가 믿는 불교적 세계관과 영혼을 믿는 애니미즘(토속 신앙)이 서사에 깊게 뿌리내려 있으며, 공포 영화에 코미디를 섞고, 슬픈 로맨스에 스릴러를 가미하는 등 과감한 장르 혼합(Genre-Blending)에 매우 능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침체기를 겪기도 했지만, 이를 기점으로 오히려 감각적인 연출력을 무장한 '뉴 타이 시네마'가 등장하며 세계 무대에서 다시금 인정받기 시작했다. ◈ 한국인의 뇌리에 꽂힌 '그' 태국 영화들 태국 영화 역사를 이야기할 때, 한국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명작들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미 태국 영화의 매력에 깊이 빠져본 경험이 있다. 1. 와이어 없는 날것의 액션 《옹박 (Ong-Bak, 2003)》 "무에타이의 진수를 보여준 전설적인 작품" CG와 와이어 액션이 난무하던 시절, 오직 맨몸으로 모든 스턴트를 소화해 낸 토니 자(Tony Jaa)의 액션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한국에서도 "옹박!”, “또는 창 꾸 유나이!!(내 코끼리 어디있어)”이라는 외침과 함께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2. 아시아 호러의 바이블 《셔터 (Shutter, 2004)》 "사진에 찍힌 귀신, 태국 공포 영화의 매운맛" 불교의 '인과응보' 사상을 베이스로 한 태국 특유의 공포를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다. 한국 개봉 당시 수많은 관객을 비명 지르게 했으며, 이후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될 정도로 탄탄한 시나리오를 자랑한다. 3. 트렌디한 감각의 끝판왕 《배드 지니어스 (Bad Genius, 2017)》 "컨닝이라는 소재를 범죄 스릴러로 승화시키다" 현대 태국 상업 영화의 세련미를 증명한 작품. 학교 시험의 부정행위라는 일상적인 소재를 손에 땀을 쥐는 케이퍼 무비 형식으로 풀어내며 한국의 젊은 관객층에게 극찬을 받았다. 4. 한국과 태국의 소름 돋는 합작 《랑종 (The Medium, 2021)》 "태국 이산 지역의 무속 신앙을 파고들다" 한국의 나홍진 감독이 제작하고 태국의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연출한 영화. 태국 토속 신앙의 어둡고 습한 분위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아내며 한국 극장가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태국 영화 특유의 애니미즘적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최신작이다. ◈ Info. 태국 영화박물관 방문 팁 방콕 외곽이나 나콘파톰, 살라야 지역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일정표 마지막 코스로 이곳을 꼭 끼워 넣기를 권한다. 과거 영화를 향해 불태웠던 태국인들의 열정과 애정을 무료로, 그리고 아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다. ✽위치 : ถ.พุทธมณฑลสาย 5 ศาลายา (방콕 도심에서 차로 약 1시간) ✽운영 시간 : 오전 9시 30분 ~ 오후 5시 30분 (화요일~일요일 운영, 월요일 휴무) ✽입장료 : 무료 (내부 박물관 및 야외 세트장 모두) ✽이동 방법 : 방콕 전승기념탑에서 515번 버스, 혹은 BTS 모칫역에서 4-70E 버스 이용. 자차 이용 시 넉넉한 주차 공간 구비.

방콕 쿤스트할레 Bangkok Kunsthalle

2026/07/27 12:26:35

방콕 쿤스트할레 Bangkok Kunsthalle 불탄 인쇄소에서 다시 피어난 예술 방콕 쿤스트할레와 강릉, 상처의 경계에서 마주 보다 방콕 차이나타운 야와랏 일대는 오래된 상업지와 주거지, 사원과 시장이 한데 뒤섞인 곳이다. 거리마다 금은방과 한약방, 식당과 노점이 이어지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관광객의 눈에는 잘 띄지 않는 오래된 방콕의 생활 풍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복잡한 도시의 한복판에 불에 그을린 콘크리트 건물이 서 있다. 외벽에는 화재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고, 내부는 철골과 배관, 갈라진 바닥이 그대로 드러난다. 오래된 공장을 말끔한 상업시설로 바꾸는 일반적인 도시재생 방식과는 거리가 먼 모양새다. 이곳은 2024년 1월 문을 연 현대미술 공간 ‘방콕 쿤스트할레(Bangkok Kunsthalle)’다. 방콕 쿤스트할레는 폐건물의 흔적을 지우지 않았다. 새로운 벽을 세우고 균일한 조명을 설치해 과거를 덮는 대신, 화재로 손상된 벽과 거친 건물 구조를 전시 공간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한때 기능을 잃고 방치됐던 장소가 동시대 작가들의 실험과 토론이 이어지는 예술 공간으로 다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소장품 대신 새로운 시도를 담는 공간 ‘쿤스트할레(Kunsthalle)’는 독일어로 예술을 뜻하는 ‘쿤스트(Kunst)’와 공간 또는 홀을 뜻하는 ‘할레(Halle)’가 합쳐진 말이다. 일반적인 박물관이나 미술관처럼 영구 소장품을 중심으로 운영하기보다, 기획전과 프로젝트를 통해 동시대 예술의 새로운 흐름을 소개하는 전시 공간을 가리킨다. 방콕 쿤스트할레 역시 완성된 작품을 정돈된 전시장에 진열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작가가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식과 공간을 시험할 수 있는 일종의 실험실을 지향한다. 전시 공간은 여러 시기에 지어진 세 개 동의 산업 건축물로 이뤄져 있다. 가장 오래된 부분은 70년이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출 콘크리트와 육중한 구조가 두드러지는 건물은 과거 인쇄소와 교과서 제작 공장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2001년 발생한 큰불로 상층부를 비롯한 건물 일부가 심각하게 훼손됐고, 이후 오랫동안 활용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수많은 문자와 지식을 종이에 찍어내던 장소가 화재로 기능을 잃은 뒤, 다시 이미지와 소리, 몸짓을 담는 예술 공간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 공간을 이끈 인물은 예술 후원가이자 카오야이 아트(Khao Yai Art) 설립자인 마리사 지아라와논(Marisa Chearavanont)이다. 예술감독은 런던의 현대미술 갤러리 하우저 앤 워스(Hauser & Wirth)에서 활동한 스테파노 라볼리 판세라(Stefano Rabolli Pansera)가 맡았다. 이들은 건물을 원래 모습으로 복구하거나 새것처럼 단장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불탄 벽과 깨진 표면, 열린 구조를 유지하면서 공간이 지닌 시간과 기억이 작품에 개입하도록 했다. 방콕 쿤스트할레가 다른 미술관과 구별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화재의 기억 위에 놓인 강릉의 이야기 2026년 7월 15일부터 8월 9일까지 방콕 쿤스트할레에서 열리는 국제협력전 ‘경계에서 함께 보기(Watching Together at the Boundary)’는 이 공간의 역사와 유난히 긴밀하게 호응한다. 파마리서치문화재단과 방콕 쿤스트할레가 공동으로 마련한 이번 전시는 2025년 강릉에서 개최된 제3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의 주요 영상 작품을 방콕의 도시적 맥락과 전시 공간에 맞춰 다시 소개한다. 강릉과 방콕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두 도시가 경험해 온 역사와 생활 방식도 다르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자연재해와 화재의 기억, 공동체의 회복, 전통을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방식이라는 몇 가지 공통된 질문을 통해 두 지역을 연결한다. 강릉은 대형 산불로 숲과 삶의 터전이 훼손되는 아픔을 겪었다. 방콕 쿤스트할레 역시 큰불로 기능을 잃었던 건물에서 출발했다. 산불 피해 지역을 바라보는 영상 작품이 화재의 상흔이 남은 인쇄소 벽에 비치는 순간, 작품과 장소는 서로 다른 기억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번 전시는 한국의 강릉단오제와 태국의 송크란에도 주목한다. 두 전통은 모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의례의 형식과 역사적 배경은 다르지만, 공동체가 함께 모여 안녕을 기원하고 새로운 시기를 맞이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맞닿아 있다. 전시 기획진은 이러한 공통점을 회복과 재생이라는 주제로 연결한다. 전통을 고정된 옛 풍습으로 제시하기보다, 재난과 변화 속에서도 공동체를 다시 묶어주는 살아 있는 힘으로 바라본다. 잿빛 콘크리트 사이에 울린 강릉의 장단 개막 행사에서는 강릉의 전통연희집단 ‘푸너리’가 공연을 선보였다. 개막 현장을 취재한 보도에 따르면, 공연은 특별한 무대 장치 없이 뼈대가 드러난 옛 인쇄소 건물 사이에서 진행됐다. 연희자들은 공간을 이동하며 징과 꽹과리, 장구를 울렸고, 타악기의 소리는 높은 천장과 거친 콘크리트 벽을 타고 전시장 안으로 퍼져나갔다. 한국의 전통 연희에서 징과 꽹과리의 소리는 단순한 음악적 장치를 넘어선다. 액운을 물리치고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는다. 물을 통해 묵은 것을 씻어내고 새해의 복을 기원하는 태국 송크란의 정서와도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출발한 의례와 축제가 방콕의 폐건물 안에서 소리와 몸짓으로 만난 것이다. 불에 타 멈춰 있던 옛 인쇄소가 강릉의 장단을 통해 잠시 다시 움직이는 듯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문화적 해석은 관람객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언어에 의존하지 않는 타악과 몸짓이 한국과 태국 관객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통로가 됐다는 점이다. 재난을 기록하는 데서 삶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전시장에서는 정연두, 고등어, 이양희, 홍이현숙 등 한국 작가들과 태국 작가 아라야 라스잠리안숙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들 작품은 재난의 참상을 직접 보여주는 데만 머물지 않는다. 재난 이후의 일상, 사라진 것과 남겨진 것, 자연과 인간의 관계, 공동체가 기억을 이어가는 방식을 각기 다른 영상 언어로 풀어낸다. 정연두의 ‘싱코페이션 #5’는 강릉단오제를 준비하는 제의적 과정과 산불 피해 지역의 풍경, 서로 마주 놓인 두 대의 피아노를 교차시킨 작품이다. 강릉단오제를 앞두고 주민들이 쌀을 모아 신주를 빚는 과정은 한 사람의 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여러 사람이 조금씩 마음과 물자를 보태야 비로소 공동체의 의례가 시작된다. 산불 이후 삶의 터전을 복구하는 일 역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이루기 어렵다. 작품 속 두 대의 피아노 가운데 한 대는 현이 제거돼 정상적인 소리를 내지 못한다. 건반을 눌러도 소리가 완성되지 않는 피아노의 모습은 자연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무력감과, 그럼에도 계속 움직이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몸짓을 떠올리게 한다. 이 영상이 한때 교과서를 찍어내던 인쇄소의 불탄 벽에 투사된다는 점도 의미를 더한다. 문자를 통해 지식을 전달하던 장소가 이제는 이미지와 소리를 통해 재난 이후의 기억을 전하고 있다. 장소와 작품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설명하는 관계에 머물지 않는다. 불탄 건물은 산불 이후의 풍경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고, 강릉의 영상은 방콕 쿤스트할레가 품고 있는 화재의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방콕의 폐허에서 카오야이의 숲으로 방콕 쿤스트할레의 예술적 실험은 차이나타운의 옛 인쇄소에만 머물지 않는다. 운영진은 2025년 2월 나콘라차시마주 빡청 지역에 ‘카오야이 아트 포레스트(Khao Yai Art Forest)’를 개관했다. 방콕 도심에서는 교통 상황과 출발 지점에 따라 차량으로 약 2시간 30분에서 3시간가량 걸린다. 카오야이 아트 포레스트에는 리처드 롱, 루이즈 부르주아, 후지코 나카야, 엘름그린 & 드라그셋 등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이 숲과 지형을 따라 설치돼 있다. 방콕 쿤스트할레가 화재로 손상된 도시의 건축물과 예술의 관계를 탐구한다면, 카오야이 아트 포레스트는 작품이 나무와 풀, 비와 바람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두 공간은 겉모습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된 방향을 갖고 있다. 미술관의 벽과 온도, 빛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이른바 ‘화이트 큐브’에서 벗어나 작품이 실제 장소의 역사와 환경 속에서 존재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방콕에서는 불탄 벽과 노출된 구조가 전시의 일부가 되고, 카오야이에서는 숲의 성장과 계절의 변화가 작품에 개입한다. 예술을 건물 안에 가두기보다 도시와 자연 속에서 다시 바라보려는 시도다. 재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불꽃을 이어가는 일 전시장 한편에는 구스타프 말러의 말로 널리 알려진 문장이 소개돼 있다. “전통은 재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불꽃을 이어가는 것이다.” 정확한 원전과 발언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있는 문장이지만, 이번 전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는 데에는 적절한 실마리가 된다. 전통은 과거의 형식을 그대로 반복한다고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강릉의 장단이 방콕의 옛 인쇄소에서 울리고, 강릉단오제의 공동체 정신이 태국 송크란의 정서와 나란히 놓일 때 전통은 새로운 장소와 시대 속에서 다시 해석된다. 방콕 쿤스트할레와 강릉의 만남 역시 과거의 상처를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불탄 공장과 산불 피해 지역을 나란히 보여주면서, 재난 이후 사람들이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다시 삶을 이어가는지를 묻는다. 방콕 차이나타운의 콘크리트 건물에는 여전히 불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제 그곳은 버려진 폐허가 아니다. 예술가가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고, 관람객이 서로 다른 도시의 기억을 마주하며, 지역의 경험이 국경을 넘어 연결되는 장소가 됐다. 폐허를 과거의 흔적으로 남겨두는 것과 그 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다르다. 방콕 쿤스트할레와 강릉의 이번 만남은 예술이 상처를 지워주지는 못하더라도, 그 상처를 함께 바라보고 다음 단계로 옮겨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글 사진 | 김종민 교민잡지 편집국장 www.facebook.com/BangkokKunsthalle khaoyaiart.org

1980년대 방콕으로의 타임슬립

2026/07/14 09:50:20

1980년대 방콕으로의 타임슬립 왕궁 곁에 숨은 세 갈래 골목, 쌈프랭을 걷다 방콕에는 너무 유명해져 버린 얼굴들이 있다. 왕궁, 왓포, 카오산로드, 아이콘시암, 루프탑 바, 대형 쇼핑몰. 처음 방콕을 찾은 여행자라면 당연히 그곳으로 향한다. 화려하고, 편리하고, 사진도 잘 나온다. 그런데 방콕이라는 도시는 늘 그런 식으로만 자신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조금만 옆으로 비켜서면 전혀 다른 방콕이 나타난다. 네온사인과 음악 소리가 멀어지고, 오토바이 소리마저 한 박자 늦게 들리는 골목. 낡은 셔터문, 바랜 간판, 좁은 보도 위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 오래된 집 앞을 지키는 고양이 한 마리. 그 풍경 속에 들어서면 이상하게도 시간이 느려진다. 카오산로드와 왕궁 사이, 방콕 올드타운 한복판에 그런 동네가 있다. 이름은 쌈프랭(Sam Phraeng). 방콕을 여러 번 다녀간 사람도, 방콕에 꽤 오래 산 사람도 의외로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그러나 한 번 제대로 걸어보면 알게 된다. 이곳은 낡아서 남은 동네가 아니라, 시간이 쌓여 살아남은 동네라는 것을. 세 왕자의 거리, 쌈프랭 쌈프랭이라는 이름에는 방콕 구도심의 역사가 그대로 담겨 있다. 태국어로 ‘쌈’은 숫자 3을 뜻한다. 쌈프랭은 말 그대로 세 개의 ‘프랭’, 즉 세 갈래 거리와 골목을 가리킨다. 프랭 푸톤(Phraeng Phuthon), 프랭 나라(Phraeng Nara), 프랭 싸파쌋(Phraeng Sapphasat). 라따나코신 시대 왕가와 관련된 이 세 구역이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쌈프랭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이 일대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오래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19세기 이후 방콕이 근대 도시로 변해가던 시절, 이곳에는 유럽풍 건축 양식을 받아들인 상점과 주거 건물이 들어섰다. 왕궁과 관청, 상업지구가 가까웠던 만큼 한때는 방콕에서도 꽤 번화한 구역이었다. 지금도 골목을 걷다 보면 당시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반듯한 창틀, 오래된 벽면, 낮은 처마, 손때 묻은 문패 같은 것들이다. 쌈프랭의 매력은 요란하지 않다. 새로 만든 레트로가 아니라, 세월이 저절로 만든 레트로다. 일부러 낡게 꾸민 카페 거리와는 다르다. 이곳의 낡음에는 생활이 있고, 장사가 있고, 동네 사람들의 하루가 있다. 그래서 사진으로만 보면 심심해 보일 수 있지만, 직접 걸어보면 오래된 방콕의 결이 손에 잡힌다. 카오산 옆에 이런 방콕이 있었다 쌈프랭이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위치 때문이다. 이곳은 방콕의 대표 관광지와 멀리 떨어진 외곽 마을이 아니다. 카오산로드, 왕궁, 왓포, 방콕 시청 일대와 가까운 구도심 한가운데 있다. 그런데도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카오산로드가 밤의 방콕이라면, 쌈프랭은 낮의 방콕이다. 카오산이 외국 여행자의 에너지로 뜨겁다면, 쌈프랭은 동네 사람들의 생활 리듬으로 조용히 움직인다. 길 하나,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도시의 표정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방콕답다. 방콕은 늘 이렇게 양면적이다. 최신 쇼핑몰과 100년 된 시장이 공존하고, 고급 호텔 뒤편에 오래된 국수집이 숨어 있으며, 관광객으로 붐비는 길 옆에 현지인만 아는 골목이 이어진다. 쌈쁘랭은 그 방콕의 양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동네 중 하나다. 개발되지 않아서 남은 것이 아니라, 지켜져서 남은 것 방콕의 많은 지역은 빠르게 변했다. 오래된 목조 주택은 콘도미니엄으로 바뀌고, 로컬 상점은 프랜차이즈 매장으로 교체되고, 골목 풍경은 어느 순간 비슷비슷해진다. 그러나 쌈쁘랭은 비교적 느리게 변했다. 왕궁과 구도심이라는 지리적 특성, 오래된 건축물과 생활권의 연속성, 그리고 이 지역을 지켜온 주민들의 시간이 겹치며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 물론 쌈프랭도 영원히 그대로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방콕의 젊은 세대는 이미 올드타운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있다. 딸랏너이, 쏭왓, 방람푸가 그랬듯이, 오래된 동네는 어느 순간 새로운 문화지대로 읽히기 시작한다. 오래된 창고가 갤러리가 되고, 허름한 상점가에 작은 카페가 생기고, 낡은 골목은 산책 코스로 다시 불린다. 쌈프랭도 그 길목에 서 있다. 아직은 송왓처럼 크게 알려지지 않았고, 관광객이 몰려드는 곳도 아니다. 바로 그래서 지금 가볼 만하다. 아직 동네의 호흡이 남아 있을 때, 아직 간판과 셔터와 시장의 냄새가 그대로 있을 때, 쌈프랭은 가장 쌈프랭답다. 세월을 먹는 골목, 쌈프랭 미식 산책 쌈프랭 산책의 즐거움은 건물만 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 동네를 제대로 느끼려면 반드시 먹어봐야 한다. 오래된 방콕의 맛은 화려한 플레이팅보다 깊은 국물, 기름 냄새, 달콤한 차 한 잔, 손으로 만든 아이스크림 안에 남아 있다. 치갓차 카페(Chi Kat Cha Cafe) 쌈프랭의 분위기를 가장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아날로그 박물관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오래된 장난감, 포스터, 소품들이 공간을 채운다. 요즘 유행을 따라 만든 빈티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어린 시절이 그대로 쌓인 듯한 느낌이다. 이곳에서는 핑크 밀크, 태국식 밀크티 같은 익숙한 음료가 잘 어울린다. 특별히 대단한 메뉴를 기대하기보다, 천천히 앉아 주변을 둘러보는 시간이 더 좋다. 방콕의 오래된 카페 문화가 꼭 고급 커피로만 설명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소다. 세리(Seri) 쌈프랭에서 조금 더 깊은 맛을 찾는다면 세리를 들러볼 만하다. 태국 왕실 요리의 흐름을 보다 편안한 방식으로 만날 수 있는 식당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의 음식은 자극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재료의 맛과 조리의 균형을 살리는 쪽에 가깝다. 한국인 입맛에도 비교적 편하게 다가오는 메뉴로는 마늘 새우튀김을 꼽을 수 있다. 바삭하게 튀긴 새우에 마늘 향이 더해져 밥과도 잘 어울리고, 가볍게 나눠 먹기에도 좋다. 태국 음식이 늘 맵고 강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조금 내려놓게 만드는 맛이다. 타이탐 까오라우 싸멍무(Thai Tham) 쌈프랭 미식 산책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길 만한 곳이다. 대표 메뉴는 돼지 뇌 수프다. 이름만 들으면 망설여질 수 있다. 그러나 방콕 로컬 음식의 세계를 조금 더 넓게 경험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하다. 맑은 국물에 부드럽게 익은 돼지 뇌가 들어간 이 음식은 식감이 독특하다. 진하고 고소하며, 입안에서 부드럽게 풀어진다. 익숙한 맛은 아니지만, 오래된 방콕 식문화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를 보여주는 메뉴다. 여행은 때로 이런 낯섦을 만나는 일이다. 나타폰 아이스크림(Nuttaporn Ice Cream) 쌈프랭 산책의 마무리로는 나타폰 아이스크림이 좋다. 전통 방식의 코코넛 밀크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지나치게 달지 않고, 코코넛 특유의 고소함과 산뜻함이 살아 있다. 방콕의 더운 오후, 골목을 한참 걷고 난 뒤 먹는 코코넛 아이스크림은 그 자체로 훌륭한 디저트다. 화려한 카페 디저트는 아니지만, 방콕 올드타운에는 이런 단순한 맛이 더 잘 어울린다. 아침의 방콕을 보고 싶다면, 딸랏 뜨록 머 시장(Trok More Morning Market) 쌈프랭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아침에 가보는 것도 좋다. 인근의 뜨록 머 시장(Trok Mor Market)은 방콕의 오래된 아침 시장 분위기를 간직한 곳이다. 새벽부터 정오 무렵까지 활기를 띠는 시장으로, 관광객을 위한 연출된 공간이라기보다 현지인의 하루가 시작되는 생활 시장에 가깝다. 갓 튀긴 간식 냄새, 채소와 생선을 고르는 사람들, 빠르게 오가는 상인들의 목소리, 그리고 아침 탁발을 나선 승려들의 모습까지. 이곳에서는 방콕의 아침이 어떤 속도로 열리는지 볼 수 있다. 대형 호텔 조식 뷔페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장면이다. 뜨록 머 시장을 먼저 둘러본 뒤 쌈프랭 골목으로 걸어 들어가면 이 동네의 질감이 훨씬 선명해진다. 시장, 골목, 오래된 상점, 작은 식당이 하나의 생활권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지금 쌈프랭을 걸어야 하는 이유 방콕에는 늘 새롭게 뜨는 동네가 있다. 몇 년 전에는 딸랏너이였고, 최근에는 쏭왓이 그랬다. 오래된 창고와 골목, 중국계 상점가와 예술 공간이 만나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쌈프랭도 언젠가는 그런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릴지 모른다. 하지만 쌈프랭의 현재는 아직 조용하다. 그래서 더 좋다. 사진을 찍기 위해 만들어진 배경이 아니라, 생활이 먼저 있고 여행자가 그 사이를 조심스럽게 지나가는 동네다. 그 점이 쌈쁘랭을 방콕의 숨은 관광 명소로 자라게 하는 가장 큰 힘이다. 왕궁을 보고, 왓포를 보고, 카오산로드를 지나쳤다면 그다음에는 쌈프랭으로 걸어가 보자. 특별한 입장권도, 정해진 관람 동선도 필요 없다. 다만 서두르지 않는 걸음이면 충분하다. 골목을 따라 걷고, 오래된 간판을 읽고, 국물 한 그릇을 먹고, 아이스크림 하나를 들고 다시 천천히 걸으면 된다. 방콕을 오래 살수록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이 도시는 유명한 곳보다 유명해지기 전의 장소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쌈프랭은 그런 방콕의 한 장면이다. 왕궁 곁에 숨어 있었지만, 이제 조금씩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있는 오래된 동네. 방콕의 과거가 박제처럼 남은 곳이 아니라, 오늘도 조용히 숨 쉬고 있는 골목이다. 이번 주말, 익숙한 방콕을 잠시 비켜나 보자. 카오산의 소음에서 몇 걸음만 벗어나면, 1980년대 어느 오후처럼 느리게 흐르는 방콕이 기다리고 있다. 그곳이 바로 쌈프랭이다. COVER NOTE 쌈프랭 산책은 오전 시간이 좋다. 뜨록 머(Trok Mor) 시장을 먼저 둘러보고, 쌈프랭 골목으로 들어가 로컬 식당과 카페를 차례로 방문하는 동선이 자연스럽다. 다만 올드타운의 오래된 식당들은 영업시간이 유동적인 경우가 있으므로 방문 전 지도 앱이나 전화 확인을 권한다. “방콕을 오래 살다 보면, 이 도시의 매력은 늘 유명한 장소 바깥에서 더 선명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쌈프랭은 그런 곳이다. 왕궁 곁에 있으면서도 왕궁의 그림자에 가려졌고, 카오산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카오산의 소음과는 전혀 다른 시간을 살아온 골목이다. 오래된 건물과 로컬 식당, 아침 시장과 작은 카페가 이어지는 이 동네는 방콕이 아직 관광상품이 되기 전의 얼굴을 간직하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도시 속에서 이런 장소가 남아 있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에 가깝다. 그리고 그 행운은 오래 기다려주지 않을 수도 있다. 이번 주말, 익숙한 방콕을 잠시 비켜나 보자. 카오산의 소음에서 몇 걸음만 벗어나면, 1980년대 어느 오후처럼 느리게 흐르는 방콕이 기다리고 있다. 그곳이 바로 쌈프랭이다.” 글과 사진 | 김종민 편집국장

방포(Bang Pho) 목재 거리와 새로운 공연예술 공간 'T. Nam Charoen Playhouse'

2026/06/29 10:25:21

제2의 쏭왓을 꿈꾸다 방포(Bang Pho) 목재 거리와 새로운 공연예술 공간 'T. Nam Charoen Playhouse' 방콕의 오래된 동네들이 다시 읽히고 있다. 딸랏너이(Talat Noi)와 쏭왓(Song Wat)이 낡은 창고, 오래된 상점, 강변 골목을 바탕으로 젊은 세대의 발길을 끌어모았다면, 이번에는 방콕 북부 방쓰(Bang Sue) 구의 방포(Bang Pho)가 조용히 다음 장면을 준비하고 있다. 방포는 오랫동안 방콕의 ‘목재 거리’로 불려온 곳이다. 프라차 나루밋(Pracha Naruemit) 도로를 중심으로 목재상, 가구점, 목공소, 제재소, 조각 공방, 철물·가공 장비 상점이 밀집해 있다. 방콕에서 집을 짓거나 가구를 맞추거나 목재 인테리어를 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그런데 최근 이 거친 산업 골목 안에 새로운 공연예술 공간이 등장했다. 옛 제재소를 개조한 T. Nam Charoen Playhouse(ต.นำเจริญ เพลย์เฮ้าส์)다. 방포가 곧바로 쏭왓처럼 변한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오래된 산업 유산, 장인의 기술, 젊은 창작자들의 실험, 그리고 공연예술 공간의 등장은 분명 이 지역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드는 신호다. 방포는 지금 ‘완성된 핫플레이스’라기보다, 변화가 막 시작된 흥미로운 현장에 가깝다. 1. 방콕 목공업의 오래된 심장, 방포 우드 스트리트 방포의 핵심은 프라차 나루밋 도로다. 약 1km 남짓한 이 거리에는 목재와 가구, 목공 관련 업체들이 촘촘히 자리하고 있다. 원목, 합판, 문짝, 창틀, 가구, 목조 장식, 조각품, 공구, 부속품까지 한 번에 둘러볼 수 있어 건축·인테리어 업계 종사자들에게는 오랫동안 실무형 시장이자 장인의 거리로 기능해 왔다. 이 지역이 목재 거리로 성장한 배경에는 짜오프라야강과 방포 선착장을 중심으로 한 물류 환경, 그리고 방콕 도심의 목공·제재업이 외곽으로 이동하던 산업 변화가 자리한다. 예전에는 전문업자와 동네 주민 중심의 거리였지만, 최근에는 Bangkok Design Week, Bang Pho Living Lab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디자이너, 건축 전공 학생, 젊은 창작자들이 방포를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 방포의 매력은 ‘새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톱밥 냄새, 오래된 간판, 작업 중인 장인, 낡은 창고와 목재 더미가 함께 만들어내는 질감에 있다. 정돈된 쇼핑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살아 있는 산업 동네의 감각이 이곳의 가장 큰 자산이다. 2. 옛 제재소의 변신, T. Nam Charoen Playhouse 그 목재 거리 안쪽에 등장한 T. Nam Charoen Playhouse는 방포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곳은 과거 제재소와 목재 사업장이 있던 건물을 공연예술 공간으로 개조한 장소다. 외관만 보면 주변 창고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높은 천장과 넓은 구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특히 기둥이 시야를 가리지 않는 긴 스팬 구조는 공연 공간으로서 강한 장점을 갖는다. 새 극장처럼 매끈하게 다듬어진 공간이라기보다, 목재 산업의 흔적을 그대로 품은 채 무대와 객석, 이동형 공연, 실험적 퍼포먼스를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한 장소에 가깝다. 최근 이곳을 처음 알린 프로젝트는 House of Mask & Mime 등이 참여한 몰입형 공연 A Pa Tour였다. 관객이 건물 안 여러 방을 이동하며 짧은 공연들을 차례로 만나는 방식으로, 극장 자체를 하나의 무대로 활용한 시도였다. 방포라는 지역성과 옛 제재소라는 공간성이 공연의 일부가 된 셈이다. 아직 T. Nam Charoen Playhouse는 매일 공연이 열리는 상설 극장이라기보다, 프로그램과 공간 운영을 확장해 가는 신생 공연예술 거점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다만 방콕에서 독립 공연예술 전용 공간은 여전히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곳은 방콕 연극계와 퍼포먼스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3. 공간이 공연을 바꾸는 순간 T. Nam Charoen Playhouse의 흥미로운 지점은 단순히 “낡은 건물을 멋지게 고쳤다”는 데 있지 않다. 이 공간은 공연의 형식 자체를 바꿀 여지를 갖고 있다. 전통적인 극장처럼 무대와 객석이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방과 복도, 창고형 공간, 야외 공간까지 공연의 일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무대에 오른 1인 공연 역시 이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 배우가 자신의 몸과 목소리, 기억과 서사를 중심으로 무대를 채우는 형식은 화려한 장치보다 공간의 밀도와 배우의 호흡에 크게 의존한다. 방포의 거친 산업 공간은 그런 공연에 오히려 현실감을 더한다. 말끔한 블랙박스 극장에서는 얻기 어려운 질감이다. 이곳에서의 공연은 관객에게도 다른 태도를 요구한다. 앉아서 완성된 무대를 감상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간 안으로 들어가고, 이동하고, 가까운 거리에서 배우의 호흡을 마주하는 경험에 가깝다. 방포의 변화가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곳은 단순한 카페 거리나 포토존이 아니라, 오래된 산업 공간이 예술의 방식으로 다시 쓰이는 현장이 되고 있다. 4. 방포 나들이 동선 : 목재 거리, 로컬 맛집, 공연예술 방포는 아직 대규모 관광지처럼 정비된 동네는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반나절 정도 천천히 걷는 방식이 잘 어울린다. 아침이나 점심에는 방포의 대표 노포 중 하나인 Pae Brass Pot Porridge 38 Years를 들러볼 만하다. 1962년부터 이어져 온 조주식 죽 전문점으로, 미쉐린 Bib Gourmand에도 이름을 올린 곳이다. 방포역과 가까운 Jek Mai Coffee에서는 태국식 전통 커피와 오래된 로컬 다방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오후에는 프라차 나루밋 목재 거리를 천천히 걸어보는 것이 좋다. 작업 중인 목공소, 목재 더미, 오래된 간판, 가구점이 이어지는 풍경 자체가 방포의 가장 중요한 볼거리다. 중간에 휴식이 필요하다면 MRT 방포역 인근의 Bangpho Story처럼 카페와 숙박 기능을 함께 갖춘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저녁에는 T. Nam Charoen Playhouse의 공연 일정을 확인해 관람을 계획해 볼 수 있다. 공연이 없는 날이라면 방포의 야식 식당을 찾는 것도 좋다. Hia Bae Bangpho는 1961년을 뜻하는 ‘2504’를 내세운 오래된 식당으로, 태국식·중국식 반찬과 두부 요리, 해산물 요리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방포의 저녁 코스다. 마치며 :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더 흥미로운 동네 방포를 ‘제2의 쏭왓’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직은 조금 이른 표현일 수 있다. 쏭왓이 이미 카페, 갤러리, 레스토랑, 관광 동선이 결합된 상업적 성공 사례로 자리 잡았다면, 방포는 아직 목재 산업의 현장성이 훨씬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방포의 매력이다. 이곳은 아직 지나치게 다듬어지지 않았다. 거리의 주인공은 여전히 목재상과 장인들이고, 새로 들어온 창작 공간들은 그 옆에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다. 오래된 산업이 사라진 자리에 예술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 산업의 기억 위에 예술이 덧입혀지는 과정이다. T. Nam Charoen Playhouse는 그 변화의 상징적 출발점이다. 방포가 앞으로 어떤 속도로, 어떤 방향으로 변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의 방포는 분명 방콕의 도시 재생 지도를 다시 펼쳐보게 만드는 동네다. 완성된 핫플레이스를 소비하기보다, 변화가 시작되는 순간을 직접 목격하고 싶은 이들에게 방포는 지금 가장 흥미로운 목적지 중 하나다. 인스타그램 : @t.namcharoen.playhouse 60년 세월을 끓여낸 황동 냄비의 마법, 방포 '빼 족 모 통루앙' (Pae Brass Pot Porridge) 방콕의 화려한 스카이라인과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향연 속에서도, 진정한 미식의 뼈대는 좁은 골목길 노포의 낡은 화구 위에서 완성되곤 한다. 거친 톱밥 냄새가 흩날리는 방포(Bang Pho)의 '우드 스트리트' 초입, 이른 아침부터 뭉근하고 구수한 향기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이 있다. 1962년부터 3대째 조주(Teochew)식 죽의 원형을 지켜오며 미슐랭 빕 구르망의 영예를 안은 '빼 족 모 통루앙(แป๊ะโจ๊กหม้อทองเหลือง)’이다. 3대를 이어온 조주(Teochew)식 죽의 정수 태국식 죽인 ‘쪽(Jok)'은 쌀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곱게 갈아 끓여내는 것이 특징이다. 그중에서도 태국 내 화교 사회의 뿌리 깊은 식문화를 대변하는 조주식 방식은 육수의 깊이와 고명의 섬세함에서 그 내공이 갈린다. '빼 족 모 통루앙'은 무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일 새벽 고기를 삶고 쌀을 불려 냄비를 올린다. 화려한 기교나 현대적인 퓨전 요소는 일절 배제한 채, 쌀과 물, 그리고 오랜 시간 우려낸 육수의 완벽한 비율만으로 속을 편안하게 달래주는 궁극의 한 그릇을 완성한다. 내장 특유의 잡내를 잡은 섬세한 조리법 한국의 국밥이나 해장국에 익숙한 교민들의 입맛을 단숨에 사로잡는 포인트는 바로 완벽하게 조리된 '고명’이다. 기본적인 다진 돼지고기(무쌉) 외에도 곱창, 간, 위 등 돼지 내장 부위를 선택할 수 있는데, 역사 깊은 노포답게 내장 특유의 누린내를 완벽하게 잡아냈다. 여러 번 씻어내고 삶아내는 고된 전통 전처리 방식을 철저히 지킨 덕분에, 내장의 식감은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우면서도 잡내 없이 깔끔한 고소함만을 남긴다. 여기에 신선한 굴이나 큼직한 생선 살을 추가하면 바다의 감칠맛까지 더해져 그릇을 비울 때까지 지루할 틈이 없다. 총평 : 위로가 되는 따뜻한 한 그릇 타국 생활에서 때로는 화려하고 자극적인 만찬보다, 속을 편안하게 데워주는 소박한 국물 요리가 간절해질 때가 있다. '빼 족 모 통루앙'의 죽은 단순한 허기를 채우는 음식을 넘어, 오랜 시간 정성으로 끓여낸 '위로'에 가깝다. 방포 지역의 오래된 골목을 탐방하기 전, 든든하고 따뜻한 시작을 원하신다면 주저 없이 추천하는 곳이다. [이용 안내] ◆ 상호명: 빼 족 모 통루앙 (แป๊ะโจ๊กหม้อทองเหลือง 38 ปี) ◆ 위치: 320 ถนน ประชาราษฎร์สาย1, แขวงบางซื่อ บางซื่อ, กรุงเทพมหานคร (MRT 방포역 인근) ◆ 추천 메뉴 : ★ 쪽무 (Jok Moo): 다진 돼지고기를 넣은 기본 죽 ★ 쪽 크르엉 나이 (Jok Kruang Nai) : 돼지 내장을 듬뿍 올린 죽 ★ 계란(카이 루억)이나 피단(카이 이아우 마) 추가 필수 ◆ 영업시간 : 매일 06:00 ~ 21:00

웨어하우스 30(Warehouse 30)

2026/06/15 11:42:06

방콕, 예술과 헤리티지로 숨 쉬다 웨어하우스 30과 짜른끄룽의 재탄생 방콕을 사원과 화려한 루프탑, 거대한 쇼핑몰과 북적이는 야시장의 도시로만 기억한다면, 당신은 아직 이 도시의 진면목을 보지 못한 것이다. 방콕의 이면에는 여행자들의 시선이 미처 닿지 않은 채 고요히 박동하는 '예술과 창조'의 혈맥이 흐르고 있다. 미로 같은 골목에 숨겨진 갤러리, 낡은 콘크리트 벽에 새겨진 스트리트 아트, 기이한 박물관과 크리에이티브 커뮤니티가 바로 그 증거다. 그 창조적 변혁의 중심에 '짜른끄룽(Charoen Krung)'과 '웨어하우스 30(Warehouse 30)'이 있다. 짜른끄룽 소이 30과 32 사이에 자리 잡은 5,600제곱미터 규모의 이 붉은 벽돌과 철골 구조물은 단순한 복합문화공간을 넘어선다. 웨어하우스 30의 역사를 추적하는 일은 곧 라따나꼬신(Rattanakosin) 시대 이후 방콕이 걸어온 200년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작업과도 같다. ■ 낡은 창고 터에 깃든 태국 근현대사 200년 외교의 요람이자 피난처 이 일대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웨어하우스 30의 바로 옆 부지인 '포르투갈 대사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로변 벽면을 장식한 포르투갈 출신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빌스(Vhils)의 거대한 벽화 뒤편에는 짜오프라야 강까지 이어지는 깊은 땅이 자리하고 있다. 1783년에서 1785년 사이, 라마 2세는 훗날 베트남 응우옌 왕조를 세우고 쟈롱(Gia Long) 황제가 되는 응우옌 아인(Nguyễn Ánh) 왕자에게 이 일대를 피난처로 내어주었다. 떠이선(Tây Sơn) 왕조에 패배하고 도피 중이던 그에게 샴(Siam, 태국의 옛 이름) 왕실은 군사적 원조와 은신처를 제공하며 훗날 베트남 통일의 기틀을 마련해주었다. 아유타야 왕조가 몰락한 후, 서양인으로서 샴과 가장 먼저 무역 관계를 재건하려 했던 이들은 포르투갈인이었다. 국경 방어를 위해 서양의 무기와 탄약이 절실했던 라마 2세는 무역항과 영사관 용도로 포르투갈에 이 부지를 하사했다. 라따나꼬신 시대 최초의 서양 영사관이 탄생한 것이다. 초대 포르투갈 영사였던 카를로스 데 마누엘 실베이라(Carlos de Manuel Silveira)는 태국 귀족에 버금가는 작위를 받았으며, 의심과 배척의 대상이었던 개신교 선교사들마저 기꺼이 환대하며 뛰어난 외교력을 발휘했다. 태국어 활자 인쇄의 시발점 라마 3세 시절인 1828년, 태국에 거주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제이콥 톰린(Jacob Tomlin)과 칼 구츨라프(Karl Gutzlaff) 역시 실베이라 영사의 관저에 머물렀다. 중국 진출의 교두보로 샴을 선택했던 미국 침례교 선교회는 1833년 존 테일러 존스(John Taylor Jones) 부부를 파송했고, 이들 역시 포르투갈 영사의 도움으로 영사관 뒤편(1900년대 초기 웨어하우스 30 부지의 첫 소유주로 기록된 곳)에 거처를 마련했다. 역사적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1835년에서 1838년 사이 일어났다. 댄 비치 브래들리(Dan Beach Bradley) 박사가 침례교 선교회로 태국어 인쇄기를 최초로 들여온 것이다. 선교를 목적으로 태국어로 번역된 전도지와 책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즉, 현재의 웨어하우스 30 자리는 태국 땅에서 태국어 문자가 인쇄된 '최초의 인쇄소'가 자리했던 역사적 진원지다. "웨어하우스 30의 부지는 단순히 짐을 쌓아두던 창고가 아니었다. 그곳은 외교가 시작되고, 활자가 찍히고, 근대가 태동한 역사의 무대였다." ■ 자본과 산업의 교차로, 캡틴 부시부터 챠바니치까지 캡틴 부시와 쟈비에르 가문 웨어하우스 30으로 향하는 길목인 짜른끄룽 소이 30의 옛 이름은 '캡틴 부시 레인(Captain Bush Lane)'이다. 1858년 방콕의 항만 관리자로 임명되어 30년간 헌신한 영국인 선장 존 부시(John Bush)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라마 4세와 5세의 깊은 신임을 받았던 그는 방콕 최초의 조선소인 '방콕 독(Bangkok Dock)'을 설립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이 시기 주변 지역의 발전을 주도한 또 다른 축은 마카오 출신 이민자 쟈비에르(Xavier) 가문이었다. 항만청 번역가이자 정미소를 운영했던 루이스 마리아 쟈비에르는 인근 깔라와르(Holy Rosary) 성당 건축에 막대한 자금을 기부했다. 그의 아들 셀레스티노 마리아 쟈비에르는 외무부 차관까지 오르며 씨프라야(Si Phraya) 도로를 건설하고 33km에 달하는 최초의 대중교통 전차 사업을 주도했다. 그의 딸 마가렛 린 쟈비에르는 태국 최초의 여성 의사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국민 백만장자' 나이 럿과 2차 세계대전 20세기 초, 방콕의 트렌드를 주도한 인물은 라마 6세로부터 '국민 백만장자'라는 칭호를 받은 나이 럿(Nai Lert Sreshthaputra)이었다. 수입 식료품점, 최신 축음기 판매, 자동차 수입, 방콕 최초의 제빙기 도입은 물론 버스와 택시 운수업까지 장악한 그는 탁월한 부동산 사업가이기도 했다. 그는 1922년 플런칫(Ploenchit)의 땅과 영국 대사관의 강변 부지를 맞교환하는 세기의 거래를 성사시켰고, 이후 그 땅을 다시 정부에 팔아 현재의 중앙우체국(GPO)이 들어서게 했다. 당시 웨어하우스 30 부지 일대의 소유권 역시 나이 럿의 손에 있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일본군이 이 창고 일대를 점령해 군수품 보관소로 사용하게 된다. 다행히 연합군의 폭격을 피한 이 창고들은 전쟁 후 나이 럿이 사망하면서 새로운 주인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챠와닛 시대와 아르데코 건축 1944년 무역 회사를 설립한 추안 챠와닛(Chuan Chavanich)과 마니(Manee) 부부는 전후 대미 수출용 원자재를 보관할 거대한 공간이 필요했다. 이들은 나이 럿의 상속자들로부터 창고와 부지를 매입했고, 1946년 2층 규모의 '챠바니치 빌딩'을 신축했다. 건축가 '미스터 멩(Mr. Meng)'이 설계한 이 건물은 당시 태국에 상륙한 서양의 '아르데코(Art Deco)' 양식을 완벽히 구현했다. 햇빛과 비를 막아주는 창문 위의 눈썹(Eyebrows) 형태, 돌처럼 보이게 시멘트 표면을 긁어낸 기하학적 장식, 절제된 파스텔 블루그레이 색상의 조화는 당시 건축의 백미로 꼽힌다. 1950년에는 챠와닛 회사의 로고(CCL)를 형상화한 단조 철제 장식이 추가되며 지역적 특색까지 갖추게 되었다. 1925년에서 1941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8개의 창고(웨어하우스)들은 쌀 보관소를 시작으로 일본군 군수창고, 트랙터와 기관차 부품 보관소, 그리고 후일 미쉐린(Michelin) 타이어와 트라이엄프(Triumph)의 물류 창고로 끝없이 용도를 변경하며 태국 근대 산업화의 묵묵한 목격자가 되었다. ■ 철거 대신 보존을 택하다, 건축가 두앙릿 분낙의 실험 세월이 흘러 방콕의 비즈니스 중심지가 강변에서 내륙으로 이동함에 따라, 창고의 임대료는 바닥을 쳤고 건물은 낡아갔다. 부지 소유주인 프리다 챠와닛(Prida Chavanich)은 창고를 허물고 현대적인 3층 상업 건물을 지으려 했으나 막대한 건축비 대비 낮은 수익성 때문에 망설이고 있었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이가 바로 태국의 저명한 건축가 두앙릿 분낙(Duangrit Bunnag)이다. 강 건너편 잼 팩토리(The Jam Factory)를 성공적으로 재생시킨 그는 이 낡은 창고들의 가치를 단번에 알아봤다. 두앙릿은 외부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는 것은 물론, 내부의 낡은 나무 바닥재와 노출된 철골 빔마저 건축적 유산으로 삼아 절대 철거하지 못하도록 못 박았다. 제한적이었던 주차 공간을 확장하고, 8개의 개별 창고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보행자 회랑을 추가했다. 2016년, 마침내 방콕 문화 예술의 새로운 심장, '웨어하우스 30(Warehouse 30)'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 디자인과 예술이 숨 쉬는 웨어하우스 30 & 짜른끄룽 컬렉션 ATT19 Gallery : 복원된 옛 학교 건물이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갤러리와 카페, 빈티지 앤틱 소품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Alexander Lamont : 상어 가죽(Shagreen) 양피지와 옻칠을 활용한 럭셔리 조각 가구와 조명 오브제. P.Tendercool: 방콕에서 가장 인상적인 가구 쇼룸 중 하나. 오래된 태국 가옥에서 버려진 견목을 재활용해 최고급 자연 소재와 결합시킨다. Knuckle Olive: 인테리어 디테일과 마감재에 집착하는 이들을 위한 필수 코스. 럭셔리 황동 하드웨어와 캐비닛 시스템을 선보인다. CONVO / Coffee Roaster: 갤러리 투어 중 숨을 고르기 좋은 미니멀 카페와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리. Horse Unit and Woot Woot: 예상치 못한 앤틱 소품과 공예품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보물창고 같은 공간. Atto Gallery / HAY: 주얼리를 웨어러블 아트로 해석한 기획 전시 및 친숙하고 감각적인 디자인 소품숍. ■ 아트를 사랑하는 여행자를 위한 방콕 갤러리 & 뮤지엄 가이드 50 여행자들에게 방콕은 종종 잘못된 프레임으로 소비된다. 팟타이와 툭툭, 화려한 사원만이 전부가 아니다. 만약 당신이 루프탑 바에서 칵테일을 홀짝이는 것보다, 숨겨진 골목길에서 갤러리를 찾아내는 것에 더 흥분을 느끼는 부류라면 아래의 리스트는 방콕 여행의 완벽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주요 예술 지구 탐색 거점] ◆ Talat Noi (딸랏너이) ◆ Charoen Krung (짜른끄룽) ◆ Siam (시암) ◆ Silom (실롬)\ ◆ Thonburi (톤부리) ◆ Chinatown (차이나타운) 편집국이 선정한 방콕의 예술, 사진, 디자인, 역사적 공간 50선이다. 규모가 작은 갤러리나 팝업 전시의 경우 방문 전 반드시 오픈 요일과 시간을 확인하길 권한다. 1. Contemporary & Fine Art (현대 미술 & 순수 예술) * BACC (Bangkok Art & Culture Centre) * MOCA Bangkok * Bangkok Kunsthalle * 100 Tonson Foundation * Bangkok CityCity Gallery * SAC Gallery (Subhashok The Arts Centre) * Nova Contemporary * Warin Lab Contemporary * Tang Contemporary Art Bangkok * Cartel Art Space * Palette Artspace 2. Heritage, Museum & Design (문화유산, 박물관 & 디자인) * Museum Siam * National Gallery of Thailand * TCDC (Thailand Creative & Design Center) * Siriraj Medical Museum * Corrections Museum * Counterfeit Goods Museum * Batcat Museum * Bangkok Publishing Residence * Jim Thompson Art Center * Bangkok Design Week (Event) * BKK Art Biennale (Event) 3. Street Art & Creative Spaces (스트리트 아트 & 크리에이티브 공간) * Warehouse 30 * ATT19 * River City Bangkok * The Jam Factory * YELO House * Khlong Ong Ang Art Walking Street * Charoen Krung Soi 32 & 30 (Street Art) * Chaloemla Graffiti Park * Lido Connect * Broccoli Revolution * Khlong Bang Luang Creative Community 4. Photography & Subculture(사진 & 서브컬처) * Kathmandu Photo Gallery * Fotoclub BKK * House of Lucie Bangkok * WTF Gallery & Cafe * DIB Bangkok * Artist House Bangkok (Baan Silapin) 5. Hidden Gems & Alleys(숨겨진 명소 & 골목길) * Trok San Chao Rong Kueak * Bukruk Festival (Murals) * Wat Pariwat (David Beckham Temple) * Wat Prayoon * Wat Ratchanatdaram (Loha Prasat) * Baan Bat (Monk's Bowl Village) * Baan Krua Nua (Silk Weaving Village) * Chaloemla Art House * ICONSIAM (Art Zones) * Khao Yai Art Forest (Outskirts) 방콕의 거리는 그 자체로 캔버스이자 거대한 전시관이다. 다음 방콕 여행에서는 화려한 루프탑 바 대신, 미로 같은 골목길에 숨겨진 예술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방콕, 수집가들의 성지가 되다 빈티지와 아날로그의 매력 속으로

2026/05/19 10:28:11

방콕, 수집가들의 성지가 되다 빈티지와 아날로그의 매력 속으로 거대 빈티지 메카, 방쓰 정션(Bangsue Junction)의 비상 방콕을 단순한 미식과 화려한 나이트라이프의 도시로만 여겼다면 오산이다. 짜뚜짝 주말 시장이나 센트럴월드 같은 거대 쇼핑몰 이면에는 전 세계 수집가와 멋쟁이들을 열광케 하는 거대한 '빈티지 생태계'가 숨쉬고 있다. 기성품에서 느낄 수 없는 세월의 흔적, 희소성, 그리고 그곳에서 나만의 보물을 발견하는 기쁨. 교민과 관광객 모두의 발걸음을 이끄는 방콕의 대표 빈티지 마켓과 숍 40곳을 심층 해부한다. 방콕 빈티지 문화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를 꼽으라면 단연 방쓰 정션(Bangsue Junction, 일명 레드 빌딩)이다. 깜팽펫(Kamphaeng Phet) MRT 역에서 도보 거리에 있으며, 짜뚜짝 주말 시장 바로 건너편에 자리한 이 6층 규모의 거대한 쇼핑센터는 그야말로 빈티지 애호가들의 놀이터라 할 수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놀라운 가성비와 다양한 브랜드 라인업이다. 스투시(Stussy), 디키즈(Dickies), 리바이스(Levi's), 칼하트(Carhartt) 같은 대중적인 스트리트웨어부터 폴로 랄프로렌, 파타고니아, 할리 데이비슨, 타미 힐피거 등 인지도 높은 브랜드들이 즐비하다. 가격은 100바트(약 4,600원)부터 시작해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객도 부담 없이 지갑을 열게 만든다. 특정 마니아층을 겨냥한 희귀 아이템도 눈에 띈다. 90년대와 2000년대의 레어 NBA 및 NFL 저지는 대략 540바트(약 25,000원)에서 2,200~2,500바트(약 10만원~12만원) 선에 거래되며, 카우보이 부츠와 태슬 재킷 등 웨스턴 스타일 아이템, Y2K 의류까지 시대와 장르를 아우른다. 가구와 필름 카메라, 앤틱 식기류도 구비되어 있어 홈 데코레이션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도 훌륭한 선택지가 된다. 단, 대부분의 매장이 현금 결제만 고집하므로 넉넉한 현금 지참은 필수다. 촘촘하게 얽힌 취향의 네트워크, 방콕 빈티지 숍 19선 방쓰 정션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방콕 곳곳에 포진한 감각적인 빈티지 숍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각 상점은 주인의 뚜렷한 취향을 반영하며 고유의 색깔을 뽐낸다. 일본 특유의 섬세한 빈티지 감성이나 스트리트 패션을 선호한다면 Tokyo Joe와 Fumiikii Tokyo, USAGE Modern Vintage Store가 제격이다. 반면 유럽 감성의 의류와 소품을 찾는다면 Galerie des Amis를, 의류와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아우르는 감성 편집숍을 찾는다면 Oyster and Things, Lord of Cinnamon, KOON Asian Zakka Shop을 방문해 볼 것을 권한다. 규모 면에서 압도적인 곳도 존재한다. 마치 거대한 영화 세트장을 방불케 하는 초대형 빈티지 가구 창고 Papaya Vintage Shop은 골동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구경하는 데만 반나절이 소요된다. 이 외에도 각자의 전문성을 살린 숍들이 즐비하다. ★ 영화/포스터: 영화 포스터와 관련 굿즈를 취급하는 Classic Movie Posters ★ 인테리어/가구: 빈티지 가구와 소품 중심의 Horse Unit, 앤틱 조명이 가득한 Big Tree Antique ★ 의류 전문: 로컬 스타일의 DUM DUM Vintage, 클래식 의류 전문 Past Perfect Vintage Clothing, 감각적인 셀렉션을 자랑하는 PEPPERSALT Charoen Krung 이처럼 세분화된 전문 숍들이 방콕 전역에 흩어져 있어, 여행자들에게 '보물 찾기'의 진정한 묘미를 제공한다. 아날로그의 귀환 : LP 레코드숍과 빈티지 야시장 최근의 빈티지 열풍은 패션과 소품을 넘어 음악으로 강력하게 이어지고 있다. 방콕의 레코드숍들은 단순한 음반 매장을 넘어 음악과 문화를 교류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진화 중이다. 인디 및 희귀 LP를 발굴하고자 한다면 Have You Heard? Records나 Garage Records가 훌륭한 출발점이다. 장르별로 특화된 매장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록과 메탈에 특화된 Vinyllica, 태국 전통 음악과 월드뮤직 LP를 취급하는 Zudrangma Records, 클래식 록 중심의 Get Back and Jude Records 등은 수집가들의 구미를 당긴다. 레코드숍과 카페를 결합한 Entertainment Project, 오디오 장비까지 함께 취급하는 Recoroom Vinyl & Vintage Audio 및 P&P Audio & Vinyl은 아날로그 감성에 목마른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방쓰 정션 내에 위치한 Monoloop과 로컬 인디 음악 중심의 Fat Black Record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방문 코스다. 해가 지면 빈티지 탐험은 야시장으로 무대를 옮긴다. ★ Train Night Market Srinakarin (씨나카린 기차 야시장): 빈티지 패션과 골동품을 파는 현지 셀러들이 거대한 군락을 이루는 방콕의 대표적인 빈티지 야시장이다. 클래식 카와 레트로 소품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 Green Vintage Market: 현지 상인들이 모여 다채로운 빈티지 아이템을 선보이는 곳으로, 날것 그대로의 로컬 마켓 감성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방콕은 이제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시간의 결을 탐구하고 개인의 취향을 발굴하는 거대한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다가오는 주말, 누군가에겐 낡은 물건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빛나는 보물이 될 그 무언가를 찾아 방콕의 골목길로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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