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세설] 쁘라텟타이, 타일랜드 속의 ‘팟타이’ 태국 현대사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20/11/10 13:05

[전창관의 방콕세설] 쁘라텟타이, 타일랜드 속의 ‘팟타이’ 태국 현대사

- 남녀노소 태국인들은 물론, 태국에 몇번 다녀간 외국인 여행객들까지 대부분 선호하는 지극히 대중적인 태국의 대표음식이 있는데 다름 아닌 ‘팟타이’다.

- 국수문명이 중국 대륙에서 생성되어 인도차이나 반도를 통해 비옥한 메콩 삼각주 평야지대의 미곡 경작지로 흘러들어오며 형성된 소위 ‘라이스 누들 로드 (Rice Noodle Road)’의 종착지 격인 나라 태국. 그 태국에서, 옛 중국대륙의 문명식인 국수문화(Noodle Culture)가 인도차이나 반도의 갖가지 풍요로운 식재료와 어우러져 탄생한 음식인 ‘팟타이(ผัดไทย)가 만들어진 사연은 이렇다.


▲ 남녀노소 태국인들은 물론, 태국에 몇번 다녀간 외국인 여행객들까지 대부분 선호하는 지극히 대중적인 태국의 대표음식 팟타이의 모습.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 태국 현대사에 출현한 팟타이의 정치경제적 유래

1932년 태국의 짝끄리 전제군주 왕조체제를 전복시키고 입헌군주제로 전환시킨 입헌혁명 주도사회운동가 ‘쁘리디 파놈용’이 핀춘하완 장군의 쿠데타로 실각되자, 쿠데타 세력은 ‘피분 송크람’ 원수를 총리로 추대했다. 권좌에 오른 ‘피분 송크람’은 자신의 집권 전후시기에 세계사를 뒤흔들던 파시즘과 군국주의를 답습하며 수 차례 총리직을 연임하는 가운데 25년간 장기 군사독재를 이어나갔다. 모든 신문의 1면은 그의 정책 홍보로 도배되었고, 구폐와 악습을 단절한다면서 국호도 아예 ‘사얌(Siam)에서 태국어로 ‘자유’라는 뜻을 가진 ‘타이(Thai,ประเทศไทย=쁘라텟타이/타일랜드)로 개칭했다.


▲ 1932년 입헌군주혁명을 일으키고 탐마삿대학교를 설립한 좌파성향 정치지도자 쁘리디 파놈용의 모습

군사독재와 개발경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 했던가. 그는 1938년 총리 자리에 오르자 태국판 새마을 운동을 벌였고, 개발경제 자금 마련을 위해 당시의 태국으로서는 유일하디시피 한 외화벌이 수단이었던 쌀수출에 열을 올렸다. ‘피분 송크람’ 군사정부가 지고지순한 쌀수출 외화벌이를 늘려나가는 과정에서 눈에 들어온 것이 다름 아닌 쌀국수였다. 상하의 나라 태국에서 쌀로 지은 밥보다 보관이 용이한 건조 쌀국수를 만들어 그때 그때 끓는 물에 데쳐 조리하는 방식의 ‘꾸어이띠아우’는 이미 이 시기부터 태국민들의 유용한 주식이었다. 뿐만 아니라, 쌀국수는 상대적으로 밥에만 의존하는 식사차림 보다 쌀의 소비를 상대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 입헌군주혁명 직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후 장기독재 과정에서 개발경제 정책을 내세우며 '팟타이'라는 음식을 고안해 태국민들에게 보급한 것으로 알려진 피분 송크람의 모습

당시의 군사정부는 쌀의 국내 소비를 줄여 쌀수출 물량확보를 늘려 나가기 위해서는 쌀밥 대신 쌀국수의 소비를 촉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판단했다. 특히, 탈곡 후 정미과정에서 발생하는 미곡 부스러기와 수출상품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깨진 쌀 알갱이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쌀밥 대신 쌀을 빻아 만든 쌀국수 소비를 권장하는 것이 주효했다. 이 과정에서 ‘피분 송크람’이 직접 나서 ‘베트남의 볶음 쌀국수 퍼사오’를 벤치마킹해 얻은 아이디어가 ‘팟타이’였다. 쌀수출을 늘리자고 국민들에게 삼시세끼 꾸어이띠아우 한가지만 먹으라고 할 수는 없던 차에 ‘팟타이’라는 신개발 메뉴로 선택의 초이스를 늘려 국민들이 식상하지 않게 하는 보완책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한편, 일반 꾸어이띠여우 대비 다양한 종류의 육류, 해산물, 야채가 들어가는 팟타이는 다양한 종류의 미각을 돋굴 수 있을 뿐 아니라, 쌀가루에 타피오카 가루를 섞어 제면하는 등 그 만큼 쌀소비를 줄일 수 있었다. 게다가, 기존 꾸어이띠여우 소비는 미작 농가와 축산업자의 수입증대로만 이어졌던 것 대비 해산물은 어촌, 야채는 밭농사 경작자들의 소득을 증대시켜 줄 수 있는 음식이어서 그야말로 일석삼조의 효과가 얻어졌다.

쌀수출량을 늘림과 동시에, 국민들을 궁휼케 하지 않으며 쌀을 많이 수출해 벌어들인 외화로 개발경제를 건설해 나감으로서 군사독재의 정책성과를 보이겠다는 피분송크람의 정책의지가 팟타이 한그릇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팟타이의 ‘팟’은 ‘기름을 넣어 볶다’라는 뜻이고, ‘타이’는 ‘자유’라는 뜻의 단어이기에 태국민들의 자유에 뭔가 새로운 윤활제인 기름을 넣어 볶는 의미의 음식이 탄생한 것이라고나 할까. 더구나 ‘피분 송크람’ 본인이 ‘싸얌(SIAM,สยาม)’이었던 국호를 ‘타이(THAI,ไทย)’로 바꿨던 터라, 팟타이라는 음식의 보급은 태국민들로 하여금 새로운 국호를 더욱 친숙하게 해주는 효과도 도모했다.

■ 태국의 삼색기(국민, 불교, 국왕)에 버금갈 정도로 다양한 재료의 팟타이가 갖는 의미?


▲ 태국의 수상시장에서 대중음식인 팟타이를 요리해 파는 모습. / 사진출처 : 캣덤뉴스

태국을 상징하는 삼색기가 <국민> <불교> <국왕>의 삼위일체를 나타내듯이, 은연 중에 팟타이는 <쌀국수>에 <달걀, 고추, 액젓, 새우, 닭고기, 두부>를 넣은 후, 고명으로 <고수, 라임, 땅콩>을 가미하여 섞은 후 풍성하게 기름을 둘러 볶아주는 자유민주주의 나라가 곧 태국이라는 의미를 형상화 시키는 뜻도 포함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팟타이(ผัดไทย)를 언젠가부터 태국 사람들이 팟타이(ผัดไทย)라고 쓰지 않고 팟타이(ผัดไท)라고 쓰기 시작했다(실제로 태국식당 메뉴판에는 대부분 이렇게 씌여있다). 왜 타이(ไทย)를 팟타이에는 타이(ไทย)라고 쓰지 않고 타이(ไท)라고 쓰냐고 주위의 태국인들에게 물어보아도 다들 잘 모르는 듯 하다. 

그런데, 태국에서 한참을 살면서 이들을 지켜 본 이방인인 필자는 알 것(?) 같다. 설사 태국인들이 “그런 억측이 어딨냐”고 본인에게 반문해도 한번 우겨보려고 한다. 그건 다름아닌 두개의 단어의 차이인 ‘여 약(ย)’이라는 자음탈락이다. 태국어로 ‘여 약(ย)’이라는 단어는 다름 아닌 ‘거인’ 내지는 ‘자이언트’라는 뜻을 가진 글자다. 

■ ’난세에 영웅난다’…태국의 혼란을 불식시켜 줄 정치지도자의 도래를 기다리는 태국민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건만, 어찌된 일인지 태국이 전제군주제를 폐지시키고 입헌혁명을 일으킨 시절에도 있었던 ‘쁘리디파놈용’이나 ‘피분 송크람’ 같은 자언트급 거물 정치인이 작금의 혼란스런 정국속에서는 안보인다. 

탐마삿대학교를 건립한 좌파성향 총리였던 ‘쁘리디 파놈용’ 같은 사람이든 지나친 개발경제에 치중한 독재성향의 정치인이던지 간에, 어쩌면 태국은 팟타이(ผัดไทย)를 먹고 표기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출중한 ‘여 약(ย)=자이언트급 정치가’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심 한 복판 시위대 숫자가 수 만명이 넘고, 물대포가 난무하고, 영화 ‘헝거게임’의 세손가락 동작이 거리에 넘칠수록 언젠가부터 태국민들은 더더욱 팟타이(ผัดไทย)를 만들어 먹으면서 잃어버린 거물급 자이언트 정치지도자’여-약(ย)’이 나타나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