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세설] 홍범도 장군 묘비에 <애국지사 ‘홍범도의 묘’>라고 새기지 말아야 하는 이유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21/09/06 11:15

[전창관의 방콕세설] 홍범도 장군 묘비에 <애국지사 ‘홍범도의 묘’>라고 새기지 말아야 하는 이유 정부는 국립 현충원 묘비에 “대한독립군 홍범도 장군의 묘”라고 새기기를…

올해 8.15 광복절에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뜻깊은 행사가 치뤄졌다. 다름아닌, 일제강점기 시절 하에서 대한독립군 소속 장군으로 봉오동 전투를 지휘했던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의 영현을 이역만리 먼 곳에서 우리나라 땅 대전 국립묘지로 모셔온 것이다. 참으로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 홍범도 장군의 영현을 실은 공군 수송기가 대한민국 영공에 진입하자, 공군이 운용 중인 전투기 6종이 총 출격하여 호위비행에 나선 모습 / 사진 : 연합

카자흐스탄에서 고국으로 돌아오는 장군의 영현을 모신 공군 특별수송기가 우리나라 영공으로 진입하자 대한민국 공군이 운용하는 6개 전투기종(F-15K · F-4E · F-35A · F-5F · KF-16D · FA-50)이 총 출동한 호위비행이 펼쳐지는 가운데 장군을 고국으로 모셨다. 서거하신지 78년만의 기나긴 세월이 흐르고 난 후에야 이뤄진 대한민국 국격 융성의 상징탑 적인 일이 아닐 수 없기에 머나먼 이국 땅에 사는 재외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회가 자뭇 새로웠다.

장군의 영현 호위비행에 투입된 전투기 편대장의 우렁찬 목소리가 대한민국 영토 전역의 5100만 국민은 물론, 전 세계에 퍼져있는 270만 재외국민들의 귓전을 울리며 TV방송을 통해 생중계됐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홍범도 장군님의 귀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공군이 안전하게 호위하겠습니다. 필승!”

홍범도 장군이 일본군에 맞서 역사적인 전승을 기록한 봉오동 전투 101년만에 벌어진 실로 감격적인 장면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정작 대통령까지 참석해 홍범도 장군의 영현이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순간, 추모의식 TV방송에 비쳐진 묘비의 비석문을 보며 일순간 아연치 않을 수 없었다.

다름아닌, 홍범도 장군의 묘비명 “애국지사 홍범도의 묘”… 홍범도 장군은 일제 강점기의 명실상부한 대한독립군 소속 장군으로 봉오동 전투지역  총사령관이었다. 이후 청산리 전투에서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 부대와 함께 전투를 벌여 일본군을 대파했다. 뿐만 아니라, 독립군의 통합운동을 벌여 김좌진 장군과 더불어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했다.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는 “봉오동 승첩에서 일본군은 157명이 전사한 반면 아군 전사자는 불과 4명이었다”고 발표했다.(이상 ‘위키백과’)


▲ 50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이 관람한 영화 '봉오동 전투'의 한 장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대통령까지 참석한 홍범도 장군의 묘비에는 “애국지사 홍범도의 묘”라고 적혀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대한 독립군은 명실상부한 상해임시정부 휘하의 군대 조직이었다. 한국 현대사에 걸쳐 역사를 부분 훼손한 몇몇 독재정부가 헌법 전문에서 상해임시정부의 흔적을 지우기도 했었지만, 결국1987년 타오른 민의에 의한 6월 민주화 항쟁으로 다시금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이 부활되어 헌법전문에 명시됐다.

이에 따라, 현행 우리나라 헌법은 전문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정확히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상해임시정부가 건립했던 대한독립군은 명실상부한 우리나라의 군대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나라 영공을 수호하는 최정예 대한민국 공군전투기 6대가 힘차게 날아올라 홍범도 장군의 영현을 국내로 모셔온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왜 또 이런 쌩뚱맞은 묘비명을 홍범도 장군의 묘역에 세워댄 것인지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 상해 임시정부 내각 요인들의 모습 / 사진='사진으로 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70년대 박정희 정부의 제3공화국에서 유신헌법이라는 것을 만들때 헌법전문에서 상해 임시정부를 지우고 “3.1운동과 5.16혁명을 계승한다”고 적었던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고, 전두환의 제5공화국에서 “5.16혁명” 문구는 삭제하면서 “상해 임시정부”의 존재감은 복원치 않고 “3.1운동”만 남기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지르기도 했지만 그건 불과 70,80년대 일부 독재정권 시대의 참화적 시기에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따라서, 우리정부의 법통 원류인 상해임시정부의 군무부가 관할했던 대한민국 독립군의 장군을 장군이라 부르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 호국 간성의 요람이라는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장군'으로 호칭되어 나란히 들어서 있는 홍범도 장군과 김좌진 장군의 흉상 그리고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휘호와 함께 세워져 있는 안중근 중장 동상 / 사진 : 네이버 개미실 사랑방

사실 안중근 의사 역시 대한의 군참모중장 겸 특파독립대장 그리고 아령지구 사령관의 자격으로 200~300여 명의 독립군을 지휘해 두만강을 건너 한경북도 경흥군으로 진격해 들어가 일본군 수비대를 기습 공격했었다. 이후, 이토우 히로부미를 저격한 후 법정에서 “본인이 대한의군(大韓義軍)의 참모중장(參謀中將)으로서 독립 전쟁을 하여 이등(伊藤)을 죽였고 참모중장으로서 계획한 것으로 도대체 이 공판정에서 심문을 받는 것은 잘못되어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렇듯 안중근 의사 역시 일본군과의 전투에 공식적으로 참여한 바 있다고 고증된 독립군 중장계급 장성급 군인이었기에 '안중근 참모중장' 또는 '안중근 장군'이라고 칭하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 하에서 상해 임시정부의 체계적인 군대 편제 운용으로 대한독립군이라는 군사조직을 양성해 일본과 교전한 대표적인 역사적 사실인 봉오동 전투와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 등이 실존한 것은 반드시 명명백백 역사적 징표로 남겨져야 한다.

그래야만 일부 정신 나간 부류의 무리들이 대한 독립군을 일컬어 “만주에서 게릴라 활동 좀 했던 것 가지고..." 운운해대는 입에 재갈을 물릴 수 있음이다. 따라서, 그런 의미를 부여하는 첫 발자국 중 하나가 국군의 전신 삼아야 할 독립군 지휘관에 대한 적확한 호칭 부여라고 본다.


▲ '대한독립군 홍범도 장군의 묘' 또는 '대한독립군 봉오동 전투지구 홍범도 사령관의 묘'로 기입되어야 할 묘비에 '애국지사 홍범도의 묘'라고 적혀있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추모식에 참례하고 있는 모습 / 사진 : 연합

홍범도 장군에 대한 훈장 추서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같은 민간인 대상 훈장도 의미있겠지만, 그와 더불어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 영예 훈장인 '화랑 무공 훈장'이 추서되어져야 함이고.

본국에서 독립군 지휘관급 영웅들에 대한 장군 호칭부여에 대해 일부 계층이 왈가왈부하는 현상이 일고 있다는 가당치 않은 이야기가 들려오곤 하는 상황에서, 홍범도 장군 묘지 비석문 호칭이 ‘애국지사 홍범도의 묘’라고 기입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상해 임시정부와 대한 독립군의 존재감을 인정치 않으려드는 일부 반대론자들과의 마찰을 피하느라 벌어진 일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도대체 왜 일본군 간도특설대 장교 출신인 백선엽은 장군이라 칭해지고 대한 독립군 홍범도 장군은 그저 애국지사라고 불려져야 하는지…

대한민국 대통령과 보훈처장께 270만 재외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합니다.

홍범도 장군의 묘비를 '대한독립군 홍범도 장군의 묘' 또는 '대한독립군 봉오동 전투지구 홍범도 총사령관의 묘'라고 다시 적어주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