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세설] 강대국들의 지소미아 입김사태를 맞아 태국의 대나무 중립외교정책 (Bamboo Neutral Diplomacy)이 주는 교훈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19/12/24 18:35

[전창관의 방콕세설] 강대국들의 지소미아 입김사태를 맞아 태국의 대나무 중립외교정책 (Bamboo Neutral Diplomacy)이 주는 교훈

- 780년 가까이 독립을 지켜 온 태국의 역사속에 두드러진 실리주의에 근간한 ‘대나무 중립외교(Bamboo Neutral Diplomacy) 노선

- 특정 강대국 한편에 기울어 승패를 떠난 명분지상주의의 극단의 싸움을 하자는 ‘척화파’와, 주변정세를 감안한 실리와 힘의 논리에 견인되는 기교를 자구책화 하려는 ‘주화파’가 격돌해 온 한반도의 역사 

- 상존하는 북한의 핵도발 위협과 지소미아 강요라는 일본의 경거망동에 맞닥트린 상태에서 우리가 취할 외교정책이 어느 한편의 외세에 기운 사대주의가 손쉬운 해답일 수만은 없어


▲ 조건부 연장으로 일단락 지어진 지소미아 사태를 둘러싼 한.미.일간의 손익계산서가 3국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고있다. / 사진출처 : jtbc

한·미·일 삼국이 지소미아 연장 여부를 둘러싸고 벌인 ‘한반도 국방외교 입김 논란’을 겪으면서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당시의 피맺혔던 통한의 역사가 떠오름과 동시에, 조선후기 제국주의적 침탈을 맞아 흑백 이분법 일변도의 종속적 외교관계에서 국권이 침탈되며 청일전쟁 틈바구니에서 일본에게 병탈된 후 미.소에 의해 국토가 분단된 뼈저린 한국현대사가 떠오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1238년 수코타이 왕조가 세워진 이래 지금까지 780년 가까이 독립을 지켜 온 태국의 역사를 외교사적으로 반추해 보면, 실리주의에 근간한 ‘대나무 중립외교(Bamboo Neutral Diplomacy) 노선이 두드러진다. 같은 뿌리를 가진 단일민족국가들을 자신들의 발 아래 통일시킨다는 다소 기이한 명분으로 ‘당나라’라는 외세를 우리나라 땅에 끌어들인 신라의 극단적 혼자살기 침략전쟁을 시작으로, 숭명사대주의자들에 의한 일본의 정명가도(征明假道) 요구에 정면으로 맞서다 7년간 온 국토가 불바다가 된 임진왜란을 치룬 조선중기의 전란사, 그리고 봉건세력과 주변 강대국들의 침탈에 맞서 일어난 동학농민군 봉기를 청나라와 일본 이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해결하려다가 맞닥뜨린 조선후기 전대미문의 동학농민전쟁 참극을 보더라도 이런 외세 침탈의 대응방식에 있어서 우리나라와 태국은 여실히 비교되어진다.

태국의 이같은 외교노선과는 다르게 우리의 지난 역사는 늘 주변 강대국의 어느 한편에 기울어 승패를 떠난 명분지상주의의 극단의 싸움을 하자는 ‘척화파’와, 주변정세를 감안한 실리를 따져 균형과 힘의 논리에 견인되는 기교를 살려보자는 ‘주화파’의 틈바구니 속에서 갈등을 심화시켜온 경향이 강하다.  다시말해, 우리나라는 ‘꼿꼿한 낙락장송 소나무가 거센 비바람에 정면으로 맞선 채 뿌러졌다가 어렵사리 척박한 대지에서 다시금 싹을 티워 소나무 숲’을 만들어 왔던 역사를 가진 반면에, 태국은 ‘굳건히 독립을 지키다가도 외세가 밀려들면 슬며시 휘어졌다가 어느 사이에 슬그머니 다시 나라를 곧추 세우는 대나무 같은 역사를 지닌 나라’인 것이다.

이러한 태국의 ‘대나무 중립외교’는, 산업혁명을 이룬 서구 열강들이 아시아로 밀려들어 대부분의 동양 각국을 서세동점(西勢東漸)했던 19세기 무렵의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와 20세기에 있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 그리고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개의 축으로 대표되었던 동서냉전시대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태국이라는 나라가 굴욕적인 불평등 조약이나 영토상실을 입지 않고, 소실대득(小失大得)으로 ‘국토와 국민 그리고 왕조’를 지켜내게 해 온 힘의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태국의 처신이 ‘대세에 편승한 유연함과 타협을 보이는 외교술’이라는 칭송과는 반대로 ‘기회주의적인 명분상실의 대외정치술’이라 여겨져 세계 외교사의 도마위에 오르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국가와 국민’ 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지켜나가는 근원적 기준을 추구한 정책이라는 부분에서 태국은 늘 그들만의 원칙을 고수해 왔다고 볼 수 있다.


▲ 포크와 나이프에서 포크만을 차용해 자신들의 숟가락과 함께 쓰는 ‘포크와 숟가락’ 식기 문화를 가진 태국. / 사진출처 : freepik.com
 

태국에서 살기에 자주 타이식으로 식사를 하다보면, 재미있는 현상 한가지를 느끼게 된다. 그것은 다름아닌, ‘서양권은 식사시에 포크와 나이프’를 쓰고,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은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는데 반해, 태국은 ‘숟가락과 젓가락’이라는 일반적인 동양식 식사도구 조합 대신에 서양의 포크-나이프 식사문화와의 접변에서 유입되고 차용된 ‘포크’ 라는 도구를 동양적 식사도구인 숟가락과 동시에 사용하는 ‘숟가락과 포크’라는 변형된 조합형태의 식사도구를 사용한다.

게다가 식탁에 오른 음식을 각자 직접 조미(調味)하는 ‘크르엉 뿌룽(ครื่องปรุง)’이라는 양념가미 용구를 추가로 사용해 자신의 입맛에 맞추어 먹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한마디로, 태국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동양권 문화에서 발달된 동남아적 식사의 방편인 숟가락을 고수하더라도 서양세력과의 문화 접변 시 들여 온 포크를 차용해 자신들의 편리한 소구로 동화시켜 함께 사용할 뿐 아니라, 이미 식기에 담아져 식탁에 올라 온 요리 조차도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재조미해 먹는 식사문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 외세의 어느 한쪽에 기운 사대주의스런 대응책만이 해답일 수만은 없기에, 영화 ‘남한산성’의 명대사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사옵니다” 또는 그 반대의 상황 역시 곱씹어 볼일이다. / 사진출처 : 영화 남한산성 포스터

외세 침탈로 식민지가 된 전력의 동남아 제 국가들과는 사뭇 다른 태국의 독립국가적 역사는 이렇듯 ‘양손에 각각 숟가락과 포크를 들고 자신들이 스스로 양념해가며 그들만의 밥그릇(국가, 국민, 왕조)’을 지켜내 왔다. 그렇기에, 그들의 손에 쥐여진 숟가락과 포크는 독립적 테이블 양식이자 ‘외래문화와의 융합의 묘’를 살린 식사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태국민들은 오늘도 대나무처럼 휘어지고 펴짐을 원활히 하는 균형외교 정책을 통해 정치외교사적 완성도를 이끌어 내며 독립을 굳건히 유지해 온 자신들의 역사에 커다란 자부심을 갖는 것이며, 이러한 태국의 ‘대나무 중립외교(Bamboo Neutral Diplomacy)’는 현재의 우리나라가 처한 한반도 군사 외교적 상황에서 각별히 눈여겨 볼 타산지석의 가치가 충분하다.

상존하는 북한의 핵도발 위협과 지소미아 강요라는 일본의 경거망동에 맞닥트린 상태에서 우리가 취할 외교정책이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력한 외세의 어느 한쪽에 기운 사대주의가 손쉽고 안정적인 해답일 수만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