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세설] 태국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19/10/29 13:18

[전창관의 방콕세설] 태국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Please do not leave valuable item(especially CASH) unattended XXXXXX Association will not be responsible for the lost or damaged items !”
(현금과 같은 귀중품을 두고 내리지 마시오. 골프장측은 분실 또는 손실된 물품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


▲ 방콕 인근 한 골프장에서 한인골퍼의 캐디 절도범 오인으로 인한 범인 색출요구 해프닝 직후, 골프카트 차량 전면에 붙여진 현금등 귀중품 분실주의문 스티커. 그 밑으로 더운 날씨에 캐디가 손님들 더위를 식혀주는 접이식 부채와 쉴 때 먹으라고 놓은 파인애플 봉지가 보인다.

며칠 전 방콕 인근 골프장에서의 일이다. 골프장 카트 차량 전면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안보이던 스티커가 크게 붙어 있어서 락커룸도 아닌 골프 카트 차량에 이런 대형 스티커 주의문을 붙여 놓은 연유를 듣고본 즉,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름이 아니라, 지난 달 말에 일련의 한국인 골퍼들이 18홀 라운딩을 즐긴 후 캐디에게 팁을 주려는 과정에서 한명의 골퍼가 자신이 골프 카트차량에 놓아두었던 지갑에 있던 현금액이 부족하다고 주장하며 캐디가 훔쳐간 것이 분명하니 골프장측에서 이를 조사해 확인 및 변상해 내라며 소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에 울상이 된 캐디와 한국인 골퍼간에 승강이가 크게 벌어졌고 골프장측에서 자초지종을 캐며 조사케 된 것이다. 

한국인 골퍼는 자신이 골프를 시작하기 직전 골프장 내 현금지급기에서 1만바트를 인출해서 골프비용으로 사용했기에 지갑에 얼마가 남아있는지를 정확히 알고있는 바, 자신의 기억 대비 수 천 바트의 금액이 부족하며 이를 캐디가 절도한 것 같다고 주장하는 다툼이 벌어졌다. 이에 급기야 골프장 측이 당해 현급지급기 옆에 부착된 CC-TV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웃지못할 해프닝이 일어났다. 해당 골퍼가 당일 현금지급기에서 인출한 현금을 세어보는 장면이 선명히 담긴 CC-TV장면으로 확인된 인출 금액은 1만바트가 아닌 5천바트였던 것이다. 결국, 분실을 주장한 금액 차이 발생은 다름아닌 현금지급기 인출금액이 1만바트가 아닌 5천바트였음에 따른 착오였다.


▲ 비교적 고급 골프장임에도 호수 조망의 예쁜 그늘집에는 아직도 50바트짜리 맛있는 오리고기 쌀국수가 서빙되고 있어 태국의 주말 한낮 정취를 즐길 수 있다.

이리하여 캐디를 절도범으로 오인한 해프닝은 일단락이 되었지만, 당해 골프장에서 한국인이 근거없이 성급한 결론으로 죄없는 캐디를 도둑으로 몰아세웠다는 것에 그곳 태국인들이 공분하는 분위기가 연출되었음은 물론인데, 이로 인해 사태수습 직후 골프장측에서는 골프카트 차량 전면 유리에 크게 ‘귀중품 또는 현금을 거치해 두지 말것’을 공지하는 스티커 까지 붙이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때에 따라 지갑에 든 금액에 착오를 일으키거나, 분실에 따른 주변인물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한번 찬찬히 돌이켜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과연 이런 상황이 태국 같은 저개발 동남아 국가가 아닌 선진 열강국가에서 벌어졌을 경우에도 이렇듯 뚜렷한 확증없이 단지 의구심이나 심증만으로 금전 분실을 확신하고 절도범 색출 소동을 벌일 수 있을런지 말이다. 아마도 그랬다가는 심각한 명예훼손으로 법적 소추를 당하거나 당해국가민들의 심각한 물리적 제재를 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정감이 오가는 골프장의 푸르른 그린에 안어울리는 황색 주의문 스티커가 골프장 카트에 붙어있는 것이, 오로지 일부 관광객의 지나친 절도범 오인 언사 해프닝 때만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갈수록 각박해져가는 태국 민생고의 또 하나의 민낯이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가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켰을 수도 있다.

사람이 사람을 쉽게 믿을 수만은 없는 세상이다. 무수히 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밀림의 정글과 같은 약육강식의 생태계에서 천태만상으로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 또한 현실이다. 태국도 예전 대비 날로 흉폭해지는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으며 실생활에서 접하는 그들의 생활상에서도 각박한 모습이 두드러질 뿐만 아니라, 심심찮게 한인사회 주변에서도 사기 및 절도 등 행각이 늘어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런 의구심을 제공하는 단초적 기원이 피부색이나 금전적 부유함 유무 여부에서 연유될 수는 없다., 더구나 상대방이 호의롭게 대해주는 것을 만만함으로 오인해 행동하는 일은 결단코 금기시 되어야 한다.

필자에게 동료 캐디가 겪은 이런 참혹한 절도범 오인 해프닝 참변을 들려주면서도 분개하기 보다는 연신 웃음짓는 얼굴로 자신은 스토리 구성이 탄탄한 한류 드라마 보는 재미로 산다면서 필자에게 연신 한류 연예인 이름들을 거명하며 이미 전문대를 졸업했지만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다시 한국어과로 대학에 진학하려한다는 태국인 캐디에게 웬지 미안한 감이 들어 뭐라 할말이 없었다.

태국의 뜨거운 태양이 예외없이 내리 쬐는 한 낮을 지세우며 신남방의 어느 하루는 그렇게 또 흘러가고 있었고, 그저 다른 문화라고 치부하기에는 지나친 면이 있는 우리들의 성급함과 조급함의 민낯어린 자화상 같은 그림자가 야자나무 뒤로 드리워지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