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세설] 한국 현대 정치사의 질곡스런 데쟈뷰 같은 태국 총선정국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19/04/02 19:37

[전창관의 방콕세설] 한국 현대 정치사의 질곡스런 데쟈뷰 같은 태국 총선정국

 

태국 민주주의의 앞날을 가름하는 변곡점 선상에서 치뤄진 태국총선이 두 자릿수 이상의 유효표를 획득한 정당들의 5파전으로 나뉘어진 채 막을 내렸으나, 갖가지 부정선거 사례가 논란에 오르내리면서 급기야 미 국무성에서 선관위의 공식 개표결과 발표 지연과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조사 필요성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 사진출처 : Thai PBS TV 화면 캡쳐

최종적으로 대세를 거머쥔 정당들은 1) 육군참모총장 자리에서 2014년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잉락정권을 축출하고 정권을 거머쥔 현 쁘라윳 총리 지지세력인 ‘팔랑쁘라차랏당(국권당), 2) 탁신정권하에서 보건부와 농림부의 수장을 지낸 수다랏 전 장관을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의 본산 ‘프어타이당(타이를 위한 당)’ 3) 2006년 탁신정권 축출로 정권을 잡았던 아피싯 전 총리가 주도했던 보수 혈통 ‘쁘라차티빳당(민주당)’ 4) 40대 기수론의 재벌그룹 타나턴 부회장이 창당한 신생 ‘아나콧마이당(신미래당)’ 5) 마리화나의 재배와 판매를 양성화하겠다는 다소 파격적인 정책을 내건 아누틴 당대표의 ‘품짜이타이당(애국당) 등인데, 태국도 우리나라처럼 어떤 정책이나 인물 됨됨이 보다는 유권자들의 내재된 성향 내지는 정치적 이권관계에 얽힌 소위 ‘묻지마 추종표’가 던져지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와 다른 점은, 한국은 문민정치로 전환된 상태이지만 태국은 아직까지 한국현대사를 얼룩지게한 60년대의 5.16군사정변이나 80년대의 12.12쿠데타 같은 군부정치가 개입된 정쟁에 놓여있다는 부분이다.

이번 선거는 해외로 도피중인 잉락총리를 선출했던 2011년 총선 이후 8년만에 치루어지는 선거인데다가, 2014년 5월에 쿠데타로 집권한 현 군사정부가 그간 4차례에 걸쳐 총선을 연기해왔었던터라 국민들의 선거 참여 민의가 어느 때 보다 드높았으나, 편파성 의혹을 남긴 무효표 결정기준으로 무려 198만 표의 무효표까지 발생하여 세간을 놀라게 하고 있다.

선거운동 기간중에 쁘라윳 총리와의 불화를 공공연히 내색한 아피싯 민주당 대표는 보수세력이 지지하는 군부와의 불화를 남긴 채 선거에서 패배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팔랑쁘라차랏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있는 쁘라윳 총리는 ‘자신을 군부의 정치개입 연장선상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누가 레드셔츠 무장폭력사태를 진압하고 사회안정을 이루었는지 생각해 보라’고 반문하면서 ‘사복입은 군인들’이 옹호하는세력의 집권만이 안정속의 번영을 이루어 줄 수 있음을 강조했다. 징병제폐지와 국방비 감축이라는 군부 힘빼기공약을내세운 수다랏 프어타이당총리후보는 아피랏 육군 참모총장을 포함한 군부세력에게는 크게 빈축을 샀으나 북부지방을 비롯한 농촌지역에 고루 분포된 탁신 세력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번 선거에서 기성세대들의 ‘레드셔츠로 대변되던 탁신지지세력’과 ‘옐로우로 칭해지던 보수 혈통’에 대한 지지세력간의 첨예한 대립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총 유권자 5,140만명 중 18세~25세에 해당하는 신세대 유권자 수가 730여 만명으로 전체유권자의 14%를 상회한 상태에서 이들의 표심동향은 이번 태국선거동향의 또 하나의 관전포인트였는데, 신세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신생정당인 신미래당 타나턴 당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쁘라윳 총리와 국권당을 선택하는 것은 군사정부와 국가평화질서유지위원회(NCPO)를 통한 군부정치를 연장시키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이기에 단호히 이를 거부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젊은 층들의 표심을 사로잡았다.

한편, 선거용 선심공세 등을 통한 부정선거를 방지키 위해 내려진 금주령까지 실시하는 와중에 군부가 지명 선출한 총리선출권을 가진 상원의원 250명을 ‘땅짚고 헤엄치기식 총선 앞잡이 아첨꾼들’로 질타하며, 곳곳에서 벌어지는 표사기 선심공세와 선거 개표조작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노래를 ‘독재에 항거하는 랩퍼들(RAP Against Dictatorship)’이라는 저항가요그룹이 선거를 하루 앞두고 기습적으로 유튜브를 통해 업로드하여 투표일 당일 아침부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 사진출처 : RAP Against Dictatorship 유튜브캡쳐

작년 말에 이미 ‘이것이 우리 조국의 현실’ 이라는 랩송으로 단 기간에 6천만 명에 육박하는 조회수를 기록하였던 이 민중가요 랩퍼그룹이 이번에는 ‘<250명의 아첨꾼들... 하나마나한 선거 - 꼭 가져야 할 국민의 참정권이 그놈의 아첨꾼들(군부가 지명 선출한 250명의 상원의원을 군부 거수기로 지칭)에게 유린 당하다니......’ 라는 가사의 랩송으로 불과 몇 일만에 120만명에 육박하는 조회수를 보이며 지금도 고공행진 중이기도 하다.

총선 결과가 현 군사정부 체제안에서 ‘안정속의 변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보수진영의 국민들’과 중진국 함정에서 하루 빨리 빠져나와 ‘급속한 경제발전을 통한 경제살리기’를 원하는 민의로 양분된 것으로 나타났으나 젊은층을 중심으로 전혀 다른 표심도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이번 총선에서 젊은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신미래당의 팬클럽 트위터에는 “또래우, 르억엥다이 - 우리도 이젠 클 만큼 컸어요. 투표 정도는 알아서 할 줄 안다구요”라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이번 총선에서 생애 첫 투표권을 부여받은 560만명의 신세대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한 표를 존중해 달라며 트위터에 “또래우, 르억엥다이” 해시태그 릴레이를 펼치며 저항의식을 내보였다.


지지자들로부터 강직하고 곧은 성품의 소유자로 보여지는 쁘라윳 총리를 “나는 더 이상 좋은 다이노사우루스를 원치 않아” 라고 힐난하는가 하면 ‘250명 상원의원의 총리 거수기론’을 풍자해 “누구는 제로에서 시작하고 누구는 250에서 시작하는 선거가 무슨 의미?” 등의 트위터 글이 나돌고 있다.

현행 태국의 정부구성을 위한 정치제도 역시 문제이지만 여당과 야당 어느 한쪽도 과점상태가 아닌 선거 결과로 총리 선출 과정에서 벌어질 정당간 이합집산 조짐은 여야로 나뉜 ‘이열종대 헤쳐모여’라는 구호 아래 총선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국민들이 하원의원 직접선거를 통해 만들어 놓은 정치판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게 할지를 판가름 하는 최종 승부수는 다시금 정치권의 손으로 넘어간 셈이다.

한편으로 더더욱 혼란스러움을 가중케 하는 것은 해외로 도피중인 탁신 전 총리이다. 그는 뉴욕타임즈 기고문에서 “군부정권이 자신들의 집권 연장을 위해 민주질서의 근간인 선거 시스템가 마저 파괴하는 것을 주저치 않고 있다”며 “이는 사상 유례없는 선거 결과 발표 지연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탁신 전 총리는 통신사업과 관련한 불법적인 국세 인하 법률 개정, 신도시 건립 프로젝트와 관련한 권력형 부정 대출, 불법 복권 유통으로 인한 부정축재, 그리고 수출입은행을 통한 통신장비 구매 비리와 관련한 재판에 계류돼 있어 태국으로의 입국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전투구의 정치판에서 과연 민의라는 것이 실존하는지가 의아스러운 정치세계 상황이다. 한국 정치 현대사가 걸어왔고 걸어가고 있는 정치현상의 데쟈뷰가 우리가 재외국민으로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