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어머니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21/05/14 10:53

어머니

우리나라만큼 어머니가 많은 나라가 있을까요? 우리는 자기의 어머니 말고도 어머니가 참 많습니다. 친척 중에도 큰어머니, 작은어머니, 할머니(한어머니가 변한 말)가 있습니다. 모든 언어에 이렇게 어머니가 많은 것은 아닙니다. 영어를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영어에서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일본어에서도 어머니라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적습니다. 다른 언어도 다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외국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어머니를 제외하고 ‘어머니’라고 표현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듯합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친구의 어머니도 어머니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드라마에서 친구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오면 외국 학생들은 무척 당황해 합니다. 같은 어머니의 자식이었는지 해석에 혼동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학부모와 상담을 하는 장면도 언어적으로는 복잡한 장면입니다. 학생의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외국인들의 혼동이 짐작이 될 것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자주 가는 식당의 주인에게도 어머니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쯤 되면 ‘어머니’의 범위는 점점 미궁으로 빠지게 됩니다.

왜 이렇게 우리에게는 어머니가 많을까요? 아마 그 해답은 반대로 ‘우리 어머니’라는 표현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외아들이어도 ‘우리 엄마’라고 부르는 것에서 이미 ‘어머니’는 나만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단순히 어머니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서일까요? 아닐 겁니다. 오히려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친구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면, 친구의 어머니는 나를 자식처럼 여기게 됩니다. 물론 나도 어머님처럼 생각해야 하겠죠. 식당의 아주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면 마치 자기 자식에게 해 주듯이 음식을 차려주게 될 겁니다. 정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면 세상은 따뜻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나 철학에서 공통되는 원리는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생각하고, 남의 기쁨이 나의 기쁨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모든 중생이 부처라는 생각도,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생각도, 사람과 하늘이 하나라는 생각도 모두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는 태도에서 출발합니다. 이러한 태도를 가장 잘 표현하는 어휘가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 엄마’고, ‘우리 집’이고, ‘우리 마을’이고, ‘우리나라’가 됩니다. ‘우리’라는 말은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는 말이 아니라 소유에 대한 집착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즉, 내 것과 네 것을 구별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별이 중요하지 않으면 모두 ‘우리 아들, 딸’이 되고, 모두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자식’처럼 생각한다면, 지금처럼 메말라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어르신들을 ‘부모님’처럼 생각한다면 노인 소외는 없어지겠죠. 물론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는 한 분이십니다. 그것은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이죠. 하지만 우리 어머니도 내가 모든 어른들을 어머니처럼 생각하겠다는데 서운해 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칭찬하시고 그리 살라고 어깨를 토닥이실 겁니다. 그게 우리나라에 어머니가 많은 이유입니다. 우리 민족이 넓은 의미에서 가족처럼 지낼 수 있는 것도 다 이런 호칭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