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관전평을 하다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20/05/26 12:48

세상이 점점 거칠어진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정(情)이 메말라 간다는 말도 자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도 줄어들고 만나더라도 형식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친척도 잘 모릅니다. 사돈의 팔촌은 커녕 가까운 친척도 잘 모릅니다. 5촌이면 거의 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는 적어졌는데 친척마저 멀어졌으니 피붙이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더 거칠게 메말라가고 있는 걸까요? 말도 삭막해지고 있습니다. 거칩니다.

우리는 삶이 전쟁이라는 말도 자주합니다. 일하는 직장이 전쟁터가 된 지 오래입니다. 다른 회사와의 전쟁일 뿐 아니라 같은 직장의 동료와도 전쟁입니다. 먼저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전쟁을 일으킵니다. 막상 올라가고 나면 현기증이 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나를 흔드는 사람도 많아집니다.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일터는 때로 전우가 적이 되기도 하는 살벌한 전쟁터입니다. 모두 알다시피 학교도 전쟁터입니다. 친구들과의 경쟁은 어제 오늘일이 아닙니다만,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전부터 있었던 일이겠지만, 따돌림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왕따가 이제 새 단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총성 없는 전쟁이라는 말도 자주 씁니다. 총소리가 없으니 덜 무서워야 할 텐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총성이 없기에 지금이 전쟁인 줄도 모르고 생활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늘 전쟁 상태라는 것과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전쟁보다 더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말이 총알이 되고 우리의 입은 서로를 향한 총구가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오히려 진짜 전쟁이 덜 두렵습니다. 물론 실제로 전쟁을 겪게 된다면 무섭겠지만, 그 전까지는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전쟁을 느

끼지 못하고, 두려워하지 않아서일까요? 우리는 이렇듯 쉽게 표현마다 전쟁을 입에 올립니다. 마치 난리라는 말이 추임새처럼 입에 붙어있듯이 말입니다. ‘난리 났어, 왜 난리야, 난리도 아니야.’처럼 말입니다. 전쟁이 난리입니다.

‘관전평(觀戰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관전평은 주로 스포츠 경기에 대한 평가에 쓰는 말입니다. ‘관전(觀戰)’이라는 말이 전쟁을 본다는 의미이니 스포츠 경기를 전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스포츠는 경쟁이 일어나는 현장이어서인지, 주로 싸움이나 전쟁에 비유합니다. 서로를 때리고 부수는 일부터 시작해서 폭격을 하기도 합니다. 상대를 초토화시키기도 하고 전멸시키기기도 합니다. 스포츠에서는 이렇게 무서운 용어를 전부 모아놓고 관전평을 합니다. 그런데 무섭지는 않습니다. 그저 멀찌감치 서서 평가를 하고 있는 겁니다. 남의 일로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전쟁을 보며 평가한다는 말 자체가 이상한 말이네요.

저는 종종 제가 세상을 관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합니다. 요즘 더욱 그렇습니다. 전염병으로 세상이 뒤숭숭한데 타인의 아픔을 내 감정으로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저 구경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각 나라의 환자 숫자를 경쟁하듯이 바라봅니다.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의 환자 수가 적으면 안심을 합니다. 다른 나라의 시스템을 평가하고 비난합니다. 때로는 그 나라의 지도자들이 잘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힐난을 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아픈 사람, 차별받는 사람, 죽어가는 사람, 세상을 떠난 사람의 가족과 친구는 왜 눈에 덜 띄었을까요? 왜 나는 구경을 하고 있는 걸까요? 아침마다 뉴스에서 들려오는 세계의 환자 수, 사망자 수를 보면서 왜 별다른 느낌이 없을까요? 스포츠 경기를 보듯이 어느 나라가 다른 나라를 앞섰다는 내용에 무덤덤하게 지나가게 될까요? 사람을 보지 않은 채 뉴스를 보고, 전쟁을 그저 바라보고 있는 스스로를 반성합니다.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