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다시 윤동주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20/02/15 15:05


한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시라면 윤동주의 ‘서시’와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달래꽃에 한국인의 사랑과 정서, 한이 담겨있다면 윤동주의 서시에는 절실함 또는 처절함이 있습니다. 김소월도 윤동주도 상황은 다르지만 요절을 하였기에 더 슬픈 감정이 듭니다. 윤동주의 서시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로 시작합니다.

이 시는 젊은 시인의 의혹 가득한 죽음과 맞물려 슬픈 감동을 주고, 반성의 시간을 주고, 다짐의 시간을 줍니다. 시인의 다른 작품 자화상, 참회록, 슬픈 족속, 쉽게 씌어 진 시 등과 이어지며 감정의 흐름이 깊어집니다. 저는 시에 관심이 깊어지던 중학교 시절부터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좋았습니다. 제가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서시를 흉내 낸 시를 써 보기도 했습니다. ‘초의 기도’라는 시였었는데 참혹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 여러 기회에 윤동주를 만났습니다.

오래전에 연길에 특강을 갈 일이 있었습니다. 잠깐의 시간이 남았을 때 저는 용정에 있는 윤동주 선생의 생가를 가 볼 수 있었습니다. 휘어있는 나무 굴뚝이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지금은 생가 앞에 중국 조선족 시인 윤동주라고 쓰여 있다고 하는데 좀 씁쓸합니다. 종로구에는 연희전문을 다니던 윤동주의 하숙집 터가 있습니다. 서촌에서 수성동 계곡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데 시도 한 편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윤동주 선생이 살았던 연희전문의 기숙사가 윤동주 기념관으로 개관하였습니다. 수성동 계곡을 올라 청운동을 넘어가면 윤동주 문학관이 있고,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있습니다. 그 언덕에는 ‘서시’와 ‘슬픈 족속’이 새겨진 시비가 햇살 속에 있었습니다. 시인의 이야기가 언덕을 풍요롭게 합니다.


교토에 갔을 때는 동지사 대학과 교토 조형예술대학에서 윤동주 시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동지사 대학에 다니던 시인은 교토 조형예술대학이 있는 곳에서 하숙을 하였습니다. 지금 두 대학에는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서 있습니다. 시비의 소개에는 한국 시인이 아니라 코리아 시인이라고 되어 있네요. 교토 조형예술대학에서 동지사 대학으로 가는 길에는 교토인이 사랑하는 가모가와 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강변에 윤동주 시인을 잡아간 시모가모[下鴨] 경찰서가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때와 모습이 달라졌지만 감정은 그때로 금방 달려갑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시인이 걸었을 길을 저도 조용히 걸어보았습니다. 세월에 겹쳐진 다양한 환영(幻影)을 만납니다.

윤동주 시인은 시모가모 경찰서에서 잡혀 재판을 받은 후 고종사촌 송몽규 선생과 함께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힙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국의 해방을 불과 반년 앞에 두고 옥사를 합니다. 한 달 사이에 같이 잡혀간 사촌 송몽규 선생도 옥사를 합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의혹이 가득합니다. 저는 후쿠오카에 갔을 때 형무소 자리에도 찾아가 보았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의 놀이터로 변한 모습입니다. 아이들의 모습에 자꾸만 시인의 슬픔이 겹쳐집니다. 마음 한켠에 쌓인 감정을 추스르기가 어렵네요.

돌이켜보니 저는 윤동주 선생의 생가부터 다니던 학교, 하숙집 그리고 잡혀간 경찰서와 형무소까지 모두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생을 기리는 언덕과 문학관, 시비도 만나게 되었네요. 지금은 일본 교과서에도 윤동주 시인의 시가 실려 있다고 합니다. 슬픈 족속으로 쉽게 쓰여 지는 시를 쓰는 자신을 돌아보고, 참회하며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어 하던 젊은이를 만납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말하는 시인에게서 폭력이나 복수보다는 평화와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12월 30일은 윤동주 시인의 탄신일이었습니다. 2월 16일은 시인이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겨울이 되면 저는 다시 윤동주 시인이 생각이 납니다. 얼마 전에 태국 한국교육원에서 새로 한국어 강의실을 여는데 교실 이름으로 어떤 게 좋겠냐는 물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소월’과 ‘동주’를 추천하였습니다. 태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에게도 윤동주 시인의 삶과 시가 잘 전해지기 바랍니다.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