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오’ 이야기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20/09/17 16:46


‘오’는 입술이 모아지는 음입니다. 입술이 앞으로 밀려나오는 모습입니다. 입술을 동그랗게 하는 음이어서 원순모음(圓脣母音)이라고 합니다. 밝은 모음이어서 감탄사로 표현하면 기분이 좋거나 칭찬의 느낌을 줍니다. ‘오!’의 느낌을 떠올려 보면 됩니다. ‘우’ 역시 입술이 앞으로 나오는 음이지만 무거운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감탄사로 ‘우!’를 표현하면 주로 불만이나 야유를 나타냅니다. 주로 저음(低音)으로 표현합니다. 무겁게 발음하는 겁니다.

‘오’의 글자를 보면 오가 보여준 느낌을 글자에 그대로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글자는 땅을 나타내는 ‘으’에 아래아를 더한 글자입니다. 즉, 땅 위에 하늘이 있는 것으로 해가 뜨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아’와의 차이는 오의 경우는 해가 위로 뜬다는 점입니다. 아는 동쪽에서 뜨는 것인데 말입니다. 태양이 위로 뜬다는 점에서 입을 모으고 위로 벌리는 느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양성 모음이라도 글자에 느낌을 담아 구별하고 있는 겁니다. 아와 오를 설명할 때 이렇게 글자의 느낌도 설명하면 좋겠습니다.

오는 해가 뜨는 모양을 글자에 표현한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따뜻한 느낌도 있습니다. 계절 중에서 ‘봄’에 오가 들어가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같은 입김이라도 ‘호’와 ‘후’의 느낌이 다릅니다. ‘호~’라고 하면 따뜻한 온도가 느껴집니다. 따뜻한 입김입니다. 아가의 상처에 엄마가 불어주는 바람, 얼어붙은 아이 손에 부는 입김이기에 온도와 사랑이 있습니다. 이렇게 바람을 부는 것을 ‘호호’라고도 합니다. ‘호호’는 엄마의 웃음소리를 표현하기도 하는데 참 재미있습니다. 아가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병이 다 나았을 때 기뻐하는 엄마의 웃음소리가 떠오릅니다. 호호는 행복한 기억이고, 호호는 행복한 마음입니다.

해가 뜨는 것이니 당연히 위로 올라가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첫음절에 ‘오’가 들어가는 순우리말 단어 중에는 상승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어휘가 많습니다. ‘오르다, 솟다, 돋다’ 등의 어휘가 전부 오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올라가고, 솟아오르고, 돋아납니다. 오가 들어감으로써 움직이는 방향을 명확히 하는 느낌입니다. 모음 글자를 볼 때 점의 위치와 방향을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이 나올 겁니다.

오는 원순모음이어서 원의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오라고 발음을 하면 왠지 눈도 동그랗게 뜨게 됩니다. 약간은 놀라는 느낌을 줍니다. 눈도 동그랗게 뜨고, 입도 동그랗게 벌리고 있으니 놀란 모습이기는 한데, 재미있는 느낌입니다. 알파벳에서도 ‘O’는 동그라미로 표현합니다. 입을 동그랗게 하고 내는 소리이기에 동그라미로 표현했을 것입니다. 우리말에서는 동그라미를 목구멍의 모양으로 표현했습니다. 이응(ㅇ)이라는 글자입니다. 텅 비어있는 느낌을 표현한 겁니다. 같은 동그라미지만 서로 다른 관점에서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말에서도 ‘오’는 입모양에서부터 동그란 느낌을 담고 있습니다. 글자가 아니라 소리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동그랗다’라는 단어에 오가 들어있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동그랗다’라고 발음을 하려면 입을 동그랗게 해야 하는 겁니다. ‘돌다’라는 단어에도 오가 들어갑니다. 원을 만들며 움직이는 행위입니다. 김밥을 ‘돌돌’ 마는 것에도 오가 들어가네요.

오의 글자는 태양이 떠오르는 밝고 따뜻한 이미지를 담고 있습니다. 상승의 이미지도 표현합니다. 오의 소리는 동그란 입을 통해서 나오기에 원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오의 글자와 소리의 미묘한 조화에 감탄하게 됩니다. 한글 모음 글자의 매력이 여기에 있습니다.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전공) iiejhy@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