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고용 시장의 두 얼굴 : 위기 속 기회를 모색하는 한국 기업을 위한 분석
2025년 1분기 태국 사회 전망 보고서가 전하는 냉엄한 현실과 새로운 가능성
태국 국가경제사회개발위원회(NESDC)가 최근 발표한 '2025년 1분기 사회 전망 보고서'는 태국 고용 시장의 명암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현지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고려 중인 한국 기업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실업률은 소폭 하락했지만, 그 이면에는 중소기업(SME)의 연쇄 폐업과 신규 졸업생들의 극심한 취업난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본 내용에는, NESDC 보고서를 중심으로 태국 고용 시장의 현주소를 심층 분석하고, 한국 기업들이 이러한 변화의 파고를 넘어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펼치기 위한 전략적 방향을 제시한다.
숫자 뒤에 가려진 태국 고용 시장의 불안한 속살
1. 태국 실업률 추이 그래프 (2024~2025 1분기)
겉보기엔 안정, 속은 '불완전 고용'의 늪
NESDC가 발표한 2025년 1분기 태국의 실업률은 0.88%로, 전년 동기 1.01% 대비 소폭 하락했다. 이 숫자만 보면 태국 고용 시장이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는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보고서의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보고서를 발표한 다누차 피차야난(Danucha Pichayanan) NESDC 사무총장은 전체 고용 인구가 3,940만 명으로 전년 대비 0.5% 감소했다고 밝혔다. 특히 제조업, 숙박업, 소매업 등 비농업 부문의 일자리 감소가 두드러졌다. 태국 경제의 중요한 축인 관광 산업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텔, 레스토랑 등 관련 분야의 고용, 특히 임시직 고용이 오히려 줄어든 점은 아이러니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불완전 고용(underemployment)'의 확산이다. 자신의 기술 수준보다 낮은 업무를 하거나,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광범위한 경기 둔화의 여파로, 특히 무역 및 서비스 부문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기업들이 정규직 채용 대신 임시방편으로 인력을 운영하면서 고용의 질이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SME의 붕괴, 일자리 창출의 동맥이 막히다
태국 고용의 근간을 이루던 중소기업(SME)의 위기는 고용 시장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최근 24,000개가 넘는 SME와 1,234개의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양질의 일자리가 대거 사라졌다. 이는 단순히 개별 기업의 파산을 넘어 태국 경제의 허리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위험 신호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 기업에게도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경쟁 강도가 약화되고, 현지 부품 조달이나 협력 관계 구축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M&A를 통해 우량한 기술력이나 인력을 확보하거나, 기존 SME들이 차지하던 시장의 빈틈을 파고들 새로운 기회를 모색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구조적 변화를 정확히 인지하고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다.
2. 태국 고용 인구 변화 (2024~2025 1분기)
'경력직 선호' 현상과 한국 기업의 인재 확보 전략
"신입은 사절", 태국 청년들의 좁아진 취업문
3. SME 및 공장 폐업 현황 (2025 1분기 기준)
이번 보고서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신규 졸업생들이 마주한 혹독한 현실이다. 2025년 1분기 실업자 약 36만 명의 대다수는 직장 경험이 없는 고등학교 및 대학교 졸업생들이다. 다누차 사무총장은 "신규 졸업생, 특히 전문 기술이나 실무 경험이 없는 이들이 가장 큰 고용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NESDC가 인용한 한 설문조사는 이러한 현실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기업 임원의 89% 이상이 신입사원 채용을 꺼린다고 답했으며, 그 이유로 ▲경험 부족 ▲기술 미숙 ▲직업의식 부족을 꼽았다. 이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포기하거나, 경험이 풍부한 프리랜서나 은퇴 인력을 활용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4. 기업 임원 설문조사 : 신입사원 채용 기피 이유
이는 태국 교육 시스템과 산업 현장 간의 심각한 괴리를 방증한다. 대학 교육이 시장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기업들은 '즉시 전력감'이 될 수 있는 경력직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한국 기업을 위한 제언 : 맞춤형 인재 양성 및 확보 전략
이러한 태국의 고용 시장 변화는 한국 기업에게 다음과 같은 전략적 시사점을 제공한다.
➊ 현지 맞춤형 인력 양성 프로그램 운영: 신입사원 채용을 꺼리는 현지 분위기 속에서, 오히려 한국 기업이 직접 인재를 키워내는 '육성형 채용' 전략이 빛을 발할 수 있다. 현지 유수 대학과 산학협력을 맺어 맞춤형 교육 과정을 공동 개발하거나, 채용 연계형 인턴십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이는 기업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제고하고, 우리 기업의 문화와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충성 인재'를 확보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➋ 경력직 및 전문 인력 적극 유치: SME 폐업 등으로 인해 시장에 풀린 우수한 경력직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흡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중간 관리자급이나 특정 기술 분야의 전문가들은 기업의 성장을 이끌 핵심 동력이 될 수 있다. 경쟁력 있는 급여와 복지, 그리고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여 이들을 유치하는 데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또한, 프리랜서 플랫폼 등을 활용하여 프로젝트 단위로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유연하게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➌ '소프트 스킬' 및 기업 문화 교육 강화: 현지 기업들이 태국 신입사원들의 '직업의식(professional etiquette)'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는 만큼, 한국 기업들은 채용 과정 및 입사 후 교육에서 직업윤리, 팀워크,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 '소프트 스킬'을 강조하고 체계적으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조직의 안정성과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한 때
태국 고용 시장은 현재 구조적 전환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SME의 몰락과 청년 실업 문제는 분명 심각한 위기 신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변곡점이기도 하다.
한국 기업들은 태국 고용 시장의 거시적 변화를 면밀히 주시하면서, 단기적인 인력 수급 문제를 넘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재를 확보하고 육성하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현지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로서 인재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실행할 때, 한국 기업은 태국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성공의 초석을 다질 수 있을 것이다. 태국 정부 역시 기술 도입, 혁신, 인력 기술 향상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만큼, 이러한 정책 방향에 발맞춘다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