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잘사는 나라 되려면 2048년까지 기다려야 하나
세계은행 "개혁하면 2037년도 가능"… 앞서가는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뒤쫓아오는 베트남
태국이 '고소득 국가'가 되려면 앞으로 몇 년이나 더 걸릴까. 세계은행은 지금처럼 성장한다면 2048년쯤 가능하다고 봤다. 하지만 개혁을 통해 성장 속도를 더 끌어올리면 2037년으로 앞당길 수 있다고도 했다. 그 차이가 무려 11년이다.
이 숫자는 태국에게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태국이 고소득 국가가 되는 시점이 늦어지는 동안, 주변 나라들은 가만히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는 반도체와 디지털 산업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고, 인도네시아는 큰 경제 규모를 앞세워 계속 성장하고 있다. 베트남도 제조업과 수출을 늘리며 태국을 바짝 뒤쫓고 있다.
지난 9월 3일 방콕에서 열린 비즈니스 서밋에서 세계은행은 'Building Thailand's Future Today'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 같은 추세로는 태국이 2048년이 되어야 고소득 국가에 들어설 수 있다. 만약 앞으로 10년 동안 국민 1인당 실질 소득 증가율을 매년 평균 5.4%까지 끌어올린다면 2037년에도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는 개혁이 실제로 이뤄졌을 때의 이야기다.
지금까지 태국을 중간 수준의 소득 국가로 키워온 방식이, 앞으로도 계속 통한다는 보장은 없다는 뜻이다. 그동안 잘해온 것과, 그 방식이 지금도 여전히 통하는지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변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주변국과 비교할 때는 먼저 무엇을 기준으로 비교하는지 정확히 봐야 한다. 인도네시아는 이미 경제 규모(나라 전체가 벌어들이는 돈의 총합, GDP)에서 태국을 크게 앞서 있다. 세계은행의 2025년 자료를 보면 인도네시아의 GDP는 약 1조4,500억 달러, 태국은 약 5,770억 달러다. 그러니 "인도네시아에 추월당할 수 있다"는 말은 시점부터 틀렸다. 이미 벌어진 격차를 인정하고 봐야 한다.
말레이시아는 국민 한 사람당 버는 돈(1인당 GDP)에서 앞서 있다. 같은 해 말레이시아는 약 1만3,125달러, 태국은 약 8,057달러였다. 여기에 반도체 산업과 데이터센터 투자까지 더해지고 있다. 태국이 말레이시아와 경쟁하려면 단순히 생산 비용만 낮출 게 아니라, 기술 인력 수준과 산업 생태계까지 함께 끌어올려야 한다.
태국이 정말 신경 써야 할 나라는 베트남이다. 2025년 기준 베트남의 GDP는 약 5,147억 달러로 아직 태국보다 적다. 1인당 GDP도 약 5,066달러로 태국에 못 미친다. 그러니 베트남이 벌써 태국보다 잘사는 나라가 됐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성장 속도는 확연히 다르다. 같은 해 베트남 경제는 8.0% 성장한 반면, 태국은 2.4% 성장에 그쳤다.
세계은행은 올해 베트남의 성장률을 6.8%로 예상하면서, 수출과 투자, 국내 소비, 행정 개혁을 그 원동력으로 꼽았다. 물론 베트남에도 숙제는 있다. 외부 경제 상황에 흔들릴 위험도 있고, 생산성을 더 높여야 하며, 외국 기업들이 만들어내는 성과를 자국 기업 성장으로 얼마나 이어가느냐도 과제다. 그래도 제조업과 수출을 중심으로 빠르게 몸집을 키우는 베트남의 속도는 태국이 경계할 만하다.
진짜 문제는 '순위가 밀리는 것'
이런 흐름을 보면 태국이 겪고 있는 위기는 '역전당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밀리는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태국 경제가 성장을 하더라도, 경쟁국들이 더 빠르게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산업을 키운다면 이 지역에서 태국이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단순히 "플러스 성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베트남 경제가 정확히 언제 태국을 앞지를지 콕 집어 말할 필요는 없다. 달러로 계산한 GDP는 환율에 따라서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건 앞으로 기업들이 새 공장이나 연구소, 지역 거점을 어디에 세울지 결정하는 방향이다. 이런 선택에서 태국이 계속 밀린다면, 나중에 성장률을 끌어올리려 해도 그만큼 더 힘들어질 수 있다.
태국 안에도 쌓여 있는 문제들
세계은행은 올해 태국 경제를 진단하면서 몇 가지 구조적인 문제를 짚었다. 산업 기반이 낡았고, 수출과 관광 경쟁력이 약해졌으며, 가계 빚은 많고, 정부가 쓸 수 있는 재정 여력은 줄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일시적으로 소비를 늘리는 정책만으로는 풀기 어렵다.
가계가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소비를 늘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 기업이 낡은 설비와 기존 인력으로만 버텨야 한다면, 더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으로 옮겨가는 것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도 재정 여유가 넉넉하지 않으니, 당장의 경기 부양과 장기적인 투자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처지다. 개혁을 미루면 미룰수록, 다음 선택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세계은행이 제안한 네 가지 방향
세계은행은 이번 보고서에서 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미래 산업을 키우는 것, 기업들이 더 역동적으로 움직이도록 돕는 것, 미래 인재에 투자하는 것, 그리고 미래형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유망한 산업으로는 첨단 제조업, 지속 가능한 웰니스 관광, 디지털 서비스, 농식품, 창조 산업을 꼽았다. 지금까지 방콕과 일부 대기업에만 몰려 있던 성장의 혜택을, 더 많은 기업과 노동자, 그리고 지방으로까지 넓히겠다는 방향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기업'과 '도시'다. 유망 산업을 정해놓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소기업이 기술과 자금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지방 도시에서도 기업이 필요한 인력을 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규제를 개선하고 교통·에너지 같은 기반 시설에 투자하는 것도, 실제로 이런 변화로 이어질 때에야 의미가 있다.
태국에서 사업하는 분들이라면
태국에서 사업을 하거나 투자를 고민하는 분들이라면, 판단 기준을 좀 더 구체적으로 가져갈 필요가 있다. 나라 전체의 성장률을 그대로 내 사업의 매출 전망으로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고객들의 실제 구매력, 인건비 대비 생산성, 숙련된 인력을 구할 수 있는지, 물류와 에너지 비용, 인허가가 얼마나 예측 가능한지를 업종별·지역별로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또한 태국이 고소득 국가가 된다고 해서 모든 기업의 수익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임금과 비용이 먼저 오르고 생산성 개선은 더디다면, 오히려 기업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반대로 산업 전환과 제도 개선이 실제로 진행되는 분야라면, 평균 성장률만 봐서는 보이지 않는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
남은 11년, 그리고 다음 세대의 기회
태국이 모든 면에서 주변국에 밀릴 거라고 단정하는 건 지나친 걱정이다. 하지만 앞서가는 나라들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한 채, 베트남의 추격까지 허용할 수 있다는 걱정에는 그럴 만한 근거가 있다. 태국이 지금 가진 산업 기반을 앞으로도 지키고 키워갈 수 있을지는, 결국 지금 이 시점의 투자와 정책 실행에 달려 있다.
2037년과 2048년 사이의 11년을 태국만의 사정으로 계산해서는 안 된다. 그 사이에 경쟁국의 산업도, 기업도, 인력도 계속 달라지기 때문이다. 태국이 개혁을 미루면서 잃는 것은 '고소득 국가'라는 이름을 얻을 시간만이 아니다. 다음 세대의 일자리와 투자 기회도 함께 걸려 있다.
글 | 김종민 교민잡지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