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이 된 부적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26/08/10 16:52

패션이 된 부적
방콕 아뮬렛 시장의 새로운 바람

탑 속 봉안물에서 현대 주얼리까지… 작은 성물에 담긴 태국인의 믿음과 욕망
방콕 왕궁 뒤편, 타프라짠(Tha Phra Chan) 시장 골목에 들어서면 시간의 흐름이 달라진다. 진열대에는 손톱만 한 불상과 메달, 금속관 모양의 부적이 빼곡하고, 손님들은 돋보기로 표면의 균열과 문양을 살핀다. 상인과 수집가 사이에는 어느 사원에서 나왔는지, 누가 만들고 축복했는지, 어떤 사연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를 묻는 대화가 오간다.

태국인에게 ‘아뮬렛(Amulet)’은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니다. 무에타이 선수가 링에 오를 때 몸에 두르는 성물에서부터 군인과 경찰이 목에 거는 불상, 상점 주인이 계산대 곁에 모시는 낭꽉(Nang Kwak)에 이르기까지, 아뮬렛은 신앙과 불안, 소망이 응축된 일상의 물건이다.

최근 이 오래된 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오래될수록 귀하게 여겨졌던 성물을 금과 은, 진주와 보석, 현대적인 체인에 결합해 젊은 세대의 주얼리로 다시 내놓는 움직임이다. 그 중심에 방콕의 주얼리 브랜드 ‘콩(Khong·ฃอง)’과 설립자 쏘피 슈머스-로저스(Sophie Schuemers-Rogers)가 있다.

처음부터 목에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 태국인이 목에 거는 불교 아뮬렛은 ‘프라 크르엉(Phra Khrueang)’이라 부른다. 그 프리는 ‘프라 핌(Phra Phim)’이라는 작은 불교 조상판에서 찾을 수 있다.

프라 핌은 젖은 점토를 틀에 눌러 찍어낸 작은 불상이나 불교 도상이다. 태국에서 발견된 몬·드바라바티 시대의 7∼9세기 테라코타 조상판에서도 이러한 형태가 확인된다. 크기가 작고 틀을 이용해 여러 점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불교의 가르침과 도상을 넓은 지역으로 전하는 데 적합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개인이 목에 걸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니었다. 많은 프라 핌은 공덕을 쌓고 불법이 오래 이어지기를 기원하며 수천, 수만 점씩 제작돼 불탑과 동굴에 봉안됐다. 개인의 호신물이라기보다 불교 공동체가 미래 세대에 남긴 ‘공덕의 저장고’였던 셈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오래된 쩨디(Chedi)가 무너지거나 보수되는 과정에서 그 안에 봉안됐던 성물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는 수집 대상이 됐고, 일부는 사람의 몸에 지니는 보호물로 바뀌었다. 탑 안에서 불법을 지키던 작은 불상이 이제는 누군가의 가슴 위에서 그를 지키게 된 것이다.

재료도 점토에만 머물지 않았다. 석회와 꽃가루, 약초, 향, 금속, 나무 등이 사용됐고, 제작 전후에는 독경과 의식을 통해 성물의 힘을 깨운다고 믿는 ‘쁠룩섹(Pluk Sek)’ 의식이 행해졌다. 태국 민속학에서 쁠룩섹은 단순한 축복이라기보다 물건에 잠재된 영적 힘을 일깨우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아뮬렛은 ‘사는 것’이 아니라 ‘빌리는 것’
태국 아뮬렛 시장에는 흥미로운 언어 습관이 있다. 불상이나 성물을 거래할 때 ‘산다’는 뜻의 ‘쓰(ซื้อ)’보다 ‘빌린다’는 뜻의 ‘차오(เช่า)’를 사용한다. 아뮬렛을 구했다는 말도 흔히 ‘차오 프라(เช่าพระ)’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돈이 오가니 경제적으로는 매매가 맞다. 그런데도 ‘빌린다’고 말하는 데에는 성물을 완전히 소유할 수 있는 일반 상품으로 취급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담겨 있다. 영원히 내 것이 되는 물건이 아니라 일정 기간 그 공덕과 보호를 맡아 모신다는 뜻이다.

가격도 재료값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어느 사원에서 나왔는지, 누가 제작하고 축복했는지, 어느 시기에 어떤 틀로 찍었는지, 보존 상태와 소장 경로가 어떠한지가 함께 작용한다. 같은 점토와 금속으로 만들어졌더라도 ‘누가, 언제, 어디에서 만들었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평가를 받는다.

위조품의 역사도 짧지 않다. 1960년대 태국 아뮬렛 연구에도 오래된 불탑에서 발견된 성물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면서 가짜가 등장했고, 진품과 위조품을 구별하는 일이 하나의 전문 기술이 됐다는 기록이 나온다. 지금도 타프라짠에서 돋보기를 든 감정가들이 성물의 표면과 재질을 들여다보는 이유다.

최고의 아뮬렛 다섯 점은 커피숍에서 태어났다
태국 아뮬렛 수집가들이 최고로 꼽는 조합이 ‘프라 벤짜파키(Phra Benjaphakhi)’다. 프라솜뎃 왓라캉, 프라낭파야, 프라롯, 프라쑴꼬, 프라퐁수판 등 다섯 계열의 유명 아뮬렛을 한 세트로 부르는 이름이다.

그런데 수백 년 전부터 정해져 내려온 종교적 규범처럼 보이는 이 조합의 탄생 과정은 의외로 현대적이다. 태국 수집가 사회에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1947년 무렵 방콕 민사법원 인근에는 아뮬렛 애호가들이 즐겨 찾던 커피숍이 있었다. 주인의 이름을 따 ‘바 마하판(Bar Maha Phan)’이라 불린 곳이다.

‘뜨리얌파와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유명 아뮬렛 연구가와 군인 출신 수집가들은 이곳에 모여 “목걸이에 어떤 성물을 함께 걸어야 가장 품격 있고 균형이 좋을까”를 논의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프라솜뎃을 가운데 두고 프라낭파야와 프라롯을 양옆에 배치한 세 점의 ‘뜨라이파키’ 구성이었다. 그러나 크기와 모양의 균형이 맞지 않자 프라쑴꼬와 프라퐁수판을 추가했다. 그렇게 다섯 점이 한 줄에 조화를 이루는 벤짜파키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영험함과 희소성뿐 아니라 크기와 형태, 목걸이에 걸었을 때의 좌우 균형도 선정 기준이었다는 사실이다. 태국 최고의 아뮬렛 조합에도 이미 ‘디자인의 눈’이 개입돼 있었던 셈이다.

다만 이 이야기는 고고학적으로 확정된 사실이라기보다 태국 수집가 사회가 기록하고 전해온 시장의 야사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렇기에 더욱 인간적이고 흥미롭다. 오늘날 거액에 거래되는 권위 있는 조합의 출발점이 사원이 아니라 수집가들이 모이던 작은 커피숍이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금녀의 시장’이 아니라 남성 중심의 권위 구조
태국의 아뮬렛 세계는 흔히 남성들의 시장으로 불린다. 승려와 감정가, 유명 수집가와 딜러를 중심으로 형성된 권위 구조가 오랫동안 남성 중심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여성이 아뮬렛 문화에서 배제됐던 것은 아니다. 여성들도 오랫동안 성물을 모시고 거래해 왔다. 1960년대 민속 기록에는 손짓으로 손님과 재물을 부른다고 믿는 낭꽉이 여성 상인들 사이에서 특히 널리 모셔졌다는 내용도 등장한다.

따라서 쏘피와 콩의 의미를 단순히 ‘금녀의 벽을 깼다’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보다 남성 감정가들이 진위와 계보를 결정해 온 시장에 여성 디자이너가 들어가 성물의 미적 가치와 착용 방식을 새롭게 정의하기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오래된 믿음에 새 옷을 입힌 ‘콩’
쏘피는 방콕에서 보석학자의 딸로 성장했다. 이후 스위스에서 생활하며 진주를 중심으로 한 주얼리 브랜드 파차리(Pacharee)를 설립했고, 수년간 생산팀과 세공 기술을 축적했다.

2025년 개인적인 어려움으로 창작의 방향을 잃었던 그는 친구들과 방콕 강변의 한 사원을 찾았다. 사원 앞 불상 가판대에서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불상만이 아니었다. 형광색 승복과 기하학적인 형태, 금속 체인과 작은 성물들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독특한 조형미였다.

그날의 경험은 놀라운 속도로 브랜드가 됐다. 이름과 로고를 정하고 첫 디자인을 완성해 방콕에 선보이기까지 불과 2주 정도가 걸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 속도는 하루아침의 우연이 아니었다. 파차리를 운영하며 쌓은 세공 경험과 숙련된 생산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쏘피는 콩의 방향을 설명하면서 ‘백마술(White Magic)’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여기서 백마술과 흑마술은 태국 종교계를 공식적으로 나누는 기준이 아니다. 착용자에게 두려움이나 타인에 대한 지배가 아닌 자신감과 보호받는 느낌, 착용의 즐거움을 주는 물건을 만들겠다는 브랜드의 선언에 가깝다.

축복 의식이 필요한 작업은 신뢰할 만한 사원과 협력해 절차를 따르고, 축복받은 성물과 순수하게 상징과 디자인으로 제작된 제품은 구분한다. 불상뿐 아니라 십자가와 성모 마리아, 가네샤, 나가, 살리카, 호랑이, 낭꽉과 태국 전통 얀트라 문양까지 다루는 것도 특징이다.

가톨릭 신자인 쏘피에게 믿음의 물건은 한 종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는 콩을 특정 종교의 성물 브랜드보다 서로 다른 문화와 신앙을 주얼리라는 언어로 연결하는 ‘믿음의 오브제’ 브랜드로 키우고 싶어 한다.

치아 사이에 넣었던 ‘황금 혀’ 쌀리카
콩의 컬렉션에 등장하는 쌀리카(Sarika)에는 재미있는 민간신앙이 전해진다. 쌀리카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구관조 계열의 새를 뜻한다. 태국어에는 말을 잘하고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을 ‘쌀리카 린텅(Salika Lin Thong)’, 즉 ‘황금 혀를 가진 쌀리카’라고 부르는 표현도 있다.

태국 민속학자 프라야 아누만 라차톤의 기록에 따르면 과거에는 아주 작은 쌀리카 따끄룻을 치아 사이에 넣으면 목소리가 부드러워지고 상대의 호감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도 했다. 치아 사이에 넣기 불편할 경우 얇은 판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실제 효능이 검증된 이야기는 아니다. 말과 소리에도 힘이 깃든다고 여겼던 옛 민간신앙의 한 장면이다.

콩이 선보인 쌀리카 하트 펜던트는 이 오래된 ‘말의 부적’을 현대 주얼리로 번역한 작품이다. 한때 치아 사이에 감춰졌던 작은 부적이 이제는 보석을 두른 채 가슴 위에 드러나는 장신구가 됐다. 믿음이 사라졌다기보다 믿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남의 역사를 잠시 맡는 비스포크 작업
콩의 작업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고객이 이미 소장하고 있는 아뮬렛을 새로운 주얼리로 세팅하는 비스포크 서비스다.

오래된 성물에는 가격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억이 담겨 있다. 부모에게 물려받았거나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사원에서 받은 것일 수도 있다. 콩은 이러한 물건이 공방에 불필요하게 오래 머물지 않도록 먼저 치수만 정확하게 측정한 뒤 고객에게 돌려준다. 세팅 틀이 완성됐을 때만 다시 성물을 가져오게 해 결합한다.

디자이너는 성물의 주인이 되지 않는다. 잠시 다른 사람의 역사와 믿음을 맡아 다음 세대가 착용할 수 있는 형태로 연결할 뿐이다. 태국인이 아뮬렛을 ‘산다’고 하지 않고 ‘빌린다’고 말해온 오래된 관념과도 묘하게 맞닿아 있다.

신앙이 패션이 된 것인가
아뮬렛의 상업화를 둘러싼 논쟁은 새롭지 않다. 믿음을 가격표가 붙은 상품으로 만드는 것 아니냐는 비판은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태국에서 성물의 제작과 유통은 오래전부터 사원 보수와 학교 운영, 지역 축제, 장인과 소상공인의 생계와 연결돼 왔다. 아뮬렛 시장을 단순히 불교의 타락이나 미신 산업으로만 규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물론 전통 사원의 성물과 영리를 목적으로 한 주얼리 브랜드의 제품을 똑같이 볼 수는 없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이 출처와 제작 과정, 축복 여부를 투명하게 밝히고 종교적 상징을 이국적인 장식으로만 소비하지 않는 태도다.

콩이 만든 것은 타프라짠을 대신할 새로운 시장이 아니다. 기존 시장으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입구에 가깝다. 전통 시장이 연대와 출처, 승려의 명성, 희소성으로 가치를 정해 왔다면 콩은 여기에 장인 정신과 디자인, 착용자의 사연을 더한다.

쏘피는 100년 뒤 자신의 작품이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에 브랜드의 명성을 말하지 않았다. 그동안 어떤 성물도 착용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콩의 작품이 생애 첫 성물이었으면 한다고 답했다. 탑 속에 봉안됐던 작은 불상이 목걸이가 되고, 방콕의 커피숍에서 논의된 다섯 성물이 최고의 조합으로 자리 잡았듯 태국의 아뮬렛은 시대마다 새로운 그릇을 찾아왔다.

이제 그 그릇이 금과 은, 진주와 보석으로 바뀌고 있다. 이를 신앙의 가벼움으로 볼 것인지, 오래된 믿음의 새로운 생명력으로 볼 것인지는 결국 착용자에게 달려 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태국의 아뮬렛은 박물관이나 골동품 시장에 멈춰 있는 과거가 아니다. 지금도 방콕의 거리에서 형태를 바꾸며 살아 움직이는, 현재진행형의 문화다.

❖ 콩 관련 내용은 2026년 7월 24일 자 타임아웃 방콕의 쏘피 슈머스-로저스 인터뷰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역사와 민속 부분은 쭐라롱꼰대학교 연구, 시암학회 자료,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품 해설 및 태국 아뮬렛 감정가협회 자료 등을 참고했다. 성물의 효능과 관련된 내용은 객관적 사실이 아닌 태국의 전승과 민간신앙으로 구분해 서술했다.

글 | 김종민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