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시장...편히 잠들기를”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21/11/24 12:46

“채권 시장...편히 잠들기를”

- 지금 우리가 알아두면 좋은 글로벌 경제현상들

1.지난봄 나스닥 홈페이지에는 

“RIP, Bond Bull Market 1981-2021”라는 글이 실렸습니다. 우리말로 바꾸면 “지난 40년간 채권시장의 강세, 편히 잠들기를...”쯤 됩니다.  그때 이미 사형선고를 내립니다.(이 글의 첫줄은 채권시장을 이어온 거대한 강세장이 끝났다고 시작해서, 마지막 줄은 거대한 인플레이션의 압력이 시작된다고 마무리됩니다)

아시죠. 채권은 돈 빌려주고 받은 차용증 같은 겁니다. 그런데 금리가 내리면 보통 채권값이 올라갑니다. 내가 해마다 2%씩 이자를 주는 한국 국채(10년물)를 갖고 있었는데, 은행이 예금 금리를 1%로 낮췄다고 가정해보죠. 투자자들이 다들 내 채권을 사려고 할 겁니다. 이자를 더 받을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채권 값이 올라갑니다.

지난 저금리 시대, 채권투자가 쏠쏠한 재미를 봤습니다. 그런데 채권값이 급락하고 있습니다. 금리가 오르기 때문입니다. 너도 나도 갖고 있던 채권을 던지면서, 채권값이 무섭게 빠지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납니다. 생각보다 인플레이션 파도가 높고, 그래서 금리 인상의 그늘도 짙어진다는 뜻입니다. 연준(FED)이 금리인상을 아무리 부인해도, 시중 금리는 늘 먼저 앞장서 내달립니다. 이를 채권시장이 선명하게 반영하는 겁니다. 그리고 한가지 눈여겨 볼 게 있습니다.

2. 단기채 수익률이 장기채 수익률을 추월합니다

보통 채권은 만기가 길수록 이자를 더 줍니다(우리가 은행에 적금들 때도 그렇잖아요). 돈을 빌리는 입장에선 돈을 더 오래 빌려주니, 더 안전하고 더 고맙습니다. 이자를 더 주죠. 그래서 보통은 장기채의 수익률이 더 높습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단기채의 수익률이 장기채의 수익률을 추월할 태세입니다. 경기가 안좋아질 것 같으면 투자자들은 단기채를 버리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장기채로 갈아탑니다(사실은 지금 죄다 팔고 있습니다). 게다가 단기 채권의 투매가 이어지다보니 단기채 수익률이 급등합니다. 이러다 단기채 수익률이 장기채 수익률을 추월하는 겁니다. (10년물, 20년물이 단기채는 아니지만) 며칠 전에도 미 국채 20년물의 금리가 30년물을 역전했습니다. 유독 크게 흔들리고 있는 우리 채권시장에서도 국고채 10년물의 금리가 30년물을 역전했습니다. 금리차도 사상최대입니다. 채권시장이 쑥대밭입니다. 채권 딜러 몇몇이 잠적했다는데요.

#참고1
채권 가격이 낮아지면 왜 채권 수익률은 높아질까? (그냥 외워도 되지만...)
예를 들어 제가 대한민국 정부가 발행한 5%짜리 10년물 국채를 1억 원 어치를 갖고 있습니다(제가 대한민국 정부에 1억원 돈을 빌려준 겁니다) 엇, 그런데 지금처럼 금리가 슬금슬금 오릅니다. 시중 금리가 6%가 됐습니다. 그럼 망한 겁니다. 차라리 파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눈물을 머금고 이 채권을 A투자자에게 9,500만 원에 팔았습니다. 그럼 A투자자는 1)1억 원짜리 채권을 9,500만원에 매입하고 2) 1년 지나면 약속된 5%의 이자를 받으니 수익률이 10.5%입니다. 이렇게 채권값은 떨어지면 수익률은 올라가는 겁니다. (만기 때 환매되는 가격이 정해져 있는 상품은 모두 가격과 수익률이 거꾸로 갑니다)   또 하나, 겨우 시장 금리가 겨우 0.1%P 움직였다고 뭐 그리 호들갑인지. 하지만 만약 제가 1천 억짜리 채권을 들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여기에 3년물이 아니고 30년물 장기채라면, 그 손익은 천문학적으로 커집니다. (이걸 왜 안전자산이라고 하는지...)

......

문제는 이렇게 장단기 채권 금리(수익률)의 역전이 경기불황의 신호라는 겁니다. 지난 2007년에도 그랬고, 지난 90년에도, 지난 2001년에도 그랬습니다(증권가에서는 모두 9번 그랬다더군요).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고 보통 6개월에서 24개월 안에 불황이 찾아왔습니다. 이번엔 틀리기를.

3. 자, 이제 인플레이션이 온다.

앞서 지난봄 나스닥 보고서의 마지막 줄 기억하시죠.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온다” 돈값이 떨어지는 겁니다. 돈의 값이 1% 떨어지면, 내가 연이자율 1%짜리 국채를 손에 쥐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니 다들 채권을 팔려고 하죠. 그래서 채권값이 더 떨어집니다. 이렇게 인플레이션 조짐이 보이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려야합니다. 중앙은행의 존재 이유는 ‘물가’를 잡는 겁니다. 그런데 중앙은행의 대장인 미 연준(FED)이 금리를 안올립니다, ‘글로벌경제’라는 환자가 퇴원을 무서워하거든요, 저금리라는 약에 쩔었거나, 아직 완치가 안된 겁니다. 지금 뛰어다는 거, 순전히 약기운입니다. 파월(Jerome Powell)이라는 의사도 퇴원을 반대합니다. (보통 물가 안정이나 긴축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매파로, 돈을 더 풀어 경기부양을 원하는 사람들을 비둘기파라고 부르잖아요, 파월처럼 이렇게 큰 비둘기는 본적이 없습니다) 연준은 보통 금리인상의 조건으로 크게 2가지를 봅니다. 1)물가와 2)실업률입니다. 실업률도 아직 기준점(3.5%)보다 높고, 인플레이션도 단기적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금리인상이 시기상조라고 합니다. 하지만 파월 의장이 아무리 ‘단기적’이라고 외쳐도 미국 물가는 치솟고 있습니다. 지난 9월 미국의 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5.4%나 급등했습니다.(물가가 너무 급등해 이명박대통령이 책상을 치며 기획재정부 안에 무과장, 배추국장을 지정했던 2011년 한국의 소비자 물가가 4.03% 였습니다)

진짜 역대급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선 시급 20달러를 줘도 아르바이트 학생을 구하기 어렵답니다. 시급 20달러로 하루 8시간, 주 5일 일하면 한달 380만원 정도입니다.  그럴만도 하죠. 연준은 코로나 이후 매달 꼬박꼬박 1,200억 달러를 풀고 있습니다. (파월은 비둘기가 아니고 한번 날개짓에 9만리를 간다는 붕새...) 그런데 이제 11월부터 시장에 공급하는 달러의 양을 조금씩 줄여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4. 더 세진 Dollar의 힘

달러가 강세입니다. 배추나 달러나 공급량이 많으면 가격이 떨어져야 합니다. 그동안 달러를 그토록 찍어냈는데, 그런데 달러화가 강세입니다. 심지어 우리 원화에게도 강세입니다. 환율이 달러당 1,200원을 육박합니다. 

#참고2
어떤 나라가 수출을 잘해서 달러를 많이 벌어들이면 그 나라 화폐 가치는 오르게 돼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수출을 잘해서 100억 달러를 벌었다고 가정해보죠. 그 달러의 대부분을 한국으로 갖고 들어올 겁니다. 서울외환시장에서 그중 상당부분이 원화로 환전됩니다. 태평로 본관에 100달러짜리로 쌓아둘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화의 수요가 높아지고, 달러값이 떨어집니다. 그렇게 어떤 나라가 수출을 잘하면 그 나라 돈의 가치가 오르고, 달러 환율은 내려가야 합니다. 실제 우리 기업들이 너무 잘하고 있고, 18개월째 무역수지가 흑자인데, 그런데 달러값이 우리 원화값을 이겨냅니다. 이유는 ...미국이라서 그렇습니다

...

뭔가 불안해지면 사람들은 일단 달러를 삽니다. 그래서 달러값이 오릅니다. 게다가 뭐든 사라진다고 하면 더 갖고 싶은 법. 미국이 11월부터 찍어내는 달러의 양을 좀 줄인다고 하니(테이퍼링), 달러가 더 갖고 싶습니다. 딜링룸의 트레이더들이 계속 강달러에 베팅합니다. 보통 달러자본이 해외에 투자될 때는 그 나라 화폐로 바꿔 투자됩니다. 예를 들어 마이클이 방콕의 빌딩을 사려면 바트화로 바꿔 사야합니다. 그런데 몇 년 후 빌딩가격이 올라도, 바트화값이 떨어져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니 달러화 강세가 예상되면 해외 투자된 달러를 빼서 미국으로 돌아가려는 힘이 커집니다(요즘 외국인들이 삼성전자를 멀리하는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러다 자칫 달러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외환위기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각 나라 중앙은행들이 서둘러 기준금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브라질과 뉴질랜드가 이미 금리 인상을 시작했고, 영국, 캐나다, 호주도 금리인상을 시사했습니다.  자국 화폐가치도 지키고, 인플레도 막아야합니다. 소방수들이 서두른다는 것은 그만큼 인플레의 불길이 세다는 것입니다.

5. 저금리 시대가 끝나갑니다. 

은행이 돈을 회수할 시간입니다. 중앙은행들이 모처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인플레이션을 저지할 것입니다. 흔히들 우리 경제의 불안요인으로 1)급등한 가계부채와 2)부동산 버블 붕괴 그리고 3) 지나친 신용거래로 인한 자산투자를 꼽습니다. 이 불안요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금리인상에 취약합니다. 기본적으로 금리가 오르면 경기의 발걸음이 무거워집니다. 가벼운 발걸음을 고집했다가는 넘어지기 쉽습니다. 우리는 지난 2년동안 진짜 ‘가격’의 소용돌이를 경험했습니다. 주식이며 부동산이며, 코인에서 국제유가까지 가격이 치솟고 있습니다. 늘 위기의 시작에는 관료들과 경제학자들 그리고 빌딩 꼭대기의 은행가들이 서있습니다. 그리고 위기가 마무리되고 금리가 오를 때쯤, 벼랑 끝에는 보통사람들과 서민들이 서있습니다.

경기 변동이란 그런 겁니다. 이렇게 또 우리 인생의 한 경기 사이클이 저물어 갑니다. 

우리와 관련된 모든 ‘가격’들이 부디 건강하게 퇴원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