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은 ‘똠얌꿍’, 우리는 ‘IMF’라 불렀다

2026/10/19 10:37:04

태국은 ‘똠얌꿍’, 우리는 ‘IMF’라 불렀다 1997년의 상처를 함께 가진 두 나라, 2026년 방콕에서 다시 묻는 성장의 길 다른 이름으로 남은 같은 해의 기억 한국 사람에게 ‘IMF 때’라는 말은 긴 설명이 필요 없다. 국제기구를 이야기하다가도 이 말이 나오면 어느새 대화는 집안 사정으로 옮겨간다. 다니던 회사가 어려워졌던 일, 사업을 정리했던 일, 계획했던 유학이나 이사를 미뤘던 기억이다. 경제위기는 뉴스 속 숫자보다 각자의 생활이 달라진 순간으로 남아 있다. 태국 사람에게는 ‘위끄릿 똠얌꿍’, 이른바 똠얌꿍 위기가 그렇다. 한국에서는 구제금융을 제공한 기관의 이름이, 태국에서는 자국을 대표하는 음식의 이름이 1997년의 충격을 부르는 말이 됐다. 표현은 달라도 그 안에 담긴 불안은 낯설지 않다. 하루아침에 돈의 가치가 달라지고, 믿었던 일자리와 사업이 흔들리는 경험이었다. 두 나라 사람 사이에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기억이 있다면 바로 이 시절일 것이다. 특히 한국과 태국을 오가며 살았던 교민에게 1997년은 고국과 삶의 터전이 함께 흔들린 해였다. 그 기억을 가진 방콕에 세계 경제의 주요 인사들이 모였다. 지난 10월 12일부터 18일까지 퀸시리킷 국립컨벤션센터(QSNCC)에서 열린 IMF·세계은행그룹 연차총회다. 태국의 개최는 1991년 이후 35년 만이다. 총회에 맞춰 행사장 주변에는 보안구역이 마련됐고, 출입도 참가증을 중심으로 엄격하게 관리됐다. 그러나 교민의 눈길을 붙잡는 것은 행사 규모나 경호보다 ‘IMF가 다시 방콕의 중심에 섰다’는 사실이다. 물론 1991년의 총회와 1997년의 구제금융은 다른 사건이다. 처음 총회를 개최했을 때 태국은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의 자신감을 보여줬다. 그로부터 6년 뒤에는 외환위기로 IMF의 지원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다시 29년이 흐른 지금, 태국은 세계 경제의 해법을 논의하는 회의의 주최국이 됐다. 위기의 출발점도, 회복의 조건도 똑같지는 않았다 1997년 7월 2일, 태국은 달러에 사실상 묶어두었던 바트화 환율을 변동환율제로 전환했다. 바트화가 급락하고 금융 불안이 번지면서 아시아의 성장 신화에 금이 갔다. 한국도 그해 말 외환 부족에 몰려 IMF 지원을 받았다. 태국에서는 부동산과 금융 부문에 쌓인 부실, 외화 차입과 환율 방어의 부담이 문제를 키웠다. 한국에서는 대기업의 과도한 차입과 금융기관의 취약성, 단기 외채를 제때 연장하지 못하는 상황이 겹쳤다. 각국의 사정은 달랐지만 외국 자금이 빠져나가고 빚을 갚을 달러가 부족해지면서 충격이 커졌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 차이는 위기 이후 두 나라를 비교할 때도 중요하다. 같은 해 IMF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같은 출발선에 서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쌓아놓은 산업과 기술, 기업의 구조가 달랐다. 이후의 성과 역시 개혁 정책이나 국민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질문은 남는다. 같은 시기에 큰 상처를 입었던 한국과 태국은 그 뒤 무엇을 바꾸었고, 어디에서 다른 길을 걸었을까. 같은 위기 뒤, 서로 다르게 키운 경쟁력 한국은 자체 기술과 브랜드의 힘을 키웠다 한국은 위기 이후 금융기관과 기업의 부실을 정리하고, 기업의 재무구조와 경영 관행을 바꾸는 과정을 거쳤다. 기업이 사라지거나 주인이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많았다. 경제가 회복됐다는 말만으로 당시의 대가까지 지워지지는 않는다. 이후 한국 경제의 변화를 읽는 중요한 단서는 기존 제조업 기반 위에 쌓인 기술과 연구개발이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에서 한국 기업은 자체 제품과 브랜드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힘을 키웠다. 위기 이전부터 진행해온 교육과 기술 축적이 이후의 투자, 세계 시장 확대와 맞물렸다. 세계은행도 한국의 고소득 경제 이행을 분석하며 혁신과 제도 변화의 중요성을 살핀다. 방콕에서 한국산 전자제품과 자동차를 보고, 한국 콘텐츠를 즐기는 태국 소비자를 만나는 일은 이제 특별한 풍경이 아니다. 교민들에게 한국 경제의 변화는 국내총생산 통계만이 아니라, 현지에서 한국 상품을 설명하는 방식이 달라진 경험으로도 다가온다. 가격과 품질에 더해 기술과 브랜드, 문화에 대한 관심이 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한국을 위기 극복의 완결된 성공 사례로만 그려서는 곤란하다. 수출 대기업의 성과와 작은 사업장의 형편 사이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OECD는 한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 사이 생산성 격차가 임금과 일자리의 질 차이로 이어진다고 지적해왔다. 저출생과 고령화, 높은 가계부채도 한국이 풀어야 할 문제다. 세계 시장에서 잘 팔리는 제품을 만드는 능력과 국민 다수가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여건은 함께 살펴야 한다. ‘IMF를 극복했다’는 자부심 곁에 고용 불안의 기억이 남아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태국은 세계의 생산기지와 방문지로 성장했다 태국도 위기 이후 멈춰 있지 않았다. 금융 부문을 정비했고, 외국인 투자와 수출 제조업, 관광과 서비스업을 바탕으로 경제를 키웠다. 세계은행은 수출 중심 산업화와 외국인 투자, 기반시설 확충이 태국의 빈곤 감소와 중산층 확대에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태국을 관광으로만 먹고사는 나라로 이해하면 중요한 절반을 놓친다. 자동차와 전자제품, 식품가공 등 제조업은 태국 경제의 큰 축이다. 세계은행의 올해 2월 보고서에 따르면 제조업은 태국 국내총생산의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관광객이 보는 해변과 쇼핑몰 뒤에는 공장과 부품업체, 물류망이 촘촘히 연결돼 있다. 한국과의 차이를 크게 묶어보면, 한국은 자국 기업의 기술·브랜드 경쟁력이 두드러졌고 태국은 외국 기업의 생산망을 유치하고 이를 현지 산업과 연결하는 강점을 키웠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한국도 해외 자본과 기술을 활용했고, 태국에도 세계 시장에서 활동하는 자국 기업이 있다. 이는 양국 경제를 가르는 절대적인 구분이 아니라 성장 경로의 무게중심에 대한 해석이다. 태국의 과제는 그렇게 유치한 생산과 투자가 국내 기업의 기술력과 근로자의 소득 향상으로 얼마나 이어지느냐에 있다. 공장이 늘고 수출액이 커져도 핵심 기술과 높은 수익이 외부에 집중된다면 현지에 남는 몫은 제한될 수 있다. 세계은행이 최근 태국에 기술 도입, 혁신, 인력 양성, 국내 부가가치 확대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외국인 투자가 들어오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투자를 통해 태국 기업과 사람이 무엇을 배워 더 잘하게 되는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방콕의 외형이 크게 달라진 만큼 경제의 속까지 바뀌었는지 살펴야 한다. 태국은 중상위소득 경제로 성장했지만 고소득 국가로 나아가는 과제를 안고 있다. 성장 속도는 둔화했고, 높은 가계부채와 빠른 고령화가 부담을 더한다. 한국과 태국이 서 있는 소득 단계는 다르지만, 예전 방식만으로 다음 세대의 생활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고민은 이제 두 나라에 모두 있다. 위기를 견딘 두 나라가 다시 마주한 질문 그때는 달러가 급했고, 지금은 다음 성장 동력이 절실하다 1997년의 급박한 과제는 빠져나가는 자금과 무너지는 금융시스템을 붙잡는 일이었다. 지금 두 나라가 맞닥뜨린 구조적 문제는 더 오랜 시간에 걸쳐 드러난다.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가운데 어떻게 생산성을 높일지, 새로운 기술의 혜택을 어떻게 더 많은 기업과 근로자에게 넓힐지의 문제다. 물론 유가와 환율, 국제 금융 불안은 여전히 생활을 흔든다. 이번 방콕 총회를 둘러싼 주요 현안에도 중동 전쟁에 따른 에너지 충격과 부채 부담이 놓여 있었다. 다만 당장의 충격을 견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위기가 지나간 뒤에도 소득과 일자리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회복을 체감하기 어렵다. 이 대목에서 세계은행이 총회 의제로 소개한 ‘Small AI: More and Better Jobs’가 눈에 들어온다. 현지의 언어와 예산, 업무 환경에 맞는 실용적인 AI를 일자리와 연결하자는 취지다. 교민 사업장에 대입하면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다. 주문과 재고를 더 정확히 관리하고, 언어가 다른 고객의 문의를 정리하고, 반복 서류 작업에 드는 시간을 줄이는 일부터 생각할 수 있다. 기술을 들여오는 것과 직원이 그 기술을 익혀 더 나은 일을 하게 되는 것은 함께 가야 한다. 한국에는 축적된 기술과 운영 경험이 있고, 태국에는 제조·식품·관광·서비스 현장에서 이를 활용할 여지가 있다. 양국 협력도 제품을 팔거나 시설을 짓는 계약을 넘어 현지 인력을 키우고 협력업체의 역량을 높이는 방향으로 넓혀볼 수 있다. 이는 총회의 확정 성과가 아니라, 두 나라가 걸어온 길을 바탕으로 찾아볼 협력의 방향이다. 한국의 경험을 가져오되, 태국의 현실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태국에서 사업하는 한국 기업과 교민에게 중요한 것은 이 지점이다. 한국에서 성공한 방식이라고 태국에서도 그대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태국의 소비자와 직원, 유통과 거래 관행을 이해해야 기술과 상품도 제 역할을 한다. 반대로 태국을 값싼 생산기지나 익숙한 관광시장으로만 보는 시각도 충분하지 않다. 태국이 생산성과 소득을 높이려 한다면, 그 과정에서 필요한 기술과 교육, 서비스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에너지 비용을 줄이는 설비, 식품의 품질과 유통을 관리하는 체계, 현장 직원이 쓸 수 있는 디지털 도구 같은 분야가 그 예다. 두 나라에서 살아본 교민의 경험은 이런 조율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한국 기업이 요구하는 품질과 납기를 설명하면서도 태국 현장에서 무엇이 어려운지 짚어줄 수 있다. 어느 한쪽에 다른 쪽을 무조건 따라오라고 요구하기보다,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는 역할이다.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 사는 동포에게도 이 이야기는 낯설지 않을 것이다. 고국의 경제가 좋아졌다는 뉴스와 내가 사는 곳의 장사가 잘되는 일은 다를 수 있다. 국가의 성장과 개인의 삶 사이를 이어주는 것은 결국 내가 가진 역량과 거래 관계, 그리고 사회가 제공하는 기회다. 함께 아팠던 기억이 서로를 이해하는 힘이 되려면 한국과 태국의 지난 29년을 승자와 패자의 이야기로 정리할 수는 없다. 한국은 기술과 수출 경쟁력을 크게 높였지만 그 성과를 더 넓게 나누는 과제가 남았다. 태국은 생산과 관광·서비스의 기반을 키웠지만 이를 더 높은 생산성과 소득으로 연결해야 한다. 태국의 변화를 재촉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한국이 겪은 고용 불안과 격차까지 돌아보지 않은 채 한국의 길을 그대로 권할 수는 없다. 무엇을 배울지와 무엇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지를 함께 이야기할 때 경험의 교환도 의미가 생긴다. 35년 만의 방콕 연차총회는 태국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여주는 무대이면서, 앞으로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돌아보는 계기다. 화려한 회의장과 국제적인 관심이 다음 세대의 일자리까지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총회 이후의 정책과 기업의 투자, 현장에서 사람을 키우는 일이 뒤따라야 한다. 우리는 그 시절을 ‘IMF’라 불렀고, 태국은 ‘똠얌꿍’이라 불렀다. 다른 이름으로 기억하지만 일터와 생활이 무너질 때의 두려움은 서로 이해할 수 있다. 그 기억이 남겨야 할 것은 위기를 이겨냈다는 자랑만이 아니다. 다시 어려움이 닥쳤을 때 사람들이 덜 다치게 하는 일, 회복의 성과가 작은 사업장과 평범한 가정에도 닿게 하는 일이다. 함께 아팠던 두 나라가 이제 나눌 이야기는 그만큼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 글 | 김종민 편집국장

비빔밥이 소시지 속으로

2026/10/06 16:16:17

비빔밥이 소시지 속으로 더비빔밥, 태국 세븐일레븐에 한식 신제품 선보여 CP그룹 계열 CPF와 공동 개발 쌀과 채소 담은 ‘비빔밥 소시지’ 출시 비빔밥을 소시지로 만들면 어떤 맛일까. 태국에서 한식당을 운영해 온 ‘더비빔밥’이 CP그룹 계열 식품기업 CPF와 함께 그 답을 내놓았다. 쌀알과 당근, 버섯, 시금치 등을 넣은 ‘비빔밥 소시지’다. 식당에서 한 그릇으로 먹던 비빔밥을 편의점에서 간편하게 즐기는 먹거리로 바꾼 것이다. 더비빔밥은 지난 9월 15일 방콕 CP그룹 본사 사옥에서 신제품 발표회를 열고 비빔밥 소시지의 출시를 알렸다. 업체 측에 따르면 판매망은 태국 전역의 세븐일레븐 약 1만 5,000곳이다. 방콕 주요 쇼핑몰의 한식당에서 출발한 브랜드가 전국 편의점 매대로 무대를 넓힌 셈이다. 이번 제품의 특징은 소시지 안에 담긴 재료에 있다. 한국식 양념으로 맛을 내는 데 그치지 않고, 비빔밥에 쓰이는 쌀과 채소를 함께 넣었다. 더비빔밥은 비빔밥의 맛과 재료 구성을 맡고, CPF는 소시지 개발과 생산·유통 역량을 보탰다는 설명이다. 직접 먹어보니 먼저 쫀득한 식감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 즐겨 먹던 소시지를 떠올리게 하는 탄력이 있다. 한입 베어 물면 ‘뽀드득’ 씹히면서 속에 박힌 밥알이 모습을 드러낸다. 당근과 버섯, 시금치가 한데 어우러져 비빔밥 특유의 풍미도 느껴졌다. 그대로 먹어도 맛있지만, 떡볶이에 곁들이거나 김치찌개에 스팸 대신 넣어도 잘 어울릴 듯했다. 전자레인지에 데워 간단한 맥주 안주로 내놓기에도 딱이다. 태국 소비자에게 소시지는 낯선 음식이 아니다. 북부의 ‘싸이우어(Sai Ua)’, 동북부의 ‘싸이끌럭 이싼(Sai Krok Isan)’처럼 지역마다 개성 있는 소시지가 있고, 편의점에서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더비빔밥은 이 익숙한 먹거리에 비빔밥을 접목했다. 한식당을 따로 찾아가지 않아도 동네 세븐일레븐에서 한국 음식의 맛을 접하게 하겠다는 취지다. 전창관 더비빔밥 대표는 “태국에서 오랜 시간 한식을 알려온 브랜드로서, 비빔밥이라는 한국 대표 음식이 태국 소비자에게 친숙한 소시지와 만나 새로운 형태의 K-푸드로 탄생하게 돼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세븐일레븐을 통해 태국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한식을 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CPF 글로벌 푸드 솔루션의 노라차이 라따나반쯘 부사장은 기존 ‘닭고기 끄라파오 소시지’에 이어 비빔밥으로 제품 개발 범위를 넓혔다고 설명했다. 더비빔밥의 메뉴를 현대 소비자의 생활 방식에 맞춰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개발했다는 것이다. 이번 협업은 한식당의 메뉴가 현지 대형 식품기업의 생산·유통망을 통해 가공식품으로 판매된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식당을 늘리는 방식과는 또 다른 경로로 소비자를 만나는 시도다. 비빔밥이라는 이름이 실제 구매와 재구매로 이어질지는 앞으로 소비자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더비빔밥은 삼성전자 태국 주재원 출신인 전창관 대표가 2010년 방콕 수쿰윗 24에 첫 매장을 열며 시작했다. 현재 아이콘시암, 엠쿼티어, 시암파라곤, 센트럴 계열 쇼핑몰 등에서 15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비빔밥 외에도 김치찌개, 순두부찌개, 김밥, 떡볶이, 삼겹살 등 다양한 한식을 선보인다. 2024년에는 방콕 유엔콘퍼런스센터(UNCC)에도 입점했다. 식당 운영과 함께 ‘더김치’와 ‘더도시락’ 브랜드로 김치와 한식 도시락도 판매하고 있다. 공연과 스포츠 현장에서도 태국 소비자들과 만나 왔다. 블랙핑크 지수, 김준수, 아이유를 비롯해 박보검, 김우빈, 이종석, 정해인 등 한국 가수와 배우의 태국 행사를 후원했으며, 태국 프로축구팀 무앙통 유나이티드의 2024~2025시즌 공식 파트너로도 참여했다. 오는 10월 25일 방콕 엠스피어에서 열리는 소녀시대 티파니 영 공연에도 공식 후원사로 참여할 예정이다. ✽ 김종민 편집국장 ✽ 기사·사진 제공: 더비빔밥

세계가 반한 골목 서울엔 종로3가, 방콕엔 딸랏너이

2026/10/06 11:39:00

세계가 반한 골목 서울엔 종로3가, 방콕엔 딸랏너이 타임아웃 '2026 세계에서 가장 쿨한 동네 40곳'… 종로3가 1위, 딸랏너이 14위 종로3가가 세계에서 가장 쿨한 동네 1위에 올랐다. 방콕에서는 딸랏너이가 14위. 반짝이는 새 건물이나 대형 쇼핑몰을 앞세운 동네가 아니라는 점이 재밌다. 한쪽에는 한옥 사이로 난 골목과 포장마차가, 다른 쪽에는 중국계 주민들의 오래된 집과 자동차 부품 가게가 있다. 도시가 정신없이 달리는 동안 제 자리를 지켜온 동네들이 세계 무대에서 나란히 박수를 받은 셈이다. 순위를 발표한 곳은 글로벌 도시문화·여행 매체 타임아웃(Time Out)이다. 서울과 방콕을 오가며 사는 우리 교민에게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서울에서 좋아하던 골목의 맛을 방콕에서 다시 찾기도 하고, 방콕에서 정든 풍경 덕분에 서울이 새롭게 보이기도 하니까. 길 하나가 아니라 동네 통째로 먼저 하나만 짚고 가자. 이 목록은 '거리'가 아니라 '동네' 순위다. 영어로는 스트리트가 아니라 네이버후드. 길 하나, 상점가 하나가 아니라 골목 여러 개와 거기 사는 사람들까지 통째로 본다는 뜻이다. 뽑는 방식도 독특하다. 관광객 수나 매출은 세지 않았다. 도시마다 현지 필진과 전문가가 후보를 추천하면, 타임아웃 편집진이 음식과 술, 밤 문화, 개성 있는 독립 상점, 생활환경과 공동체를 두루 따져 순위를 정했다. 그러니 1위가 14위보다 모든 면에서 낫다고 읽을 필요는 없다. "요즘 도시들이 이런 동네를 재밌어하는구나" 하고 읽는 편이 훨씬 남는 장사다. 참고로 종로3가는 2021년 같은 목록에서 3위였고, 올해 정상에 섰다. 딸랏너이의 14위는 이 연례 목록에서 방콕 동네가 받은 역대 최고 순위다. 익선동 한옥 골목 또는 돈화문로11길 포장마차의 저녁 풍경, 해가 지면 종로3가는 길가 식탁으로 자리를 옮긴다. 종로3가, 한옥 카페에서 포장마차까지 종로3가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누군가는 귀금속 상점과 오래된 식당을, 누군가는 익선동 한옥 카페와 저녁 술자리를 말한다. 같은 역에서 내려도 서로 다른 서울을 만나는 동네다. 타임아웃이 소개한 종로3가는 행정구역 경계보다 훨씬 넓다. 익선동 한옥 골목, 돈화문로11길 포장마차, 종묘 옆 서순라길이 한 줄로 이어진다. 낮에는 커피 한잔하고 작은 가게를 기웃거리다가, 해가 지면 길가에 앉아 안주를 나눠 먹는 하루다. 올해 타임아웃이 특히 눈여겨본 것도 포장마차로 되살아난 저녁의 활기였다. 낮은 지붕과 좁은 골목은 걸음을 절로 늦춘다. 큰길에서는 간판을 보고 목적지를 찾지만, 이런 골목에서는 모퉁이를 돌다 뜻밖의 가게와 마주친다. 오래 드나든 사람과 처음 온 사람이 같은 골목을 쓰고, 최신 유행 가게 옆에 오래된 가게가 그대로 있다. 딸랏너이, 커피 향만으론 모자란 골목 자, 이제 방콕이다. 짜오프라야강 가까이에 자리한 딸랏너이(Talat Noi)는 강변 교역의 역사에 중국계 공동체, 자동차 엔진과 중고 부품 가게가 겹겹이 쌓인 동네다. 요즘은 거기에 오래된 건물을 고친 카페와 문화공간이 들어왔다. 그렇다고 '요즘 뜨는 카페 동네'로만 부르면 설명이 반쪽이다. 이 동네의 개성은 커피 마시는 자리와 먹고사는 자리가 딱 붙어 있다는 데 있다. 타임아웃도 아래층 자동차 수리와 위층 카페가 한 건물에서 이어지는 풍경을 콕 짚었다. 원문에 이름이 오른 곳은 마더 로스터(Mother Roaster), 옛 숍하우스를 쓰는 965bkk, 바와 마켓이 어우러진 더 웨어하우스(The Warehouse)다. 가게와 살림집을 한 건물에 합친 숍하우스를 카페로 쓰는 건 한옥 카페와 견줄 만하다. 생김새도, 그 안에 쌓인 생활의 역사도 다르지만. 정비소와 카페가 한 골목에 붙어 있는 딸랏너이 골목 종로3가 낮 풍경 (비교용) 익선동 + 인사동 + 을지로 = 딸랏너이? 딸랏너이를 한국 독자에게 어떻게 소개할까 고민하다 나온 공식이 있다. '익선동과 인사동을 섞어놓은 동네', 거기에 을지로 한 스푼. 익선동에서 빌려온 건 공간을 쓰는 방법이다. 옛집의 모양과 골목 크기를 살려 카페와 작은 가게를 앉혔다. 인사동에서 빌려온 건 문화를 구경하며 걷는 기분이다. 다만 인사동처럼 전통 공예품과 화랑이 주인공은 아니다. 여기서 만나는 문화는 중국계 주민의 생활과 신앙, 오래된 건축, 골목 미술, 새 창작공간이 뒤섞인 모습이라, 닮은 건 산책의 기분까지다 그리고 을지로. 딸랏너이 골목에서는 지금도 부품을 사고팔고 기계를 손본다. 카페에서 잠깐 쉬고 나와도 누군가의 일은 계속되고 있다. 그 위에 짜오프라야강과 중국계 공동체의 역사가 얹힌다. 한국의 어느 동네와 닮았다는 얘기를 다 지나고 나면, 결국 방콕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남는다. 참, 가까운 쏭왓(Song Wat)과 헷갈리기 쉬운데 이번 14위의 주인공은 딸랏너이다. 이웃한 두 동네를 한 이름으로 뭉뚱그리지 말고 골목별로 나눠 걸으면 산책이 더 재밌어진다. 딸랏너이 산책 팁 ✽ 카페에만 머물지 말고 골목 구경할 시간을 남겨두자. ✽ 부품 나르는 통로는 비켜주고, 사람이나 실내를 가까이 찍을 땐 먼저 물어보자. 우리 눈엔 근사한 풍경이 누군가에겐 작업장이고 집 앞이다. ✽ 밤에 갈 바나 행사가 있다면 운영시간은 따로 확인하자. 오래된 동네를 좋아한다는 것 이번 40곳을 훑어보면 되풀이되는 풍경이 있다. 시장, 동네 식당, 독립 서점, 작은 술집, 공장과 창고의 새로운 쓰임 같은 것들이다. 오사카 기타카가야는 조선업의 흔적 위에 예술공간이 들어섰고, 싱가포르 잘란브사르에서는 오래된 철물·부품 가게와 새 디자인·커피 문화가 이웃한다. 물론 유명해지면 숙제도 생긴다. 사람들이 좋아했던 작은 가게와 오랜 주민이 앞으로도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이번 순위만으로 임대료나 주민 이탈을 판단할 순 없지만, 동네의 생활이 매력이라면 그 생활이 이어질 여건에도 눈길을 줘야 한다. 우리 교민들에게 딸랏너이는 비행기 안 타고 새로 읽어볼 수 있는 방콕이다. 한국에 가면 종로3가도 다시 걸어보자. 어느 쪽이 더 멋진지 점수를 매기려는 게 아니라, 익숙한 도시에도 아직 안 본 표정이 있다는 걸 확인하러 가는 것이다. 딸랏너이에서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았다면 커피를 다 마신 뒤 골목을 한 바퀴 더 돌아보자. 그 카페가 왜 하필 그 자리인지, 옆집은 뭘 하는 곳인지. 재미는 대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딸랏너이의 중국 사당 또는 가톨릭 성당, 부품 가게 앞 일상 벽화와 카페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이런 골목을 지나고 있다. ✽✽위 사진들은 ‘지역 분위기를 재구성한 AI 생성 이미지’입니다. 글 | 김종민 편집국장

지갑은 얇아도 속은 든든하게 한국과 태국, 서민의 소울푸드

2026/09/21 12:19:58

지갑은 얇아도 속은 든든하게 한국과 태국, 서민의 소울푸드 월급날이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지갑은 벌써 홀쭉해졌다. 그럴 때 우리는 무엇으로 배를 채울까. 최근 태국 SNS에서 '돈 없을 때 먹는 음식'이 화제인데, 쌀죽과 달걀프라이, 인스턴트 라면 같은 태국식 가성비 메뉴들이 한국의 서민 음식과 신기할 만큼 닮아 있다. 주머니가 가벼운 날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건 역시 라면이다. 태국 국민 라면 '마마'에 달걀 하나 톡 깨 넣으면 그날의 단백질은 해결이다. 한국도 다르지 않아서, 매콤한 라면 국물에 찬밥 한 덩이 말면 그만이다. 달걀만으로 한 끼가 되기도 한다. 기름을 두르고 짭짤하게 부쳐낸 태국식 오믈렛 '카이찌여우'가 밥반찬이라면, 한국에는 뜨거운 밥에 간장과 참기름을 쓱쓱 비빈 간장계란밥이 있다. 냉장고가 비어 있어도 이 두 가지만 있으면 걱정이 없다. 태국에는 한국에 없는 독특한 조합도 있다. 찹쌀밥에 바나나를 곁들인 '카오니여오 끄루어이'다. 열대 기후 특유의 이 조합은 쫀득한 찹쌀과 달콤한 바나나로 포만감과 에너지를 동시에 채우는 생존형 간식이다. 한국식으로 굳이 견주자면, 삶은 고구마에 신김치를 얹어 먹던 겨울철 간식 정도랄까. 거리로 나가면 서민의 삶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방콕 딸랏플루 골목이나 지상철역 아래에는 숯불에 굽는 무삥 냄새가 진동한다. 돼지고기 꼬치에 찹쌀밥 한 덩이면 몇 십 바트로 든든한 한 끼가 완성된다. 한국의 출근길을 책임지던 냄새는 길거리 토스트였다. 두툼한 양배추 달걀 부침에 설탕과 케첩을 듬뿍 뿌린 그 토스트, 그리고 하굣길 쌈짓돈으로 사 먹던 컵 떡볶이와 무한리필 어묵 국물은 그 시절 몸도 마음도 덥혀주던 메뉴였다. 특별한 날, 주머니는 가벼워도 기분은 내고 싶을 때 한국인 곁에는 짜장면이 있었다. 이사하는 날이나 졸업식 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던 검은 면발에는 서민의 애환과 기쁨이 함께 담겼다. 태국인이 속이 헛헛할 때 찾는 쌀죽 ‘쪽’이나 '카오똠'도 비슷한 위로를 건넨다.

후아힌에서 붙잡힌 한국인 사기 피의자, '동포라서 믿었다'는 말의 무게

2026/09/21 11:47:59

후아힌에서 붙잡힌 한국인 사기 피의자, '동포라서 믿었다'는 말의 무게 부동산 투자 사기 혐의로 67세 한국인 검거… 태국 내 관련 4건, 신고 피해액 1억 4,700만 바트(약 60억) 넘어 외국에서 같은 말을 쓰는 사람을 만나면 우선 마음이 놓인다. 관공서 서류 한 장 떼는 일조차 만만치 않은 타국살이에서, 현지 사정을 잘 아는 동포의 도움은 그만큼 귀하다. 사업이나 부동산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 고마움이 "돈을 맡겨도 된다"는 확신으로 넘어가는 순간에는 한 번쯤 멈춰볼 필요가 있다. 최근 후아힌에서 검거된 한국인 부동산 투자 사기 피의자 사건이 바로 그 지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태국 중앙수사국(CIB)은 지난 9월 8일 쁘라쭈압키리칸주 후아힌 힌렉파이 지역의 한 주택에서 한국인 한 모 씨(67)를 공동 사기 혐의로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경찰이 연관성을 파악한 태국 내 사건은 4건이며, 신고된 피해액은 1억 4,700만 바트(약 60억)를 넘는다. 다만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혐의'와 '확정된 범죄 사실'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Pattaya Mail 보도) 사건은 2020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찰 설명에 따르면 한 씨 일행은 한국인 투자자에게 태국 내 토지와 콘도미니엄 투자를 권유했다. 이후 별도 회사를 세워 투자자에게 지분과 투자 관리 권한을 주겠다고 제안했고, 투자자는 이를 믿고 추가로 8,900만 바트(약 36억)를 송금했다고 한다. 그러나 투자금이 애초 약속과 달리 토지 매입에 온전히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Pattaya Mail 보도)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회사 설립'과 '지분 제공'이라는 장치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단순히 누군가에게 돈을 맡기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느꼈을 법하다. 자기 이름이 회사 서류에 오르고 의사결정에도 참여할 수 있다면, 재산을 스스로 관리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회사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투자금의 실제 쓰임새까지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지분을 받는다'는 설명과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 사이에도 간극이 있을 수 있다. 결국 따져봐야 할 것은 훨씬 구체적이다. 회사 자금을 실제로 누가 움직이는지, 어떤 부동산을 얼마에 사들이는지, 매입이 끝난 뒤 등기는 누구 명의로 되는지다. 이 질문에 서류로 답하지 못한다면, 송금을 서두를 이유는 없다. 이번 사건에는 '30년 은신'이라는 자극적인 표현도 따라붙었다. 후아힌 투데이는 경찰 설명을 인용해, 한 씨가 약 30년 전 말레이시아를 거쳐 비공식 국경 통로로 태국에 들어왔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그가 출입국 기록을 남기지 않았고 본인 명의의 금융거래나 소셜미디어 사용도 피해온 탓에 추적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Hua Hin Today 보도) 다만 30년이라는 체류 기간을 곧바로 이번 투자 사기의 범행 기간으로 읽어서는 곤란하다. 지금 드러난 사건 경위와 피의자의 과거 행적은 별개로 확인해야 할 사안이다. 오래 숨어 지냈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피해자들에게 정작 절실한 문제는 자신의 돈이 어디로 흘러갔고 얼마나 돌려받을 수 있느냐다. 같은 보도에는 당국이 840만 바트(약 3억5천만원)를 동결하고 자금세탁 혐의 가능성을 함께 조사하고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물론 동결된 자금이 곧바로 피해자에게 돌아간다는 뜻은 아니다. 관련 자산과 자금 흐름을 명확히 밝히고, 이를 실제 피해 회복으로 연결하는 후속 절차를 계속 지켜볼 일이다. (Hua Hin Today 보도) 교민 사회가 이런 사건을 접할 때 경계해야 할 태도도 있다. 피해자를 향해 "큰돈을 벌려다 그런 것 아니냐"고 쉽게 말하는 일이다. 그런 시선이 앞서면 피해를 입고도 주변에 알리기를 주저하게 된다. 신고가 늦어지고 정보가 흩어지면, 결국 피해 경위를 밝히는 일 자체가 더 어려워진다. 피해를 호소하는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되, 소문과 확인된 사실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피해액이 어떤 사건들을 합산한 수치인지, 수사 중인 혐의인지 아니면 판결로 확정된 사실인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숫자를 부풀리거나 확인되지 않은 뒷이야기를 덧붙인다고 피해자의 사정이 더 잘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 투자를 앞둔 교민이라면 소개자의 경력이나 친분을 확인하는 선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계약 상대방과 등기상 소유자가 실제로 같은 사람인지, 회사의 지분과 서명 권한은 어떻게 짜여 있는지, 송금받는 계좌가 계약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태국 경찰 역시 이번 사건과 관련해 토지사무소에서 소유권 서류를 직접 확인하고, 회사 구조와 거래 상대방의 이력을 독립적으로 점검할 것을 당부했다. (Pattaya Mail 보도) 필요하다면 투자 권유자와 이해관계가 없는 현지 변호사에게 계약서와 관련 서류를 검토받는 편이 낫다. 설명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다들 이렇게 한다"는 말만 믿고 서명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확인을 요구하는 것을 상대에 대한 결례로 여길 필요도 없다. 큰돈이 오가는 거래라면 당연히 거쳐야 할 절차일 뿐이다. 타국에서 쌓아온 동포 간의 신뢰는 그 자체로 소중하다. 그 신뢰가 오래가려면, 오히려 돈이 오가는 자리에서는 서로 더 명확해져야 한다. 계약서를 꼼꼼히 읽고, 권리관계를 확인하고, 거래 기록을 남기는 습관이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지켜준다. 이번 검거가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회복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교민 사회 역시 이 사건을 한때의 화제로 소비하고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음에 투자 제안을 받았을 때 서류 한 장을 더 확인해보는 습관, 그 작은 변화라도 남기를 바란다. 글 | 김종민 교민잡지 편집국장

람빵의 고요 속 날카로운 시선

2026/09/06 13:24:33

람빵의 고요 속 날카로운 시선 사진작가 권학봉, 새 스튜디오에서 다음 장을 열다 PX3 2025 파인아트 부문 1위 역사와 현재를 포갠 ‘독립운동 : 겹쳐진 시선’ 방콕과 치앙마이에 비하면 람빵(Lampang)의 하루는 한결 느리다. 관광객을 붙잡으려는 요란한 간판도, 유행을 좇아 하루가 다르게 모습을 바꾸는 거리도 드물다. 오래된 목조 가옥과 마차가 아직 도시 풍경의 한 부분으로 남아 있는 곳. 한국 교민에게는 익숙한 여행지는 아니지만, 그 고요한 북부 도시를 작업의 거점으로 삼은 한국 사진가가 있다. 다큐멘터리와 순수예술 사진의 경계를 오가며 인간과 사회를 기록해 온 권학봉 작가다. 권 작가는 교민잡지 독자에게 아주 낯선 이름은 아니다. 그동안 개인전과 그룹전, 한국과 태국 사진가들의 교류전 소식을 통해 여러 차례 그의 작업을 소개해 왔다. 그는 2017년부터 람빵에 살며 한국과 태국을 오가고 있다. 단국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고 기업 디자이너로 일했던 그는 이후 사진으로 방향을 틀었다. 디자인에서 익힌 화면 구성과 조명, 후반작업의 감각은 현장의 사실을 기록하면서도 한 장의 이미지 안에 작가의 질문을 치밀하게 배치하는 그의 방식으로 이어졌다. 그가 카메라를 들고 찾아간 곳들은 대체로 관광 안내서의 바깥에 있었다. 100년 넘게 지하 석탄층이 타고 있는 인도 자리아(Jharia)의 탄광마을에서는 생존과 환경 파괴가 한데 얽힌 현실을 기록했고, 방글라데시의 로힝야 난민촌에서는 고향과 국적을 잃은 사람들의 삶과 증언을 담았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이어진 ‘Faces of Zomia’ 작업은 국가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동남아시아 고산지대, 이른바 조미아(Zomia)의 소수민족 공동체를 오랫동안 지켜본 기록이다. 사건의 참혹함을 앞세우기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얼굴과 존엄을 놓치지 않는 것이 권학봉 사진의 한결같은 태도다. 그의 작업은 현장 기록에만 머물지 않는다. 2014년 인도 자리아 작업으로 온빛사진상 선정 작가 11인에 들었고, 2018년에는 로힝야 난민 기록으로 제8회 온빛상을 받았다. 이후 ‘WORSHIP’과 ‘Denial Scenery’ 같은 순수예술 연작을 통해 인간의 믿음과 욕망,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를 탐구했다. 2019년부터는 한·태 사진 교류 프로젝트 ‘PhapThaySajin’을 공동 기획하며 두 나라 사진가들이 함께 전시하고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왔다. 2025년 7월에는 치앙마이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비주얼아트 석사과정을 마쳤다. 역사 위에 떠오른 한 소녀 최근 그의 이름을 다시 국제무대에 올린 작품은 ‘독립운동: 겹쳐진 시선(The Independence Movement: Layered Gazes)’이다. 이 연작은 프랑스 파리의 국제사진상 PX3(Prix de la Photographie, Paris) 2025에서 전문작가 파인아트 분야 1위에 올라 ‘Fine Art Photographer of the Year’로 선정됐으며, 세부 부문인 Fine Art/Other에서도 금상을 받았다. 사진 속에는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마, 이화학당 교복 차림의 소녀가 등장한다. 유관순 열사를 떠올리게 하지만 특정 인물을 재현한 것은 아니다. 이름을 남기지 못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함께 상징하는 존재다. 소녀는 탑골공원과 서대문형무소, 유관순 열사 생가, 병천오일장, 천도교 중앙대교당, 옛 태화관 터 같은 역사적 장소의 지면에서 살짝 떠오른 채 어딘가를 응시한다. 이 ‘부유’가 작품의 핵심 장치다. 인물이 땅에 발을 딛지 않은 모습은 과거가 이미 끝났다는 안도와 아직 정리되지 않은 기억 사이의 거리를 드러낸다. 익숙한 사적지는 낯선 공간으로 바뀌고, 기념비 뒤에 가려졌던 사람들의 시간이 오늘의 풍경 위로 다시 떠오른다. 람빵에 마련한 새로운 작업 거점 이 작품을 구상하고 정리한 장소가 람빵이다. 작가가 남긴 작업 노트의 끝에는 ‘2025년 5월, 람빵에서’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국제적인 수상 결과는 파리에서 발표됐지만, 그 시선을 벼린 시간은 북부 도시의 조용한 작업실에서 흘렀다. 권 작가는 근래 람빵에 새 스튜디오를 꾸리고 촬영 설비도 갖췄다. 현재 확인되는 성격은 일반 관람객을 위한 상설 갤러리라기보다 작품 제작과 인물 촬영, 소규모 조명 수업과 워크숍을 함께 진행하는 개인 작업 거점에 가깝다. 사진 조명과 포토샵·라이트룸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쓰고 교육 콘텐츠를 만들어 온 그에게 이곳은 촬영 현장이면서 연구실이고, 후배 사진가들과 경험을 나누는 교실이기도 하다. 더 눈길이 가는 것은 이 스튜디오가 한 사람의 완성된 이력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아직 진행 중인 작업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이다. 권 작가는 ‘독립운동: 겹쳐진 시선’을 국내 사적지에 한정하지 않고 해외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의 흔적까지 넓혀가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조미아를 10년에 걸쳐 기록했던 것처럼, 이번 연작 역시 긴 호흡의 프로젝트가 될 가능성이 크다. 북부의 느린 도시에서 다시 빛을 세우고 한 장의 사진을 고르는 권학봉 작가. 그의 다음 작품이 우리 앞에 어떤 질문을 가져올지, 이제 차분히 지켜볼 일이다. 글 사진 | 김종민 편집국장

12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