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콕의 진짜 ‘매운맛’을 보여주마, 반 아이스 (Baan Ice)
미쉐린 2스타 셰프의 ‘뿌리’를 맛보다
할머니의 레시피로 써 내려간 태국 남부 요리의 정수
방콕의 쇼핑몰을 걷다 보면, 뿔테 안경을 쓴 앳된 남자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간판을 마주치게 된다. 이름은 ‘반 아이스(Baan Ice)’. 직역하면 ‘아이스의 집’이다. 얼핏 보면 평범한 프랜차이즈 식당 같지만, 이곳은 태국 미식가들 사이에서 “제대로 된 남부 음식(Ahaan Tai)을 먹으려면 여기로 가라”고 정평이 나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다. 이 캐주얼한 식당의 오너가, 현재 태국에서 가장 예약하기 힘들다는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쏜(Sorn)’의 오너 셰프라는 사실이다.

1. The Origin : 손자가 기록한 할머니의 부엌
‘반 아이스’의 주인공 ‘아이스(Ice, 본명 Supaksorn Jongsiri)’는 태국 남부 나컨씨탐마랏 출신이다. 그는 전문 요리 학교 출신이 아니다. 그의 요리 스승은 바로 할머니, ‘쿤 야이 찰루어이(Grandma Chaluay)’였다.
어린 시절, 아이스는 할머니가 절구에 고추와 마늘을 빻을 때 나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자랐다. 유학 시절 할머니의 손맛이 너무 그리웠던 그는, 귀국 후 1990년대 후반 텅러(Thong Lo) 지역의 작은 주택 차고를 개조해 식당을 열었다. “할머니가 해주던 집밥을 친구들에게 대접하겠다”는 소박한 마음이었다.
그의 할머니는 깐깐했다. “커리 페이스트는 기계로 갈면 맛이 없다. 반드시 손으로 빻아야 한다.” 이 고집스러운 원칙은 지금의 반 아이스, 더 나아가 세계적인 레스토랑 ‘쏜(Sorn)’을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즉, 반 아이스는 미쉐린 스타 셰프의 ‘요리적 고향’인 셈이다.



2. The Menu : 타협하지 않는 남부의 ‘화끈함’
태국 남부 음식은 맵고(Spicy), 짜고(Salty), 강렬하다(Intense). 관광객의 입맛에 맞춰 순화시킨 맛이 아니다. 반 아이스는 이 ‘날것의 맛’을 세련되게 다듬어 내놓는다

[Must-Eat] 남프릭 까삐 & 쁠라투 (Nam Prik Kapi with Mackerel)
✽ The Taste: 이곳의 남프릭은 태국 중부식보다 훨씬 색이 짙고 매콤하다. 남부 특유의 강황(Turmeric)과 매운 고추가 아낌없이 들어간다. 한 입 찍어 먹으면 혀가 얼얼할 정도로 맵지만, 뒤이어 밀려오는 깊은 감칠맛 때문에 숟가락을 놓을 수 없다.
✽The Pla Tu : 쁠라투 튀김의 정석을 보여준다. 겉은 과자처럼 바삭하고, 속살은 촉촉하다. 짭조름한 생선 살을 발라 매운 남프릭에 푹 찍어 오이와 함께 먹으면, 밥 한 공기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Signature] 사토 볶음 (Pad Satao Kapi Goong)
남부 음식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사토(Satao, Stink Bean)’다. 이름처럼 냄새가 강하지만, 볶아 놓으면 고소한 콩 맛이 난다. 반 아이스는 신선하고 알이 굵은 사토만을 골라 탱글탱글한 새우, 매콤한 까삐 소스와 볶아낸다. 태국 현지인들이 테이블마다 시키는 메뉴 1위다.
[Balance] 무 켐 (Moo Khem)
입안에 불이 났다면 진화 작업이 필요하다. ‘무 켐’은 짭짤하고 달콤하게 졸인 돼지고기 요리다. 부드러운 돼지고기가 매운맛을 중화시켜 준다. 남프릭 쁠라투와 최고의 궁합을 자랑하는 사이드 킥이다.

3. Atmosphere & Review: 접근성 좋은 ‘미식 성지’
반 아이스는 현재 시암 파라곤, 아이콘 시암, 텅러 등 주요 핫플레이스에 입점해 있다. 쇼핑몰 안에 있어도 맛의 퀄리티는 본점과 동일하게 유지된다.
✽ 인테리어 : 초록색과 나무 톤을 사용해 편안한 가정집 분위기를 냈다. 벽면에는 할머니와 가족들의 흑백 사진이 걸려 있어 따뜻함을 더한다.
✽ 서비스 : 캐주얼 다이닝이지만 서비스는 정중하다. 미쉐린 스타 셰프의 업장답게 위생 관리도 철저하다.
Editor’s Note
만약 당신이 방콕에서 미쉐린 2스타 ‘쏜(Sorn)’의 예약을 시도하다 실패했다면(아마 99%의 확률로 실패했을 것이다), 실망하지 말고 ‘반 아이스’로 발길을 돌려라.
수십만 원짜리 코스 요리는 아닐지라도, 그 뿌리가 되는 셰프의 철학과 할머니의 손맛은 오롯이 담겨 있다. 특히 땀이 쏙 빠질 만큼 매운 남프릭 쁠라투 한 상은, 이열치열의 나라 태국을 기억하는 가장 강렬한 방법이 될 것이다.
[Practical Info]
✽ 추천 지점: 텅러(Somerset Sukhumvit 55) 지점 또는 아이콘 시암 지점
✽ 예산: 1인당 500~700바트 (약 2~3만 원)
✽ Tip: 메뉴판에 고추 그림이 2개 이상 있다면 정말 맵다는 뜻이다. 매운 것을 잘 못 먹는다면 주문 시 “펫 너이(덜 맵게)”를 외쳐라. 하지만 남부 음식의 매력은 그 매운맛에 있음을 잊지 말 것.
✽ www.baanice.com / Tel : 064 450 9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