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왜 하필 태국인가?" 트럼프 2기 '이민비자 규제' 쇼크, 태국을 흔들다

2026/01/27 12:07:23

[심층분석] "왜 하필 태국인가?" 트럼프 2기 '이민비자 규제' 쇼크, 태국을 흔들다 2026년 1월, 미 국무부 75개국 이민비자 발급 잠정 중단 발표 '신뢰'가 생명인 MICE·관광 산업에 드리운 불확실성의 그림자 방콕 정가 "전통적 우방국 홀대인가"… 외교적 파장 확산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태국을 포함한 전 세계 75개국 국민에 대해 이민비자(Immigrant Visa) 수속을 잠정 중단하거나 대폭 강화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21일 발효된 이번 조치는 표면적으로는 '이민자들의 공적 부조(Public Charge) 의존 방지'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태국 현지에서는 "도대체 왜 태국이 포함되었는가?"라는 당혹감과 함께, 이것이 단순한 비자 문제를 넘어 글로벌 이동성과 신뢰의 붕괴를 예고하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우리가 왜?" 태국의 당혹감과 '75개국 리스트'의 충격 이번 미 국무부의 발표는 태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태국은 미국과 오랜 기간 군사·경제적 동맹 관계를 유지해 온 아시아의 핵심 파트너다. 씨하삭 푸앙껫케오(Sihasak Phuangketkeow) 태국 외무부 장관이 엘리자베스 코닉(Elizabeth J. Konick) 주태국 미국 대사대리를 급히 소환해 "태국이 포함된 명확한 기준과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한 것은 이러한 배신감과 당혹감을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 측은 이번 조치가 단기 방문(B-1/B-2)이나 유학 비자 같은 비이민 비자(Non-immigrant Visa)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태국 내 여론은 싸늘하다. 32만 명 이상의 태국인이 미국 내에서 합법적으로 거주하며 성실히 납세하고 있고, 타 국가 대비 불법 체류 비율도 현저히 낮은 상황에서 태국을 소말리아, 예멘 등 치안 불안국과 동일 선상에 놓은 '75개국 블랙리스트'에 올린 것 자체가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이다. 관광과 MICE 산업: "불확실성은 곧 비용이다" 이번 사태를 단순히 '이민'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신뢰' 때문이다. 방콕에 거주하는 영국의 저명한 여행 작가이자 스칼 인터내셔널(Skål International) 전 이사인 앤드류 J. 우드(Andrew J. Wood)는 이번 조치가 가져올 파장을 날카롭게 경고했다. 우드 전 이사는 "관광 산업에서 신뢰는 곧 화폐이며, MICE(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 산업에서 신뢰는 전부"라고 강조했다. 국제 회의나 대규모 박람회는 보통 개최 3~5년 전부터 기획된다. 주최 측 입장에서 개최국이 미국의 입국 규제 대상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순간, 해당 국가는 기피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비자 정책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자체가 행사 유치의 가장 큰 장벽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태평양아시아여행협회(PATA)나 스칼(Skål) 같은 국제기구의 연례 총회는 전 세계 회원들의 '평등한 접근성'을 전제로 한다. 특정 국적자의 비자 발급이 까다로워지거나 불가능해진다면 행사의 정당성이 훼손된다. 우드 전 이사는 "미국의 이번 조치는 '일시적'이라고 포장되었지만, 종료 시점이 명시되지 않아 사실상 '무기한'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이는 결국 글로벌 행사들이 태국을 떠나 더 안정적이고 개방적인 유럽이나 중동 국가로 발길을 돌리게 만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제적 파급 효과: 1%의 하락, 18억 달러의 손실 관광업계의 우려는 단순한 엄살이 아니다. 데이터는 냉혹한 현실을 예고한다. 미국 여행업계의 벤치마킹 자료에 따르면, 국제 방문객 지출이 단 1%만 감소해도 미국 내 여행 수출 수익은 약 18억 달러(한화 약 2조 4천억 원) 가량 증발한다. 고용 감소와 세수 부족 등 간접 효과까지 고려하면 그 피해액은 천문학적이다. 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비록 이번 조치가 이민 비자에 국한된다 해도, '미국이 경계하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굳어지면 일반 관광객이나 비즈니스 투자자들의 심리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특히 태국 경제의 핵심 축인 관광산업에서 '심리적 장벽'이 형성되는 것은 치명적이다. 9/11의 교훈을 망각했나 '징벌'이 아닌 '예방'이어야 앤드류 우드 전 이사는 이번 조치의 명분이 빈약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 안보와 테러 방지를 비자 규제의 이유 중 하나로 들지만, 2001년 9.11 테러 당시 범인들은 이민 비자가 아닌 '임시 방문 비자'나 '학생 비자'로 입국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9.11 위원회의 보고서가 결론지었듯, 문제는 합법적 여행 경로 자체가 아니라 정보 공유와 모니터링의 실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국적을 기준으로 광범위하게 이민 비자를 차단하는 것은, 보안을 강화하는 실질적 대책이라기보다 정치적 보여주기식 '징벌'에 가깝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는 미국이 가진 '개방성'과 '자유'라는 소프트 파워를 스스로 훼손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닫힌 문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태국 교민 사회와 기업들도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해야 한다. 비록 한국은 이번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우리가 터잡고 살아가고 있는 태국의 경제와 외교적 입지가 흔들리는 것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태국 경제의 위축은 교민 경제의 침체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경은 중요하다. 안보도 중요하다. 그러나 개방성 또한 중요하다." 앤드류 우드의 말처럼, 격리보다는 대화가, 차단보다는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미국의 조치가 태국이라는 우방국에 남긴 상처는 생각보다 깊을 수 있다. [정보 출처 : Andrew J Wood] www.ttrweekly.com

‘마이뺀라이’

2026/01/26 13:46:10

태국의 미소 뒤에 숨겨진 ‘침묵의 비용’… ‘마이뺀라이’의 역설 태국을 방문한 이방인들이 가장 먼저 배우고, 또 가장 사랑하게 되는 말은 단연 "마이뺀라이(Mai pen rai)"다. "괜찮아", "문제없어"로 번역되는 이 말은 태국인 특유의 관용과 유연함, 그리고 물 흐르듯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대변한다. 실수해도 웃어넘기고, 갈등보다는 화합을 택하는 이 '미소의 철학'은 태국을 '미소의 나라'로 만든 가장 강력한 문화적 자산이었다. 그러나 최근 태국 사회 내부에서 이 전통적 미덕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소비자 권리와 책임 소재가 명확해야 할 현대 사회에서, 무조건적인 관용이 오히려 독(毒)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방콕포스트의 최근 오피니언 칼럼은 이를 '유해한 끄렝짜이(Toxic Kreng jai)'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친절로 포장된 침묵이 어떻게 사회적 비효율과 환경 문제를 야기하는지 날카롭게 파헤쳤다. '배려'인가 '권리 포기'인가… 일상 속의 불합리 '끄렝짜이(Kreng jai)'는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불편하게 만들기를 꺼리는 태국인들의 독특한 정서다. 한국의 '눈치'나 '체면'과 유사하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가 훨씬 더 강조된 개념이다. 문제는 이 배려가 지나쳐 정당한 권리마저 스스로 억누르는 상황이 빈번하다는 점이다. 방콕포스트는 일상적인 두 가지 사례를 들었다. 첫째, 식당에서 야채를 뺀 국물 없는 스키야키를 주문했는데 야채가 가득 담긴 국물 요리가 나왔을 때다. 둘째, 오토바이 택시 기사가 목적지 정확한 위치가 아닌 '적당히 가까운' 곳에 승객을 내려줄 때다. 한국이나 서구 사회라면 즉시 시정을 요구했을 상황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태국인은 속으로 "이게 맞나?"라고 의문을 품으면서도 겉으로는 "마이뺀라이"를 외치며 상황을 수용한다. "이미 요리해 버렸는데 어떡하나", "기사도 힘들 텐데 그냥 걷자"라는 식이다. 이는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자신이 까다로운 고객(Reuang mak, 르엉 막)으로 비치거나 상대방의 체면을 구길까 두려워하는 '방어적 침묵'에 가깝다. 침묵이 청구하는 고비용 청구서 칼럼은 이러한 침묵이 결코 공짜가 아니라고 경고한다. 그 비용은 개인, 사회, 그리고 환경의 세 가지 차원에서 발생한다. 개인은 만족스럽지 못한 서비스에 제값을 지불함으로써 경제적 손실을 본다. 더 심각한 것은 사회적 비용이다. 소비자가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 줌으로써, 서비스 제공자는 자신의 오류를 수정할 기회를 영원히 잃는다. 이는 결국 사회 전체의 서비스 품질을 하향 평준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환경적 비용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주문하지 않은, 혹은 원하지 않았던 야채가 들어간 음식을 억지로 받아든 소비자는 결국 이를 남기게 된다. 거절하지 못한 침묵이 불필요한 '음식물 쓰레기'라는 물리적 결과물로 돌아오는 셈이다. '미소'의 재정의가 필요한 시점 왜 태국인들은 침묵을 선택하는가. 깊은 내면에는 '사회적 조화'와 '체면(Face)'을 중시하는 문화적 DNA가 자리 잡고 있다. 정당한 지적조차 상대방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거나, 갈등을 유발하는 행위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주장(Assertiveness)'을 '공격성(Aggression)'과 혼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배려'의 경계를 재설정해야 할 때다. 진정한 배려는 상대의 결점을 눈감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잘못된 주문을 수정하는 것은 불평이 아니라 '안내'이며, 지불한 대가에 맞는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은 야박함이 아니라 '공정함'이다. '유해한 끄렝짜이'에서 벗어나는 것은 태국 고유의 매력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진화시키는 과정이다. '마이뺀라이'는 진정한 용서가 필요할 때 사용되어야지, 태만과 실수를 용인하는 면죄부로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 침묵을 깬 건설적인 피드백이 오갈 때, 태국의 미소는 단순한 인내의 가면을 벗고 '진정한 만족'에서 우러나오는 진짜 미소가 될 수 있다.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모두를 위한 더 나은 기준을 만드는 첫걸음이다. 이것이 지금 태국 사회가 마주한 '마이뺀라이'의 새로운 패러독스다. 참고 : Bangkok Post, "'Mai pen rai' paradox: from kindness to toxic silence"

2026 태국 총선 전망 : 위기와 선택의 시간

2026/01/26 10:56:48

2026 태국 총선 전망 : 위기와 선택의 시간 자연재해와 안보 문제들이 2월 총선과 비즈니스 환경에 미치는 영향 '불확실성의 일상화' 에 직면한 태국 2026년 1월, 방콕의 분위기는 예년과는 사뭇 다르다. 총선을 앞두고 일반적으로 느껴지는 기대감이나 축제 분위기가 아닌, 현재 태국에서는 '깊은 피로감'과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지배하고 있다. 최소한, 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의 입장으로서는 말이다. 지난 1년 반 동안 태국은 많은 격변을 겪어왔다. 전 총리 패텅탄 시나와트라에서 현 아누틴 찬위라꾼 총리까지, 정권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국가가 마주한 위기는 가시지 않고 있다. 처음에는 자연재해로 시작된 위기가, 이제는 인프라 붕괴라는 '인재(人災)'와 국경 분쟁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오는 2월 8일 총선이 단순한 정치적 이벤트를 넘어서, 태국의 국가 시스템을 재건할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타임라인 분석 : 위기는 어떻게 증폭되었는가? 지난 18개월의 기록은 태국 사회 안전망의 허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데이터다. 이 사건들은 개별적인 사고가 아니라, 다양한 구조적 문제들이 얽혀 만들어낸 연속적인 현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제1기] 패통탄 정부 (2024.08 ~ 2025.09) 기후 위기와 대응 실패 패통탄 정부의 임기는 기후 변화에 취약한 태국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북부와 남부의 대홍수 2024년 하반기, 치앙라이와 치앙마이에서 시작된 홍수가 남부 송클라까지 이어졌다. 이는 단순한 강수량 문제를 넘어서, 난개발로 인한 배수 시스템 마비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위기 대응 불일치가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지적이 있었다. 감사원(SAO) 건물 붕괴의 충격 2025년 3월, 미얀마 지진에 의한 여파가 엉뚱하게도 방콕의 국가 감사원 건물 붕괴로 이어진 사건은 매우 상징적이었다. 국가의 관리 감독을 책임지는 기관조차 내진 설계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사실은 태국 건축 규제 전반에 대한 신뢰를 크게 흔들었다. [제2기] 아누틴 정부 (2025.09 ~ 현재) 안전 불감증과 안보 불안 건설 재벌 출신인 아누틴 총리의 취임은 '개발 드라이브'에 대한 기대를 모았지만, 역설적으로 건축 안전 사고와 외교적 마찰이 그를 방해했다. 아누틴 총리 취임일의 악몽 2025년 9월, 총리 취임 선서일에 일어난 쌈쎈 도로 붕괴 사건은 마치 예고된 재난 같았다. 이후 도심 곳곳에서 발생한 싱크홀과 균열은 시민들의 일상에 큰 위협이 되었다. '검은 1월'의 비극 (2026.01) 남부 테러 재개 1월 11일, 남부 국경 지역 삼개 주에서 동시에 발생한 주유소 방화 및 폭탄 테러 사건은 경찰의 빈틈을 여실히 드러냈다. 연이은 크레인 참사 그리고 이어진 1월 14일 코랏 고속철도 현장에서 발생한 대형 크레인 붕괴 사고(최종 40명 사망)와 15일 라마 2 도로 건설 현장(2명 사망)의 참사는 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특히, 사고 기업이 대형 국책 사업을 담당한 ITD(Italia - Thai Deverlopement)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정경유착'과 '관리 소홀'에 대한 비판 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2026 총선, 무엇이 쟁점인가? 이런 배경 속에서 치러지는 2월 8일 총선은 예전의 '경제 회복'이나 '복지 포퓰리즘' 대결 구도가 아닌, '안전(Safety)'과 '책임(Accountability)'을 묻는 선거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듯 하다. ➊ 여권 연합 (프아타이당 & 품짜이타이당) 방어 기전의 작동 현 연립 정부는 딜레마에 빠졌다. 경제 부양을 위해 진행하던 대규모 인프라 공사가 오히려 사고의 원인이 되면서, 성과를 홍보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고는 유감이나, 중단 없는 발전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아누틴 총리의 품짜이타이당은 강력한 지방 조직력을 바탕으로, 프아타이당은 구관이 명관이라는 '안정론'을 내세워 보수층과 중장년층을 결집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ITD 사태'로 촉발된 건설 마피아의 유착 의혹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해명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➋ 야권 (국민당 - People's Party) '생명권'으로의 프레임 확장 과거 전진당 시절의 급진적 정치 개혁(왕실모독죄 개정 등) 아젠다에 머물지 않고, 생활 밀착형 이슈로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당신의 출근길은 안전합니까?"라는 메시지는 이념을 넘어선 호소력을 갖는다. 그들은 이번 연쇄 사고를 '낡은 기득권 시스템의 고장'으로 규정하며, 근본적인 시스템 교체(System Reset)를 주장하고 있다. 기존 지지층인 2030세대에 더해, 안전 문제에 민감한 수도권 중산층 학부모 세대까지 외연을 확장할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그 사이 터져나온 각종 스캔들로 인해 발목을 잡히고 있는 형국이다. 핵심 변수 시뮬레이션 : 국경 분쟁과 안보 이슈 또 하나의 잠재적 뇌관은 캄보디아와의 국경 문제다. 지난해 두 차례(10월, 12월) 발생한 무력 충돌은 양국 관계를 살얼음판으로 만들었다. 만약 선거 직전, 국경에서 다시금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다면 선거 판세는 어떻게 요동칠까? 선거 직전 '국지전' 발발 시 과거의 정치 공학적 관점에서는 "외부의 위기는 내부의 단결을 부른다(Rally 'round the flag effect)"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2026년의 태국은 다를 수 있다. 보수층의 결집, 그러나 제한적 효과 국경 분쟁은 전통적으로 군부와 보수 정당에 유리한 이슈다. 아누틴 총리가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준다면 지지층 결집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내부의 안전(크레인 사고 등)'도 지키지 못하는 정부가 '외부의 적'을 강조할 때, 그 진정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국내 문제를 덮으려는 정치적 쇼"라는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경제 위기론의 부상 캄보디아와의 갈등은 곧 국경 무역 봉쇄와 물류 차질을 의미한다. 이미 수출 부진과 관광 수입 감소로 고통받는 태국 경제계와 서민들에게, 국경 분쟁은 '애국심의 발로'가 아닌 '생계의 위협'으로 다가온다. 따라서 안보 이슈가 터지더라도, 이것이 여당의 압승으로 이어지기보다는 '경제 무능론'과 결합되어 정권 심판론을 가속화할 여지가 있다. "태국은 '질서 있는 변화'를 갈망한다" 지난 30년간 지켜본 태국 정치사에서 이번 선거만큼 유권자들의 표정이 복잡한 적은 드물었다. 분노와 체념, 그리고 간절함이 뒤섞여 있다. 이번 총선의 결과가 어느 쪽으로 기울든, 차기 정부가 짊어져야 할 과제는 명확하다. ➊ 신뢰 회복 : 무너진 사회 안전망과 관료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와 개혁 ➋ 균형 외교 : 캄보디아 등 인접국과의 갈등을 봉합하고, 경제 협력을 재개하여 공급망 리스크 해소 ➌ 성장 동력 : 단순 토목 공사가 아닌, 실질적인 산업 고도화를 통한 경제 비전 제시 태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및 투자자들은 다음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 ✽ 단기 (선거 전후 1~2개월) 사회적 불안정성이 최고조에 달할 수 있다. 시위 가능성에 대비한 사업장 안전 확보와, 국경 무역 차질에 대비한 물류 우회로 점검 필수 ✽ 중장기 선거 이후,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나 감사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건설/엔지니어링 관련 기업은 강화될 안전 규제(Safety Compliance)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며, 불확실한 관급 공사보다는 민간 부문이나 소비재 시장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지금 태국 국민들이 투표소에서 고민하는 것은 단순히 정당의 색깔(빨간색이냐 주황색이냐)이 아니다. 그들은 "더 이상 무고한 희생이 없는, 예측 가능한 내일"을 선택하고 싶어 한다. 이번 선거는 태국이 과거의 관성대로 '위험한 안주'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진통을 감수하더라도 '새로운 표준(New Normal)'을 세울 것인가를 결정하는 역사적인 순간이 될 것이다. 변화의 바람은 이미 불고 있으며, 그 바람의 끝이 어디를 향할지는 이제 태국 유권자들의 손끝에 달려 있다.

2026년 태국, 총선과 불황 사이에서 피어나는 ‘3,600억 바트의 희망’

2026/01/13 12:47:54

2026년 태국, 총선과 불황 사이에서 피어나는 ‘3,600억 바트의 희망’ 2026년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방콕의 공기는 여느 때보다 무겁다. ‘30년 만의 최저 성장’이라는 암울한 경제 전망과 오는 2월 8일로 예정된 조기 총선이라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겹치며, 태국 사회는 지금 깊은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이런 어수선함 속에서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다. 바로 멈춰선 엔진을 다시 돌리기 위해 대기 중인 태국 ‘메가프로젝트’들이다. 태국 교통부(Ministry of Transport)는 2026년 예산으로 전년 대비 8.5% 증액된 2,654억 바트를 확보했고, 새 내각이 들어서는 즉시 승인 도장을 기다리는 11개 핵심 프로젝트(총 3,598억 바트 규모)를 줄세워 놓았다. ➊ 2026년, 무엇이 달라지나? (주요 프로젝트) 교통부가 준비한 식단은 화려하다. 크게 하늘길(항공), 철길(철도), 땅길(도로)로 나뉜다. ✽ 하늘길 확장 (906억 바트): 관광 대국 태국의 자존심 회복. 수완나품 공항 동쪽 확장(1,500만 명 수용 증대)을 필두로, 돈무앙 3단계, 치앙마이 1단계, 푸켓 2단계 확장이 포함된다. 관광객 수용 능력을 극대화하겠다는 의지이다. ✽ 남부행 철로 (1,012억 바트): 복선 철도 2단계 사업이 핵심이다. 춤폰에서 수랏타니, 핫야이를 거쳐 말레이시아 국경인 파당베사르까지 이어지는 이 라인은 남부 물류와 관광의 동맥경화 해소를 목표로 한다. ✽ 방콕 및 수도권 교통 숨통 (도로망): 짤롱랏 고속도로 확장, M9(서부 외곽순환도로), M8(나콘파톰-차암) 등 상습 정체 구간 해소와 지방 연결성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푸켓 고속도로 신설은 푸켓의 고질적인 교통난을 해결할 열쇠로 꼽힌다. ➋ 현지의 시선 : “기대보다는 생계가 먼저” (태국인 입장) 태국 서민들에게 이번 메가프로젝트는 ‘장밋빛 미래’라기보다 당장의 ‘생존 도구’로 다가온다. ✽ 일자리에 대한 갈증: 경제가 어렵다. 건설업은 대표적인 고용 유발 산업이다. 태국인들은 이 프로젝트들이 2026년 내에 빠르게 승인되어, 꽉 막힌 취업 시장과 건설 경기에 돈이 돌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교통 지옥 탈출의 염원: 방콕의 M9 확장이나 지방의 M8 고속도로는 단순한 도로가 아니다. 매일 출퇴근 전쟁을 치르는 태국인들에게는 ‘삶의 질’과 직결된 문제이다. ✽정치적 냉소와 우려: 그러나 불안감도 여전하다. “총선 이후 새 정부가 과연 이 계획을 그대로 승계할까?”, “예산 집행이 또 늦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화려한 조감도가 아니라, 실제로 땅을 파고 기둥을 세우는 ‘실행’이다. ➌ 이방인의 시선 : “기회와 인내 사이” (외국인/교민/투자자 입장) 태국에서 활동하는 우리 기업들과 업체 또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이 뉴스는 조금 다른 결로 읽힐 것이다. ✽ 비즈니스 인프라의 개선: 수완나품과 돈무앙, 그리고 주요 관광지(치앙마이, 푸켓) 공항의 확장은 환영할 일이다. 특히 한국 기업들의 태국 진출이나 관광업 종사 교민들에게 입국 수용 능력 증대는 곧 잠재 고객의 증가를 의미한다. ✽남부 연결성의 의미: 춤폰-파당베사르 복선 전철은 태국을 넘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로 이어지는 범아세안 물류의 핵심이다. 태국을 아세안의 허브로 삼으려는 물류/무역 기업들에게는 장기적으로 매우 중요한 호재라고 할 수 있다. ✽랜드브리지(Land Bridge)의 향방: 9,900억 바트 규모의 ‘남부 경제 회랑(랜드브리지)’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초미의 관심사다. 이것이 실현된다면 믈라카 해협을 우회하는 새로운 물류 루트가 열리는 것이기에, 글로벌 기업들은 2026년 새 정부의 의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 공사 기간의 불편: 당장 피부로 와닿는 건 공사로 인한 교통 체증일 것이다. 방콕 곳곳이 다시 공사판이 된다면, 단기적으로는 생활 환경 악화를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 ➍ 맺음말 : “2월 8일, 선택의 시간” 모든 것은 결국 2월 8일 총선과 그 이후 구성될 내각에 달려 있다. 교통부는 “준비는 끝났다”고 말하지만, 방아쇠를 당길 손가락은 정치권에 있다. 3,600억 바트라는 숫자는 단순한 건설 비용이 아니다. 침체된 태국 경제를 다시 뛰게 할 심폐소생술 비용이다. 새해, 태국이 정치적 혼란을 딛고 이 거대한 프로젝트들을 동력 삼아 다시 아세안의 맹주로 날아오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계획은 완벽하다. 이제 필요한 건 정치의 ‘속도’다.

‘탁신의 그림자’ 또다시... 조카 욧차난, 총리직 도전장

2025/12/22 11:26:50

‘탁신의 그림자’ 또다시... 조카 욧차난, 총리직 도전장 “탁신 가문의 영향력은 대체 언제까지 이어질까?” 태국 정치권을 바라보는 많은 이들의 한숨 섞인 질문이다. 프아타이당(Pheu Thai)이 차기 총리 후보로 또다시 ‘탁신의 핏줄’을 전면에 내세웠다. 주인공은 욧차난 웡사왓(Yodchanan Wongsawat). 탁신의 여동생 야오와파의 아들이자, 쏨차이 전 총리의 아들이니 말 그대로 탁신의 조카다.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온다” 욧차난은 출사표를 던지며 태국이 경제, 지정학, 기술적 충격이 한꺼번에 덮치는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그가 내놓은 해법은 ‘AI와 과학 기술’이다. * 목표 : AI와 과학을 중심으로 태국을 고소득 국가로 만들겠다. * 전략 : 농업, 제조업에 첨단 기술 접목 & 디지털 정부를 통한 부패 척결. * 3대 축 : 포괄적 안보, 법치 회복, 현대적 인프라 구축. 그는 “나의 배경은 평범한 공무원 가정과 비슷하다”며 서민적 이미지를 강조했지만, 정작 대중이 보는 건 그의 성(Family Name)이다. 혁신적인 ‘AI 국가’를 외치고 있지만, 후보 선출 방식은 구시대적인 ‘가문 정치’의 답습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프아타이만이 태국을 구할 수 있다”는 그의 외침이, 과연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들릴지 아니면 지겨운 ‘탁신 왕조의 연장’으로 들릴지 지켜볼 일이다. 각 정당 후보군 프아타이당이 탁신의 조카를 전면에 내세우며 선거판이 요동치고 있다. 이쯤에서 2025년 태국 정권을 노리는 각 당의 ‘간판 선수(PM Candidate)’들을 정리해본다. 단순한 인물 대결이 아니다. 세습 정치, 개혁, 그리고 타협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의 전쟁이다. 1. 프아타이당 (Pheu Thai) 욧차난 웡사왓 (Yodchanan Wongsawat) 슬로건 : “AI와 과학으로 경제 대도약” 포지션 : [로열 패밀리의 귀환] 분석 : 탁신의 조카이자 솜차이 전 총리의 아들. ‘경제는 프아타이’라는 향수와 ‘AI/하이테크’라는 미래 비전을 섞었다. 하지만 본질은 ‘탁신 가문의 수성(守城)’이다. 보수 기득권과 손잡은 프아타이의 안전한 선택지지만, “또 탁신이냐”는 유권자의 피로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 2. 국민당 (People’s Party / 구 전진당 후신) 나타퐁 르엉빤야웃 (Natthaphong Ruengpanyawut) 슬로건 : “되돌릴 수 없는 구조적 변화” 포지션 : [꺾이지 않는 개혁가] 분석 : 피타 림짜른랏의 바통을 이어받은 국민당(Prachachon)의 리더. 욧차난과 마찬가지로 IT/테크에 능통하지만 방향이 다르다. 군부 개혁, 독점 타파 등 ‘시스템의 변화’를 외친다. 지난 총선의 압승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빼앗겼던 젊은 층의 분노가 그를 다시 밀어올릴 수 있을지가 포인트. 3. 품짜이타이당 (Bhumjaithai) 아누틴 찬위라꾼 (Anutin Charnvirakul) 슬로건 : “갈등 없는 태국, 실리 추구” 포지션 : [최강의 킹메이커 & 어부지리] 분석 : 현 연립정부의 핵심축. 어느 쪽과도 손잡을 수 있는 유연함(혹은 기회주의)이 무기다. 프아타이와 국민당이 서로 과반을 못 채우고 싸울 때, ‘중재자’를 자처하며 총리직을 낚아챌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 보수층에게는 탁신보다 안전하고, 개혁 세력에게는 덜 위협적인 대안으로 포장 중이다. 4. 루엄타이쌍찻당 (UTN) 피라판 살리랏타위팍 (Pirapan Salirathavibhaga) 슬로건 : “국가 안보와 왕실 수호” 포지션 : [강성 보수의 아이콘] 분석 : 쁘라윳 전 총리의 유지를 잇는 보수의 적통. 변화보다는 안정을 원하는 노년층과 군부 지지 세력을 결집하고 있다. 지지율은 예전만 못하지만, 선거 후 연정 구성 시 보수 연합의 캐스팅보트를 쥘 힘은 여전하다. 결전의 날은 ‘2026년 2월 8일’ 태국, 선거 모드 돌입 “그래서, 그들은 언제 투표소로 가야 하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확정됐다. 태국 선거관리위원회(ECT)가 어제(15일) 공식 발표를 내놨다. 지난 12일(금) 아누틴 총리가 의회를 해산하면서 시계가 빨라졌고, 이제 남은 건 약 50일간의 진검승부뿐이다. ■ 핵심 일정 캘린더 선거일 (D-Day): 2026년 2월 8일 (일요일) 이날이 태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결전의 날’이다. 사전 투표일: 2월 1일 (일) 본 투표일에 참여하기 어려운 유권자를 위한 날이다. 후보자 등록: 2025년 12월 27일~ 31일 각 당의 ‘선수’들이 공식적으로 등판하는 기간이다. 이번 연말은 선거 유세로 시끌벅적할 예정이다. ■ 관전 포인트: 억지로 최대한 임기를 끌고간다면, 최대 2027년까지 갈 수도 있었지만, 아누틴 총리가 “국민에게 권력을 돌려주겠다”며 승부수를 던졌다. (물론, 본인과 연정 파트너들에게 가장 유리한 타이밍을 계산했다는 게 정설이다.) 이제 각 정당은 연말연시 휴가도 반납하고 총력전에 들어간다. 방콕 거리는 곧 선거 벽보와 유세 차량으로 뒤덮일 것이다. 여행자들에게는 조금 소란스러울 수 있겠으나, 태국의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가장 뜨거운 현장을 목격할 기회이기도 하다. [Election Schedule] - 총선 날짜: 2026.02.08 (일) - 후보 등록: 2025.12.27 - 12.31 - 사유: 의회 해산 (2025.12.12)에 따른 조기 총선 이번 선거판은 ‘탁신의 그림자(욧차난)’와 ‘개혁의 불씨(나타퐁)’, 그리고 그 사이에서 웃고 있는 ‘현제 주요 인물(아누틴)’의 삼파전이다. 욧차난이 내세운 ‘AI 경제’는 매력적인 포장이지만, 결국 태국 국민이 “과거의 이름값(탁신 가문)”을 선택할지, 아니면 지난번 좌절됐던 “새로운 시대(국민당)”를 다시 한번 밀어줄지가 승패를 가를 것이다. 흥미로운 건, 누가 이기든 태국 정치는 또다시 시끄러울 예정이라는 점이다.

태국인의 식탁, 그 변하지 않는 영혼의 맛

2025/12/16 13:52:21

태국인의 식탁, 그 변하지 않는 영혼의 맛 벤츠를 타든 툭툭을 타든, 집으로 돌아오면 찾는 그 맛 태국의 '된장찌개', 남프릭 쁠라투(Namprik Pla Tu) 한국인에게 해외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가장 먼저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얼큰한 김치찌개나 구수한 된장찌개 또는 짜장면을 꼽을 것이다. 화려한 미식의 나라 태국에도 그런 존재가 있다. 똠얌꿍? 팟타이? 아니다. 태국인들의 DNA에 가장 깊숙이 각인된 진짜 소울푸드는 바로 '남프릭 쁠라투(Namprik Pla Tu)'다. 겉보기엔 소박하다 못해 투박하다. 노릇하게 튀겨낸 생선 한 마리, 쿰쿰한 냄새를 풍기는 고동색 소스, 그리고 삶은 채소들. 하지만 이 한 상 차림에는 태국의 역사와 가족, 그리고 그리움이 담겨 있다. 1. 쁠라투(Pla Tu): 서민의 친구, '목 꺾인 생선'의 미학 '남프릭 쁠라투'는 이름 그대로 '남프릭(고추 소스)'과 '쁠라투(고등어과 생선)'가 합쳐진 요리다. 여기서 주인공인 쁠라투(Pla Tu)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태국 재래시장에 가본 사람이라면 대나무 바구니 ‘깽’(Kheng)에 담긴 조그만 생선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특이하게도 하나같이 목이 'ㄱ'자로 꺾여 있다. 이는 좁은 바구니에 생선을 두 마리씩 채워 넣기 위해 어부들이 목을 꺾어 넣던 방식에서 유래했는데, 이제는 '목 꺾인 쁠라투(Pla Tu Na Ngor)'가 아니면 진정한 쁠라투로 치지 않을 정도다. 특히 강과 바다가 만나는 '매끌롱(Mae Klong)' 지역의 쁠라투를 최고로 친다. 플랑크톤이 풍부한 갯벌에서 자라 살이 기름지고 고소하기 때문이다. 태국 서민들에게 쁠라투는 과거부터 가장 저렴하면서도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한국의 자반고등어처럼, 태국인의 밥상 머리에는 항상 이 짭조름하고 고소한 생선 튀김이 놓여 있었다. 2. 남프릭 까삐: 태국 맛의 '원점' 생선이 몸체라면, '남프릭 까삐(Namprik Kapi)'는 이 요리의 영혼이다. 한국의 된장이나 고추장처럼 태국 가정마다 냉장고에 반드시 있는 것이 바로 이 소스다. * 까삐(Kapi): 잔새우를 발효시킨 페이스트(새우 된장과 비슷하다). * 재료: 까삐에 태국 고추(프릭키누), 마늘, 라임즙, 야자 설탕(팜슈가), 가지 등을 절구에 빻아 넣는다. 이 소스는 강렬하다. 짜고, 맵고, 시고, 달콤하고, 감칠맛이 폭발한다. 갓 튀겨낸 쁠라투의 담백한 살점 위에 이 자극적인 남프릭을 살짝 얹고, 삶은 양배추나 오이, 차옴(아카시아 잎 튀김)을 곁들여 밥과 함께 먹는 순간, 태국인들은 비로소 "집에 왔다"고 느낀다. 3. 미스 유니버스가 선택한 '고향의 맛' (Fact Check) 자, 이제 당신이 궁금해했던 그 일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미인 대회 우승자가 가장 원했던 음식이 정말 이 투박한 '남프릭 쁠라투'였을까? 사실이다. 이 전설적인 일화의 주인공은 1988년 미스 유니버스 우승자 '폰팁 나키룬카녹(Porntip Nakhirunkanok, 애칭 Bui)'이다. 그녀는 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미국 LA로 이민을 간 이민 1.5세였다. 1988년 대회 당시, 서구적인 외모와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우승을 차지했지만, 일각에서는 "그녀가 정말 태국인인가?"라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우승 후 태국으로 금의환향한 그녀가 보여준 행보는 전 국민을 감동시켰다. 기자들이 "지금 가장 먹고 싶은 게 무엇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그녀는 주저 없이 태국 토속 음식들을 꼽았다. 당시 그녀가 태국에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는데, 그 식탁의 중심에 바로 '남프릭 까삐와 쁠라투 튀김'이 있었다. 미국에서 햄버거와 스테이크를 먹고 자랐을 것 같은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 손으로 쁠라투의 살을 발라 매운 남프릭에 찍어 먹는 모습. 이 장면 하나로 그녀는 태국인들에게 '우리의 딸'로 완벽하게 받아들여졌다. 이후로도 여러 미인 대회 출전자들이 해외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면 솜땀이나 남프릭 쁠라투를 찾는 것이 하나의 클리셰처럼 굳어졌을 정도다. 4. 단순한 음식이 아닌 '가치'를 먹는다 현대 태국 사회에서 남프릭 쁠라투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바로 '건강'과 '중용'이다. 기름진 볶음 요리가 많은 태국 음식 중에서 남프릭 쁠라투는 채소를 많이 섭취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밸런스의 건강식이다. 또한, 전 국왕인 라마 9세가 주창했던 '충분 경제(Sufficiency Economy)'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화려하고 비싼 외래 음식 대신, 우리 땅에서 나는 채소와 흔한 생선으로 차린 소박하지만 영양 가득한 밥상. 태국인들에게 이 음식은 검소하지만 품위 있는 삶의 태도를 상징하기도 한다. Editor’s Note 방콕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길거리의 허름한 식당에서도 '남프릭 쁠라투' 세트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만약 당신이 태국의 진짜 맛을 경험하고 싶다면, 팟타이는 잠시 미뤄두자. 잘 튀겨진 ‘쁠라투’ 한 점에 보랏빛 남프릭을 올리고 따뜻한 밥과 함께 입에 넣어보라. 맵싸한 향이 코끝을 찡하게 울릴 때, 당신은 비로소 태국이라는 나라의 진짜 매력에 빠지게 될 것이다. [GOURMET GUIDE] 방콕에서 만나는 '진짜 태국의 맛' 방콕 현지인들이 "이 집 남프릭과 쁠라투는 찐이다"라고 인정하는 곳들이다. 1. 쌍우안 시리 (Sanguan Sri) "가장 완벽한 클래식" * 위치: 플런칫(Phloen Chit) 역 근처, 와이어리스 로드(교민잡지 722호 베스트레스토랑 참조할것) * 특징: 1970년부터 운영된 전설적인 노포. 미쉐린 빕 구르망에 선정되었으며, 화려함보다는 '맛' 하나로 승부하는 곳. * 메뉴: 이곳의 '남프릭 까삐 깝 쁠라투(Nam Prik Kapi Kub Pla Tu)'는 교과서 그 자체. -맛의 포인트: 비린내가 전혀 없는 바삭한 쁠라투 튀김과, 절구에 직접 빻아 만든 진한 남프릭 소스의 조화가 일품이다. 곁들여 나오는 차옴(아카시아 잎) 튀김과 삶은 채소의 구성이 가장 전통적인 곳이다. - 주의: 일요일은 휴무이며, 점심시간에는 직장인들로 웨이팅이 길다. 2. 반 아이스 (Baan Ice) "태국 남부의 강렬한 한 방" * 위치: 아이콘 시암, 통로, 엠쿼티어 등 주요 쇼핑몰 입점 * 특징: 태국 남부 지방(Southern Thai)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곳. 창립자의 할머니 레시피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 메뉴: '남프릭 까삐(Nam Prik Kapi)' 세트를 주문하면 쁠라투가 함께 나온다. -맛의 포인트: 남부 음식답게 남프릭의 매운맛이 강렬하고 화끈하다. 쁠라투 또한 아주 바삭하게 튀겨내어 머리부터 꼬리까지 씹어 먹을 수 있을 정도다. 매운맛을 즐긴다면 이곳이 최고의 선택이다. 3. 깝 카오 깝 쁠라 (Kub Kao Kub Pla) "실패 없는 접근성 1위" * 위치: 시암 파라곤, 센트럴 월드, 엠쿼티어 등 대부분의 대형 쇼핑몰에 입점 * 특징: '밥과 생선'이라는 가게 이름처럼, 태국 가정식을 정갈하고 깔끔하게 선보이는 프리미엄 체인이다. * 메뉴: '남프릭 까삐 쁠라투 (Nam Prik Kapi Set with Mackerel)'가 상시 메뉴로 있다. -맛의 포인트: 가장 대중적인 입맛에 맞춘 밸런스 좋은 맛이다. 위생적이고 시원한 쇼핑몰 안에서 쾌적하게 '손으로 뜯는 맛'을 즐길 수 있어 여행자들에게 특히 추천. 4. 더 로컬 (The Local by Oam Thong) "귀한 손님 대접하듯" * 위치: 스쿰빗 23 (아속역 근처) * 특징: 고택을 개조한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으로, 태국 전역의 숨겨진 고대 레시피를 재현하는 곳이다. * 메뉴: '남프릭(Nam Prik)' 세트 메뉴가 매우 훌륭하다. -맛의 포인트: 이곳의 쁠라투는 최고급인 '매끌롱' 산을 사용하여 살이 통통하고 고소하다. 플레이팅이 예술 작품처럼 아름다워 사진 찍기에도 좋으며, 격식 있는 식사를 원할 때 제격임. [TRAVEL SPOT] 쁠라투의 고향, 매끌롱 시장 (Mae Klong Market) 기차가 지나가는 그곳, '접는 우산 시장'의 비밀 방콕에서 차로 약 1시간 반. '위험한 기찻길 시장'으로 더 잘 알려진 ‘매끌롱 시장(Talat Rom Hoop)’은 사실 태국 최고의 쁠라투 산지다. 1. 왜 매끌롱 쁠라투인가? 앞서 언급했듯, 매끌롱 강 하구의 풍부한 영양분을 먹고 자란 쁠라투는 살이 통통하고 기름기가 흐른다. 태국 사람들은 '목이 꺾인(Na Ngor)' 매끌롱산 쁠라투를 최고급으로 친다. 시장을 걷다 보면 대나무 바구니(Kheng)에 목이 꺾인 채 담긴 생선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2. '남프릭 쁠라투' 미식 여행 팁 * 찐 쁠라투 구매: 시장 곳곳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 쁠라투를 판다. 바로 먹을 수는 없지만, 숙소에 주방이 있다면 구매해서 살짝 굽거나 튀겨보라. 마트에서 파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소함을 느낄 수 있다. * 미양 쁠라투 (Miang Pla Tu): 시장 내 노점상에서 '미양 쁠라투'라는 간식을 찾아보자. 쁠라투 살과 쌀국수, 각종 허브를 채소에 싸서 매콤한 소스에 찍어 먹는 요리인데, 남프릭 쁠라투의 '한 입 거리'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3. 기차 시간표 (핵심 정보) 기차가 들어오고 나갈 때 상인들이 순식간에 천막을 접는 장관을 보려면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연착이 잦으니 현지에서 재확인 필수!) ▶ 기차 도착 : 08:30, 11:10, 14:30, 17:40 ▶ 기차 출발 : 06:20, 09:00, 11:30, 15:30 * Tip: 오전 8시 30분이나 11시 10분 도착 시간에 맞춰 가면 가장 활기찬 시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국민 생선' 쁠라투는 지금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태국 수산청(Department of Fisheries)의 자료와 현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쁠라투의 현재 상황을 긴급 리포트 형식으로 정리했다. '국민 생선' 쁠라투의 위기: 그 많던 쁠라투는 다 어디로 갔을까? 과거 태국 바다에 그물만 던지면 올라오던 것이 쁠라투였다. "돈 없으면 쁠라투에 밥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서민의 배를 채워주던 이 흔한 생선이, 이제는 '금(金)라투'가 되어가고 있다. 지금 태국 바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1. 충격적인 어획량 감소: "씨가 마르고 있다" 태국 수산청 통계에 따르면, 태국 만(Gulf of Thailand)의 쁠라투 어획량은 지난 10년 사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 감소세: 2010년대 초반 연간 10만 톤을 상회하던 어획량이 최근 몇 년 사이 2~3만 톤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일부 해는 전성기의 10% 수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 크기 변화: 더 심각한 건 크기다. 시장에 나오는 태국산 쁠라투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성체가 되기도 전에 잡아버리기 때문이다. 2. 식탁을 점령한 ‘수입 쁠라투' (수입산의 습격) 지금 방콕의 시장이나 마트에서 보는 쁠라투의 상당수는 사실 태국산이 아니다. 수요는 여전한데 공급이 부족하니, 태국은 이제 쁠라투 수입국이 되었다. * 주요 수입국: 인도, 인도네시아, 오만, 파키스탄 등에서 대량으로 들어온다. * 맛의 차이: 태국인들은 귀신같이 알아챈다. 태국산(특히 매끌롱 산)은 껍질이 얇고 살이 부드러우며 고소한 반면, 수입산은 껍질이 두껍고 살이 퍽퍽하며 특유의 냄새가 덜하다. 하지만 가격 경쟁력 때문에 서민 식당의 메뉴는 이미 수입산으로 많이 대체되었다. 3. 왜 이렇게 되었나? (3대 원인) 전문가들은 쁠라투 위기의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분석한다. ➊ 남획(Overfishing): 가장 큰 원인이다. 어부들이 다 자란 성체뿐만 아니라, 치어(새끼)까지 싹쓸이하는 미세한 그물을 사용해 왔다. 태국인들이 '쁠라투 치어 튀김'을 별미로 즐기는 문화도 한몫했다. 엄마 고기가 없으니 새끼가 태어날 리 만무하다. ➋ 기후 변화: 태국 만의 수온 상승으로 인해 플랑크톤 생태계가 변했다. 먹이가 줄어든 쁠라투가 서식지를 옮기거나 번식에 실패하고 있다. ➌ 환경 오염: 해양 오염으로 인해 연안의 산란장이 파괴되고 있다. 4. 정부의 필사적인 노력: "바다를 닫습니다" (Pid Ao) 태국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 태국 만 폐쇄 (Closing the Gulf): 매년 산란기(주로 2월~6월 사이, 지역별 상이)가 되면 춤폰, 쁘라쭈압키리칸 등 주요 해역에서의 어업을 전면 금지한다. * 캠페인: "새끼 쁠라투를 먹지 맙시다(Stop eating baby Pla Tu)"라는 캠페인을 벌이며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려 노력 중이다. 실제로 편의점 등에서 팔던 작은 생선 스낵류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기도 했다. 5. 매끌롱 쁠라투는 안전한가? 앞서 소개한 '매끌롱 쁠라투' 역시 예전만큼 풍족하지 않다. * 가격 폭등: 매끌롱 산 진짜(Authentic) 쁠라투는 이제 명품 대접을 받는다. 크고 좋은 것은 한 마리에 100~150바트(약 4~6천 원)를 호가하기도 한다. 서민 음식치고는 상당히 비싸진 셈이다. * 계절성: 과거에는 사시사철 먹었지만, 이제는 제철(늦가을~겨울)이 아니면 진짜 맛있는 매끌롱 쁠라투를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12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