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잘사는 나라 되려면 2048년까지 기다려야 하나

2026/09/21 12:39:09

태국, 잘사는 나라 되려면 2048년까지 기다려야 하나 세계은행 "개혁하면 2037년도 가능"… 앞서가는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뒤쫓아오는 베트남 태국이 '고소득 국가'가 되려면 앞으로 몇 년이나 더 걸릴까. 세계은행은 지금처럼 성장한다면 2048년쯤 가능하다고 봤다. 하지만 개혁을 통해 성장 속도를 더 끌어올리면 2037년으로 앞당길 수 있다고도 했다. 그 차이가 무려 11년이다. 이 숫자는 태국에게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태국이 고소득 국가가 되는 시점이 늦어지는 동안, 주변 나라들은 가만히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는 반도체와 디지털 산업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고, 인도네시아는 큰 경제 규모를 앞세워 계속 성장하고 있다. 베트남도 제조업과 수출을 늘리며 태국을 바짝 뒤쫓고 있다. 지난 9월 3일 방콕에서 열린 비즈니스 서밋에서 세계은행은 'Building Thailand's Future Today'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 같은 추세로는 태국이 2048년이 되어야 고소득 국가에 들어설 수 있다. 만약 앞으로 10년 동안 국민 1인당 실질 소득 증가율을 매년 평균 5.4%까지 끌어올린다면 2037년에도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는 개혁이 실제로 이뤄졌을 때의 이야기다. 지금까지 태국을 중간 수준의 소득 국가로 키워온 방식이, 앞으로도 계속 통한다는 보장은 없다는 뜻이다. 그동안 잘해온 것과, 그 방식이 지금도 여전히 통하는지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변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주변국과 비교할 때는 먼저 무엇을 기준으로 비교하는지 정확히 봐야 한다. 인도네시아는 이미 경제 규모(나라 전체가 벌어들이는 돈의 총합, GDP)에서 태국을 크게 앞서 있다. 세계은행의 2025년 자료를 보면 인도네시아의 GDP는 약 1조4,500억 달러, 태국은 약 5,770억 달러다. 그러니 "인도네시아에 추월당할 수 있다"는 말은 시점부터 틀렸다. 이미 벌어진 격차를 인정하고 봐야 한다. 말레이시아는 국민 한 사람당 버는 돈(1인당 GDP)에서 앞서 있다. 같은 해 말레이시아는 약 1만3,125달러, 태국은 약 8,057달러였다. 여기에 반도체 산업과 데이터센터 투자까지 더해지고 있다. 태국이 말레이시아와 경쟁하려면 단순히 생산 비용만 낮출 게 아니라, 기술 인력 수준과 산업 생태계까지 함께 끌어올려야 한다. 태국이 정말 신경 써야 할 나라는 베트남이다. 2025년 기준 베트남의 GDP는 약 5,147억 달러로 아직 태국보다 적다. 1인당 GDP도 약 5,066달러로 태국에 못 미친다. 그러니 베트남이 벌써 태국보다 잘사는 나라가 됐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성장 속도는 확연히 다르다. 같은 해 베트남 경제는 8.0% 성장한 반면, 태국은 2.4% 성장에 그쳤다. 세계은행은 올해 베트남의 성장률을 6.8%로 예상하면서, 수출과 투자, 국내 소비, 행정 개혁을 그 원동력으로 꼽았다. 물론 베트남에도 숙제는 있다. 외부 경제 상황에 흔들릴 위험도 있고, 생산성을 더 높여야 하며, 외국 기업들이 만들어내는 성과를 자국 기업 성장으로 얼마나 이어가느냐도 과제다. 그래도 제조업과 수출을 중심으로 빠르게 몸집을 키우는 베트남의 속도는 태국이 경계할 만하다. 진짜 문제는 '순위가 밀리는 것' 이런 흐름을 보면 태국이 겪고 있는 위기는 '역전당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밀리는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태국 경제가 성장을 하더라도, 경쟁국들이 더 빠르게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산업을 키운다면 이 지역에서 태국이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단순히 "플러스 성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베트남 경제가 정확히 언제 태국을 앞지를지 콕 집어 말할 필요는 없다. 달러로 계산한 GDP는 환율에 따라서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건 앞으로 기업들이 새 공장이나 연구소, 지역 거점을 어디에 세울지 결정하는 방향이다. 이런 선택에서 태국이 계속 밀린다면, 나중에 성장률을 끌어올리려 해도 그만큼 더 힘들어질 수 있다. 태국 안에도 쌓여 있는 문제들 세계은행은 올해 태국 경제를 진단하면서 몇 가지 구조적인 문제를 짚었다. 산업 기반이 낡았고, 수출과 관광 경쟁력이 약해졌으며, 가계 빚은 많고, 정부가 쓸 수 있는 재정 여력은 줄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일시적으로 소비를 늘리는 정책만으로는 풀기 어렵다. 가계가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소비를 늘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 기업이 낡은 설비와 기존 인력으로만 버텨야 한다면, 더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으로 옮겨가는 것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도 재정 여유가 넉넉하지 않으니, 당장의 경기 부양과 장기적인 투자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처지다. 개혁을 미루면 미룰수록, 다음 선택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세계은행이 제안한 네 가지 방향 세계은행은 이번 보고서에서 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미래 산업을 키우는 것, 기업들이 더 역동적으로 움직이도록 돕는 것, 미래 인재에 투자하는 것, 그리고 미래형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유망한 산업으로는 첨단 제조업, 지속 가능한 웰니스 관광, 디지털 서비스, 농식품, 창조 산업을 꼽았다. 지금까지 방콕과 일부 대기업에만 몰려 있던 성장의 혜택을, 더 많은 기업과 노동자, 그리고 지방으로까지 넓히겠다는 방향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기업'과 '도시'다. 유망 산업을 정해놓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소기업이 기술과 자금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지방 도시에서도 기업이 필요한 인력을 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규제를 개선하고 교통·에너지 같은 기반 시설에 투자하는 것도, 실제로 이런 변화로 이어질 때에야 의미가 있다. 태국에서 사업하는 분들이라면 태국에서 사업을 하거나 투자를 고민하는 분들이라면, 판단 기준을 좀 더 구체적으로 가져갈 필요가 있다. 나라 전체의 성장률을 그대로 내 사업의 매출 전망으로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고객들의 실제 구매력, 인건비 대비 생산성, 숙련된 인력을 구할 수 있는지, 물류와 에너지 비용, 인허가가 얼마나 예측 가능한지를 업종별·지역별로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또한 태국이 고소득 국가가 된다고 해서 모든 기업의 수익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임금과 비용이 먼저 오르고 생산성 개선은 더디다면, 오히려 기업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반대로 산업 전환과 제도 개선이 실제로 진행되는 분야라면, 평균 성장률만 봐서는 보이지 않는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 남은 11년, 그리고 다음 세대의 기회 태국이 모든 면에서 주변국에 밀릴 거라고 단정하는 건 지나친 걱정이다. 하지만 앞서가는 나라들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한 채, 베트남의 추격까지 허용할 수 있다는 걱정에는 그럴 만한 근거가 있다. 태국이 지금 가진 산업 기반을 앞으로도 지키고 키워갈 수 있을지는, 결국 지금 이 시점의 투자와 정책 실행에 달려 있다. 2037년과 2048년 사이의 11년을 태국만의 사정으로 계산해서는 안 된다. 그 사이에 경쟁국의 산업도, 기업도, 인력도 계속 달라지기 때문이다. 태국이 개혁을 미루면서 잃는 것은 '고소득 국가'라는 이름을 얻을 시간만이 아니다. 다음 세대의 일자리와 투자 기회도 함께 걸려 있다. 글 | 김종민 교민잡지 편집국장

항공모함이 돌아온 항구, 파타야가 기억하는 오래된 질문

2026/09/21 12:08:02

항공모함이 돌아온 항구, 파타야가 기억하는 오래된 질문 9월 초 어느 아침, 램차방항에 커다란 배 한 척이 들어왔다는 소식이 교민 사회에도 잔잔히 퍼졌다.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였다. 뉴스로만 보면 그저 '미 항모 파타야 기항'이라는 짧은 한 줄이지만, 파타야에서 오래 산 사람이라면 이 소식을 마냥 무심히 넘기기 어렵다. 이 도시의 시작이, 어쩌면 그날 바다에서 내린 또 다른 젊은 군인들의 이야기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9개월 만에 육지를 밟은 사람들 배에는 5천 명 가까운 수병과 해병대원이 타고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샌디에이고를 떠나 태평양을 건너고, 중동으로 넘어가 오랜 작전을 치르는 동안 이들은 거의 아홉 달을 바다 위에서만 지냈다. 정확한 날짜를 두고는 매체마다 조금씩 다르게 전하지만~어떤 곳은 배치 전체 기간을 286일로, 어떤 곳은 마지막 기항 이후 264일이나 265일로 센다~어느 쪽이든 육지 냄새를 맡지 못한 채 보낸 시간이 거의 1년에 가까웠다는 사실만은 다르지 않다. 그 긴 항해 동안 배 안의 생활이 마냥 순탄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가 끊기고 생활용품을 아껴 써야 했다는 이야기가 밖으로 흘러나왔다. 함장은 식량이 완전히 떨어진 것은 아니라며 다소 과장된 보도라고 해명했다고 하는데, 진실이 정확히 어느 지점에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랜 시간 좁은 배 안에 갇혀 지낸 청년들의 고단함만큼은 짐작이 간다. 파타야가 맞이한 첫 풍경은 뜻밖에 소박했다 버스가 파타야에 도착하자 도시는 익숙한 방식으로 반응했다. 하드록 호텔 앞에는 환영 인파가 나왔고, 워킹 스트리트 입구 전광판에는 반기는 문구가 걸렸다. 양복점은 하룻밤새 옷을 맞춰주겠다고 나섰고, 식당들은 군인 신분증 할인을 내걸었다. 파타야 시장은 군인 한 사람이 하루 100~150달러씩만 써도 도시 전체로는 300만 달러 가까운 돈이 풀릴 거라는 계산도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카메라에 잡힌 첫 장면들은 그런 기대와는 결이 조금 달랐다. 몇몇 젊은 군인들은 네일숍에 들러 발 관리를 받았고, 쇼핑몰에서 새 양말과 옷가지를 샀다. 아내에게 줄 작은 인형을 고르는 사람도, 그저 익숙한 햄버거 한 개를 주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홉 달 만에 육지에 발을 디딘 이들이 가장 먼저 찾은 건 화려한 유흥이 아니라, 씻고 먹고 걷고 필요한 걸 사는 아주 평범한 하루였던 셈이다. 그중에는 이런 사연도 있었다. 뉴저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한 어머니가 호텔 앞에서 딸을 기다렸다는 이야기다. 링컨호 승조원이라는 스물다섯 살 딸은 전쟁이 시작된 뒤 한동안 연락이 끊겼었다고 한다. 몇 달 만에 다시 마주한 얼굴이 어떤 의미였을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물론 새벽녘 워킹 스트리트 근처에서 술에 취한 수병 둘이 몸싸움을 벌인 일도 있었다고 하니, 이 방문을 무조건 훈훈한 미담으로만 그릴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한 장면이 5천 명 전체를 대표하는 것도 아닐 터이다. 트럭 4~5대로 시작된 도시, 1959년 사실 이 풍경은 파타야에서 처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지금은 도시 곳곳에 콘도와 쇼핑몰이 들어섰지만, 파타야가 관광도시로 첫걸음을 뗀 순간을 파타야시는 1959년 6월 29일로 기록하고 있다. 그해, 나컨랏차시마(코랏) 기지에 있던 미군들이 대형 트럭 네댓 대에 나눠 타고 파타야 해변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해변 남쪽 프라야 쑨톤이라는 사람의 별장과 주택을 빌려 일주일씩 교대로 머물렀다.(지금의 워킹스트리트 안쪽 끝) 조용하고 깨끗한 바닷가라는 소문은 금세 주둔군 사이에 퍼졌고, 작은 어촌 마을에는 그전까지 본 적 없던 손님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베트남전이 커지면서 인근 우타파오 비행장과 사따힙 항구도 함께 성장했고, 작전을 마친 군인들은 가까운 파타야를 'R&R', 즉 휴식과 회복의 장소로 삼았다. 외국 군인들이 쓰는 달러는 마을의 풍경을 빠르게 바꿔놓았다. 주민들은 방을 세놓고 음식을 팔기 시작했고, 외지 자본이 들어와 방갈로와 식당, 술집이 하나둘 문을 열었다. 1964년에는 112개 객실을 갖춘 니파 로지가 들어섰는데, 이곳이 파타야 최초의 국제 수준 대형 호텔로 꼽힌다. 이어 1970년 하얏트, 1971년 오션뷰 호텔이 뒤를 이었다. 어업과 소금밭에 기대던 조용한 해안 마을이 국제 관광도시의 뼈대를 갖추기까지, 채 15년이 걸리지 않았다. 미군이 떠난 뒤에도 도시는 멈추지 않았다 1975년 베트남전이 끝나고 미군이 철수했을 때, 파타야는 다시 예전의 어촌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미 도로와 숙박시설, 외국어에 능숙한 서비스 인력, 밤 문화 산업까지 하나의 도시 경제로 자리 잡은 뒤였다. 미군이 남긴 빈자리는 유럽의 패키지 관광객과 장기 체류자들이 채웠고, 뒤이어 러시아, 중국, 인도 등 여러 나라 관광객이 거리의 풍경을 계속 바꿔놓았다. 도시가 감당하기 벅찰 만큼 빠르게 커지자, 태국 정부는 1978년 11월 29일 파타야를 특별지방행정 도시로 새롭게 출범시켰다. 어촌 마을이 한 세대 만에 보기 드문 국제 관광도시가 된 순간이었다. 물론 그 성장의 이면이 온통 밝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계획보다 건물이 먼저 들어섰고, 인구보다 오·폐수가 빠르게 늘었으며, 해안 침식과 교통 혼잡이 뒤따랐다. 전쟁 시기에 형성된 밤 문화 산업은 민간 관광의 시대에도 계속 몸집을 키웠고, 그 과정에서 성 산업과 범죄, 착취 문제가 도시 이미지에 겹치면서 '죄악의 도시'라는 낙인이 따라붙기도 했다. 이 도시가 성장해온 시간을 미군이 만든 성공담 하나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달러가 호텔과 상점을 세운 건 사실이지만, 그 급격한 전환의 사회적 비용은 오랫동안 지역 공동체와 여성들, 이름 없는 노동자들이 나눠 짊어져 온 것이기도 하다. 팬데믹이 드러낸 것, 그리고 지금의 파타야 2020년, 코로나19는 파타야가 외국인 관광에 얼마나 깊이 기대고 있었는지를 그대로 드러냈다. 국경이 닫히자 워킹 스트리트의 불이 꺼졌고, 호텔과 식당, 여행업체는 한꺼번에 손님을 잃었다. 그 시기를 직접 겪은 교민이라면 그 텅 빈 거리를 아직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부터 도시 안팎에서는 관광객 숫자보다 산업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요즘 파타야가 내세우는 '네오 파타야', 이른바 스마트 관광도시 구상도 그 위기의식 위에서 나온 것이다. 가족 단위 휴양과 해양 스포츠, 국제회의·전시, 의료와 웰니스 관광을 키우고 낡은 기반시설을 손보겠다는 방향이다. 파타야와 좀티엔 해변에서는 모래를 보충해 침식된 해안을 넓히는 공사가 이어지고 있는데, 아직 일부 구간은 진행 중이고 오수와 수질 문제도 완전히 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 고쳐진 도시'라기보다는, 여전히 공사 중인 도시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시야를 조금 넓혀보면 파타야의 자리도 달라지고 있다. 북쪽에는 태국 최대 상업항인 램차방이, 남쪽에는 우타파오 공항과 동부항공도시가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태국 정부가 추진하는 동부경제회랑(EEC) 안에서 파타야는 더 이상 관광지 하나가 아니라, 산업과 물류 거점을 뒷받침하는 생활권 도시로 다시 자리매김하고 있다. 렘차방항은 3단계 확장을 통해 연간 컨테이너 처리량을 1,100만 TEU에서 1,800만 TEU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우타파오 공항 개발도 단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다만 돈므앙·수완나품·우타파오를 잇는 3개 공항 고속철도 사업은 계약과 자금 문제로 오래 지연되어 왔고, 올해 상반기까지도 계약 수정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졌다고 한다. 거창한 청사진이 다 완성된 현실은 아니라는 뜻이니, 파타야의 앞날은 이미 정해진 결론이라기보다 앞으로의 행정과 투자, 환경 관리가 만들어갈 진행형의 이야기에 가깝다. 67년을 사이에 둔, 같은 질문 1959년 트럭을 타고 온 병사들과 2026년 항공모함에서 내린 청년들은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오랜 임무를 마치고 마른 땅에서 며칠의 평범한 일상을 되찾고 싶었다는 점에서는 이상하게도 닮아 있다. 두 세대를 사이에 두고, 파타야는 비슷한 질문을 다시 받아 든 셈이다. 전쟁과 긴 항해에 지친 사람에게 도시는 어떤 쉼을 내어주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쉼을 팔며 살아온 도시는, 그 대가로 무엇을 치러왔는가. 젊은 군인들이 받은 페디큐어와 새로 산 양말, 아내에게 줄 작은 인형 하나는 '파타야에 온 미군'이라는 익숙한 상상에 작은 균열을 낸다. 그렇다고 이 장면들을 그저 훈훈한 미담으로만 남길 일도 아니다. 그들이 돌아가야 할 전쟁터에는 또 다른 삶과 상처가 있고, 파타야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도 착취와 불균형의 그늘이 함께 있었다. 그래서 이번 항모의 기항은 단순한 입항 소식으로만 흘려보내기에는 조금 아쉬운 사건이다. 녹슨 뱃전 너머로, 전쟁과 휴식, 달러와 생계, 관광과 도시계획이 겹겹이 얽혀 흘러온 파타야 67년의 시간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어촌이었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도, 워킹 스트리트의 화려한 불빛만 아는 사람도, 결국 같은 도시의 서로 다른 얼굴을 보고 있는 셈이다. 파타야는 미군이 만든 도시라 부르기에는 그 위에 너무 많은 사람의 삶이 쌓였고, '죄악의 도시'라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여러 얼굴을 가진 곳이다. 항공모함은 며칠 뒤 다시 바다로 떠났다. 남은 것은 전광판의 환영 문구가 아니라, 이 오래된 항구 도시를 이제는 조금 더 여러 겹으로 바라볼 수 있겠느냐는, 우리 각자에게 남겨진 물음일 것이다.

“밥 먹으며 노래하면 늙은 배우자를 만난다?”

2026/09/06 12:00:05

“밥 먹으며 노래하면 늙은 배우자를 만난다?” 태국 부모의 잔소리 속에 숨은 생활 미신, 한국과 닮고 또 다른 이야기 “무지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손가락이 오그라든다.” “밥을 먹으며 노래하면 나이 많은 배우자를 만난다.” 태국 사람들과 오래 지내다 보면 이런 말을 한두 번은 듣게 된다. 처음에는 태국만의 별난 미신처럼 들리지만, 조금 더 듣다 보면 이상하리만큼 익숙하다. 밤에 빗자루질하면 복이 나가고, 밥그릇을 두드리면 팔자가 가난해진다는 한국의 옛 잔소리와 꼭 닮았다. 물론 미신은 과학이 아니다. 같은 태국 안에서도 지역과 집안, 세대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어제까지 “절대 하면 안 된다”던 일이 옆집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말이 흥미로운 까닭은, 사람들이 무엇을 두려워했고 아이들에게 어떤 행동을 가르치려 했는지가 그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무지개를 가리키면 정말 손가락이 잘릴까 태국의 대표적인 어린이 금기 가운데 하나가 “무지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말라”는 말이다. 태국어로는 흔히 ‘치 룽 래오 니우 꿋(ชี้รุ้งแล้วนิ้วกุด)’, 곧 무지개를 가리키면 손가락이 뭉툭해지거나 잘려 나간다는 식으로 전해진다. 지역과 집안마다 손가락이 썩는다거나 굽는다는 변형도 있다. 이것은 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러 아시아 지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무지개 금기’가 발견된다. 무지개를 하늘과 다른 세계를 잇는 신비한 존재로 보고, 검지로 가리키는 행동을 무례하거나 공격적인 몸짓으로 여긴 결과라는 해석이 있다. 그러니 이를 단순히 태국인의 자연 숭배 한 가지로 설명하는 것은 지나치다. 서로 멀리 떨어진 문화권에서도 닮은 금기가 생겨난, 꽤 보편적인 민속 현상에 가깝다. 밥을 먹으며 노래하면 ‘늙은 남편’을 만난다는 말도 표현을 조금 고칠 필요가 있다. 실제로는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고정된 속담이라기보다 ‘나이 많은 연인이나 배우자를 만난다’, 또는 ‘잔소리 많은 배우자를 얻는다’는 여러 버전으로 돌아다닌다. 핵심은 결혼 예언이라기보다 밥상에서 음식물을 흘리거나 식사 분위기를 어지럽히지 말라는 훈육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밥상머리에서 장난치지 말라”는 말과 결이 비슷하다. 밤에는 복도 귀신도 바쁘다 태국에서는 밤에 집을 쓸면 그날 들어온 재물과 행운까지 밖으로 쓸어낸다고 한다. 식사 도중 숟가락이나 포크로 접시와 그릇을 두드리면 떠도는 영혼을 불러 밥을 나눠 먹게 된다는 말도 있다. 한국에도 밤에 비질하면 복이 나가고, 밤에 휘파람을 불면 뱀이나 귀신이 나타나며, 밥그릇을 숟가락으로 두드리면 거지가 된다는 말이 있었다. 결과는 조금씩 달라도 금지하는 행동은 놀랄 만큼 닮았다. 여기에는 생활상의 이유를 짐작해 볼 여지가 있다. 전기가 없던 시절 밤에 비질을 하면 작은 물건이나 곡식까지 버릴 수 있었고, 그릇을 두드리거나 휘파람을 부는 행동은 식사 예절과 이웃의 잠을 해치기 쉬웠다. 다만 모든 미신을 ‘선조의 과학적인 지혜’로 포장할 필요는 없다. 이런 설명 가운데 상당수는 후대의 합리적인 해석일 뿐, 미신의 실제 기원을 증명하는 역사 자료는 드물다. 어떤 금기는 예절에서, 어떤 금기는 영혼관과 길흉 관념에서 생겼을 것이다. 수요일에 문 닫은 미용실의 사연 태국의 오래된 이발소 가운데 수요일에 쉬는 곳을 지금도 볼 수 있다. ‘수요일에는 머리를 자르지 않는다’는 금기 때문이다. 왜 하필 수요일인지를 두고는 설명이 여럿이다. 수요일을 성장과 번성의 날로 여겨 자르는 일을 피했다는 설이 있고, 옛 왕실과 고위층이 수요일에 머리를 손질해 이발사들이 궁으로 불려 갔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어느 한쪽이 확정된 정설은 아니다. 현대식 헤어살롱 중에는 수요일에도 영업하는 곳이 많고, 전통 이발소도 모두 쉬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태국 미용실은 수요일에 문을 닫는다”고 단정하면 틀린 말이 된다. 오랜 금기의 흔적이 일부 업소의 휴무 관행으로 남아 있다고 보는 편이 맞다. 한국의 손톱 미신은 요일보다 밤에 집중돼 있다. 밤에 깎아 버린 손톱을 쥐가 먹으면 사람으로 둔갑한다는 옛이야기다. 어두운 곳에서 칼이나 가위로 손톱을 다듬다 다치는 일을 막으려 했다는 설명이 흔하지만, 손톱과 머리카락을 사람의 생명력이나 분신으로 보는 오래된 관념도 함께 살펴야 한다. ‘찡쪽’이 문 앞에서 여행을 붙잡을 때 외출하려는 순간 벽에 붙어 있던 작은 도마뱀이 “찍찍” 울면 태국인은 잠깐 멈칫한다. 집도마뱀 ‘찡쪽(จิ้งจก)’이 길을 나서지 말라고 경고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울음이 들린 방향과 횟수에 따라 길흉을 다르게 풀이하는 경우도 있어 무조건 흉조라고만 하기는 어렵지만, 출발 직전의 울음을 경고로 받아들이는 이야기는 태국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도마뱀 울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문화는 주변 나라에서도 발견되지만 뜻은 같지 않다. 필리핀 일부 전승에서는 집도마뱀의 울음을 손님이나 소식이 올 징조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동남아 사람들이 도마뱀을 모두 ‘조상의 영혼’이나 ‘집의 수호신’으로 여긴다는 설명은 근거가 부족하다. 같은 동물을 보고도 한쪽은 여행을 미루고 다른 쪽은 손님을 기다린다는 차이가 오히려 민속의 재미다. 꿈속의 뱀은 분위기가 달라진다. 태국에서는 뱀이 몸을 감거나 휘감는 꿈을 꾸면 인연을 만날 징조라고 풀이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벌이 집에 들어와 둥지를 틀면 재물과 번영이 찾아온다는 믿음도 전한다. 다만 실제 벌집을 발견했다면 길흉보다 안전이 먼저다. 직접 건드리지 말고 전문가에게 확인을 맡겨야 한다. 비를 막는 레몬그라스, 새 차가 밟는 라임 야외 결혼식이나 사원 행사 날 먹구름이 몰려오면 태국에서 종종 등장하는 것이 레몬그라스다. ‘빡 따크라이 라이 폰(ปักตะไคร้ไล่ฝน)’, 레몬그라스를 거꾸로 땅에 꽂아 비가 다른 곳으로 가기를 비는 풍습이다. 흔히 순결한 미혼 여성이 꽂아야 효험이 있다고 알려졌지만 이것도 전국 공통의 단일 규칙은 아니다. 지역에 따라 집안의 막내딸, 아직 월경을 시작하지 않은 소녀, 오랫동안 남편 없이 지낸 여성 등이 등장한다. 풍습의 기원 역시 확실하지 않다. 농경사회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물을 평소와 반대로 꽂아 자연의 흐름을 뒤집는 상징 행위였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무난하다. 오늘의 눈으로 보면 여성의 순결을 효험의 조건으로 삼았던 옛 성 관념도 함께 읽힌다. 미신은 믿음의 대상보다 문화의 자료다 미신을 놓고 참과 거짓만 따지면 답은 싱겁다. 무지개를 가리킨다고 손가락이 잘리지 않고, 노래하며 밥을 먹었다고 배우자의 나이가 정해지지 않는다. 찡쪽의 울음도 미래 예언이 아니라 동물의 의사소통이다. 그러나 그 말을 누가 누구에게, 어떤 순간에 했는지를 살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밤을 조심하라는 경고에는 어둠에 대한 두려움과 생활의 질서가 함께 있고, 밥상 금기에는 예절 교육이, 날을 골라 머리를 자르는 습관에는 태국인의 요일 관념이 남아 있다. 비를 멈추게 해 달라는 레몬그라스에는 날씨 앞에서 속수무책이던 농경사회의 간절함도 배어 있다. 한국의 할머니와 태국의 야이가 같은 부엌에 앉았다면 의외로 대화가 잘 통했을지도 모른다. “밤에 쓸지 마라”, “밥그릇 두드리지 마라”, “나갈 때 조심해라.” 귀신과 액운을 앞세웠지만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비슷했다. 조심하고, 예의를 지키고, 무사히 돌아오라는 것. 태국의 미신을 안다는 것은 운세를 믿는 일이 아니라, 태국인의 오래된 마음과 생활 언어를 알아듣는 일이다. 글 | 김종민 편집국장

‘조회수’와 맞바꾼 건강 태국에서 날것으로 먹지 말아야 할 음식 10가지

2026/08/28 10:20:03

‘조회수’와 맞바꾼 건강 태국에서 날것으로 먹지 말아야 할 음식 10가지 간흡충은‘태국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조리 방식의 문제다 라임과 술, 짧은 발효만 믿어서는 안 돼 태국은 미식의 천국이다. 똠얌꿍과 팟타이, 쏨땀을 굳이 세계적인 음식 순위에 올려놓지 않더라도 이 나라의 식탁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는 오래 살아본 사람일수록 잘 안다. 우리 교민들에게도 태국 음식은 더 이상 여행지의 별미가 아니다. 점심 한 끼이고, 퇴근길 포장 음식이며, 가족이 함께 나누는 일상의 맛이다. 그런데 최근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를 보다 보면 걱정스러운 장면과 자주 마주친다. ‘현지인만 먹는 진짜 로컬 음식’, ‘태국 하드코어 음식 도전’ 같은 제목 아래 살아 있는 새우나 날생선, 피가 섞인 생고기를 먹는 모습이 마치 용기의 증명처럼 소비된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먹는 데서 콘텐츠의 자극을 끌어내는 것이다. 음식 문화를 낯설다는 이유로 혐오하거나 과장할 일은 아니다. 반대로 ‘현지 문화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의학적으로 확인된 위험까지 감수할 이유도 없다. 맛은 존중하되, 위험한 조리법 앞에서는 젓가락을 놓을 줄 알아야 한다. 7월 7일 경고, 무엇이 사실인가 지난 7월 7일 태국 질병관리국(Department of Disease Control·DDC)은 마하사라캄 지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간흡충 선별검사 논란과 관련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소변을 이용한 OV-ATK 검사는 어디까지나 1차 선별검사이며, 감염 여부를 확정하려면 대변에서 충란을 확인하는 표준검사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DDC에 따르면 2026년 1월 1일부터 7월 7일까지 태국의 디지털 질병감시체계에 보고된 간흡충 확진자는 2,656명이었다. 이날 발표에서 보건당국이 다시 강조한 것은 숫자보다 식습관이었다. 익히지 않았거나 설익힌 민물고기, 특히 태국에서 ‘흰 비늘 민물고기(ปลาน้ำจืดเกล็ดขาว)’라고 부르는 잉어과 중심의 어종을 먹는 습관이 동남아시아 간흡충인 오피스토르키스 비베리니(Opisthorchis viverrini·OV) 감염의 핵심 경로라는 것이다. 이 기생충은 사람의 담관에서 20~30년가량 살아남을 수 있다. 감염이 오래 지속되거나 반복되면 만성 염증과 담관 손상을 일으켜 담관암 위험을 높인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O. viverrini 감염 자체를 인체 발암성이 확인된 1군 발암요인으로 분류하고 있다. 다만 날생선 한 점을 먹었다고 곧바로 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감염은 약으로 치료할 수 있고,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위험을 낮출 수 있다. 문제는 감염 사실을 모른 채 오랫동안 방치하거나 치료 뒤에도 날생선을 계속 먹어 재감염되는 경우다. 장기간 진행된 담관의 흉터와 손상은 구충제를 복용한다고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 “라임을 짜면 익는다”는 오래된 착각 날생선에 라임즙을 뿌리면 살이 하얗게 변한다. 겉보기에는 익은 것 같지만 이는 산에 의해 단백질의 구조가 바뀐 것일 뿐, 불로 익힌 것과는 다르다. 라임과 타마린드, 소금, 액젓, 술을 넣었다고 간흡충 유충이 확실하게 사멸하는 것도 아니다. 발효도 한데 뭉뚱그려 말해서는 안 된다. 충분한 염도와 발효 기간, 위생 기준을 갖춘 제품은 위험이 낮아질 수 있지만, 제조 조건을 알 수 없는 짧은 발효나 즉석 염장만으로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다. DDC가 ‘쁠라 라는 익혀 먹으라’고 거듭 권고하는 이유다. 가정과 일반 식당에서 가장 확실한 원칙은 여전히 하나다. 생선의 중심부까지 충분히 가열하는 것이다. 날것 또는 설익은 상태를 피해야 할 10가지 아래 목록은 DDC가 2026년 7월 7일 발표에서 직접 예로 든 네 종류에, DDC의 과거 안내와 마히돌대학교 시리랏병원이 경고해 온 음식 유형을 더해 정리한 것이다. 음식 자체가 ‘독’이라는 뜻은 아니다. 같은 음식이라도 민물고기를 사용하지 않았거나 속까지 충분히 익혔다면 간흡충 위험은 크게 낮아진다. ➊ ก้อยปลาดิบ - 꺼이 쁠라 딥(koi pla dip) 민물고기를 잘게 다져 라임, 고춧가루, 볶은 쌀가루와 허브에 버무리는 이산식 요리다. 생선이 날것이라면 대표적인 고위험 음식이다. 양념이 강하고 비린내가 사라졌다고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➋ ลาบปลาดิบ - 랍 쁠라 딥(lap pla dip) 돼지고기나 닭고기로 만든 랍은 익혀 내는 경우가 많지만, 생 민물고기를 쓰는 랍도 있다. 주문할 때 생선 종류와 가열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랍’이라는 음식 이름만으로 익힌 요리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➌ พล่าปลาดิบ - 플라 쁠라 딥(phla pla dip) 플라(พล่า)는 고기나 해산물을 라임과 허브에 버무린 매콤한 샐러드 계열이다. 라임에 오래 재워 생선 표면이 하얗게 변해도 열로 익힌 것은 아니다. 민물고기를 날로 썼다면 피하는 것이 맞다. ➍ ปลาส้มดิบ - 쁠라 쏨 딥(pla som dip) 쌀과 소금 등을 넣어 발효시켜 신맛을 낸 생선이다. ‘쏨’이라는 이름의 신맛과 발효 향 때문에 충분히 숙성된 안전식품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날것으로 먹는 쁠라 솜은 위험할 수 있다. 굽거나 튀겨 속까지 익혀 먹어야 한다. ➎ ปลาจ่อม - 쁠라 쩜(pla chom) 작은 생선을 소금과 볶은 쌀가루 등에 발효시킨 지역 음식이다. 제조법과 숙성 기간이 집집마다 달라 ‘발효됐으니 괜찮다’고 단정할 수 없다. 별도의 가열 없이 먹는 방식은 피하는 편이 안전하다. ➏ หม่ำปลา - 맘 쁠라(mam pla) 이싼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발효 생선 음식으로, 생선과 향신료 등을 섞어 숙성한다. 충분한 열처리 없이 바로 썰어 먹는 제품이라면 간흡충 감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리된 제품인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➐ ปลาร้าดิบ ส้มตำปลาร้า - 쁠라 라 딥·솜땀 쁠라 라 (pla ra dip som tam pla ra) 쁠라 라는 이싼 음식의 맛을 떠받치는 중요한 발효 생선이다. 모든 쁠라 라와 쏨땀이 위험하다는 말은 틀리다. 문제는 발효 조건이 불분명하거나 끓이지 않은 쁠라 라를 그대로 넣는 경우다. 쏨땀을 주문할 때는 끓여 만든 쁠라 라 소스를 쓰는지 확인하고, 위생 상태가 의심스러우면 쁠라 라가 들어가지 않는 솜땀 타이를 선택하는 편이 낫다. ➑ แจ่วบอง - 째우 벙(jaew bong) 쁠라 라에 고추, 마늘, 허브 등을 섞어 만든 이산식 찍어 먹는 장이다. 충분히 볶거나 가열한 제품도 있지만, 불을 거치지 않는 조리법도 있다. 시판 제품도 ‘조리 완료’ 또는 열처리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➒ ปลาปิ้ง ปลาย่างที่สุกไม่ทั่ว - 쁠라 삥·설익은 쁠라 양(pla ping undercooked pla yang) 생선구이라고 모두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숯불이 강하면 겉은 검게 그을고 속, 특히 등뼈 주변은 덜 익을 수 있다. 살이 반투명하거나 뼈 주변에 붉고 물컹한 부분이 남아 있다면 더 익혀 달라고 해야 한다. ➓ ปลาหมกไฟ หมกปลา - 쁠라 목 파이 목 쁠라 (pla mok fai mok pla) 생선과 허브를 바나나 잎에 싸서 굽거나 찌는 음식이다. 제대로 조리하면 훌륭하고 안전한 음식이지만, 두껍게 싼 잎 안쪽까지 열이 충분히 닿지 않으면 중심부가 설익을 수 있다. 포장을 연 뒤 가장 두꺼운 부분부터 확인해야 한다. 생새우 생돼지고기 생소고기도 별개의 위험이 있다 간흡충 이야기를 모든 날음식의 위험과 섞어서는 안 된다. 생민물새우는 O. viverrini 간흡충의 감염원이 아니다. 이 간흡충의 유충은 주로 특정 잉어과 민물고기를 거쳐 사람에게 옮는다. 그러나 살아 있는 작은 민물새우를 양념에 버무린 กุ้งเต้น - 꿍 뗀(kung ten)이나 날새우 요리는 오염된 물과 원재료, 조리 과정에서 유입된 병원체로 식중독이나 심한 설사를 일으킬 수 있다. 라임과 액젓은 살균 공정이 아니다. 생돼지고기는 더 조심해야 한다. ก้อยหมูดิบ — 꺼이 무 딥(koi mu dip), ลาบหมูดิบ - 랍 무 딥(lap mu dip), 생돼지 피를 쓰는 หลู้ - 루(lu) 등은 돼지 연쇄상구균인 Streptococcus suis 감염 위험이 있다. 태국에서 ‘카이 후답(ไข้หูดับ·귀가 먹는 열병)’으로 불리는 이 감염증은 패혈증과 뇌수막염, 영구적인 청력 손실을 일으킬 수 있고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상처 난 손으로 생돼지고기나 돼지 피를 만지는 것 역시 피해야 한다. 생소고기와 내장을 썰어 쓴맛 나는 소스에 찍어 먹는 ซอยจุ๊ - 써이 쭈(soi chu), ก้อยเนื้อดิบ - 꺼이 느아 딥(koi nuea dip), ลาบเนื้อดิบ - 랍 느아 딥(lap nuea dip)도 쇠고기촌충과 식중독성 세균 감염 위험이 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고기, 병들었거나 비정상적으로 죽은 가축의 고기는 날것이든 익힌 것이든 아예 유통·섭취해서는 안 된다. 먹은 적이 있다면 겁내기보다 확인부터 간흡충 감염은 초기에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과거 태국 북부나 동북부에서 민물고기 날음식을 반복해서 먹었거나, 날것으로 만든 쁠라 쏨·쁠라 라 등을 자주 섭취했다면 가까운 병원에서 감염 검사 필요성을 상담하는 것이 좋다. 복통과 소화불량, 오른쪽 윗배의 불편감, 황달 같은 증상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진료를 받아야 한다. 임의로 구충제를 사 먹기보다 검사와 의사의 처방을 따르는 것이 안전하다. 오래 사는 교민일수록 태국 음식을 함부로 낮춰 말하지 않는다. 그 맛 안에 담긴 지역의 역사와 생활을 알기 때문이다. 동시에 어느 지점에서 젓가락을 놓아야 하는지도 안다. 음식 문화에 대한 존중은 위험한 조리법까지 따라 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조회수는 며칠이면 지나가지만 몸에 남은 손상은 오래간다. 민물고기는 속까지 익혀 먹고, 생돼지고기와 생소고기, 생민물새우는 호기심 때문에 입에 넣지 않는 것. 태국에서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 필요한 원칙은 의외로 복잡하지 않다. 김종민 / 교민잡지 편집국장

흔들리는 태국 신분등록 시스템 ‘핑크카드 가짜 아버지 노미니’가 드러낸 검은 거래

2026/08/25 11:25:46

흔들리는 태국 신분등록 시스템 ‘핑크카드 가짜 아버지 노미니’가 드러낸 검은 거래 64명이 등록된 작은 방, 가짜 부권이 적힌 출생기록, 33개 회사가 사들인 고급주택… 서로 다른 사건을 관통하는 것은 ‘외국인’이 아니라 허위 정보를 진짜 서류로 바꿔준 시스템의 허점이다 최근 한 달여 사이 태국에서는 얼핏 하나의 거대한 사건처럼 보이는 뉴스가 잇따랐다. 방콕 딘댕의 작은 플랫에 실제로 살지 않는 비태국인 아동의 이름이 무더기로 올라간 사건, 중국인 부모의 아이에게 태국인 남성을 아버지로 세워 태국 국적을 취득하게 했다는 이른바 ‘가짜 아버지’ 사건, 그리고 파타나깐과 끄룽텝 끄리타 일대 고급주택 33채를 태국인 명의의 회사들로 사들였다는 노미니 사건이다. 자극적인 말로 묶자면 ‘국적 세탁’이나 ‘태국 점령’이라는 제목을 붙이기 쉽다. 그러나 사건의 성격과 수사 단계가 서로 다른 만큼, 언론이 먼저 선을 그어야 한다. 확인된 사실과 수사기관의 의혹, 아직 입증되지 않은 추정을 뒤섞으면 정작 문제의 핵심을 놓치기 때문이다. 세 사건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특정 국적이 아니다. 허위 주소, 허위 부권, 차명 주주라는 가짜 입력값이 공무원이나 브로커의 손을 거쳐 정부가 발행한 진짜 기록과 회사 서류로 바뀌었다는 데 있다. ‘한 방에 140명’은 사실이 아니었다 먼저 숫자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지난 8월 18일 경찰과 내무부·방콕시 등이 벌인 ‘가왓반 끌랑끄룽(도심 주거기록 정리)’ 작전에서 조사한 곳은 딘댕 플랫 5,726개 방이었다. 당국은 이 주소들에 5~15세 비태국인 아동 최소 1,366명이 등록된 사실을 확인했다. 한 주소에 16명 이상이 올라간 방은 44곳이었고, 우선 확인한 방 3곳에 등록된 아동이 합계 140명이었다. 방 한 곳의 최대치는 64명이다. 따라서 ‘한 방에 140명’이라는 표현은 사실과 다르다. 수사는 등록 과정의 경고 신호가 왜 무시됐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전에 서명된 서류, 세대주의 위조 서명, 당사자가 출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전입 승인 등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공무원 3명을 포함한 7명이 체포됐고, 경찰은 브로커와 일부 구청 직원 사이의 송금 내역도 조사하고 있다. 사건 이후 방콕시는 딘댕구의 2017~2026년 자료를 다시 훑어 3,228건을 ‘추가 확인이 필요한 이상 기록’으로 분류했다. 이 숫자 역시 확정된 불법 발급 건수가 아니다. 의심 신호를 보인 기록을 골라낸 1차 조사 대상이다. 방콕 50개 구청은 9월 1일까지 관련 자료를 보고하도록 지시받았고, 내무부는 검토 범위를 전국으로 넓히고 있다.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핑크카드다. 흔히 ‘비태국인 신분증’으로 불리는 이 카드는 태국 국적증이 아니다. 카드가 있다고 해서 태국 시민이 되는 것도 아니며, 취업·금융·복지의 모든 권리가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도 아니다. 취업에는 해당 신분과 고용 형태에 맞는 별도의 허가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럼에도 주소와 인적 사항이 공적 데이터베이스에 들어가면 이후의 교육·의료·금융·법인등록·신분 심사에서 공식 자료로 제시될 수 있다. 위조 카드보다 더 위험한 것은 ‘진짜 기관이 발급한 서류에 거짓 정보가 들어가는 것’이다. 겉으로는 정상 문서이기 때문에 다음 단계의 심사를 통과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164명의 ‘중국인 아동’, 모두 확정된 범죄는 아니다 7월 초 불거진 ‘가짜 아버지’ 사건도 숫자를 신중하게 읽어야 한다. 경찰과 태국 내무부 산하 지방행정국(DOPA)은 톤부리 지역 한 민간병원의 기록에서 중국인 어머니와 태국인 아버지가 기재된 출생 사례 164건을 찾아 조사에 들어갔다. 수사기관은 일부 태국 남성이 돈을 받고 친부인 것처럼 서류에 이름을 올렸고, 병원 직원과 구청 관계자가 출생 서류와 신고를 도왔다고 보고 있다. 7월 9일 발표 당시 DNA 검사로 기재된 태국인 아버지와 생물학적 관계가 없다고 확인된 사례는 19건이었고, 해당 출생등록은 취소됐다. 164건 전부가 가짜 부권으로 확정됐다는 뜻은 아니다. 이후 조사 범위는 방콕의 민간병원 8곳, 약 1,000~1,500건의 고위험 기록으로 확대됐다. 지방행정국은 이 숫자 역시 조사 대상일 뿐 확정 범죄 건수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 제기된 ‘전국 1만 건’ 주장도 공식 확인된 수치가 아니다. 이 범죄가 가능한 이유는 태국 국적법의 혈통주의 원칙에 있다. 태국 국적법 제7조는 태국인 아버지 또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출생지가 국내든 해외든 태국 국적을 취득하도록 한다. 따라서 생물학적 관계가 없는 태국인 남성을 아버지로 등록하면 단순한 서류 한 장을 넘어 아이의 국적과 장래 권리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경찰은 이 사건을 2024년 체포된 중국인 천인라이(Chen Yinlai) 관련 스캠·자금세탁 수사에서 확대한 것으로 설명했다. 당시 경찰은 피의자의 휴대전화에 설치된 여러 디지털 지갑에서 700억 바트가 넘는 누적 거래 흔적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 숫자를 ‘가짜 아버지 조직이 세탁한 확정 범죄수익’으로 곧바로 바꿔 쓰는 것은 무리다. 지갑에서 포착된 거래 규모와 법원이 확정한 범죄수익은 같은 개념이 아니며, 전체 금액이 출생등록 조직을 거쳤다는 증거도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정부는 허위로 취득한 국적이 훗날 토지·회사·자산 보유나 자금세탁에 이용될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합리적인 우려다. 그러나 가능성과 확인된 사용처는 구별해야 한다. 모든 의심 출생기록을 범죄조직의 자녀로 몰거나, 외국인 부모가 포함된 모든 가정을 잠재적 범죄자로 대하는 순간 행정의 신뢰를 바로잡는다는 명분은 또 다른 피해를 낳게 된다. 33채 고급주택은 ‘국적 세탁’이 아닌 별도의 노미니 사건 7월 22일 중앙수사국(CIB) 경제범죄수사부가 발표한 고급주택 사건은 또 다른 경로를 보여준다. 경찰은 빠따나깐과 끄룽텝 끄리타 일대 3개 주택단지의 고급주택 33채, 총 12억7,500만 바트 상당이 33개 회사를 통해 취득됐다고 밝혔다. 수사기관에 따르면 중국인 남성이 회사 설립자금과 주택대금을 댔고, 태국인 여성과 그 어머니가 주주·이사 명의를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법률사무소와 회계회사, 중국계 부동산 중개회사의 역할도 조사 대상이다. 경찰은 토지등기 문서, 주택 매매계약, 미리 서명된 주식양도 서류, 여권과 전자기기 등을 압수해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딘댕 핑크카드 사건이나 가짜 아버지 사건과 직접 연결됐다고 확인된 바 없다는 점이다. 공개된 수사 내용상 핵심 수법은 ‘가짜 국적’이 아니라 태국인이 실질 투자자처럼 보이도록 만든 회사와 명의주주다. 서로 다른 사건을 한 줄로 이어 “가짜 신분증을 만든 중국인이 고급주택 33채를 샀다”고 쓰면 사실관계가 달라진다. 또 하나, 외국인이 태국의 모든 형태의 부동산을 소유할 수 없다는 표현도 정확하지 않다. 토지 소유는 원칙적으로 엄격히 제한되지만, 외국인은 법정 외국인 보유 한도 안에서 콘도미니엄을 소유할 수 있고, 임대차나 투자촉진 승인 등 합법적인 제도도 존재한다. 문제는 외국인이라는 신분 자체가 아니라, 법이 허용하지 않는 토지 또는 제한 사업을 태국인 명의로 우회해 실질적으로 지배했는지 여부다. ‘태국이 점령당한다’는 말이 놓치는 것 최근 사건을 두고 ‘태국이 외국 자본에 점령당한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불안의 배경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문제의 절반만 본다. 허위 전입에는 주소를 제공한 사람과 이를 승인한 공무원이 있었고, 가짜 부권에는 이름을 빌려준 태국인과 서류를 처리한 관계자가 있었으며, 노미니 회사에는 명의를 내준 주주와 설립을 도운 전문 서비스업자가 있었다. 국경 밖의 자금만 탓해서는 이 구조를 끊을 수 없다. 태국의 공적 기록을 거래 가능한 상품으로 만든 국내 브로커와 공직 부패, 기관 간 데이터 단절, 이상 징후를 보고도 멈추지 않은 승인 절차가 함께 수사받아야 한다. 국적에 대한 분노가 제도 개선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노미니 처벌, 정확히 어디까지인가 노미니는 단순히 태국인 주주가 있는 회사를 뜻하지 않는다. 태국인이 자신의 돈과 판단으로 실제 투자한 합법적인 합작회사까지 노미니로 부를 수는 없다. 명의자는 이름만 빌려주고, 외국인이 자금을 대며 사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해 외국인 제한 업종이나 토지 규제를 피하려 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외국인사업법 제36조가 적용되면 명의를 제공하거나 외국인의 제한 사업을 도운 태국인과 그러한 행위를 허용한 외국인 모두 징역 3년 이하 또는 10만~100만 바트의 벌금, 또는 두 처벌을 함께 받을 수 있다. 법원은 조력, 공동사업, 명의보유를 중단하도록 명할 수 있으며,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하루 1만~5만 바트의 추가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토지 문제는 별도다. 태국 토지법 제113조는 외국인의 대리인으로 토지를 취득한 사람에게 징역 2년 이하 또는 벌금 2만 바트 이하, 또는 병과하도록 한다. 불법으로 토지를 취득한 외국인은 제111조, 외국 법인은 제112조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당국은 불법 취득 토지의 처분 기간을 180일 이상 1년 이하로 정할 수 있고, 기간 내 처분하지 않으면 직접 처분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다만 적발과 동시에 모든 투자금이 자동 몰수되고 회사가 즉시 폐쇄되며 외국인이 곧바로 블랙리스트에 오른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사업 중단 명령, 토지 처분, 형사처벌 외에 자산 압류·추방·입국금지가 뒤따르려면 자금세탁법이나 출입국법 등 별도의 법적 요건과 절차가 필요하다. 한 태 다문화 가정에 실제로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교민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은 정상적인 한·태 가정의 출생신고다. 7월 11일 태국 정부가 공식 발표한 강화 조치는 부모 가운데 한 명이 외국인인 ‘친자 인정 등록’의 경우 당사자가 등록관 앞에 직접 출석해 부모 관계를 확인하도록 전국 878개 등록사무소에 지시한 것이다. 가짜 태국인 아버지가 대리서류만으로 친부를 자처하는 일을 막기 위한 조치다. 방콕시는 별도로 50개 구청에 2017년 1월 1일 이후 외국인 어머니와 태국인 아버지가 기재된 출생등록을 재점검하도록 했고, 태국인과 외국인의 혼인신고도 신분·혼인상태·의심 정황을 더 엄격하게 확인하도록 했다. 정당한 가정이라도 이름의 철자, 생년월일, 혼인관계, 병원 기록이 서로 다르면 이전보다 설명이나 보완서류를 더 요구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앞으로 모든 한·태 부부가 구청과 양국 대사관에 함께 출석해야 한다’고 이해하면 곤란하다. 태국 내 출생신고, 혼인 외 출생자의 친자 인정, 태국 국적·호적 정리, 한국 가족관계등록은 서로 다른 절차다. 태국에서 태어난 아이의 기본 출생신고는 일반적으로 출생 후 15일 이내에 관할 등록사무소에서 진행한다. 병원이 발급한 출생확인서 양식 ท.ร.1/1, 아이를 올릴 타비얀반, 신고인과 부모의 신분증 또는 여권 등이 기본 자료다. 다만 부모의 국적·혼인 상태·친자 인정 필요 여부에 따라 추가 서류와 당사자 출석을 요구할 수 있으므로 출산 병원과 관할 구청에 먼저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한국 가족관계등록은 이 태국 절차와 별개다. 부모 중 한국 국적자가 있는 경우 주태국 대한민국대사관 또는 한국의 관할 가족관계등록기관을 통해 출생신고를 진행하되, 태국 출생증명서와 한글 번역문 등 현재 안내된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당초 원고에 포함됐던 ‘병원 영문 출생증명서를 한국 외교부에서 영사확인받아 3개월 안에 제출해야 한다’, ‘혼외자가 아버지 성을 쓰려면 태국인 증인을 동반해야 한다’는 안내는 태국에서 태어난 한·태 가정의 일반 절차가 아니다. 이는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를 서울의 주한태국대사관에 신고할 때 적용되는 안내를 잘못 옮긴 것이다. 혼인 외 출생이라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출생 사실의 신고, 법률상 친자 인정, 성의 결정, 태국·한국 국적 및 가족관계등록은 각각 법적 효과가 다르다. 브로커의 말만 믿기보다 관할 구청과 양국 대사관에 서면으로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가족법 전문가의 검토를 받는 편이 낫다. 문제는 카드 색깔이 아니라 국가 기록의 신뢰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외국인 아동이나 다문화 가정이 아니다. 거짓말을 진짜 행정기록으로 바꿔주는 시장이다. 한 번 오염된 출생·주소·국적 데이터는 은행, 학교, 병원, 회사, 부동산 등 여러 시스템으로 퍼져 나간다. 나중에 바로잡으려면 더 큰 비용과 갈등이 따른다. 정부의 강한 단속은 필요하다. 동시에 정상적인 다문화 가정과 합법적으로 투자하는 외국인에게까지 국적만으로 과도한 의심을 돌려서는 안 된다. 이상거래 자동경보, 병원·구청·출입국·토지·법인 데이터의 교차 검증, 고위험 사건에 대한 사후 감사, 관련 공무원과 전문 브로커의 책임을 함께 강화해야 한다. 의심 기록을 취소할 때도 당사자에게 소명과 불복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교민 사회가 얻어야 할 교훈도 분명하다. 태국인이 지분 51%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회사를 합법이라고 믿어서는 안 되며, 주소·주주·자금·의사결정의 실질이 서류와 일치해야 한다. 출생과 혼인 관련 서류는 양국에서 이름과 날짜가 정확히 맞는지 미리 확인해야 한다. 무엇보다 ‘다들 그렇게 한다’는 브로커의 말이 정부 데이터베이스에 들어가는 순간, 편법은 돌이키기 어려운 형사 위험이 된다. 태국의 신분등록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수사가 남겨야 할 결론은 외국인에 대한 공포가 아니다. 거짓 정보를 공적 권리로 바꿔준 사람과 구조를 끝까지 찾아내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고치는 것. 그것이 태국 사회와 이곳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우리 교민 모두에게 필요한 답이다. 글 | 교민잡지 김종민 편집국장

학교 안까지 들어온 총성

2026/08/25 11:03:56

학교 안까지 들어온 총성 논타부리 참사가 드러낸 태국 총기 관리의 구멍 합법 총기 한 정이 가정에서 교실로… 60일 총기법 개정과 90일 학교안전기준, 이번에는 달라질 수 있을까 학교는 아이를 집 다음으로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나 2026년 8월 7일 오전, 논타부리 방끄루아이 지역의 뎁시린 논타부리 학교에서는 그 믿음이 총성과 함께 무너졌다. 경찰과 보건 당국의 발표를 종합하면 14세 학생은 이날 아침 집에서 조부모를 살해한 뒤, 조부 소유의 총기를 가지고 학교로 이동해 총격을 벌였다. 교사와 교직원 5명이 숨졌고, 중상을 입은 12세 여학생도 다음 날 세상을 떠났다. 가해 학생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8월 12일 현재까지 확인된 전체 사망자는 가해 학생을 포함해 9명이다. 피해자만 따지면 교내 6명과 조부모 2명 등 8명이다. 태국 보건부는 8월 8일 정오 기준 부상자 27명 가운데 15명이 병원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 중 6명은 중증 또는 위중한 상태라고 밝혔다. 초기에는 부상자 수가 20명대부터 30여 명까지 엇갈렸는데, 총상 외에 대피 과정에서 다치거나 정신적 충격으로 치료받은 사람을 포함하는지에 따라 집계 기준이 달랐기 때문이다. 학교는 8월 10일부터 14일까지 수업을 중단하고 17일 재개교를 준비했다. 사건이 발생한 교실은 별도 폐쇄 조치됐고, 학생과 교직원,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심리 회복 프로그램도 시작됐다. ‘학업 스트레스’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 사건 직후 아누틴 찬위라꾼 총리는 가해 학생이 학업과 보호자의 엄격한 지도 때문에 스트레스를 겪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경찰은 학생이 이전부터 총기에 관심을 보였고 온라인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본 정황도 조사했다. 그러나 수사가 끝나지 않은 단계에서 학업 스트레스나 가족 갈등을 단일한 범행 동기로 확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수많은 청소년이 학업 스트레스와 갈등을 경험하지만 총격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번 사건에서 반드시 함께 봐야 할 것은 한 청소년이 집 안에 있던 실탄 총기와 탄약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용된 총기는 조부 명의로 합법적으로 등록된 권총이었다. 불법 총기가 암시장에서 학교로 들어온 사건이 아니라, 합법 총기 한 정이 안전하게 보관되지 않은 채 가정에서 교실로 이동한 사건이다. 이번 참사가 불법 총기 단속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총기 소유자의 자격을 심사하는 것만큼 총기를 집에서 어떻게 보관하는지, 소유자가 사망하거나 고령·질병 등으로 관리 능력을 잃었을 때 누가 회수하고 재심사할 것인지도 중요하다. 미성년자가 있는 가정에서는 총기와 탄약을 분리해 잠금장치가 있는 장소에 보관하도록 하고, 관리 의무를 위반해 제3자가 총기를 사용한 경우 소유자의 책임을 묻는 제도가 필요하다. 100명당 15.1정, 숫자보다 무거운 현실 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민간 총기 보유 수준이 가장 높은 국가로 꼽힌다. Small Arms Survey가 2017년을 기준으로 추산한 태국의 민간 총기는 약 1,034만 정이다. 인구 100명당 15.1정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600만 정 이상이 등록 총기이고, 약 400만 정은 미등록 총기로 추정됐다. 다만 이 수치는 2026년 현재의 실시간 총기 등록 통계가 아니다. 최신 공식 전수조사가 아니라 등록 자료와 여러 추정치를 결합한 2017년 자료라는 점을 함께 밝혀야 한다. 그렇더라도 태국의 민간 총기 재고가 동남아시아 주변국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는 큰 흐름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총기 문제는 숫자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2020년 나콘랏차시마 총기 난사, 2022년 농부아람푸 어린이집 참사, 2023년 시암파라곤 총격, 2025년 방콕 오토코 시장 총격에 이어 2026년 2월에는 핫야이의 학교에서도 총격과 인질 사건이 벌어졌다. 이번 뎁시린 논타부리 사건은 고립된 돌발 사건이 아니라 반복돼 온 경고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사건 사흘 뒤인 8월 10일에는 같은 논타부리주의 지방행정기관 사무실에서 전직 국회의원이 개인적인 금전 갈등을 이유로 지방행정기구장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사건까지 발생했다. 학교와 관공서에서 며칠 간격으로 총성이 울리면서 총기 문제를 더 이상 특정 범죄자의 일탈로 치부하기 어려워졌다. 태국 사회에 총기가 널리 퍼진 네 가지 통로 태국의 총기 확산을 한 가지 원인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오래된 법과 허술한 사후관리, 공무원 대상 할인구매제도, 불법·온라인 시장, 그리고 총기를 힘과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여기는 문화가 서로 맞물려 있다. 첫째, 총기 규제의 기본 틀이 지나치게 오래됐다. 태국 총기 규제의 뼈대는 1947년 제정된 총기·탄약·폭발물·불꽃놀이·모조총기법이다. 이후 여러 차례 개정됐지만 허가와 추적은 여전히 낡은 행정 구조에 기대고 있다. 온라인 거래와 부품 유통, 공포탄용 총기의 실탄 총기 개조와 같은 새로운 시장을 실시간으로 추적하기 어렵다. 둘째, 허가를 받은 뒤의 관리가 느슨했다. 총기를 구입하려면 구매허가인 P.3가 필요하고, 구입 후에는 총기를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는 P.4를 받아야 한다. 공공장소에서 총기를 휴대하려면 별도의 허가가 필요하다. 문제는 P.4 소지자의 상태와 위험 요인을 정기적으로 다시 확인하는 제도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총기를 처음 구입할 당시 문제가 없었다고 해서 10년, 20년 뒤에도 상황이 같다는 보장은 없다. 가정폭력, 약물 의존, 심각한 행동 변화, 인지기능 저하, 가족 내 갈등과 같은 위험은 시간이 흐르면서 생길 수 있다. 그런데도 현재 제도에는 표준화된 정신건강 심사와 정기적인 허가 재평가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았다. 셋째, 암시장과 온라인 거래가 제도 밖 수요를 흡수했다. 미등록 총기뿐 아니라 공포탄용 총기를 실탄 발사가 가능하도록 개조한 총기, 온라인에서 거래되는 부품과 사제총기까지 유통 경로가 다양해졌다. 2023년 시암파라곤 총격도 개조 총기의 위험성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넷째, 경찰과 군인, 공무원 등이 할인된 가격으로 총기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한 ‘공무원 할인 총기 구매제도’가 총기 재고를 늘리고 일부 총기가 제도 밖으로 흘러갈 수 있는 통로가 됐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제도는 위험한 업무를 맡은 공직자의 자기방어를 돕는다는 취지로 운영됐다. 그러나 총기가 업무용 장비가 아니라 개인 자산과 수집품처럼 취급되면서 여러 정을 구매하거나 퇴직 후에도 보유하는 사례가 생겼다. 총기는 왜 ‘바라미’와 권력의 상징이 됐나 태국 사회에서 총기는 자기방어나 사격 스포츠의 도구만을 뜻하지 않았다. 총기의 높은 가격과 합법 구매 절차의 까다로움 때문에 일부 계층에서는 총기가 부와 권력, 특권을 보여주는 물건으로 받아들여졌다. Reuters와 총기 문제 연구자들은 태국에서 총기가 힘과 특권의 상징으로 우상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해 왔다. 태국어에는 ‘바라미(บารมี)’라는 말이 있다. 원래는 덕망이나 위엄을 뜻하지만 정치·사회적 맥락에서는 주변을 움직일 수 있는 위세와 영향력의 의미로도 쓰인다. 일부 지역 정치인과 사업가, 유력자에게 고급 총기와 무장한 수행원은 자신의 힘을 드러내고 상대에게 두려움을 주는 수단이 됐다. 총을 실제로 쏘지 않더라도 ‘총을 가진 사람’, ‘무장 인력을 거느린 사람’이라는 인식 자체가 권력으로 작동한 것이다. 태국 학계에는 불법 총기가 지역 유력자의 영향력을 만드는 ‘상징자본’과 ‘문화자본’으로 기능해 왔다는 연구도 있다. 국가의 통제가 약한 지역에서 총기는 토지와 사업권을 지키는 도구이자, 다른 사람을 복종시키고 인맥을 넓히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이런 역사적 경험이 지역 정치와 회색사업, 청부폭력 조직의 문화와 결합하면서 ‘총이 곧 힘’이라는 인식을 남겼다. 실제 경찰이 정치인이나 지역 유력자의 자택을 수색할 때 개인 소장의 범위를 넘어선 총기와 탄약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었다. 2016년 나콘파톰의 한 지역 정치인 자택에서는 군용 무기 8정과 권총 14정, 다량의 탄약이 침실과 사무실의 장 안에서 발견됐다. 다른 정치인 자택에서는 수집실 등에 보관된 총기 80정가량이 발견돼 경찰이 허가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여기서 모든 총기가 불법이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당시에도 일부 총기는 합법 등록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가 진행됐다. 그러나 불법 무기가 은닉된 사례와 합법 여부가 즉시 확인되지 않는 대규모 개인 소장 사례가 함께 반복됐다는 사실은 태국 총기 관리의 구조적 문제를 보여준다. 상류층 전체나 모든 정치인을 총기 문제와 연결하는 것도 옳지 않다. 문제는 일부 정치인과 지역 유력자, 사업가 집단에서 총기 수집과 무장 인력 보유가 ‘세를 과시하는 방식’으로 용인됐고, 돈과 인맥이 있는 사람은 허가제도 안팎에서 총기에 접근하기 쉬웠다는 점이다. 이렇게 사저나 사업장에 보관되거나 숨겨진 총기는 소유자만의 물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절도와 불법 양도, 가족의 무단 사용, 갈등 상황에서의 충동적 사용을 거쳐 사회로 다시 흘러나올 수 있다. 따라서 불법 총기 단속은 거리의 사제총기나 온라인 판매자만 겨냥해서는 부족하다. 정치인과 공직자, 지역 유력자라고 예외를 두지 않고 대량 보유 총기의 출처와 허가, 양도와 상속 기록을 같은 기준으로 조사해야 한다. 권력과 가까운 사람에게 총기법을 느슨하게 적용하는 순간 ‘총이 곧 특권’이라는 문화는 더욱 강해진다. 벌써 나타난 모방 위협 뎁시린 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며칠 뒤, 치앙마이 몽포트 칼리지의 학생 라인 단체방에서 학교 총격을 예고하는 듯한 대화가 퍼졌다. 일부 학생은 특정 학년과 교실을 거론했고, 총기 사진도 공유했다. 학부모들이 자녀를 데리러 학교로 달려왔고 경 학생들은 온라인 유행을 따라 한 장난이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 속 총기가 실제 총기인지, 구체적인 공격 준비가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를 곧바로 제2의 총격 계획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단순한 장난으로만 넘길 수도 없다. 미국 학교 총격 자료를 분석한 2015년 연구는 대형 총격이나 학교 총격 이후 유사 사건의 발생 위험이 평균 약 13일 동안 높아지는 현상을 관찰했다. 미국 자료를 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대형 사건 직후 모방성 위협과 과장된 온라인 행동을 특별히 주의해야 할 근거는 된다. 언론과 소셜미디어의 책임도 크다. 가해자의 이름과 사진, 범행 동선과 사용 수법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보도는 사건을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하게 만들 수 있다. 사실을 숨기라는 뜻이 아니다. 가해자를 영웅이나 반영웅처럼 만들지 말고, 피해자와 구조적 문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통로에 보도의 중심을 두자는 이야기다. P.3 중단과 60일 총기법 개정 아누틴 총리와 내각이 발표한 총기 대책은 단기 조치와 장기 개혁으로 나뉜다. 우선 공무원 할인 총기 구매제도의 신규 사업을 중단하고, 일반 총기 구매허가인 P.3의 신규 발급도 별도로 중단했다. 두 조치는 서로 다른 조치다. 전국의 미사용·미처리 P.3를 조사해 30일 안에 내무부에 보고하도록 했으며, P.3를 받아 이미 총기를 구입했지만 P.4 등록을 마치지 않은 사람은 내각 결정일로부터 30일 안에 등록을 완료해야 한다. 공공장소 총기 휴대 금지는 이번에 처음 생긴 법이 아니다. 기존 법의 집행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의미에 가깝다. 합법적으로 등록된 총기라 하더라도 집 밖에서 마음대로 휴대할 수 없으며, ‘자기방어용’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장기적으로는 내무부가 60일 안에 총기법 개정안을 마련한다. 허가와 거래 절차를 실시간 전자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세관·국세청 자료를 연계하며, 총기의 식별정보와 판매·이전 기록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P.4를 3년마다 갱신하도록 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중요한 것은 ‘3년 갱신’이 아직 시행 중인 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60일 안에 법안이 제출되고 입법 절차를 통과해야 비로소 의무가 된다. 학교 안전기준은 90일 안에 마련 교육부와 고등교육과학연구혁신부, 사회개발인간안보부, 노동부는 보건부 정신건강국 등과 함께 90일 안에 ‘국가 학교안전기준’을 마련해 내각에 제출하기로 했다. 장기 기준에는 학생과 교직원의 정기적인 심리 상태 확인, 위험 학생의 전문기관 연계, 담임·상담교사를 대상으로 한 ‘Train the Trainer’ 교육, 비상상황 대응훈련, CCTV와 교내 취약지점 점검, 출입자와 위험물품 검색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학교폭력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고, 학생이 보복이나 낙인의 두려움 없이 고민과 위협을 알릴 수 있도록 Traffy Fondue 등을 활용한 익명 신고 채널과 ‘Safe Zone’을 구축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2022년에도, 2023년에도 비슷한 약속은 있었다 이번 대책이 강력해 보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22년 농부아람푸 어린이집 참사 뒤에도 태국 정부는 총기 구매자의 정신건강 평가, 문제 행동을 보이는 소유자의 허가 취소, 불법 총기 자진 반납, 총기허가의 3∼5년 주기 재검토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2023년 시암파라곤 총격 이후에도 신규 허가의 한시적 중단, 수입 제한, 사격장 연령 제한, 정신건강 확인서와 총기허가 유효기간 도입이 거론됐다. 그러나 2026년 8월 현재도 총기 소지 신청자에 대한 표준화된 정신건강 심사와 기존 소유자의 정기 재평가는 제도화되지 못했다. 이번에 또다시 등장한 ‘60일’과 ‘90일’이 냉소적으로 들리는 이유다. 태국 사회에 부족했던 것은 대책 발표가 아니라 끝까지 법을 만들고 예산과 인력을 배정해 집행하는 힘이었다. 필요한 것은 총기와 사람, 가정과 학교를 잇는 관리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반드시 제도화해야 할 과제는 분명하다. 첫째, 미성년자가 거주하는 가정에 총기 잠금장치와 탄약 분리 보관을 의무화해야 한다. 관리 의무 위반으로 총기가 유출됐을 때 소유자의 책임도 명확히 해야 한다. 둘째, P.4를 정기적으로 갱신하면서 범죄 기록뿐 아니라 가정폭력, 약물 의존, 심각한 행동 변화와 관리 능력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본인이나 주변 사람에게 급박한 위험이 확인되면 법원의 통제 아래 총기를 일시 회수할 수 있는 제도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셋째, 공무원 할인 총기 구매제도를 통해 공급된 기존 총기의 소재와 소유권 변동을 감사해야 한다. 판매점과 사격장의 총기·탄약 재고, 세금, 양도와 상속 기록도 하나의 전자시스템에서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정치인과 공직자, 지역 유력자를 포함한 대량 총기 보유자에게 동일한 검증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등록되지 않은 총기와 탄약을 숨겨두거나 양도 기록을 누락한 경우에는 지위와 관계없이 처벌해야 한다. 자산신고 대상 공직자의 총기도 허가 자료와 자동 대조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학교마다 상담교사 몇 명을 배치하는 데 그치지 말고 교사·상담사·관리자·경찰이 참여하는 위협평가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신고한 학생이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신뢰가 있어야 익명 신고 채널도 작동한다. 여섯째, 언론과 온라인 플랫폼은 가해자를 과도하게 부각하지 않는 보도 원칙을 세워야 한다. 범행 장면과 수법을 반복 유통시키는 대신 피해 회복, 위험 신호, 신고와 상담 경로를 더 많이 알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60일과 90일 뒤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공개해야 한다. 법안 제출 여부, 회수된 불법 총기 수, 점검한 판매점과 사격장 수, 공무원 할인 총기 구매제도로 공급된 총기의 점검 결과, 학교별 상담 인력과 위기대응계획을 국민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는’이라는 말이 행정이 되려면 교민 가정도 이번 사건을 지나친 공포로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출입 통제와 비상연락망, 대피 절차, 상담창구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다. 온라인에서 총격이나 보복을 암시하는 글을 발견하면 이를 단순히 재전송해 공포를 키우기보다 학교와 경찰에 직접 신고해야 한다. 태국 경찰 긴급전화는 191, 정신건강 상담은 1323, 아동·가족 관련 사회지원은 1300이다. 이번 참사는 불법 총기 한 정만 없애면 끝나는 사건도, 스트레스를 받은 한 학생의 문제로만 돌릴 사건도 아니다. 합법 총기의 허가와 보관, 미등록 총기의 유통, 공무원 할인 총기 구매제도의 사후관리, 총기를 권력과 위세의 상징으로 여겨 온 문화, 학교의 위험 신호와 온라인 모방이 하나의 사슬로 연결돼 발생한 비극이다. 이제 60일과 90일의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민이 확인해야 할 것은 또 하나의 위원회나 발표문이 아니다. 총기가 실제로 회수됐는지, 허가가 다시 심사됐는지, 권력자에게도 같은 법이 적용됐는지, 학교에 상담 인력과 신고체계가 들어갔는지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 추모식장의 문장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번에는 그 말이 법과 예산, 현장의 행정으로 바뀌어야 한다. 글 | 김종민 편집국장

12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