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쏨땀” '이싼’ 향토음식에서 '국민 소울푸드'가 되기까지

2025/11/18 14:10:41

“쏨땀” '이싼’ 향토음식에서 '국민 소울푸드'가 되기까지 태국인의 정신을 사로잡은 '마성의 샐러드 쏨땀' 한때 태국 북동부 이산(Isaan) 지방의 투박한 향토 음식으로 여겨졌던 이 파파야 샐러드는 어떻게 태국 전역의 식탁을 점령하고 '태국의 김치'라 불리는 국민 소울푸드가 되었나. 그 화려한 변천사를 찾아본다. "쏨땀(Som Tum)은 단순한 샐러드가 아니다. 그것은 엄청난 짠맛, 신맛, 단맛, 매운맛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경험'이다." 방콕의 한 요리 전문가는 쏨땀을 이렇게 정의한다. 이름 자체가 그 본질을 드러낸다. '쏨(Som)'은 '시다'는 뜻이고, '땀(Tum)'은 '찧다'는 동사다. 서양식 샐러드처럼 그릇에 재료를 넣고 버무리는(Toss) 것이 아니라, 절구(Mortar)에 재료를 넣고 찧어(Pound) 맛을 융합시킨다. 이 '제어된 으깨기' 방식이 쏨땀 맛의 핵심이다. 마늘과 쥐똥 고추(프릭 키누)를 먼저 찧어 향을 폭발시키고, 라임즙과 피시 소스, 야자 설탕이 어우러져 반짝이는 드레싱을 만든다. 그 후에 아삭한 녹색 파파야, 긴 줄기 콩, 토마토가 들어가 맛이 스며들되 식감은 살아있는 'Zaap Nua(쎕 누어)'(풍부하고 조화로운 맛)가 완성된다. 1. 기원 : 이싼의 심장, '쏨땀 쁠라라(빨라)' 쏨땀의 고향은 태국 북동부 이싼 지역이다. 그리고 그 원형은 '쏨땀 쁠라라(Som Tum Pla Ra)'다. 이것은 외국인에게 '관문' 격인 '쏨땀 타이'와는 정반대의 지점에 있다. 세련됨보다는 거칠고, 균형보다는 강렬하다. 핵심 재료는 '쁠라라(Pla Ra)', 즉 강렬한 향의 민물 생선 발효 소스다. 여기에 작은 민물 게 절임(Pu)을 통째로 찧어 넣은 '쏨땀 뿌 쁠라라(Som Tum Pu Pla Ra)'는 이싼 스타일의 정수로 꼽힌다. 게 껍데기의 바삭함과 짭조름한 미네랄 노트가 어우러져 이 음식이 태어난 논과 밭을 연상시킨다. 이 강렬한 쿰쿰함과 짠맛. 이것이 바로 이싼의 영혼이었지만, 오랫동안 방콕의 세련된 입맛과는 거리가 있었다. 쏨땀이 이싼 출신 노동자들의 향수 어린 식사, 혹은 특정 지역의 '강한' 음식으로 여겨졌던 이유다. 2. 변신 : 수도를 점령한 '쏨땀 타이' 쏨땀이 이싼의 경계를 넘어 태국 전역, 나아가 전 세계로 퍼져나간 데는 결정적인 '변신'이 있었다. 바로 '쏨땀 타이(Som Tum Thai)'의 등극이다. 쏨땀 타이는 쏨땀의 '세계화 버전'이자 '근대화'의 상징이다. 이 버전은 대담한 도전을 감행했다. 쏨땀의 정체성이었던 강렬한 발효 향, 즉 '쁠라라'를 과감히 제거했다. 대신 볶은 땅콩과 말린 새우를 넣어 고소함과 감칠맛을 더했다. 맛은 밝고 깨끗해졌으며, 매운맛, 신맛, 단맛, 짠맛의 균형에 집중했다. 쁠라라의 강한 향에 익숙지 않던 방콕 시민들과 외국인들은 이 '세련된 샐러드'에 열광했다. 이는 쏨땀이 '지방 음식'이라는 인식을 벗고 '태국 요리'의 대표 주자로 발돋움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소금에 절인 오리알 노른자를 넣어 크리미한 풍미를 더한 '쏨땀 카이 켐(Som Tum Kai Kem)'이나, 파파야 대신 옥수수를 넣은 '땀 카오 포드(Tum Khao Pod)' 등이 등장하며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3. 진화 : 경계 없는 캔버스 오늘날 쏨땀은 '태국의 김치'라는 별명에 걸맞게 끝없이 진화하고 있다. '땀(Tum)'이라는 '찧는 기법'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되었기 때문이다. 태국 남부에서는 피시 소스 대신 새우 발효 페이스트인 '까삐(Kapi)'를 사용해 더 복합적인 바다 향을 내는 '쏨땀 까삐'를 즐긴다. '땀 마무앙(녹색 망고 샐러드)', '땀 폴라마이(과일 샐러드)'처럼 파파야가 아닌 다른 재료를 찧어 만드는 방식도 보편화되었다. 최근에는 도시의 고급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퓨전 쏨땀'이 트렌드를 이끈다. 가장 주목받는 것은 '땀 살몬(Tum Salmon)'. 신선한 생 연어 큐브가 쏨땀의 매콤새콤한 드레싱과 만난다. 연어의 기름진 질감이 라임과 고추의 폭발적인 향과 충돌하며 고급스럽고 현대적인 맛을 선사한다. 4. 소울푸드가 되다 한때 거칠고 투박한 이싼의 향토 음식이었던 쏨땀. 이것이 태국인의 소울푸드가 된 과정은 '적응'과 '융합'의 역사다. 쏨땀은 '쁠라라'라는 이산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쏨땀 타이'라는 세련된 얼굴로 수도 방콕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이제는 '땀 살몬'처럼 국경을 넘어선 재료까지 끌어안는 '현대의 캔버스'가 되었다. 논밭에서 태어난 강렬한 한 그릇(쏨땀 쁠라라)부터 도시의 세련된 레스토랑의 호화로운 한 접시(땀 살몬)까지, 쏨땀은 태국 사회의 모든 스펙트럼을 아우른다. 태국인들이 쏨땀에서 단순한 맛 이상의 '조화의 정신'을 발견하는 이유다. [SPECIAL SECTION] ★★★★★ 5분 완성! 나만의 '쏨땀 타이' 만들기 기사를 읽고 참을 수 없이 쏨땀이 당긴다면, 지금 당장 주방으로 향하자. 태국 현지의 'Zaap Nua(쎕 누어)'를 재현하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가장 대중적이고 접근하기 쉬운 '쏨땀 타이' 레시피를 공개한다. 1. 재료 준비 (1인분 기준) ✽ 핵심 재료 : 채 썬 그린 파파야 (150g, 약 두 줌), 방울토마토 (3-4개, 반으로 자르기), 롱빈 (1줄기, 4-5cm 길이로 자르기) ✽ 향신료 : 통마늘 (1-2쪽), 태국 고추(프릭 키누) (1-3개, 매운맛 조절) ✽ 소스 : 피시 소스 (1.5 큰술), 라임즙 (1.5 큰술), 야자 설탕 (1 큰술, 혹은 황설탕 대체) ✽ 기타 : 볶은 땅콩 (1 큰술), 건새우 (1 작은술) 2. '땀(TUM)'의 기술: 찧고 섞기 가장 중요한 것은 태국식 절구 '크록(Krok)'과 방망이 '싹(Saak)'이다. 없다면 단단한 믹싱 볼과 튼튼한 방망이로 대체할 수 있다. ➊단계 : 향 폭발시키기 (향신료 찧기) 절구에 마늘과 태국 고추를 넣고 쿵쿵 찧어 향을 낸다. 너무 곱게 갈지 않고 거칠게 으깨는 것이 포인트. ➋단계 : 드레싱 만들기 (소스 융합) 1에 야자 설탕을 넣고 찧어 녹인다. 그다음 피시 소스와 라임즙, 건새우를 넣고 가볍게 섞어 소스를 완성한다. ➌단계 : 재료 으깨기 (식감 살리기) 소스에 롱빈과 반으로 자른 방울토마토, 볶은 땅콩 절반을 넣는다. 재료가 으스러지지 않고 멍이 들어 소스가 배어들도록 절굿공이로 3~4회 가볍게 찧어준다. ➍단계 : 버무리기 (쏨땀의 완성) 마지막으로 채 썬 그린 파파야를 넣는다. 이제부터는 찧는 것(Tum)과 섞는 것(Som)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프로의 기술 : 왼손으로는 큰 숟가락을 들고 파파야를 아래에서 위로 뒤집어주고, 오른손으로는 절굿공이로 파파야를 가볍게 쿵쿵 두드려준다. 이 과정을 1분 정도 반복하면 파파야가 소스를 머금으면서도 아삭함을 잃지 않는다. ➎단계 : 완성 및 서빙 그릇에 쏨땀을 옮겨 담고, 남겨둔 볶은 땅콩을 위에 뿌려내면 완성이다. 찰밥(카우니여우)이나 구운 닭고기(까이양)와 곁들이면 완벽한 이싼 스타일 한 끼가 된다. 셰프의 팁 (Chef's Tips) ✽ 황금 밸런스 : 쏨땀의 생명은 '단짠새콤'의 균형이다. 마지막에 꼭 소스 맛을 보고, 부족한 맛(짠맛=피시 소스, 신맛=라임, 단맛=설탕)을 보충한다. ✽ 매운맛 조절 : 태국 고추(프릭 키누) 1개는 신라면 정도, 2~3개는 불닭볶음면 수준이다. 자신 없다면 1개로 시작하자. ✽ 파파야의 신선도 : 그린 파파야는 단단하고 아삭해야 한다. 채 썬 파파야를 얼음물에 5분 정도 담갔다 사용하면 더욱 아삭한 식감을 즐길 수 있다.

침수된 희생, 수도를 위한 방패막이

2025/11/17 11:16:15

침수된 희생, 수도를 위한 방패막이 4개월째 물에 잠긴 아유타야의 절규, “우리는 언제까지 희생해야 하는가” “이제 더 이상 물건을 옮길 데도 없어요. 지붕을 타고 올라가 2층 발코니로 겨우 드나듭니다.” 방반 지역 주민 남 캉(58) 씨의 목소리에는 깊은 절망이 배어있다. 그녀는 2011년 대홍수 때보다 지금이 더 끔찍하다고 말한다. 2011년에는 물이 더 넓게 찼지만 빨리 빠졌고, 올해는 홍수가 “더 오래 지속되고, 반복적으로 밀려오며, 매번 수위가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방콕에서 북쪽으로 불과 한 시간 거리인 아유타야. 이곳의 저지대인 방반(Bang Ban)과 쎄나(Sena) 지구는 2017년부터 태국 정부의 홍수 관리 전략에 따라 ‘물 보관 구역(Water-retention zone)’으로 지정됐다. 6개월간의 우기 동안 상류에서 밀려드는 막대한 양의 물을 이곳에 가둬두어, 하류의 경제 중심지인 수도 방콕의 침수를 막는 ‘방패’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희생’은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주민들은 매년 홍수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방반 지역의 마을 이장 사왓 산야위리 씨는 “과거에는 홍수 수위가 2미터를 넘지 않았고, 기간도 두어 달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홍수 수위가 몇 미터씩 차올라 2층집까지 잠기고, 이 악몽이 매년 최소 3개월간 지속됩니다. 당국의 물 관리 전략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싸왓 씨 역시 물에 잠긴 집을 떠나지 못했다. 그는 천장에 거의 닿을 듯한 높은 단상에서 잠을 자고, 집을 나설 때면 창문을 통해 배를 저어 나온다. 8월부터 짜오프라야강과 너이강이 범람하면서, 막대한 양의 물이 방반과 인근 지역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어떤 이들은 고지대로 대피했지만, 많은 주민들은 반쯤 잠긴 집에서 임시 단상을 만들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77세의 주민 싸웽 잔피탁 씨는 “수년간 홍수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이 연례행사에 지칠대로 지쳤다”며 “이 문제가 매년 우리를 덮치는데, 당국은 왜 해결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녀의 가족은 홍수로 인해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웃 쎄나 지구의 74세 여성은 집이 두 달 넘게 물에 잠겨 발에 곰팡이 감염까지 생겼다. “거의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해 속상합니다. 구호품조차 어떤 집은 더 많이 받고, 어떤 집은 덜 받는 등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아요.” 정부가 제공하는 보상금은 가구당 9,000바트(약 33만 원), 침수된 농지는 라이(1,600㎡)당 1,000바트(최대 1만 바트)에 불과하다. 싸왓 이장은 “홍수로 고립된 동안 생계를 유지할 수도 없고, 물이 빠진 뒤에는 집을 수리하는 데 시간과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이 정도 보상금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분노로 바뀐 체념, “홍수 게이트를 열어라” 도로 막고 시위 나선 주민들... “전문가들, 근본적인 전략 수정 없이는 방콕도 위험” 수개월간 이어진 고통과 당국의 미흡한 대처에 주민들의 인내는 한계에 달했다. 체념은 분노로 바뀌어 거리로 터져 나왔다. 11월 7일, 쎄나, 방반, 팍하이 지역 주민 300여 명은 아유타야-쎄나 도로를 점거했다. 3개월 넘게 이어진 침수와 계속 상승하는 수위(당시 차오프라야 댐 방류량 초당 2,700톤)에 “더는 못 참겠다”며 정부의 즉각적인 조치를 요구했다. 이들은 쌈코와 차오젯 수문을 열어 물을 다른 곳으로 배수시킬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틀 뒤인 11월 9일, 방반 지역 주민들은 309번 고속도로(아유타야-앙통) 4개 차선을 모두 막아섰다. 이들 지역은 3~4미터 깊이의 물에 4개월째 잠겨 있었다. 시위대의 요구는 하나였다. “방꿍 운하 수문을 즉각 1미터 이상 열어 고인 물을 빼달라.” 이들의 절박한 시위는 일부 성과를 거뒀다. 7일 현장을 찾은 파라돈 총리실 장관은 주민들과 협상 끝에 수문 개방을 지시했고, 9일 왕립관개국(RID)은 10일간의 시범 운영을 전제로 수문 개방에 동의했다. 하지만 이는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땜질식 처방과 구조적 결함 왕립관개국(RID) 측은 “수도 보호를 위해 물 보관 구역은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현재 95% 공정이 진행된 방반-방싸이 배수 운하가 완공되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주민 싸왓 씨는 “하류 지역의 수용 능력이 확대되지 않으면 물은 어차피 병목 현상에 부딪힐 것”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물 관리 시스템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지적한다. 수코타이 탐마티랏 개방대학의 아르팃 통인 조교수는 “도로가 종종 방조제 역할을 하면서 물의 흐름이 고르게 분산되지 않아, 어떤 곳은 완전히 잠기고 어떤 곳은 마른 상태로 남는 ‘불공평한 침수’가 발생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한 “정부가 주택 피해만 보상할 뿐, 홍수 기간 동안의 소득 손실이나 교육 중단 피해는 외면하고 있다”며 공정한 보상을 촉구했다. 랑싯 대학 기후변화재난센터 소장인 세리 수프라티드 부교수는 “태국의 홍수 관리 전략을 전면 개편하지 않는 한 아유타야의 위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정부가 “나콘사완(차오프라야강이 시작되는 지점)에 도달하기 전, 더 북쪽에 영구적인 물 보관 구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위해 토지 수용과 주민 이주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경고는 현실로, 방콕도 안전하지 않다 아유타야 주민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위협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11월 11일, 짜오프라야 댐은 방류량을 초당 2,900톤까지 늘렸다. 태국 지리정보우주기술개발원(GISTDA)은 댐 방류량 증가로 인해 파툼타니, 논타부리, 그리고 방콕의 일부 지역까지 홍수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공식 홍수 방어벽 외부에 거주하는 강변 지역 사회의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물난리 속에서 아유타야 주민들은 4개월째 지붕 위에, 혹은 탁자 위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수도 방콕의 안녕을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해 온 이들의 삶은 정부의 무관심과 미봉책 속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들의 절박한 외침, “왜 아무도 이 문제를 고치지 않는가?”라는 질문은 흙탕물 속에 공허하게 가라앉고 있다.

생명의 낱알, 문화의 뿌리 태국 쌀 이야기

2025/11/03 18:11:48

생명의 낱알, 문화의 뿌리 태국 쌀 이야기 태국 요리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향긋한 카레나 매콤한 볶음 요리 옆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재스민 라이스일 것이다. 하지만 태국의 쌀 문화는 단순히 하나의 낱알, 그 이상이다. 전국적으로 12가지가 넘는 고유한 품종이 재배되며, 각각 독특한 향과 식감, 그리고 역사를 지니고 있다. 태국에서 쌀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세대를 거쳐 전승되는 고귀한 유산이다. 문명을 싹틔운 낱알: 쌀의 기원을 둘러싼 논쟁 쌀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쌀(Oryza sativa)의 기원에 대한 논의는 현재도 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 중 하나다. 오랫동안 학계의 정설은 '중국 양쯔강 유역 기원설'이었다. 약 1만 년 전, 이 지역에서 야생 벼가 인류의 손을 거쳐 재배 벼로 진화(Domestication)하며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벼의 순화 과정과 초기 농경 사회의 증거가 함께 발견되어, 쌀 문명의 유력한 발상지로 널리 인정받아왔다. 하지만 이 정설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하는 증거가 한반도에서 발견됐다. 충북 청원 소로리 유적에서 발견된 볍씨는 그 연대가 무려 1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현존하는 쌀 유적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공인된 발견이다. 소로리 볍씨의 등장은 '양쯔강 단일 기원설'을 흔들며, 쌀의 기원이 특정한 곳이 아닌 동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을 수 있다는 '다기원설'에 힘을 싣고 있다. 다만 학계에서는 이것이 현대 쌀의 직계 조상인지, 혹은 당시 인류가 '재배'한 것인지 '야생 벼'를 채집한 것인지에 대한 활발한 연구와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인류 문명의 여명기와 함께한 쌀은 교역로를 따라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태국 땅에 쌀이 뿌리내린 것도 수천 년 전의 일로, 북동부 반치앙(Ban Chiang) 유적지에서는 기원전 2000년경의 쌀겨가 발견되기도 했다. 태국에서 쌀은 단순한 식량을 넘어 국가의 근간이었다. 짜오프라야강의 비옥한 삼각주를 기반으로 한 수코타이, 아유타야 왕조는 모두 체계적인 쌀 농업을 통해 번영을 이룩했다. 쌀은 경제의 중심이었고, 왕국의 힘을 상징했다. 쌀 재배 기술의 발달은 태국 고유의 공동체 문화와 계절에 따른 의례를 탄생시킨 문명의 뿌리다. 세계의 식탁을 사로잡은 향기: 재스민 라이스 (Hom Mali) 수많은 쌀 품종 중에서도 태국을 대표하는 쌀은 단연 '홈 말리 105(ข้าวหอมมะลิ 105)', 즉 태국 재스민 라이스다. 이름과 달리 실제로는 열대 식물인 판단(Pandan) 잎과 같은 은은하고 구수한 향이 특징이다. 주로 태국 북동부 지방에서 재배되는 재스민 라이스는 그 향이 매혹적이어서 태국인들은 종종 '해 질 녘 피어나는 꽃의 향기'에 비유한다. 잘 지어진 홈 말리 쌀은 부드러우면서도 살짝 찰기가 돌아, 그린 커리부터 매콤한 바질 볶음(팟 카파오)에 이르기까지 어떤 태국 요리와도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쌀의 '샴페인', 퉁 꿀라 렁하이 재스민 라이스 중에서도 최고의 품질로 숭배받는 것은 '퉁 꿀라 렁하이(ข้าวหอมมะลิทุ่งกุลาร้องไห้) 홈 말리'다. 이는 태국 북동부의 건조하지만 미네랄이 풍부한 특정 평야 지대에서 생산되는 쌀이다. '퉁 꿀라 렁하이'라는 이름 자체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담겨 있다. '울부짖는 꿀라(Kula) 족의 평야'라는 뜻이다. 전설에 따르면, 과거 이 지역을 지나던 꿀라족 상인들이 끝없이 펼쳐진 건조하고 척박한 땅에 절망하여 눈물을 흘렸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척박한 토양과 극심한 건기가 쌀의 품질을 결정짓는다. 건조한 기후와 염분이 살짝 섞인 토양은 벼에 스트레스를 주어, 벼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더 많은 향기 분자를 생성하게 만든다. 그 결과, ‘퉁 꿀라 렁하이’ 쌀은 독보적인 백색 광택과 오래 지속되는 강한 향을 지니게 되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쌀은 엄격한 지리적 표시제(GI)의 보호를 받으며, '태국 쌀의 샴페인'이라는 명성을 누리고 있다. 삶의 의식이자 공동체의 상징 : 찹쌀 (카오 니여우) 과 쌀의 문화 재스민 라이스가 태국의 공식적인 '얼굴'이라면, 태국인의 일상과 영혼에 더 깊숙이 자리한 것은 바로 '찹쌀(카오 니여우, ข้าวเหนียว)'이다. 특히 태국 북부와 북동부(이산) 지역에서 찹쌀은 매일의 삶을 지탱하는 심장과도 같다. 사진 : 북부와 이산의 찹쌀 전통 북부 치앙라이(Chiang Rai)에서 재배되는 '카우 니여우 키여우 구(ข้าวเหนียวเขี้ยวงู)', 즉 '뱀 송곳니 찹쌀'은 낱알이 뱀의 이빨처럼 가늘고 길며 유백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부드러우면서도 질척거리지 않는 식감과 은은한 단맛을 자랑하며, 구운 닭고기(까이 양), 북부식 소시지(싸이 우아)와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 망고 철이 되면 '망고 찹쌀밥(카오 니여우 마무앙)'의 주재료로도 사랑받는다. 한편, 북동부 이싼 지역 깔라신(Kalasin) 주의 '카우 니여우 카오웡(ข้าวเหนียวเขาวง)'은 이싼 사람들의 삶 그 자체다. 이곳의 찹쌀은 식어도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을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싼 사람들은 이 찹쌀을 손으로 작게 뭉쳐, 매콤한 파파야 샐러드(쏨땀)나 다진 고기 샐러드(랍)를 찍어 먹는다. 이곳에서 찹쌀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선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함께 모여 '끄라팁(Kratip)'이라 불리는 대나무 밥통에서 찹쌀밥을 나누어 먹는 행위는 공동체 의식과 유대감을 상징하는 일상의 중요한 의식이다. 사진 : 쌀의 여신, 매포솝 (Mae Phosop) 태국인들에게 쌀은 단순한 곡물이 아니라 생명을 주는 영혼 그 자체로 여겨진다. 태국 문화에는 쌀의 여신인 '매포솝(แม่โพสพ)'에 대한 깊은 신앙이 깔려 있다. 농부들은 모내기철부터 수확기까지 벼의 성장 단계마다 '매포솝'에게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하는 의식을 올린다. 벼가 이삭을 밸 시기가 되면 여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수확 후에는 쌀을 창고에 들이기 전에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밥을 먹을 때 쌀 한 톨이라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태국인의 습관은 바로 이 쌀의 여신에 대한 존경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태국의 쌀은 수천 년의 역사, 각기 다른 땅의 이야기, 그리고 사람들의 땀과 믿음이 응축된 살아있는 유산이다. 세계적인 명성의 홈 말리 라이스부터 이산 지역의 소박한 찹쌀 한 줌에 이르기까지, 모든 낱알에는 태국의 진정한 맛과 정신이 담겨 있다.

러이끄라통, 물의 여신에게 띄우는 기억과 속죄

2025/11/03 13:42:05

러이끄라통, 물의 여신에게 띄우는 기억과 속죄 ◉ 2025년 방콕은‘조용한 축제’기조 … 33개 공원 자정까지 개방 폼 금지 디지털 참여 병행 기원과 신화 러이끄라통(ลอยกระทง)은 태음력 12월 보름, 촛불·향·꽃으로 장식한 작은 배(끄라통)를 물에 띄워 물의 여신 프라 메 콩카(힌두의 강가 여신의 태국식 호칭)에게 감사와 사죄를 바치는 의식에서 출발한다. 지역 신앙과 불교의 등공양 전통이 뒤섞여 형성된 태국식 종교 혼합(syncretism)의 대표 사례로, 물에 띄워 보내는 행위는 원한·번뇌를 흘려보내는 상징적 정화로 해석된다. 일부 지역에서 손톱 머리카락을 잘라 올리는 풍습도 같은 맥락이다. 잘 알려진‘낭 놉파맛(Nang Noppamas)’전승—수코타이 왕의 총희가 연등을 본뜬 연꽃 모양 끄라통을 만들어 임금이 강에 띄웠다는 이야기—은 태국 고전문헌에 실린 후대 문학적 창작으로 보는 학설이 주류다. 축제의 실제 형성은 불교 의례와 물의례가 장기간에 걸쳐 융합된 결과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는다. 상징과 풍습 러이끄라통 밤에 사람들은 동전 꽃 촛불을 올린 끄라통을 강·운하·연못에 띄우며 소망을 빈다. 촛불은 부처에 대한 공경, 물에 띄움은 과오와 악운의 해소를 뜻한다. 끄라통은 전통적으로 바나나 줄기·잎으로 만들며, 현대에는 빵·종이 등도 쓰이지만 스티로폼은 환경오염 문제로 각 지방정부가 점차 금지하고 있다. ‘조용한 축제’ 기조와 방콕 지침(요약) 올해 러이끄라통은 10월 24일 서거한 시리킷 왕대비 국상 기조 속에서 열린다. 정부는 국기 조기 30일, 공무원 1년 상복, 일반 국민에게는 90일간 차분한 복장 권고 등을 안내했다. 대형 행사는 금지가 아니라 톤다운을 권장하며, 대표적으로 왓 사켓‘골든마운트 페어’는 오락 공연을 전면 취소하고 종교 의례만 진행한다. 관광 일상은 유지하되 과도한 축제 유흥은 자제한다는 방침이다. 방콕시는 11월 5일(수) 21개 구 33개 공원을 자정까지 연장 개방한다. 스티로폼 끄라통 금지, 폐쇄형 연못 수질 보호를 위한 빵 끄라통 지양, 스카이랜턴·폭죽·주류 판매 금지, 그리고‘한 가족 한 끄라통’을 권장한다. 현장 방문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온라인 러이끄라통(greener.bangkok.go.th) 참여도 운영한다. 환경성과와 디지털 전환 2024년 방콕에서는 끄라통 51만 4,590개가 수거됐고, 이 중 98.39%가 자연 소재, 1.61%만 스티로폼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총량은 약 19.6% 감소했다. 방콕시는 오프라인 혼잡 폐기물 부담을 낮추기 위해 디지털·온라인 끄라통을 병행 운영해 참여 경험을 확장하고 있다. 동남아의 ‘물의 축제’들과 비교 러이끄라통은 미안마의 타자웅다잉, 캄보디아의 본 옴뚝(물축제) 등 우기 종식 수자원에 대한 감사를 주제로 한 역내 축제들과도 연결된다. 다만 방콕 등 대도시에서는 하천 연못의 폐기물 수질 문제가 두드러지며, 이에 대한 정책 대응(폼 금지 디지털 참여)이 태국형 지속가능 축제 모델로 자리 잡아 가는 중이다. 메인 개최지 * 빠툼완 : 룸피니 공원 * 짜뚜짝 : 짜뚜짝 공원, 왓치라벤차타스(롯파이) 공원 * 프라나콘 : 산티짜이쁘라깐, 사란롬, 롬마니낫 공원 * 클롱떠이 : 벤짜시리, 벤짜키티 공원 * 방플랏 : 라마 8세 공원 * 랏차테위 : 산티팝 공원 * 방켄 : 라민뜨라 스포츠파크 * 붕컴 : 세리타이, 나와민 피롬 공원 * 돈므앙 : 롬마니 퉁시깐 공원 * 랏프라오 : 붕 남랏프라오 71 공원 * 퉁크루 : 톤부리롬 공원 *타위와타나 : 타위와나롬, 프라녹–붓타몬톤 싸이 4 교차 공원 * 쁘라웻 : 와나탐, 라마 9세 즉위 50주년 공원 * 방콕노이 : 시린다라판, 국왕 80세 탄신 기념 공원 * 클롱삼와 : 와리 피롬, 시리 피롬 공원 * 농쪽 : 농쪽, 랏 피롬 공원 * 랏끄라방 : 수안 프라나콘, 왕비 60세 탄신 공원 * 민부리 : 붕끄라티암, 프라야 피롬 공원 * 방깨 : 방깨 피롬 공원 * 방쿤티엔 : 띠안탈레 팟타나 푸깟사 피롬 공원 ★ 전 공원은 정규 개방시간~자정(24:00) 운영. 안전요원 배치·쓰레기 분리수거 동시 진행.

매운맛의 탄생 : 태국 양념 특히 ‘고추’ 가 바꿔놓은 400년의 미각 혁명

2025/10/21 11:01:22

매운맛의 탄생 : 태국 양념 특히 ‘고추’ 가 바꿔놓은 400년의 미각 혁명 1. 콜럼버스가 불붙인 태국의 맛 태국 음식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스치는 것은 대담하고도 화끈한 매운맛이다. 하지만 이 매운맛은“원래부터”가 아니었다. 고추는 멕시코 원산으로, 대항해 시대 이후 포르투갈·스페인 상인들을 따라 아시아 전역으로 퍼졌고, 태국(당시 시암)에는 16세기(아유타야 왕국 시기)에 본격 전해졌다. 이후 수백 년 동안 태국의 식탁은 고추를 중심으로 새롭게 조직되며 오늘의 ‘태국의 맛’을 완성해 간다. “고추는 아시아 토종이 아니다. 그러나 한 번 들어오자 기후·토양·요리 전통과 만나 폭발적으로 토착화됐다.” 타임라인 : 태국 매운맛의 계보 ★16세기 포르투갈 상인들 통해 고추 유입(아메리카 원산). 아유타야 항만도시를 중심으로 파급된다. ★17세기 말(1687–1690) 프랑스 외교관 라 루베르가 시암 식탁을 기록한 내용을 보면, 까피(새우페이스트, kapi) 등 발효양념의 위상을 증언하고 있다. ★19–20세기 각 지역‘남프릭(nam phrik)’문화가 보다 정교화되면서, 식탁의 중심 반찬과 디핑소스로 자리매김했다. ★ 1930년대 촌부리 씨라차에서 타놈 짝카팍 여사가 만든 ‘씨라차 파닛’—오늘날 세계적 씨라차 소스의 원형이 된다. 2. 고추 이전의 태국 : 소금 발효 후추로 내던 맛의 토대 고추가 태국에 당도하기 전, 태국의 맛을 지탱한 것은 소금과 발효, 허브 그리고 후추였다. 염장과 발효로 감칠맛을 만든 남쁠라(생선소스), 빨라(발효 민물생선소스), 까피(새우젓), 그리고 레몬그라스와 갈랑갈, 마끌룻, 라임 같은 허브들이 요리의 중심을 이루었다. 프랑스 사절단 기록은 당시 시암의 소스가 “물과 향신초, 마늘, 허브”에 바탕하고, 새우 발효품(까피)을 각별히 중시했다고 전한다. ◆ 남쁠라 : 오늘도 국수·볶음·탕에 빠지지 않는 기본 양념이다. 식탁에서는 프릭 남쁠라(고추+남쁠라+라임)로 즉석에서 간 조절을 한다. ◆ 까피(새우젓) : 태국 전역의 커리 페이스트와 남프릭의 핵심. 태국 남부 기원설과 각 지역별 질감의 차이 등(태국·미얀마는 비교적 페이스트형)도 흥미롭다. ◆ 후추와 페퍼콘 : 고추 이전 태국의‘매운기’를 담당했다. 이후 고추가 들어오면서 후추는 향의 층위를 더하는 조연으로 재배치되었다. 사이드바 | 식탁의‘4S’균형 태국 맛의 철학은 매운맛(Spicy) 짠맛(Salty) 신맛(Sour) 단맛(Sweet)의 균형이다. 고추의 태국 유입은 네 축 가운데 Spicy를 강력히 확장해 다른 축들의 미세 조율(남쁠라의 짠맛, 타마린드의 신맛, 팜슈거의 단맛)을 가능하게 하는데 크게 공여했다. 3. 남프릭의 우주: 지역이 빚은 ‘태국식 매운맛의 사전’ 남프릭(Nam phrik)은 신선한 생고추와 구운고추 또는 말린 고추를 빻아 각종 향신료, 발효양념과 섞어 만든 ‘소스 겸 반찬’의 총칭이다. 북부의 남프릭 엉(토마토·다진 고기), 남프릭 눔(풋고추·허브), 중부의 남프릭 까피(새우젓), 남부의 남프릭 꿍씨얍(훈연 건새우)처럼 지역에 따라 풍미가 크게 달라진다. ◆ 프릭 남쁠라(พริกน้ำปลา) : 태국 식당 테이블의‘소금&후추’같은 존재. 생선소스+라임+다진‘프릭 키 누’(쥐똥고추 : 새끼쥐 똥처럼 작다 해서 붙은 이름)의 단순한 조합이지만, 한 숟가락이면 요리가 살아난다. ◆ 남찜 쩨우(แจ่ว, Jaew/Jaew): 이산(태국 동북부) 출신의 대표 육류 디핑 소스. 볶은 쌀가루(카오 쿠아)와 말린 고추의 훈연향이 특징이다. 구이와 랍(태국식 샐러드)요리와 찰떡궁합. ◆ 남프릭 파오(น้ำพริกเผา) :‘칠리 잼’이라 불리는 구운 칠리 페이스트. 똠얌의 숨은 결정타이자 볶음·드레싱·빵 스프레드까지 응용력이 무궁무진하다. 미니 용어집 ◆ 프릭 키 누(พริกขี้หนู) : 버드아이 칠리. 이름은 말 그대로 ‘쥐 똥처럼 작은 고추’라는 뜻. 스코빌 5만~10만 SHU. ◆ 까피(กะปิ) : 새우·크릴을 소금과 발효해 만든 페이스트형 양념. 커리·남프릭의 감칠맛 엔진. ◆ 프릭 남쁠라 비율(가정용) : 남쁠라 2, 라임즙 1, 다진 고추·마늘 적당. 식탁에서 즉석으로 음식에 뿌려 간과 향을 맞춘다. 4. 씨라차의 신화와 태국식 ‘매운맛의 디자인’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태국계 양념 중 하나 스리라차(Sriracha) 소스. 1930년대 촌부리 씨라차의 타놈 짝카팍 여사가 집에서 만들던 레시피를 ‘스리라차 파닛’이라는 브랜드로 상업화했고, 1984년 태국 테파로스(Thai Theparos)가 인수하며 국내외 유통을 확대했다. 전통 태국식 스리라차는 미국의 ‘루스터’ 스타일보다 더 묽고 산미가 강한 것이 특징이다.(교민잡지 700호 참조) 또 하나의 ‘태국식 디자인’은 컨디먼트 세트(ชุดเครื่องปรุง)—프릭 남쁠라, 식초절임 고추, 설탕, 건고추·고춧가루 네 알을 기본으로, 손님이 자신의 매운맛을 실시간 커스터마이즈하도록 설계된 상호작용형 양념 문화다. 이 작은 세트가 태국 음식의 개인화된 균형을 완성한다. 태국 중부지방에서는 이를 크르엉쁘룽이라 부른다. 지역 미각 지도 : 남부는 더 화끈, 북부는 향 깊게 ◆ 남부 : 말레이·인도양 항로의 영향으로 강황·후추·가피와 고추가 만나 진하고 맵게. ◆ 중부 : 남프릭 가피·프릭 남쁠라 중심의 테이블 조절 문화가 발달. ◆ 북부/이산 : 불향·볶은 쌀가루·허브를 중시, 말린 고추의 연기향과 산미로 ‘지속형 매운맛’을 설계. (남찜 쩨우·라브) 마무리 |‘매운맛’은 기술이다 태국의 매운맛은 단순히 강도의 문제가 아니다. 고추가 들어오며 ‘짠·신·단·매’(짜고 시고 달고 매운)의 기하학이 정밀해졌고, 발효와 허브가 층위를 짜 올리며 개인화된 조절(컨디먼트 세트)이 더해졌다. 한 숟갈의 프릭 남쁠라, 한 접시의 남프릭이 말해주는 것은 결국 살아있는 전통—수입된 재료를 자기 방식으로 길들이고, 지역과 시대에 맞게 재설계해온 태국의 미각 공학이다. 당신의 다음 태국 음식 도전에서는, 똠얌 한 숟갈을 뜰 때, 그 열기 속에 담긴 400년의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참고문헌과 출처 ★ 태국 고추 유입·역사 일반: Thai Enquirer(2023), Bangkok Post(2019), 음식사 교양 기사. thaienquirer.com ★ 남프릭 개관 및 지역 변이: Wikipedia Nam phrik 항목(개요·분류). 위키백과 ★ 프릭 남쁠라·테이블 컨디먼트: Wikipedia Fish sauce 내 설명, Hot Thai Kitchen 레시피 노트. 위키백과+1 ★ 까피(새우젓)·발효 양념: Wikipedia Shrimp paste, Eater 설명(지역별 질감 차). 위키백과+1 ★ 프릭 키 누(버드아이) 명칭·스코빌: Wikipedia Bird’s eye chili. 위키백과 ★ 스리라차 원형: Bon Appatit(2013). ★ 교민잡지 700호 : 씨라차소스(kyominthai.com)

태국의 잃어버린 10년 생활비 위기가 드러낸 구조적 침체

2025/10/21 10:45:48

태국의 잃어버린 10년 생활비 위기가 드러낸 구조적 침체 밥 한 끼 가격이 말해주는 경제 실패 방콕 실롬 거리의 평범한 쌀밥 한 끼. 2012년에 31바트였던 이 식사는 2025년 현재 64바트가 되었다. 106.5%나 올랐다. 같은 기간 태국의 최저 임금은 300바트에서 400바트로 33.3% 오르는 데 그쳤다. 이 극명한 격차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태국 경제가 13년간 걸어온 '잃어버린 10년'의 가장 눈에 보이는 증거다. 태국 부동산 감정평가 연구센터의 최근 보고서가 보여주는 이 현실은, 생활비와 국민이 살 수 있는 능력 사이의 간극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벌어졌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물가 상승 그 자체가 아니다. 오르지 않는 임금, 계속 오르는 생산 비용, 그리고 위험 수준에 도달한 빚이 만들어낸 악순환이 핵심이다. 위기의 쌍둥이 엔진 : 치솟는 물가와 얼어붙은 임금 생산 비용 상승의 연쇄 효과 태국의 물가 상승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사서 생긴 게 아니다. 경제 성장이 부진한 상황을 보면, 이는 명백히 만드는 비용이 올라서 생긴 일이다. 기업들은 물건이 잘 팔려서가 아니라, 운영하는 데 드는 돈이 많아져서 가격을 올리고 있다. 음식 가격이 급등한 이면에는 여러 이유가 겹쳐있다. 방콕 주요 상업 지구의 작은 식당들은 18제곱미터(약 5평) 공간에 월 6만 바트의 임대료를 낸다. 이는 음식 최종 가격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여기에 코로나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농업 원재료 가격이 치솟았다. 태국이 수입 동물 사료와 비료에 의존한다는 사실은 이런 세계적 충격이 국내 생산 비용으로 바로 전달됨을 의미한다. 에너지 가격은 모든 가격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는 경제 중 하나다. 2023년 초 전기 요금 인상은 식품 제조 총비용을 2.5~5%까지 올렸다. 트럭 운송에 크게 의존하는 물류 구조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경유 가격의 충격을 공급망 전체로 퍼뜨렸다. 보상받지 못하는 노동 비용이 폭등하는 동안 집안 살림 수입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끄룽스리 리서치 분석에 따르면, 2015~2023년 전체 경제의 평균 실질 임금(물가를 감안한 실제 임금)은 연 0.6%로 아주 적게 올랐다. 팬데믹 이후에는 오름세가 거의 멈췄다. 태국의 낮은 공식 실업률(1% 내외)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론적으로 일자리를 찾는 사람이 적으면 임금이 올라야 한다. 하지만 태국의 현실은 정반대다. 국제결제은행 분석에 따르면, 태국 직원의 약 75%가 건설, 운전, 청소 등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직종에 종사하며, 이 비율은 10년 넘게 변하지 않았다. 노동자는 쉽게 대체 가능하고,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할 힘이 제한적이다. 노동력의 절반 이상이 비공식 경제(세금 내지 않고 일하는 영역)에 속한다는 점도 핵심이다. 경제가 나빠질 때 정규직에서 잘린 노동자들은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는다. 대신 더 낮고 불안정한 소득의 비공식 일자리에 흡수된다. 이 구조가 공식 실업률 상승을 막지만, 노동 시장이 진정으로 팽팽해지는 것도 막는다. 노동조합 가입률과 단체 협상 적용률이 극도로 낮고, 물가 상승에 따라 자동으로 임금을 올려주는 조항은 거의 없다. 노동자들은 생산성이 증가해도 더 많은 몫을 받을 수 없다. 그로인한 결과는 커지는 생산성-임금 격차다. 팬데믹 이전(2015~2019년) 노동 생산성(노동자 한 명이 만드는 가치)은 연평균 4.2% 올랐지만, 평균 실질 임금은 단 1% 올랐다. 효율성이 높아져서 생긴 이익이 더 높은 임금이 아닌 기업 수익으로 들어가고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팬데믹 이후 생산성 자체가 연평균 -1.6%로 떨어졌다는 점이다. 경제는 함정에 빠졌다. 생산성을 임금으로 보상하지 못하고, 이제는 생산성조차 올라가지 않는다. 악순환: 빚, 낮은 성장, 중진국 함정 위험 수준에 도달한 집안 빚 태국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집안 빚 비율은 모든 신흥 시장 경제 중 최고 수준이다. 2021년 1분기 GDP의 95.5%로 최고점을 찍은 후, 최근 분기에도 88~90%의 높은 수준을 계속 유지한다. 이는 금융 시스템 전체가 위험하다는 명백한 신호다. 빚이 늘어난 주요 이유는 오르지 않는 소득과 올라가는 생활비 사이의 불균형이다. 살 수 있는 능력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생활을 유지하고 꼭 필요한 비용을 내기 위해 대출에 의존해 왔다. 문제는 이 빚의 상당 부분이 '앞으로 돈을 벌어주지 않는' 빚이라는 점이다. 미래에 소득을 만드는 교육이나 사업이 아닌, 지금 당장 쓰기 위한 고금리 개인 대출과 신용카드 빚이 대부분이다. 중앙은행 분석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의 경우 이런 빚이 전체 빚의 42%를 차지한다. IMF는 이를 태국 경제의 주요 걸림돌로 계속 지적한다. 인구의 상당수가 월 소득의 절반 이상을 기존 빚 갚는 데 쓰고 있어, 경제 성장에 필요한 소비를 할 가처분 소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진 빚이 이제는 소비를 적극적으로 막고 있다. 실망의 10년 생활비 위기가 고조되는 시기는 태국의 '잃어버린 10년' 경제 성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태국은 2037년까지 고소득 국가 지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는 약 5%의 지속적인 연간 GDP 성장을 요구한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성장은 평균 2%에 가까웠다. 태국은 아세안에서 6번째로 큰 경제로 밀려났고, 베트남 같은 역동적인 국가에 비해 훨씬 느리게 성장한다. 세계은행, IMF, 태국 중앙은행 모두 2025~2026년에 1.6~2.2% 범위의 부진한 성장을 예측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중진국 함정'의 전형적 사례로 진단한다. 태국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한 성장 모델은 잠재력을 다했다. 급속한 고령화, 저부가가치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에 의존하는 구식 제조업, 연구개발과 혁신에 대한 만성적으로 낮은 투자, 그리고 관광 부문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경제를 제약한다. 결과는 파괴적인 되먹임 고리다. 정체된 임금과 상승하는 비용이 가계를 부채로 몰아넣는다. 부채 부담은 가계 구매력을 옥죄어 국내 수요를 마비시킨다. 저성장은 고임금, 고생산성 일자리 창출을 막는다. 경제는 갇혔다. 소비자들이 과거의 빚을 갚고 있기 때문에 성장할 수 없고, 경제가 소득을 올리는 데 필요한 성장을 창출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빚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책의 실패 : 포퓰리즘의 함정 2012년부터 2025년까지 총리가 바뀌면서 그들의 행정부는 정치적 기원이 달랐지만, 경제 접근 방식은 놀라운 연속성을 보인다. 모두 단기적이고 소비 중심적인 부양책에 의존했다. 구조적 질병을 방치한 채 증상만 치료하는 반응적 정책이었다. 잉락 친나왓 정부(2012~2014년)의 쌀 수매 제도는 시장가 이상으로 쌀을 구매하여 농촌 소득을 증대시키려 했다. 결과는 5천억 바트 이상의 재정 손실, 시장 왜곡, 만연한 부패였다. 생산성 향상 없이 일시적 소득 이전만 제공했다. 쁘라윳 짠오차 정부(2014~2023년)는 에너지 보조금, 가격 통제, '콘 라 크릉' 공동 지불 프로그램으로 대응했다. 이러한 조치는 단기적 구제를 제공했지만, 광범위하고 비표적화되어 고소득층에 혜택이 흘러 들어갔다. 재정 비용은 상당했고, 인플레이션이나 임금 정체의 근본 원인은 해결하지 못했다. 쎄타 타위씬 정부(2023~2024년)의 1만 바트 디지털 지갑 제도는 '경제 폭풍'을 일으키겠다고 약속했다. 5천억 바트 규모의 이 계획은 경제학자, 중앙은행으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막대한 재정 비용, 법적으로 의심스러운 자금 조달 계획, 인플레이션 부양 가능성이 우려되었다. 결국 프로그램은 축소되고 보류되었다. 패텅탄 친나왓 직전 정부(2024~2025년)도 이 유산을 물려받았다. 부채 구조 조정, 에너지 비용 절감, 수정된 디지털 지갑 제도를 추진한다. 정책은 여전히 단기 수요 자극과 사회적 지원에 초점을 맞춘다. 생산성과 임금 성장의 구조적 장애물은 방치됐다. 태국 중앙은행은 어려운 입장에 처했다. 약한 경제와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 사이를 헤쳐나가며, 주로 완화적 통화 정책을 유지했다.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수요 주도적이지 않다고 인식했지만, 대규모 정부 부양책의 재정적 지속 불가능성과 높은 가계 부채의 체계적 위험을 경고했다. 이는 구조적 문제에 시달리는 경제에서 통화 정책의 근본적 한계를 보여준다. 인간적 비용 : 숫자 너머의 현실 거시 경제 데이터는 냉혹한 그림을 그리지만, 진정한 영향은 국민의 일상적 어려움으로 측정된다. 방콕의 길거리 음식 판매상들은 덫에 걸렸다. 원재료와 에너지 비용은 끊임없이 상승하지만, 재정적으로 압박받는 고객들 때문에 가격을 올릴 수 없다. 많은 이들이 더 오래 일하고, 개인 저축을 사용하며, 비공식 대출업자로부터 고금리 대출을 받는다고 보고한다. 도시를 먹여 살리는 사람들이 스스로 음식을 감당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일반 가계의 예산은 비재량적 비용이 지배한다. 교통비가 월 예산의 23.19%, 주거 비용이 21.99%를 차지한다. 이 두 범주만으로 45%다. 식음료에 41.8%를 합치면, 재량적 지출, 저축, 또는 교육 투자 여지가 거의 없다. 더 저렴한 테이크아웃 전용 식사로의 전환은 소비자들이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는 명백한 예다. 부담은 동등하게 분담되지 않는다. 저소득 가구는 소득의 훨씬 더 큰 비율을 필수품에 지출하므로, 가격 상승의 영향이 훨씬 심각하다. 세계은행은 태국의 빈곤 감소가 2015년 이후 정체되거나 역전되었다고 지적한다. 태국 빈곤층의 79%가 농촌에 거주하며, 이들은 정체된 농업 소득에 의존하고 고임금 일자리 접근성이 낮다. 저소득층은 소득 대비 부채 상환 비율이 가장 높고, 고금리 비생산적 대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생활비 위기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격차를 적극적으로 넓히는 사회적 문제다. 탈출구는 있는가?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소비 주도 부양책은 생산 능력 증대, 경쟁력 강화, 포용적 성장에 초점을 맞춘 장기 국가 전략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정부는 재정 정책을 광범위한 현금 지급에서 고승수 공공 투자로 전환해야 한다. 우선순위는 디지털과 녹색 인프라, 교육 개혁, 표적화된 인력 재교육이다. 경쟁을 저해하는 10만 개 이상의 구식 법규를 개혁하고, 데이터 기반의 표적화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중앙은행은 안정성과 신뢰성을 유지하며, 가계 부채 과잉을 해결하기 위한 국가적 디레버리징, 즉 부채를 줄이는 전략을 주도해야 한다. 민간 부문은 저비용 노동 모델을 깨고, 인적 자본과 기술 채택에 투자하며, 전략적 다각화를 수용해야 한다. 목표는 주기적인 하향식 재정 지원에 의존하는 경제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지속 가능한 소득 성장을 창출하는 경제를 구축하는 것이어야 한다. 방콕 실롬의 쌀밥 한 끼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만 중대하다. 태국은 이 악순환을 끊고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답은 새로운 아누틴 정부가 지금 내리려는 정책 선택에 달려 있다. [기사참조 : 더네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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