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맛, 그 이상의 이야기 - 깽쏨(Kaeng Som)
진정한 태국을 경험하는데 음식만큼 확실한 주제는 없을 것이다. 세계 3대 스프중 하나로도 유명한 태국의 똠얌꿍은 비단 태국에 살고 있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 요즘은 전 세계 곳곳에서도 맛볼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하지만 깽쏨만큼 태국의 역사와 문화, 지역적 특색을 고스란히 담아낸 요리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한국 사람에게 깽쏨은 아주 익숙한 우리의 고유의 맛과 비슷해 한 번 맛보면 계속 생각나는 태국 특유의 음식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깽쏨, 이름에 담긴 오해와 진실
깽쏨의 ‘쏨’(Som)은 오렌지? 재료에 오렌지가 들어간다?
깽쏨의 독특한 새콤함은 오렌지 주스의 맛이 아니다. 깽쏨의 새콤함은, 타마린드(tamarind) 페이스트, 라임, 아삼 글루구르(asam gelugur), 또는 지역에 따라 살락(salak)이나 맘팟(mampat) 등 다양한 천연 재료로부터 나온다. 이 재료들은 깽쏨에 단순한 신맛이 아닌, 깊고 복합적인 풍미를 더하며, 요리의 정체성을 완성한다.
깽쏨의 소박한 시작 : 농촌의 밥상에서 왕실의 식탁까지
깽쏨의 역사는 태국의 평범한 농촌에서 시작되었다. 민물고기와 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채소를 이용해 소박하게 끓여낸 이 음식은, 새콤하고 짭짤하며 매콤한 맛의 조화를 통해 힘든 노동을 견디게 해주는 든든한 한 끼 식사였다. 특별한 재료 없이도 만들 수 있어 사회 계층을 막론하고 모두가 즐겨 먹을 수 있는 서민적인 음식이었다.
시간이 흘러 태국 요리가 발전하면서 깽쏨도 변화를 겪게 된다. 특히 라마 1세부터 4세에 이르는 라따나꼬신(Rattanakosin) 시대는 태국 요리의 황금기로 불리는데, 이 시기에 깽쏨은 왕실 요리사들의 손을 거쳐 더욱 정교하고 세련된 음식으로 재탄생했다. 고급 재료인 새우나 해산물이 첨가되었고, 커리 페이스트 또한 향과 깊이를 더하기 위해 다양한 향신료를 배합하여 만들게 된다. 이처럼 깽쏨은 소박한 농촌의 밥상에서 시작해 왕실의 식탁에까지 오르며, 태국 요리 발전의 중요한 흐름을 함께 해온 살아있는 역사인 셈이다.
깽쏨의 지역별 맛 지도 태국 전역을 누비는 맛의 변주곡
맛의 팔레트 : 지역마다 다른 깽쏨의 얼굴
깽쏨은 태국 전역에서 사랑받는 음식이지만, 지역별로 사용하는 재료와 맛의 선호도가 달라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자랑한다. 이는 태국의 광활한 자연 환경과 각 지역의 문화적 특색이 음식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태국 중부 (Central Thailand) : 균형의 미학
방콕을 중심으로 한 중부 지역의 깽쏨은 균형 잡힌 맛이 특징이다. 민물 메기(snakehead fish)나 새우가 주로 사용되며, 무, 긴 콩, 덜 익은 파파야, 모링가(moringa) 등 다양한 채소를 함께 넣는다. 새콤함, 짭짤함, 매콤함, 그리고 약간의 달콤함이 어우러져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맛을 낸다.
남부 태국 (Southern Thailand) : 강렬한 매콤함과 풍부한 해산물
남부 태국에서는 깽쏨을 ‘깽르앙(Kaeng Lueang)’, 즉 ‘노란 커리(yellow curry)’라고 부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강렬한 노란빛과 함께 태국 전역에서 가장 매운맛을 자랑한다. 남부 지역의 특성상 민물고기 대신 싱싱한 바다 생선이 주로 사용되며, 죽순이나 흰 아가스타 꽃(white agasta flowers), 코코넛 순 등이 들어간다.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남부의 깽르앙에 도전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북부 및 북동부 태국 (Northern & Northeastern Thailand) : 소박함의 미덕
북부와 북동부 지역의 깽쏨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그 나름의 소박하고 담백한 매력이 있다. 주로 민물 메기(스테이크헤드)나 그 지역에서 잡히는 민물고기를 사용하며, 현지에서 나는 채소와 재료를 활용해 맛을 낸다. 복잡한 맛보다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집중하여, 순수하고 깔끔한 맛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맛을 넘어선 가치, 깽쏨의 건강 효능
음식은 곧 약이다 : 깽쏨에 담긴 태국인들의 지혜
태국 전통 의학에서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몸의 균형을 맞추고 질병을 예방하는 ‘약(food as medicine)’의 개념으로 인식된다. 깽쏨은 바로 이러한 철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대표적인 요리이다.
소화를 돕고 영양 흡수를 촉진하는 새콤함
깽쏨의 핵심인 새콤한 맛은 단순한 미각적 즐거움을 넘어, 신체에 다양한 이점을 제공한다. 신맛은 소화액 분비를 촉진하여 소화를 돕고, 위장 장애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타마린드와 같은 천연 신맛 재료들은 칼슘, 철분, 아연 등 필수 미네랄의 흡수를 돕는 역할을 한다. 특히 깽쏨은 최대 19가지에 이르는 다양한 신맛 재료들을 사용해 깊이 있고 복합적인 효능을 발휘한다.
면역력 강화와 알레르기 완화
깽쏨에 들어가는 타마린드, 마단(madan), 카피르 라임(kaffir lime) 등은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하는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여 면역력 증진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또한, 일부 연구에 따르면 깽쏨의 재료들이 알레르기 반응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매콤함과 새콤함이 어우러진 깽쏨은 땀을 내어 체내의 독소를 배출하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는 설이 있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부드러운 매콤함
깽쏨은 다른 태국 음식에 비해 비교적 매운맛이 덜해, 매운 음식에 약한 사람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순한 옵션이 될 수 있다. 신맛이 매운맛을 중화시켜주기 때문에, 매콤한 맛을 내는 고추의 양에 비해 혀가 느끼는 자극은 적다. 맛과 건강을 모두 잡은 깽쏨은 진정 태국인들의 삶의 지혜가 담긴 보물 같은 음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인의 혹평과 태국인들의 자부심
깽쏨, 세계 꼴찌 요리? - 2023년의 논란
2023년 2월, 한 해외 미디어에서 깽쏨을 ‘세계 최악의 음식’ 중 하나로 선정하여 태국인들의 거센 항의와 분노를 불러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이는 깽쏨에 대한 평가가 문화적, 미각적 차이에 따라 얼마나 극명하게 엇갈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우리나라 김치도 한때는 세계 유명 혐오 음식으로 취급된 적이 있듯-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깽쏨은 여전히 태국인들의 식탁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깽쏨이 태국인들에게 단순한 음식을 넘어, 고향의 맛, 어머니의 손맛, 그리고 태국 문화의 정체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맛이지만, 깽쏨은 태국인들에게 소중한 추억과 자부심을 상징한다.
태국 음식의 미래, 깽쏨에서 답을 찾다
태국의 식문화는 이제 단순한 ‘팟타이’나 ‘똠얌꿍’을 넘어, 지역별로 특색 있는 다양한 음식들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깽쏨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태국 음식의 깊이와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소박한 재료로도 깊은 맛을 낼 수 있는 지혜, 그리고 지역적 특색을 존중하며 발전해온 역사를 가진 깽쏨. 오늘 저녁, 가까운 식당에서 깽쏨 한 그릇을 주문하며 태국의 맛과 역사를 음미해보는 것은 어떨까?
방콕 유명 깽쏨 맛집
Jirakaan Restaurant (지라깐 레스토랑)
※ 주소 : 76 Soi Sukhumvit 51, Klongton Nue, Watthana, Krung Thep Maha Nakhon 10110
※ 평점 : 4.8점
※ 영업 시간 : 매일 오후 12:00~10:30
Sit and Wonder (싯 앤 원더)
※ 주소 : 119 Soi Ban Kluai Nuea, Khwaeng Khlong Tan Nuea, Watthana, Krung Thep Maha Nakhon 10110
※ 평점 : 4.5점
※ 영업 시간 : 매일 오전 11:00 ~ 오후 10:30
Mango Tree (망고 트리)
※ 주소 : 37 ซอย แขวง สุรวงศ์ Khet Bang Rak, Krung Thep Maha Nakhon 10500
※ 평점: 4.5점
※ 영업 시간: 매일 오전 11:00 ~ 오후 11:00
Taling Pling(탈링플링 : 수쿰빗 소이 34 본점)
'탈링플링(Taling Pling)'은 태국 방콕에서 유명한 태국 레스토랑 체인점 이름이다. 이곳은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에게 인기가 많으며, 태국 전통 요리를 현대적인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 분위기 : 푸른 정원이나 인공 연못이 있는 아름다운 인테리어로 유명하다. 실내외 좌석이 있어 쾌적한 환경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 메뉴 : 팟타이, 솜땀, 깽쏨 등 전통 태국 요리부터 퓨전 요리까지 다양한 메뉴를 제공한다. 특히 판단 잎에 싸서 튀긴 치킨(Chicken in Pandanus Leaf)이 시그니처 메뉴로 유명하다.
* 접근성 : 방콕 시내 주요 쇼핑몰(센트럴 월드, 씨암 파라곤)과 번화가(수쿰빗)에 여러 지점이 있어 접근성이 좋다. 특히 수쿰빗 34 지점은 독립된 공간으로 조용하고 멋진 분위기를 자랑한다.
* 인기 : 한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향이 강하지 않아' 부담 없이 태국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인기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