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방콕의 심장, '반부'에서 만나는 장인의 숨결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25/06/17 14:09

 

시간이 멈춘 방콕의 심장, '반부'에서 만나는 장인의 숨결

사라져가는 전통의 불씨, '칸롱힌' 석쇠 청동 그릇의 마지막 수호자들을 찾아서

방콕의 화려한 스카이라인과 북적이는 쇼핑몰 너머, 수 세기의 역사를 간직한 채 묵묵히 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공동체가 있다. 짜오프라야강 서쪽, 방콕 너이(Bangkok Noi) 지역 깊숙한 곳에 자리한 '반부(Ban Bu)' 마을이 바로 그곳이다. 이곳은 아유타야 왕조 시대부터 이어져 온 태국 전통 청동 그릇, '칸롱힌(Khan Long Hin)'을 만드는 유일한 장소다. 망치 소리가 역사의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반부 마을로 떠나는 시간 여행은, 여행자에게 진정한 방콕의 속살과 사라져가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미로 같은 골목길 어딘가, 200년의 역사를 걷다

아유타야의 유산, 방콕에 뿌리내리다
반부 마을의 역사는 18세기, 버마의 침공으로 아유타야 왕조가 무너지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왕실을 위해 청동 그릇을 만들던 장인들이 새로운 수도인 톤부리(현 방콕의 일부)로 이주하며 형성된 공동체가 바로 반부다. '반(Ban)'은 마을, '부(Bu)'는 '두드리다'라는 뜻으로, 이름 자체에 마을의 정체성이 오롯이 담겨 있다. 한때는 수많은 공방이 성업하며 왕실과 귀족들에게 최상급의 청동 그릇을 공급했지만, 산업화의 물결과 값싼 공산품에 밀려 이제는 단 한 곳의 공방만이 그 명맥을 위태롭게 이어가고 있다.

 

'숨겨진 보석'을 찾아가는 여정
반부를 찾아가는 길은 마치 숨바꼭질과 같다. 현대적인 방콕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방문객을 과거로 안내하는 타임 터널처럼 느껴진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이곳의 정취를 느끼기에 가장 좋다.

* MRT 블루라인 이용: 가장 편리한 방법 중 하나다. MRT 블루라인 방쿤논(Bang Khun Non) 역에서 내린 후, 택시나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왓 수완나람(Wat Suwannaram)' 또는 '반부 커뮤니티'로 가달라고 하면 약 5~10분 정도 소요된다.
*짜오프라야 익스프레스 보트 이용: 강을 따라 방콕의 풍경을 즐기고 싶다면 추천하는 방법이다. 톤부리 철도역(Thonburi Railway Station) 선착장(N11)에 내려 도보로 약 15~20분 정도 걷거나, 선착장 앞에서 툭툭 또는 오토바이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걷는 길은 현지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목적지인 '찌얌 상 사짜(Jiam Sang Sajja)' 공방은 이 미로 같은 골목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 있다. 이정표가 거의 없어 길을 헤맬 수도 있지만, 주저하지 말고 지나가는 현지인에게 "반부?" 또는 "칸롱힌?"이라고 물어보자. 친절한 미소와 함께 손짓으로 방향을 알려줄 것이다. 이 길 찾기의 소소한 어려움이야말로 반부 여행의 진정한 묘미이며, 마침내 망치 소리가 들려올 때의 반가움은 배가 된다.


장인의 땀방울이 빚어내는 은빛 광채,  '칸롱힌' 이야기

불과 망치, 그리고 혼이 담긴 예술품
'찌얌 상 사짜(Jiam Sang Sajja)' 공방에 들어서는 순간, 후끈한 열기와 함께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는 망치 소리가 온몸을 감싼다. 이곳이 바로 태국에 남은 마지막 칸롱힌 제작 현장이다. 칸롱힌은 구리, 주석, 그리고 장인들만 아는 비율로 섞인 금속 조각을 섭씨 1,000도가 넘는 불 속에서 녹이고 두드려 형태를 잡고, 수차례의 담금질과 연마를 거쳐 완성된다.

이 모든 과정은 100%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여러 명의 장인이 한 조를 이루어, 달궈진 금속 덩어리를 리드미컬하게 내리치는 모습은 마치 잘 짜인 교향곡을 보는 듯하다. 마지막 단계에서 석쇠(Stone Polishing)로 그릇 표면을 문질러 광을 내면, 검붉던 청동은 마법처럼 은은하고 고귀한 금빛 광채를 뿜어낸다. 이 때문에 'Stone-polished Bronze Bowl'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그릇은 예로부터 음식을 담으면 신선도가 오래 유지되고 독성을 구별할 수 있다고 알려져 왕실에서 귀하게 사용되었다.



 

반부 여행자를 위한 꿀팁 
*현금은 필수!: '찌얌 상 사짜' 공방에서는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그릇을 구매하고 싶다면 반드시 태국 바트(Baht) 현금을 넉넉히 준비해가자. 그릇의 크기와 문양에 따라 가격은 수백 바트에서 수만 바트까지 다양하다.
*존중하는 마음으로 관람하기: 이곳은 관광지가 아닌, 실제 장인들이 일하는 삶의 터전이다.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관람하고, 사진 촬영 전에는 반드시 장인에게 양해를 구하는 예의를 지키자. 그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는 작은 미소와 인사는 최고의 소통 방법이다.
*구매는 최고의 응원: 칸롱힌 그릇을 하나 구매하는 것은 단순한 기념품 쇼핑을 넘어, 사라져가는 전통 기술을 지키는 장인들을 직접적으로 후원하고 이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데 힘을 보태는 의미 있는 행위다. 작은 밥그릇부터 과일 그릇, 장식용 그릇까지 종류가 다양하니 나만의 보물을 찾아보자.
*주변 함께 둘러보기: 반부 마을은 공방 외에도 소소한 볼거리가 있다. 공방 근처의 '왓 수완나람 라차와라위한(Wat Suwannaram Ratchaworawihan)'은 아름다운 벽화로 유명한 왕실 사원이다. 또한, 방쿤논 역 주변에는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로컬 맛집과 시장이 있어 태국의 진짜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사라지기 전에 꼭 만나야 할 유산
반부는 우리에게 '느림의 미학'과 '진정성'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젊은 세대가 배우기를 꺼려 기술의 대가 끊길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은 안타깝지만, 그렇기에 우리의 방문과 관심은 더욱 소중하다. 방콕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하루쯤은 시간을 내어 시끄러운 도시의 이면에 숨 쉬고 있는 장인의 숨결을 느껴보길 바란다. 낡은 공방에서 울려 퍼지는 망치 소리는 당신의 여행에 가장 깊고 특별한 울림을 남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