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5 BKK
방콕 딸랏너이의 새로운 문화 아이콘
200년 헤리티지 건축이 품은 현대적 커뮤니티 공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살롱
방콕의 오래된 차이나타운 남쪽 끝자락, 차오프라야 강변에 자리한 딸랏너이(Talat Noi)는 '작은 시장'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소박하지만 깊이 있는 동네다. 과거 무역 중심지였던 이곳은 중국 상인들이 정착하며 형성된 역사적 차이나타운 커뮤니티로, 전통적인 건축과 로컬 상점, 맛집들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독특한 거친 매력의 골목길과 다문화적 유산이 어우러진 이곳은 방콕의 다른 지역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런 역사의 중심 위에 최근 가장 주목받는 공간이 등장했다. 바로 965 BKK다. 단순한 카페나 갤러리를 넘어, '살아있는 아카이브(a living archive)'를 표방하는 이곳은 오픈 직후부터 로컬 힙스터와 해외 여행자 모두를 끌어들이며 딸랏너이의 새로운 얼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0년 된 집이 말하는 이야기들
965 BKK가 자리한 소이 와닛 2번지 965번지의 건물은 과거 굴소스 공장, 무당의 집, 다가구 주택 등 다양한 용도로 쓰여온 역사를 지녔다. 복원된 중국 상인의 집은 빈티지 건축양식과 통풍이 잘 되는 레이아웃을 통해 진정성 있는 매력을 유지하며, 향수와 현대 미학을 완벽하게 균형 있게 보여준다.
건물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높은 천장과 중정(中庭)으로 쏟아지는 자연광이다. 노출된 콘크리트, 녹음으로 둘러싸인 중정, 그리고 자연광이 과거 전시 공간이었던 흔적을 여전히 느끼게 하면서도 구석구석 새로운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다. 벗겨진 페인트, 고풍스러운 목재 난간, 세월의 흔적이 묻은 벽면들은 그대로 보존되었다. 운영진은 이 흔적들을 지우는 대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택했고, 덕분에 공간 전체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 같은 독특한 서사를 품게 되었다.
이곳은 과거 방콕 디자인 위크(Bangkok Design Week) 프로그램 공간으로도 쓰였던 곳으로, 창작자와 커뮤니티를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해온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카페를 넘어선 복합 문화 공간
965 BKK를 단순히 '카페'라고 부르기엔 그 정체성이 훨씬 더 다층적이다. 이곳은 음료, 푸드, 크래프트 숍, 전시, 이벤트가 유기적으로 얽혀 하나의 커뮤니티 살롱을 이룬다.
음료 : 계절과 농가를 담은 한 잔
음료 프로그램은 Homeland와 협업으로 진행된다. Homeland는 단순한 식료품점을 넘어 책임 있는 생산과 소비를 기반으로 한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브랜드다. 이들은 농가 직거래를 통해 제철 과일을 활용한 음료를 선보이며, 오픈 초반에는 스타프루트 주스가 시그니처 메뉴로 큰 인기를 끌었다. 최근에는 구아바-우롱 티처럼 달콤한 과일과 향긋한 차의 조화를 담은 음료도 제공하고 있다. 계절에 따라 메뉴가 바뀌기 때문에,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맛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푸드 : 태국 가정식의 재해석
푸드 메뉴는 HAAWM과 손잡고 만들어진다. HAAWM은 태국어로 '좋은 냄새가 난다'는 뜻의 ‘홈(hom)'과 '집(home)'의 발음을 겹쳐 만든 이름의 석식 클럽(supper club)으로, 온눗 지역에 위치한 프라이빗 다이닝 공간이다. 자수성가한 태국계 미국인 셰프 딜런 에이따롱(Dylan Eitharong)이 운영하는 이곳은 태국 가정식 스타일의 요리를 강조하며, 예약이 어려운 곳으로 유명하다.
965 BKK에서는 HAAWM의 철학을 담은 계절별 퓨전 메뉴를 선보인다. 태국 전통 가정식에 남부 미국식 훈제와 그릴링 기법을 더한 독창적인 음식들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7코스 패밀리 스타일 디너가 원래 HAAWM의 시그니처지만, 965 BKK에서는 더 캐주얼하게 한두 가지 메뉴를 즐길 수 있는 형태로 재구성되어 있다.
메뉴
➊ Burmese Tea Leaf Salad(3pcs) 게살과 토마토 등을 소스에 버무려 병아리콩 누룽지위에 올린 샐러드 : 190바트
➋ Hat Yai Fried Chicken Nuggets 핫야이 스타일 닭고기 너겟 : 220바트
➌ Beef Satay & Roti 소고기 사테를 로띠와 함께 곁들인 요리로 땅콩 소스와 함께 낸다 : 180바트
➍ Oolong Guava : 170B
➎ Spiced Starfruit : 180B
크래프트 숍 : 로컬 메이커의 집합소
공간 한쪽에는 로컬 디자이너 브랜드가 입점한 크래프트 존이 마련되어 있다. 치앙마이의 전통 직조 텍스타일, 핸드메이드 우드 토이, 내추럴 캔들, 패션 아이템 등 다양한 태국 로컬 브랜드 제품들이 전시되고 판매된다. 마치 작은 디자인 마켓을 거니는 듯한 경험을 주며, 단순히 소비하는 공간이 아닌 로컬 창작자와 연결되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에피소드형 공간'
965 BKK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곳은 팝업 전시, 워크숍, 협업 프로젝트 등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한 번의 방문으로는 이 공간의 전체를 경험했다고 할 수 없으며, 계절과 프로그램에 따라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변모한다.
과거 방콕 디자인 위크의 거점이었던 만큼, 앞으로도 다양한 창작자 및 브랜드와 협업하며 '살아있는 아카이브'로서의 정체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인스타그램(@965bkk)을 통해 최신 일정과 이벤트를 확인하는 것을 추천한다.
딸랏너이 탐방 루트의 중심
965 BKK는 단순히 하나의 명소가 아니라, 딸랏너이 탐방의 거점이 될 수 있는 공간이다. 딸랏너이는 삼펭 마켓과 차이나타운 옆에 위치하며 차오프라야 강변까지 이어지는 동네로, 방콕의 스트리트 아트를 탐험하기 좋은 출발점이다.
추천 코스 :
* MRT 왓망콘(Wat Mangkon) 역 하차 → 도보 10분
* 삼펭 마켓(Sampeng Market) 골목 구경
* 차로엔크릉 로드(Charoen Krung Road) 스트리트 아트 감상
* 965 BKK에서 음료와 브런치
* 송왓 사원(Wat Pho) 방문 또는 강변 산책
* 홀리 로사리 성당(Holy Rosary Church)1786년에 지어진 포르투갈 성당
* 강변 선셋 바에서 저녁 마무리
딸랏너이는 색채가 풍부하고 로컬한 삶이 살아 숨 쉬며, 태국과 중국 문화가 공존하는 동네다. 방콕에서 가장 오래된 정비소들이 여전히 운영되고 있으며, 스트리트 아트, 힙한 카페, 종교적 신전들이 조화를 이룬다.
방문 정보 및 팁
주소 : 965 Soi Wanit 2, Talat Noi, Samphanthawong, Bangkok 10100
영업시간 : 수요일–월요일 11:00–19:00 (화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965bkk에서 최신 일정 확인 권장)
가는 방법 :
*MRT Wat Mangkon (왓망콘) 역 1번 출구에서 도보 약 10분
* 택시/그랩 이용 시 "965 Soi Wanit 2" 또는 "965BKK" 검색
방문 팁 :
* 낮 시간대(11시~2시)가 자연광이 가장 아름답게 들어오는 시간
* 음료와 간단한 브런치 메뉴 중심이므로, 본격적인 식사는 인근 식당 활용 추천
* 크래프트 존에서 기념품 구매 가능 (카드 결제 가능)
* 인스타그램에서 팝업 이벤트 일정을 사전 확인하면 더욱 풍성한 경험 가능
* 주말 오후에는 혼잡할 수 있으니 평일 방문 추천
주변 추천 장소 :
◈ 홍시엥콩 카페(Hong Sieng Kong Cafe) - 같은 소이에 위치한 인스타그래머블 카페
◈ Naam 1608 - 딸랏너이 내 선셋 뷰를 즐길 수 있는 루프탑 바
◈ Daythem Tea Studio - 조용한 골목길에 자리한 말차 전문점
마치며 : 시간이 쌓인 공간의 힘
965 BKK는 단순히 '예쁜 카페'가 아니다. 이곳은 시간이 쌓인 공간이 지닌 힘을 보여준다. 200년 된 집의 벽면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 중정으로 스며드는 햇살, 로컬 창작자들의 손길, 그리고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들이 모여 하나의 '살아있는 아카이브'를 완성한다.
방콕이 K-11 아트몰이나 아이콘시암 같은 현대적 랜드마크로 가득하다면, 965 BKK는 그 반대편에서 느리게, 깊게,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제안한다. 딸랏너이의 구불구불한 골목을 걷다가 이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여행자는 관광객이 아닌 이 동네의 이야기 속 일부가 된다.
방콕 여행에서 조금 더 깊이 있는 경험을 원한다면, 965 BKK는 반드시 들러야 할 새로운 아이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