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피니 공원, 그 100년의 역사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26/03/09 12:28

룸피니 공원, 그 100년의 역사

방콕의 가장 중심지에 자리잡은 “룸피니 공원(Lumpini Park)”은 태국 최초의 공공 공원이자 “방콕의 허파”로 불리는 상징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공원 개장, 시기 및 역사의 시작
룸피니 공원은 방콕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 녹지로, 그 역사는 10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설립 배경 및 개장 : 1920년대 라마 6세(Vajiravudh)의 지시로 조성되었다. 원래 이 부지는 왕실 소유의 땅('퉁 살라 댕')이었으나, 1925년 태국의 산물과 공예품을 전시하는 박람회(Siam Rath Museum) 개최를 위해 국가에 기증되었다. 박람회가 끝난 후 대중을 위한 공원으로 탈바꿈하여 1925년에 공식적으로 공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름의 유래 : '룸피니'라는 이름은 부처님이 탄생한 네팔의 '룸비니(Lumbini)'에서 따왔다. 이는 태국의 깊은 불교적 전통과 평화의 장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라마 6세 동상 : 공원 남서쪽 정문 앞에는 공원 조성을 기념하기 위해 1942년에 세워진 라마 6세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옛날에는 공원이 어땠을까?
과거의 룸피니 공원은 지금의 평화로운 휴식처와는 꽤 다른 모습과 역할을 거쳐왔다.

❖도시의 외곽에서 중심으로 : 1920년대 조성 당시만 해도 이 지역은 방콕의 '외곽'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방콕이 급격히 도시화되면서, 현재는 고층 빌딩이 빽빽한 상업 중심지(실롬/사톤 지역) 한가운데 위치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군영 :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군의 군사 야영지(캠프)로 사용되는 아픈 역사를 겪기도 했다.
❖ 과거의 시설들 : 1925년 태국 최초의 공공 도서관이 이곳에 세워졌다. 또한, 과거에는 공원 내에 공공 수족관이 있었으나 현재는 운영을 중단한 지 오래되었다. 1960년대에는 호수 중앙에 '킨나리 나바(Kinnari Nava)'라는 물 위의 레스토랑이 있었으나 화재로 소실되었다.

제1회 방콕 인터내셔널 모터쇼(Bangkok International Motor Show)가 바로 룸피니 공원에서 개최되었다.

❖ 개최 시기 : 1979년 4월 2일 ~ 4월 6일
❖ 역사적 의미 : 태국에서 열린 최초의 공식 모터쇼였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참여하는 자동차 회사가 많지 않아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았지만, 태국 자동차 산업과 자동차 애호가들에게 새로운 트렌드를 불러일으킨 기념비적인 행사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마하 와찌라롱꼰 왕세자(현 라마 10세)가 개막식 테이프 커팅에 참석하기도 했다.

공원 내에 텐트나 임시 부스를 설치하고 차를 전시했던 1979년 당시의 모습은 고층 빌딩과 자연이 어우러진 지금의 룸피니 공원 풍경과는 또 다른 이색적인 모습이었을 것이다.

반려견 출입금지, 독특한 태국의 공공 공원 규칙
한국이나 다른 해외에서 생활했던 많은 사람들이 태국내 공원 출입에서 가장 큰 의문을 품었던 규칙 중 하나는 반려견 출입이 제한되는 공원측의 강력한 규칙일 것이다. 쉽게 이해가 안되는 규칙이지만 지금도 각 공원에서 철저히 지켜지는 규칙중 하나가 바로 공원 이용객들의 반려견 출입 제한이다.

태국 공공 공원의 반려견 출입 금지, 그 이면에 숨은 3가지 결정적 이유
태국, 특히 방콕의 주요 공공 공원에서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반려견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해 온 것은 단순히 동물을 배척해서가 아니다. 방콕시(BMA)가 내세운 핵심 이유는 크게 '공공의 안전', '보건 위생', 그리고 '고유의 생태계 보호' 세 가지로 요약된다.


➊ 다양한 시민의 안전과 갈등 예방
공원은 노약자, 어린아이, 그리고 개를 무서워하거나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 등 모든 시민이 공유하는 공간이다. 방콕시는 과거부터 "공원은 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휴식처이기도 하다"는 확고한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일부 반려인들의 부주의로 인한 목줄 풀림, 물림 사고, 소음 분쟁 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아예 출입 자체를 금지하는 정책을 펴온 것이다.

➋ 고질적인 '쏘이 독(Soi Dog)' 문제와 광견병 우려
태국은 길거리 개, 이른바 '쏘이 독' 개체 수가 매우 많은 국가다. 공원 주변을 맴도는 야생성이 강한 쏘이 독과 온순한 반려견이 마주칠 경우 심각한 영역 다툼이나 유혈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더불어, 태국은 여전히 광견병(Rabies) 및 진드기 매개 질병의 위험이 상존하는 곳이다. 불특정 다수의 동물이 모이는 공원 잔디밭이 전염병 확산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보건 당국의 우려가 강하게 작용했다. 배설물 미처리로 인한 공중위생 악화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➌ 도심 속 야생 생태계 보호 (왕도마뱀과의 충돌)
룸피니 공원이나 벤짜낏띠 공원 등은 단순한 조경 시설이 아니라 그 자체로 거대한 생태계다. 특히 룸피니 공원에는 거대한 물왕도마뱀(Monitor Lizard)을 비롯해 각종 야생 조류와 거북이 등이 서식하고 있다. 사냥 본능이 있는 반려견이 야생 동물을 공격해 생태계를 교란할 위험이 있고, 반대로 소형견의 경우 2미터에 달하는 왕도마뱀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는 치명적인 위험이 존재한다.



시대의 변화와 통제의 완화
이처럼 강력했던 규제는 최근 반려 인구의 급증과 찻찻 시티판(Chadchart Sittipunt) 방콕 시장의 정책 변화에 힘입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벤짜낏띠 공원의 반려견 구역 개방을 시작으로, 최근 룸피니 도그 파크 신설까지 이어진 것이다.

단, 방콕시의 이러한 개방은  '을 전제로 한다. 실제로 방콕시는 2026년 1월부터 거주지 면적에 따라 반려동물 마릿수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마이크로칩 등록을 의무화하는 강력한 '반려동물 사육 및 통제 조례'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시작했다.

 

100년의 금기를 깬 작고 의미 있는 혁신 
최근 룸피니 공원에는 또 하나의 조용한 변화가 생겼다. 2026년 2월 7일부로 위타유 도로(Wireless Road) 방면 출입구 쪽에 '룸피니 도그 파크(Lumphini Dog Park)'가 문을 열었다. 안내견을 제외한 반려동물의 출입을 엄격히 금지해 온 지 무려 100년 만의 일이다.

언론 보도 및 방콕시 발표 자료 분석 결과, 이 공간은 방콕시(BMA)와 방콕일본상공회의소(JCC)가 협력해 과거 주차장이었던 부지를 개조해 만들었다. 규모는 약 2라이(약 3,200제곱미터)로, 거창한 '반려견의 천국'이라 부르기엔 다소 협소하고 시설도 기본적인 수준 이다. 대·소형견의 구역을 분리하는 울타리, 오프리쉬(Off-leash) 존, 간단한 어질리티 기구와 식수대가 전부다.

하지만 이 작은 공간이 지니는 의미는 가볍지 않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포장할 만한 압도적인 시설은 아닐지라도, 도심 속 유휴 공간을 활용해 현대인들의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반려동물 인구 증가)을 제도권 안으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혁신'으로 평가할 만하다. 철저히 사람만을 향해 있던 공원의 문턱을 낮춰 공존의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룸피니 공원은 화려하고 완벽하게 다듬어진 테마파크가 아니다. 때로는 덥고, 때로는 매연에 시달리며, 새롭게 생긴 시설은 소박하다. 그러나 100년 전 모터쇼 텐트가 쳐졌던 잔디밭이 시민들의 에어로빅 광장으로, 그리고 다시 반려견이 흙을 밟을 수 있는 공간으로 끊임없이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이번 주말, 익숙해서 무심코 지나쳤던 룸피니 공원을 찾아 방콕의 시간과 변화를 새삼스럽게 음미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