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콕 쿤스트할레 Bangkok Kunsthalle
불탄 인쇄소에서 다시 피어난 예술
방콕 쿤스트할레와 강릉, 상처의 경계에서 마주 보다
방콕 차이나타운 야와랏 일대는 오래된 상업지와 주거지, 사원과 시장이 한데 뒤섞인 곳이다. 거리마다 금은방과 한약방, 식당과 노점이 이어지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관광객의 눈에는 잘 띄지 않는 오래된 방콕의 생활 풍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복잡한 도시의 한복판에 불에 그을린 콘크리트 건물이 서 있다. 외벽에는 화재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고, 내부는 철골과 배관, 갈라진 바닥이 그대로 드러난다. 오래된 공장을 말끔한 상업시설로 바꾸는 일반적인 도시재생 방식과는 거리가 먼 모양새다.
이곳은 2024년 1월 문을 연 현대미술 공간 ‘방콕 쿤스트할레(Bangkok Kunsthalle)’다.
방콕 쿤스트할레는 폐건물의 흔적을 지우지 않았다. 새로운 벽을 세우고 균일한 조명을 설치해 과거를 덮는 대신, 화재로 손상된 벽과 거친 건물 구조를 전시 공간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한때 기능을 잃고 방치됐던 장소가 동시대 작가들의 실험과 토론이 이어지는 예술 공간으로 다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소장품 대신 새로운 시도를 담는 공간
‘쿤스트할레(Kunsthalle)’는 독일어로 예술을 뜻하는 ‘쿤스트(Kunst)’와 공간 또는 홀을 뜻하는 ‘할레(Halle)’가 합쳐진 말이다. 일반적인 박물관이나 미술관처럼 영구 소장품을 중심으로 운영하기보다, 기획전과 프로젝트를 통해 동시대 예술의 새로운 흐름을 소개하는 전시 공간을 가리킨다.
방콕 쿤스트할레 역시 완성된 작품을 정돈된 전시장에 진열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작가가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식과 공간을 시험할 수 있는 일종의 실험실을 지향한다.
전시 공간은 여러 시기에 지어진 세 개 동의 산업 건축물로 이뤄져 있다. 가장 오래된 부분은 70년이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출 콘크리트와 육중한 구조가 두드러지는 건물은 과거 인쇄소와 교과서 제작 공장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2001년 발생한 큰불로 상층부를 비롯한 건물 일부가 심각하게 훼손됐고, 이후 오랫동안 활용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수많은 문자와 지식을 종이에 찍어내던 장소가 화재로 기능을 잃은 뒤, 다시 이미지와 소리, 몸짓을 담는 예술 공간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 공간을 이끈 인물은 예술 후원가이자 카오야이 아트(Khao Yai Art) 설립자인 마리사 지아라와논(Marisa Chearavanont)이다. 예술감독은 런던의 현대미술 갤러리 하우저 앤 워스(Hauser & Wirth)에서 활동한 스테파노 라볼리 판세라(Stefano Rabolli Pansera)가 맡았다.
이들은 건물을 원래 모습으로 복구하거나 새것처럼 단장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불탄 벽과 깨진 표면, 열린 구조를 유지하면서 공간이 지닌 시간과 기억이 작품에 개입하도록 했다. 방콕 쿤스트할레가 다른 미술관과 구별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화재의 기억 위에 놓인 강릉의 이야기
2026년 7월 15일부터 8월 9일까지 방콕 쿤스트할레에서 열리는 국제협력전 ‘경계에서 함께 보기(Watching Together at the Boundary)’는 이 공간의 역사와 유난히 긴밀하게 호응한다.
파마리서치문화재단과 방콕 쿤스트할레가 공동으로 마련한 이번 전시는 2025년 강릉에서 개최된 제3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의 주요 영상 작품을 방콕의 도시적 맥락과 전시 공간에 맞춰 다시 소개한다.
강릉과 방콕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두 도시가 경험해 온 역사와 생활 방식도 다르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자연재해와 화재의 기억, 공동체의 회복, 전통을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방식이라는 몇 가지 공통된 질문을 통해 두 지역을 연결한다.
강릉은 대형 산불로 숲과 삶의 터전이 훼손되는 아픔을 겪었다. 방콕 쿤스트할레 역시 큰불로 기능을 잃었던 건물에서 출발했다. 산불 피해 지역을 바라보는 영상 작품이 화재의 상흔이 남은 인쇄소 벽에 비치는 순간, 작품과 장소는 서로 다른 기억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번 전시는 한국의 강릉단오제와 태국의 송크란에도 주목한다. 두 전통은 모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의례의 형식과 역사적 배경은 다르지만, 공동체가 함께 모여 안녕을 기원하고 새로운 시기를 맞이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맞닿아 있다.
전시 기획진은 이러한 공통점을 회복과 재생이라는 주제로 연결한다. 전통을 고정된 옛 풍습으로 제시하기보다, 재난과 변화 속에서도 공동체를 다시 묶어주는 살아 있는 힘으로 바라본다.


잿빛 콘크리트 사이에 울린 강릉의 장단
개막 행사에서는 강릉의 전통연희집단 ‘푸너리’가 공연을 선보였다.
개막 현장을 취재한 보도에 따르면, 공연은 특별한 무대 장치 없이 뼈대가 드러난 옛 인쇄소 건물 사이에서 진행됐다. 연희자들은 공간을 이동하며 징과 꽹과리, 장구를 울렸고, 타악기의 소리는 높은 천장과 거친 콘크리트 벽을 타고 전시장 안으로 퍼져나갔다.
한국의 전통 연희에서 징과 꽹과리의 소리는 단순한 음악적 장치를 넘어선다. 액운을 물리치고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는다. 물을 통해 묵은 것을 씻어내고 새해의 복을 기원하는 태국 송크란의 정서와도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출발한 의례와 축제가 방콕의 폐건물 안에서 소리와 몸짓으로 만난 것이다. 불에 타 멈춰 있던 옛 인쇄소가 강릉의 장단을 통해 잠시 다시 움직이는 듯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문화적 해석은 관람객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언어에 의존하지 않는 타악과 몸짓이 한국과 태국 관객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통로가 됐다는 점이다.



재난을 기록하는 데서 삶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전시장에서는 정연두, 고등어, 이양희, 홍이현숙 등 한국 작가들과 태국 작가 아라야 라스잠리안숙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들 작품은 재난의 참상을 직접 보여주는 데만 머물지 않는다. 재난 이후의 일상, 사라진 것과 남겨진 것, 자연과 인간의 관계, 공동체가 기억을 이어가는 방식을 각기 다른 영상 언어로 풀어낸다.
정연두의 ‘싱코페이션 #5’는 강릉단오제를 준비하는 제의적 과정과 산불 피해 지역의 풍경, 서로 마주 놓인 두 대의 피아노를 교차시킨 작품이다.
강릉단오제를 앞두고 주민들이 쌀을 모아 신주를 빚는 과정은 한 사람의 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여러 사람이 조금씩 마음과 물자를 보태야 비로소 공동체의 의례가 시작된다. 산불 이후 삶의 터전을 복구하는 일 역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이루기 어렵다.
작품 속 두 대의 피아노 가운데 한 대는 현이 제거돼 정상적인 소리를 내지 못한다. 건반을 눌러도 소리가 완성되지 않는 피아노의 모습은 자연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무력감과, 그럼에도 계속 움직이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몸짓을 떠올리게 한다.
이 영상이 한때 교과서를 찍어내던 인쇄소의 불탄 벽에 투사된다는 점도 의미를 더한다. 문자를 통해 지식을 전달하던 장소가 이제는 이미지와 소리를 통해 재난 이후의 기억을 전하고 있다.
장소와 작품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설명하는 관계에 머물지 않는다. 불탄 건물은 산불 이후의 풍경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고, 강릉의 영상은 방콕 쿤스트할레가 품고 있는 화재의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방콕의 폐허에서 카오야이의 숲으로
방콕 쿤스트할레의 예술적 실험은 차이나타운의 옛 인쇄소에만 머물지 않는다.
운영진은 2025년 2월 나콘라차시마주 빡청 지역에 ‘카오야이 아트 포레스트(Khao Yai Art Forest)’를 개관했다. 방콕 도심에서는 교통 상황과 출발 지점에 따라 차량으로 약 2시간 30분에서 3시간가량 걸린다.
카오야이 아트 포레스트에는 리처드 롱, 루이즈 부르주아, 후지코 나카야, 엘름그린 & 드라그셋 등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이 숲과 지형을 따라 설치돼 있다.
방콕 쿤스트할레가 화재로 손상된 도시의 건축물과 예술의 관계를 탐구한다면, 카오야이 아트 포레스트는 작품이 나무와 풀, 비와 바람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두 공간은 겉모습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된 방향을 갖고 있다. 미술관의 벽과 온도, 빛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이른바 ‘화이트 큐브’에서 벗어나 작품이 실제 장소의 역사와 환경 속에서 존재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방콕에서는 불탄 벽과 노출된 구조가 전시의 일부가 되고, 카오야이에서는 숲의 성장과 계절의 변화가 작품에 개입한다. 예술을 건물 안에 가두기보다 도시와 자연 속에서 다시 바라보려는 시도다.
재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불꽃을 이어가는 일
전시장 한편에는 구스타프 말러의 말로 널리 알려진 문장이 소개돼 있다.
“전통은 재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불꽃을 이어가는 것이다.”
정확한 원전과 발언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있는 문장이지만, 이번 전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는 데에는 적절한 실마리가 된다.
전통은 과거의 형식을 그대로 반복한다고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강릉의 장단이 방콕의 옛 인쇄소에서 울리고, 강릉단오제의 공동체 정신이 태국 송크란의 정서와 나란히 놓일 때 전통은 새로운 장소와 시대 속에서 다시 해석된다.
방콕 쿤스트할레와 강릉의 만남 역시 과거의 상처를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불탄 공장과 산불 피해 지역을 나란히 보여주면서, 재난 이후 사람들이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다시 삶을 이어가는지를 묻는다.
방콕 차이나타운의 콘크리트 건물에는 여전히 불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제 그곳은 버려진 폐허가 아니다. 예술가가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고, 관람객이 서로 다른 도시의 기억을 마주하며, 지역의 경험이 국경을 넘어 연결되는 장소가 됐다.
폐허를 과거의 흔적으로 남겨두는 것과 그 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다르다. 방콕 쿤스트할레와 강릉의 이번 만남은 예술이 상처를 지워주지는 못하더라도, 그 상처를 함께 바라보고 다음 단계로 옮겨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글 사진 | 김종민 교민잡지 편집국장
www.facebook.com/BangkokKunsthalle
khaoyaiar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