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 소울 앤 솔드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26/08/25 12:14

 

낡은 것의 우아한 부활 ‘1981 소울 앤 솔드(1981 Soul & Sold)’

13억 바트 들여 되살린 더 몰 람캄행 빈티지와 음악, 예술, 중고 거래를 한데 묶은 ‘뉴스탤지어’의 실험
방콕의 쇼핑몰은 늘 새 것을 앞세워 경쟁해 왔다. 더 높고, 더 크고, 더 화려한 건물이 생길 때마다 오래된 몰은 이름을 바꾸거나 조용히 사라졌다. 그런 방콕에서 낡은 건물의 흔적을 지우지 않은 채 다시 문을 연 공간이 있다. 람캄행 소이 15와 17 사이, 한때 이 지역의 생활 중심이었던 더 몰 람캄행 자리에 들어선 ‘1981 소울 앤 솔드(1981 Soul & Sold)’다.

더 몰 그룹은 이곳에 13억 바트 이상을 투입해 연면적 약 10만㎡, 5개 층 규모의 문화·상업 공간으로 손질했다. 1983년부터 람캄행의 풍경 한쪽을 지켜 온 옛 건물은 2026년 7월 2일, 빈티지 패션과 중고 거래, 음악, 미술, 타투, 음식, 공연을 한 지붕 아래 묶은 새 공간으로 공식 개장했다. 주차 가능 대수는 약 1,300대로 소개됐다.

그러나 이곳을 그저 ‘복고풍으로 꾸민 쇼핑몰’이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1981 소울 앤 솔드가 내세우는 것은 물건보다 취향이고, 매장보다 사람이다. 대형 브랜드를 층마다 세우던 익숙한 백화점 문법에서 한발 물러나 수집가와 소규모 상인, 디자이너, 음악가와 창작자가 함께 판을 만드는 공간을 택했다. 전통적인 쇼핑몰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무대에 가깝다.

왜 하필 ‘1981’인가
이름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1981’은 더 몰 람캄행의 개점 연도가 아니다. 더 몰 그룹이 라차담리에 첫 점포를 열며 출발한 해가 1981년이고, 람캄행점은 그보다 뒤인 1983년 이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프로젝트 측은 1981년을 아날로그 세계가 개인용 컴퓨터와 비디오, 휴대용 음악기기 등 새로운 기술과 만나기 시작한 전환기로 해석한다. 과거를 그대로 복제하는 대신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사용하는 ‘뉴스탤지어(Newstalgia)’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오래된 건물에 새 페인트만 입힌 것이 아니라, 더 몰 그룹 자신의 출발점을 지금의 소비문화와 연결한 셈이다.

공간 곳곳에서 이 생각이 드러난다. 기존 구조의 거친 콘크리트와 낡은 재료를 살리고, 클래식 자동차와 오래된 음향기기, 브라운관 TV를 전시물처럼 배치했다. 패션·액세서리, 음악·미디어, 아날로그 기술, 예술·공예·디자인, 수집품, 생활 서비스, 식음료, 커뮤니티 등 여덟 분야가 느슨하게 섞인다. 반듯하게 칸을 나눈 쇼핑몰보다는 여러 취향이 한 건물 안에서 부딪히는 거대한 시장에 가깝다.


브라운관이 다시 켜진 자리
눈길을 붙잡는 것은 아날로그 감성으로 꾸민 엘리베이터 ‘야날로그(YAANALOG)’와 그 주변 공간이다. 구형 TV와 빈티지 사운드 시스템을 탑처럼 쌓아 올린 설치물 앞에서는 라이브 음악과 각종 커뮤니티 행사가 열린다. 스마트폰의 얇고 매끈한 화면에 익숙한 세대에게 두툼한 브라운관은 오히려 낯설고 새로운 오브제가 됐다.

1981년은 미국 MTV가 방송을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당시 첫 전파를 탄 뮤직비디오는 더 버글스(The Buggles)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였다. 이곳의 TV 설치물을 두고 현지 문화 매체들이 ‘MTV 혁명에 대한 오마주’라고 표현한 것도 그래서이다. 다만 ‘야날로그’라는 공식 명칭은 기본적으로 아날로그풍 엘리베이터를 가리킨다. 브라운관 탑 전체의 고유명사로 단정할 필요는 없다.

 

물건을 파는 가게보다 이야기를 만드는 공간
1층 ‘레트로 클럽’의 항통 바(Hang Thong Bar)는 영화 세트가 현실로 빠져나온 듯한 곳이다. 태국 영화 ‘몬락 낙팍(มนต์รักนักพากย์)’과 시리즈 ‘사투 2’ 등의 미술 작업에 참여한 판투앙 아트워크(พันธุ์ทางอาร์ตเวิร์ค) 팀이 공간을 만들었다. 옛 금은방을 연상시키는 장식과 태국식 복고 미학이 서구식 빈티지 바와는 다른 맛을 낸다.

같은 층의 1981 갤러리 라이브러리는 책을 조용히 꽂아 두는 도서관과 거리가 있다. 영상과 소리를 결합한 ‘소리 나는 문학 공간’을 표방하며, 책의 구입·판매·교환 뿐 아니라 커뮤니티 토크, 음악 치유, 예술 프로그램을 위한 장소로 기획됐다. 책을 매개로 사람들이 머물고 대화하도록 만든 일종의 현대식 살롱이다.

2층의 타투 브라더스×1981 스튜디오는 타투를 은밀한 하위문화로 감추지 않고 동시대 예술의 한 장르로 꺼내 놓는다. 태국 안팎의 타투이스트가 작업하며 전시와 아트워크의 주제를 매달 바꾸는 방식이다. 한편 랩 라이브 룸(LAB LIVE ROOM)은 온라인 판매자와 크리에이터가 바로 방송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춘 라이브 스트리밍 공간이다. 한쪽에서는 낡은 청바지와 LP를 고르고, 다른 쪽에서는 실시간 온라인 판매가 진행된다. 이 어색할 듯한 공존이 오히려 이곳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준다.

4층에는 400~500명가량을 수용하는 1981 라이브 홀이 들어섰다. 음악 공연과 전시, 커뮤니티 행사를 한 건물 안에서 이어 가려는 장치다. 쇼핑을 마친 뒤 공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공연과 전시를 보러 온 사람이 자연스럽게 가게와 식당을 둘러보게 만드는 구조다.




‘헌 옷 시장’에서 ‘취향의 아카이브’로
태국의 중고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아란야쁘라텟의 론끌루아 시장을 비롯해 짜뚜짝과 빠타위껀 같은 시장은 오래 전부터 헌옷과 중고품이 모이고 흩어지는 유통 거점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모든 중고품이 빈티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누가 만들었는지, 어느 시대 물건인지, 상태와 희소성이 어떤지에 따라 가치가 갈린다. 싼값에 ‘구제’를 사는 시장과 맥락을 읽고 ‘아카이브’를 고르는 시장은 엄연히 다르다.

최근 태국의 변화는 바로 이 간격에서 나타난다. 오래된 밴드 티셔츠와 데님, 워크웨어, 군용품, 카메라와 음반이 단순한 헌 물건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수집품으로 거래된다. 판매자 역시 물건을 쌓아 놓는 데서 그치지 않고 출처와 연대, 스타일을 설명하는 큐레이터가 된다. 1981 소울 앤 솔드는 길거리와 주말시장, 온라인에서 자라난 이 문화를 대형 유통기업의 건물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렇다고 이곳을 ‘태국 빈티지 왕국의 완성판’이라고 치켜세울 필요는 없다. 중고품 유통의 상당 부분이 어디에서 들어오는지에 대한 공식 통계는 제한적이며, 미국·일본·한국산 물량이 국경시장을 거쳐 태국 전역으로 공급된다는 설명도 품목과 유통 경로에 따라 달라진다. 더운 기후가 빈티지 소비를 키웠다는 주장 역시 흥미로운 관찰일 수는 있어도 시장 성장의 원인으로 단정할 근거는 부족하다.





일부러 ‘완성하지 않은’ 쇼핑몰
1981 소울 앤 솔드가 흥미로운 또 하나의 이유는 입점 방식을 고정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운영사는 유명 빈티지 숍 같은 앵커 판매자뿐 아니라 특정 분야의 전문점, 수선·커스텀 서비스, 신진 창작자에게도 자리를 배분하고, 장기 임대와 매달 바뀌는 팝업을 함께 운영한다. ‘입점이 덜 끝난 몰’이라기보다 변화 자체를 운영 방식으로 삼은 셈이다.

물론 방문객의 입장에서는 다소 거칠고 들쭉날쭉하게 느껴질 수 있다. 어떤 매장은 문을 열고, 어떤 공간은 다음 행사를 준비한다. 빈틈없이 완성된 백화점을 기대한다면 낯설 수 있다. 반대로 방콕의 소규모 창작자와 수집가들이 무엇에 열광하는지 보고 싶다면, 그 미완성의 움직임이야말로 가장 볼 만한 장면이다.

현재 프로젝트가 안내하는 기본 운영시간은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다. 다만 개별 매장과 바, 공연·행사 시간은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공식 소셜미디어를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주소는 49 Ramkhamhaeng Road, Hua Mak, Bang Kapi이며 람캄행 소이 15와 17 사이에 있다.

1981 소울 앤 솔드의 성패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13억 바트의 투자가 ‘사진 잘 나오는 복고 공간’에 그칠지, 아니면 람캄행에 새로운 상권과 문화적 활력을 만들어 낼지는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새 건물을 올리는 일만이 도시를 바꾸는 것은 아니다. 이미 그 자리에 있던 기억을 지우지 않고, 다음 세대가 사용할 언어로 다시 번역하는 일도 도시 재생이다.

낡은 것은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되살아나지 않는다. 아직 쓸모와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 알아볼 때 비로소 다시 살아난다. 람캄행의 오래된 몰이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도 바로 그것이다.

글 사진 | 김종민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