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쏭왓을 꿈꾸다
방포(Bang Pho) 목재 거리와 새로운 공연예술 공간
'T. Nam Charoen Playhouse'
방콕의 오래된 동네들이 다시 읽히고 있다. 딸랏너이(Talat Noi)와 쏭왓(Song Wat)이 낡은 창고, 오래된 상점, 강변 골목을 바탕으로 젊은 세대의 발길을 끌어모았다면, 이번에는 방콕 북부 방쓰(Bang Sue) 구의 방포(Bang Pho)가 조용히 다음 장면을 준비하고 있다.
방포는 오랫동안 방콕의 ‘목재 거리’로 불려온 곳이다. 프라차 나루밋(Pracha Naruemit) 도로를 중심으로 목재상, 가구점, 목공소, 제재소, 조각 공방, 철물·가공 장비 상점이 밀집해 있다. 방콕에서 집을 짓거나 가구를 맞추거나 목재 인테리어를 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그런데 최근 이 거친 산업 골목 안에 새로운 공연예술 공간이 등장했다. 옛 제재소를 개조한 T. Nam Charoen Playhouse(ต.นำเจริญ เพลย์เฮ้าส์)다.
방포가 곧바로 쏭왓처럼 변한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오래된 산업 유산, 장인의 기술, 젊은 창작자들의 실험, 그리고 공연예술 공간의 등장은 분명 이 지역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드는 신호다. 방포는 지금 ‘완성된 핫플레이스’라기보다, 변화가 막 시작된 흥미로운 현장에 가깝다.
1. 방콕 목공업의 오래된 심장, 방포 우드 스트리트
방포의 핵심은 프라차 나루밋 도로다. 약 1km 남짓한 이 거리에는 목재와 가구, 목공 관련 업체들이 촘촘히 자리하고 있다. 원목, 합판, 문짝, 창틀, 가구, 목조 장식, 조각품, 공구, 부속품까지 한 번에 둘러볼 수 있어 건축·인테리어 업계 종사자들에게는 오랫동안 실무형 시장이자 장인의 거리로 기능해 왔다.
이 지역이 목재 거리로 성장한 배경에는 짜오프라야강과 방포 선착장을 중심으로 한 물류 환경, 그리고 방콕 도심의 목공·제재업이 외곽으로 이동하던 산업 변화가 자리한다. 예전에는 전문업자와 동네 주민 중심의 거리였지만, 최근에는 Bangkok Design Week, Bang Pho Living Lab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디자이너, 건축 전공 학생, 젊은 창작자들이 방포를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
방포의 매력은 ‘새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톱밥 냄새, 오래된 간판, 작업 중인 장인, 낡은 창고와 목재 더미가 함께 만들어내는 질감에 있다. 정돈된 쇼핑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살아 있는 산업 동네의 감각이 이곳의 가장 큰 자산이다.
2. 옛 제재소의 변신, T. Nam Charoen Playhouse
그 목재 거리 안쪽에 등장한 T. Nam Charoen Playhouse는 방포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곳은 과거 제재소와 목재 사업장이 있던 건물을 공연예술 공간으로 개조한 장소다. 외관만 보면 주변 창고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높은 천장과 넓은 구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특히 기둥이 시야를 가리지 않는 긴 스팬 구조는 공연 공간으로서 강한 장점을 갖는다. 새 극장처럼 매끈하게 다듬어진 공간이라기보다, 목재 산업의 흔적을 그대로 품은 채 무대와 객석, 이동형 공연, 실험적 퍼포먼스를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한 장소에 가깝다.
최근 이곳을 처음 알린 프로젝트는 House of Mask & Mime 등이 참여한 몰입형 공연 A Pa Tour였다. 관객이 건물 안 여러 방을 이동하며 짧은 공연들을 차례로 만나는 방식으로, 극장 자체를 하나의 무대로 활용한 시도였다. 방포라는 지역성과 옛 제재소라는 공간성이 공연의 일부가 된 셈이다.
아직 T. Nam Charoen Playhouse는 매일 공연이 열리는 상설 극장이라기보다, 프로그램과 공간 운영을 확장해 가는 신생 공연예술 거점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다만 방콕에서 독립 공연예술 전용 공간은 여전히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곳은 방콕 연극계와 퍼포먼스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3. 공간이 공연을 바꾸는 순간
T. Nam Charoen Playhouse의 흥미로운 지점은 단순히 “낡은 건물을 멋지게 고쳤다”는 데 있지 않다. 이 공간은 공연의 형식 자체를 바꿀 여지를 갖고 있다. 전통적인 극장처럼 무대와 객석이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방과 복도, 창고형 공간, 야외 공간까지 공연의 일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무대에 오른 1인 공연 역시 이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 배우가 자신의 몸과 목소리, 기억과 서사를 중심으로 무대를 채우는 형식은 화려한 장치보다 공간의 밀도와 배우의 호흡에 크게 의존한다. 방포의 거친 산업 공간은 그런 공연에 오히려 현실감을 더한다. 말끔한 블랙박스 극장에서는 얻기 어려운 질감이다.
이곳에서의 공연은 관객에게도 다른 태도를 요구한다. 앉아서 완성된 무대를 감상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간 안으로 들어가고, 이동하고, 가까운 거리에서 배우의 호흡을 마주하는 경험에 가깝다. 방포의 변화가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곳은 단순한 카페 거리나 포토존이 아니라, 오래된 산업 공간이 예술의 방식으로 다시 쓰이는 현장이 되고 있다.
4. 방포 나들이 동선 : 목재 거리, 로컬 맛집, 공연예술
방포는 아직 대규모 관광지처럼 정비된 동네는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반나절 정도 천천히 걷는 방식이 잘 어울린다.
아침이나 점심에는 방포의 대표 노포 중 하나인 Pae Brass Pot Porridge 38 Years를 들러볼 만하다. 1962년부터 이어져 온 조주식 죽 전문점으로, 미쉐린 Bib Gourmand에도 이름을 올린 곳이다. 방포역과 가까운 Jek Mai Coffee에서는 태국식 전통 커피와 오래된 로컬 다방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오후에는 프라차 나루밋 목재 거리를 천천히 걸어보는 것이 좋다. 작업 중인 목공소, 목재 더미, 오래된 간판, 가구점이 이어지는 풍경 자체가 방포의 가장 중요한 볼거리다. 중간에 휴식이 필요하다면 MRT 방포역 인근의 Bangpho Story처럼 카페와 숙박 기능을 함께 갖춘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저녁에는 T. Nam Charoen Playhouse의 공연 일정을 확인해 관람을 계획해 볼 수 있다. 공연이 없는 날이라면 방포의 야식 식당을 찾는 것도 좋다. Hia Bae Bangpho는 1961년을 뜻하는 ‘2504’를 내세운 오래된 식당으로, 태국식·중국식 반찬과 두부 요리, 해산물 요리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방포의 저녁 코스다.
마치며 :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더 흥미로운 동네
방포를 ‘제2의 쏭왓’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직은 조금 이른 표현일 수 있다. 쏭왓이 이미 카페, 갤러리, 레스토랑, 관광 동선이 결합된 상업적 성공 사례로 자리 잡았다면, 방포는 아직 목재 산업의 현장성이 훨씬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방포의 매력이다. 이곳은 아직 지나치게 다듬어지지 않았다. 거리의 주인공은 여전히 목재상과 장인들이고, 새로 들어온 창작 공간들은 그 옆에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다. 오래된 산업이 사라진 자리에 예술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 산업의 기억 위에 예술이 덧입혀지는 과정이다.
T. Nam Charoen Playhouse는 그 변화의 상징적 출발점이다. 방포가 앞으로 어떤 속도로, 어떤 방향으로 변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의 방포는 분명 방콕의 도시 재생 지도를 다시 펼쳐보게 만드는 동네다. 완성된 핫플레이스를 소비하기보다, 변화가 시작되는 순간을 직접 목격하고 싶은 이들에게 방포는 지금 가장 흥미로운 목적지 중 하나다.
인스타그램 : @t.namcharoen.playhouse
60년 세월을 끓여낸 황동 냄비의 마법, 방포 '빼 족 모 통루앙' (Pae Brass Pot Porridge)
방콕의 화려한 스카이라인과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향연 속에서도, 진정한 미식의 뼈대는 좁은 골목길 노포의 낡은 화구 위에서 완성되곤 한다. 거친 톱밥 냄새가 흩날리는 방포(Bang Pho)의 '우드 스트리트' 초입, 이른 아침부터 뭉근하고 구수한 향기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이 있다. 1962년부터 3대째 조주(Teochew)식 죽의 원형을 지켜오며 미슐랭 빕 구르망의 영예를 안은 '빼 족 모 통루앙(แป๊ะโจ๊กหม้อทองเหลือง)’이다.
3대를 이어온 조주(Teochew)식 죽의 정수
태국식 죽인 ‘쪽(Jok)'은 쌀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곱게 갈아 끓여내는 것이 특징이다. 그중에서도 태국 내 화교 사회의 뿌리 깊은 식문화를 대변하는 조주식 방식은 육수의 깊이와 고명의 섬세함에서 그 내공이 갈린다.
'빼 족 모 통루앙'은 무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일 새벽 고기를 삶고 쌀을 불려 냄비를 올린다. 화려한 기교나 현대적인 퓨전 요소는 일절 배제한 채, 쌀과 물, 그리고 오랜 시간 우려낸 육수의 완벽한 비율만으로 속을 편안하게 달래주는 궁극의 한 그릇을 완성한다.
내장 특유의 잡내를 잡은 섬세한 조리법
한국의 국밥이나 해장국에 익숙한 교민들의 입맛을 단숨에 사로잡는 포인트는 바로 완벽하게 조리된 '고명’이다.
기본적인 다진 돼지고기(무쌉) 외에도 곱창, 간, 위 등 돼지 내장 부위를 선택할 수 있는데, 역사 깊은 노포답게 내장 특유의 누린내를 완벽하게 잡아냈다. 여러 번 씻어내고 삶아내는 고된 전통 전처리 방식을 철저히 지킨 덕분에, 내장의 식감은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우면서도 잡내 없이 깔끔한 고소함만을 남긴다. 여기에 신선한 굴이나 큼직한 생선 살을 추가하면 바다의 감칠맛까지 더해져 그릇을 비울 때까지 지루할 틈이 없다.
총평 : 위로가 되는 따뜻한 한 그릇
타국 생활에서 때로는 화려하고 자극적인 만찬보다, 속을 편안하게 데워주는 소박한 국물 요리가 간절해질 때가 있다. '빼 족 모 통루앙'의 죽은 단순한 허기를 채우는 음식을 넘어, 오랜 시간 정성으로 끓여낸 '위로'에 가깝다. 방포 지역의 오래된 골목을 탐방하기 전, 든든하고 따뜻한 시작을 원하신다면 주저 없이 추천하는 곳이다.
[이용 안내]
◆ 상호명: 빼 족 모 통루앙 (แป๊ะโจ๊กหม้อทองเหลือง 38 ปี)
◆ 위치: 320 ถนน ประชาราษฎร์สาย1, แขวงบางซื่อ บางซื่อ, กรุงเทพมหานคร (MRT 방포역 인근)
◆ 추천 메뉴 :
★ 쪽무 (Jok Moo): 다진 돼지고기를 넣은 기본 죽
★ 쪽 크르엉 나이 (Jok Kruang Nai) : 돼지 내장을 듬뿍 올린 죽
★ 계란(카이 루억)이나 피단(카이 이아우 마) 추가 필수
◆ 영업시간 : 매일 06:00 ~ 2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