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세설] 군부통치ㆍ입헌군주제ㆍ자유민주주의의 변증법을 향한 외침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20/10/29 15:02

"폼 탐 쾀핏 아라이 러? (내가 대체 뭘 잘못했다는건가?)"...

우리나라 4.19 혁명과 유사한 성격의 '태국 10.14혁명(씹씨뚤라)이 일어난지 47년 만인 지난 10월 14일을 기해 방콕의 주요 도심에서 일제히 확대 점화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연일 격화 일로를 걷고 있다.

테국에서는 1932년 입헌 군주제를 도입하면서 촉발된 군사쿠데타를 시작으로 무려 19번이나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는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런 정치불안정 사태가 벌어지는 가운데 크고 작은 민주주의 변혁 운동이 잇따라 발생했는데 그 중 가장 큰 유혈사태를 야기했던 1973년의 '씹씨뚤라(10.14, 태국판 피의 일요일) 혁명은 태국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지주다. 이번 시위를 주도중인 것으로 알려진 '자유청년연합’과 ‘탐마삿 공동연대'라는 시민사회운동 단체가 본격적인 시위를 10월 14일 자에 맞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 바리케이트를 사이로 대치중인 경찰 측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시위대 측 대학생 소녀의 모습./사진=자유청년연합 홈페이지

지나온 태국 현대사에서 학생운동을 배경으로 한 민주진영의 움직임은 군사정부에 의해 번번이 와해되었다. 그 과정에서 왕권의 중재와 재가 절차가 행해졌고 이는 곧 태국적 정치상황의 특이성으로 세계사에 회자되곤 하였다.

일각에서 '1973년 씹시뚤라 혁명'의 데자뷔 현상으로까지 언급되고 있는 현재의 반정부 시위는 ①총리 퇴진 ②정부가 상원의원에게 총리선출권을 부여한 현행헌법에 대한 개헌 ③입헌군주제 개혁을 주요 요구사항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중, 태국의 현대정치사 변혁과정에서 단 한번도 구체적으로 제기된 바 없는 ‘입헌군주제 개혁’ 관련 요구사항은, 소위 '옐로우'로 불리워지는 정치세력 측과 '시위대 측'의 첨예한 반목이 우려되고 있는 부분이다.

■ 연일 방콕 시내 중심가에서 종횡무진 벌어지는 새로운 차세대 태국인들의 가두집회

지난 14일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수의 군중이 방콕 시내 곳곳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태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반정부 가두집회가 벌어지면 참가자 수에 대한 보도가  '주최측 집계'와 '경찰측 집계'로 판이하게 다르게 발표되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70,80년대 격동의 한국 현대사의 한 복판에서 무수히 많은 시위 상황을 지켜 본 우리나라 사람들로서는 작금의 방콕에서 벌어지는 시위대의 인원 수만 보더라도 한 마디로 '예삿일이 아니다'라는 것을 단박에 직감케 된다.

2014년 레드셔츠 사태의 유혈진압과 함께 등장한 현 군사정부에 맞서던 시위세력들이 사용하던 영화 ‘헝거게임’의 세 손가락 동작이 다시 등장했고, 예전의 시위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입헌군주제 개혁론까지 내세우는 '엄청난 수의 시위 참가자'를 볼 때면 그 누구도 작금의 시위정국에 대해 걱정치 않을 수 없다.

자신의 퇴진을 첫번째 요구사항으로 내세운 위태롭고 우려스러운 시위정국에 직면한 쁘라윳 총리가 최근 언론매체와의 대화에서 뭔가 화난 듯한 얼굴로 기자들에게 일갈한 말이 세간의 화두가 되고 있는데, 다름 아닌, "폼 탐 쾀핏 아라이 러?(내가 대체 뭘 잘못했다는건가?)"......

■ ‘바트 경제권’ 명예 실추 속… 코로나 사태 아세안 최하위 경제성장률 트리거 방아쇠로

소위 '바트 경제권'이라는 함축된 표현으로 인도차이나 반도의 경제 리더십을 가진 국가로 회자되던  태국이 '중진국 함정'에 빠져있다는 소리를 들은지 벌써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는지 말이다.

‘정치권력과 부의 편중에 휘말린 일방통행적 정치경제 인프라로 말미암은 중진국 함정에 빠진 태국경제 위기론’이 대두된 지 이미 오래다. 그런데도 어떤 제대로 된 처방을 통한 치료나 수술 없이 그저 2014년 군사쿠데타로 대충 봉합되어졌었고2020년의 코로나 경제난국이 뇌관을 형성한 상황에서 대규모 시위대의 등장이 트리거(방아쇠) 작용을 하게 된 셈이다.

"부자가 망해도 삼대는 간다고 하니, 태국은 원래 그렇게 끓었다가 식기를 반복하며 지속력을 이어가는 테프론 경제국가여서 크게 걱정할 것 없다"라고만 볼 수 없는 상황임을 '태국을 아끼고 연구하며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총리가 "폼 탐 쾀핏 아라이 러?(내가 대체 뭘 잘못했나?)"... 하면서 권좌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며 계엄령을 통한 통행금지령을 내릴 수도 있으나 아직 시기상조일 뿐이라고 일갈하는 모습을 내외신 언론들이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 총리실 기자회견장에서 "폼 탐 쾀핏 아라이 러?(내가 대체 뭘 잘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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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나지 않을 것이며 계엄령을 통한 통행금지령을 내릴 수도 있으나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일갈하는 쁘라윳 총리./사진=꾸릉텝투라낏

■ 군부통치ㆍ입헌군주제ㆍ자유민주주의의 변증법

1946년에 19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지난 2016년 서거할 때까지 온정주의적 덕치를 통해 아버지이신 나의 왕(Father, My King)으로 국민들에게 각인된 푸미폰 아둔라야뎃 선왕. 그리고 그를 군주(君主)이자 법왕(法王)으로 섬기며, 태평성대적 역사를 이끌어 온 것을 기억하는 국민들이 다수 존재하는 태국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시시각각으로 격변하는 현대사적 정치경제 환경 속에서 앞으로의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차세대 젊은이들이 있다.

천성적으로 보일 정도로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려는 성향을 지닌 태국민들이 연일 수 만명이 넘게 거리로 쏟아져 나와 가두시위를 이어가는 믿기지 않는 사회현상을 어찌 한국에서 대당 2천5백만 바트에 수입했다는 물대포 차량 3대로 막을 수 있을 것인지.


▲ 임시 휴회에 들어갔던 국회에 군병력이 투입되는 모습./사진=자유청년연합 홈페이지

진압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발사한 바로 다음 날, 주요 언론매체에서 1,008명의 의사들이 실명 연대서명으로 살상력 우려가 있는 물대포의 위험성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태국민들이 살아가는 나라가 태국 아니던가 말이다. 그런데 어찌 총리 1인의 ‘내가 대체 뭘 잘못했다는 말인가’라는 넋두리성 발언으로 이 사태가 종결되어질 수 있겠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부디 시위대 측과 정부 측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을 일치시켜 나감으로써 이 사태를 현명하게 조망하고 극복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적 사상에 입각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혁해 냄으로써 앞으로 전진해 나가야할 것 아닌지 싶다.

태국국민들이 '군부통치와 민주주의'가 뒤섞인 이번 시위 과정에서 태국 현대사의 변증법적 발전을 이루어 내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