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세설] 변화의 기로에 멈춰선 태국의 색깔론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20/07/22 08:16

[전창관의 방콕세설] 변화의 기로에 멈춰선 태국의 색깔론

 

흰바탕 위의 붉고 파란 색상의 삼색기와 옐로우의 조화에 담긴 태국의 지난 날과 미래

태국은 인류사에 있어 가장 오래된 통치형태로 일컬어지는 군주제를 유지하면서도 인간존중을 기반으로 한 불교를 토대로 국회제도라는 다수결 민주주의 원칙을 수용한 입헌군주제의 나라이다.


▲ 태국어로 통 뜨라이롱(ธงไตรรงค์)이라 불리우는 태국의 상징 삼색기./사진=나무위키, 위키피디아 갈무리

태국 국기에 반영된 세가지 색깔은 ‘붉은색’이 국민과 국가를, ‘흰색’은 불교, 그리고 ‘청색’은 국왕을 상징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국민을 하늘과 땅의 근간으로 삼아 불교적 정서를 신봉함과 동시에 국왕 수호를 국체로 삼고 있다. 흔히 태국인들의 내재적 자존심이 강한 이유를 ‘수코타이 왕조 설립 이래 780여년 내내 독립을 잃고 식민지로 전락해 본 적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크게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실제로 태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외세의 지배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국가적 독립유지 역사와 관련한 자부심에 대해서는 크게 내색하지 않는다. 그 보다는 오히려 격동의 2차대전 이후 현대사에 있어 인도차이나 반도의 제 국가들이 극도의 이데올로기적 혼란과 정치적 리더십 부재로 말미암은 후진 경제적 저개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던 것에 반해, 자신들은 ‘불교적 신앙심을 토대로 국왕을 따르며 온 국민이 합심해 이룬 민주주의 체제하에 아세안 2위의 경제대국으로 자리 잡았다’라는 부분에 더 큰 자긍심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 세계 75억 인구의 2분의 1을 점유하고 있는 아시아의 6억 4천만명의 땅 아세안에서 나름 바트경제권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선도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태국을 만들어 낸 화두가 되는 색깔은 누가 뭐래도 ‘국민=적색(赤), 불교=백색(白), 국왕=청색(靑)’이라고 보는 이유다.

■ 자연친화적 천혜의 땅과 전통 문화 위에 타이니스(Thainess)를 뿌리 내린 나라

태국의 정치 역사적 색채가 ‘적색(赤)·백색(白)·청색(靑)’으로 국기에 반영되어 있듯이 국가 융성의 토대를 만들어 낸 기반환경을 이루고 있는 색채 역시 다름 아닌 빨간색과 청색이다.


태국인들이 살아가는 사회문화적 생활환경에서 늘상 접하는 태국의 색깔들./사진=태국 환경부 홈페이지/태국 국기박물관 유튜브/엘리펀트 아리나 스타디움 유튜브 갈무리

예전에 가전제품 판매 주재원으로 방콕에 근무할 당시, 태국의 시랏차 지역에 대규모 백색가전 냉장고 생산공장 신축을 확정지은 상태에서 현지 생산 냉장고의 컬러 결정을 위해 본사의 일본인 디자인 고문이 초빙되어져 태국을 방문했었다. 백색가전이라 함은 말 그대로 세탁기와 냉장고 등을 총칭하는 흰색 가전제품 (White Goods)을 일컫는 용어인데 태국은 그 당시만 해도 열대지방 사람들의 원색 선호 성향 때문인지 방콕의 백색가전제품 매장에는 흰색 외에 상당부분 ‘빨·주·노·초·파·남·보’의 다양한 색상의 냉장고가 소비자들에게 선호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신설될 공장에서 어떤 색깔의 냉장고를 생산해야 할지를 정하는 일은 공장 가동을 앞둔 상황에서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었다.

본사에서 출장 온 동남아에 정통한 관록있는 일본인 디자인 고문과 함께 3박 4일간 가전제품 매장은 물론 태국인들의 주거 생활환경과 그외 자연환경 및 전자제품 쇼핑 인프라 등을 함께 두루 돌아보았다. 당시 출장 온 초로의 디자인 고문이 내렸던 태국 냉장고 컬러 마케팅을 위한대표 색상은 다름 아닌 빨간색, 녹색, 파란색 그리고 노란색이었는데 따져보면 태국 국기에 표시된 ‘적색(赤)과 청색(靑)’에 ‘노란색’이 추가된 개념이었다.

태국인들이 주거해 온 전통가옥은 붉은 빛을 띤 티크 계열의 목재를 주로 사용해 만들어졌으니 태국인들의 눈에 ‘빨간색=붉을 적(赤)색’은 어려서부터 늘 보아오던 익숙한 색깔이며, 국토의 태반이 푸르른 숲과 수로로 이어져 있으니 ‘녹색과 파란색=‘푸를 청(靑)색’이고, 전국 어디를 가나 도처에 눈에 띄는 무려 4만 5천여 곳에 달하는 황금빛 첨탑 모양의 사원과 왕실의 색인 ‘노란색=누루 황( 黃)색’이 태국의 대표색 이라는 것인데, 순간 무릅을 탁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태국의 국기인 삼색기의 ‘적(赤)·백(白)·청(靑)색’과 태국인들이 그들의 삶에서 늘상 접하는 3가지 대표 색깔인 빨간색(전통가옥), 청녹색(열대 숲과 물) 그리고 노란색(황금빛 사원과 왕실)을 활용해 태국의 냉장고 컬러마케팅을 실행키로 했다. 한 마디로 백색가전이라는 대명사를 만들어낸 색이자 태국 국기에 국민과 국가로 표시된 하얀색과 더불어 빨간색, 녹색, 파란색, 노란색 냉장고가 제작되어졌고 그에 따른 시장반응은 뜨거웠으며 판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 태국국기에 나타나 있는 적,청,백색의 색깔을 따서 만든 기존 보수정당들 당기와 새로운 제3의 진보계열 정당인 신미래당의 오렌지색 당기./사진=각 정당 홈페이지 

■ 통뜨라이롱(ธงไตรรงค์) 삼색기 위의 옐로우와 레드의 대립이 뒤섞여 만들어낸 오렌지 색깔의 ‘팍 아나콧 마이(신미래당)’의 등장과 태국 정치사회의 앞날 

세월이 흘러 2014년 군부 쿠데타를 전후로 한 갖가지 정치 경제적 상황이 급변할 때마다 태국민들이 들고 나왔던 각양각색의 깃발에 반영된 색깔은 역시 그들의 국기인 삼색기와 생활환경에서 친숙해져 있는 빨간색, 하얀색, 파란색과 노란색 일색이었다. 팔랑쁘라차랏, 프어타이, 쁘라차티빳, 품짜이타이 당 등 각양 각색의 보수 정당들이 그들의 당을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출몰했지만 그들 정당의 깃발색은 역시 여당과 야당 할 것 없이 태국 국기의 삼원색 일색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2019년 총선을 전후해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색깔이 독야청청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다름아닌 진보성향의 타나턴 당대표가 이끄는 오렌지 색깔을 상징색으로 채택한 ‘아나콧 마이(신미래당)’였다.

태국을 굳건한 아세안 2위 경제대국으로 만들어낸 보수세력이 오랜 정치적 횡보와 경제적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젊은 유권자층을 기반으로 틀에 박힌 보수적 성향의 색깔이 아닌 전에 없던 새로운 색깔인 ‘오렌지 색’을 당기로 채택한 정당이 출현한 것인데, 일시에 무려 627만 표를 획득해 87석의 의석을 차지해 3위 정당으로 껑충 솟아올라 태국의 정치판도를 뒤바꿔 버린 것이다.

그러나 오렌지색 깃발의 새로운 정당에 대한 상당 수 국민들의 기대는 잠깐이었을 뿐이었고 , 정치적 압력에 휘말려  ‘아나콧 마이(신미래당)’은 이내 해체되고 말았다.

“떡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다”고 했던가, 장구한 세월 속에 삼색기 색깔에 너무도 익숙해진 태국의 정치는 오렌지 색이라는 새로운 색깔에 대한 적응에 실패한 채 세월을 보내고 있다. 언제, 어떻게 또 다시 태국의 정치사회라는 팔레트에 이전에는 없던 색깔이 올려져 태국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새로운 제3의 색깔을 구현해낼지, 그 선택은 태국의 민주주의 라는 캔버스를 앞에 놓고 붓을 거머쥔 태국 국민들의 손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