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세설] ‘김치’를 김치라 부르지 못하고 ‘파오차이’에 이어 ‘신치’로 부르자는 사람들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21/10/13 12:01

[전창관의 방콕세설] ‘김치’를 김치라 부르지 못하고 ‘파오차이’에 이어 ‘신치’로 부르자는 사람들 
“How about Bibimbap for lunch today(오늘 점심으로 비빔밥 어때)?”가 정답이다!

한식문화의 진흥 및 우리나라 요식업의 국내외 확산을 통한 식품과 문화관광산업의 발전에 기여할 목적으로 농림축산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한식진흥원의 ‘김치’에 대한 한자 문화권 국가 내 호칭 사용 문제가 세간의 비판을 받고있다. 중국이 문화동북공정 차원에서의 움직임으로 김치를 ‘파오차이(泡菜-채소를 염장한 중국 쓰촨성 지역의 염장요리로 피클에 가까운 음식)’라고 호칭하는 과정에서 ‘리쯔치’라는 유명 유튜버를 비롯한 중국 네티즌들이, “김치가 중국의 파오차이를 한국이 훔쳐다가 자신들의 것인 양 이름만 바꾼 것” 운운하는 과정에서 ‘김치 원조국가=중국론’을 주장해 파란을 불러일으켰던 바 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 이를 비판하는 여론이 비등하고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C)가 한국의 김치와 중국의 ‘파오차이’라는 피클류의 염장채소와의 차이점을 명문화 하는 등의 과정에서 황당한 ‘김치=파오차이 논란’이 사그러든 바 있다.


▲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한식진흥원에서 발간한 각종 홍보자료들 마저 김치를 '파오차이'로 명기했었던 상황을 언론 매체가 보도하는 모습 / 사진 : 채널A 뉴스 화면캡처  

■ ‘김치→파오차이→신치’ 논란의 중심에선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한식진흥원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얼마 전에, 연간 143억 원에 달하는 정부예산을 집행하는 한식진흥원이 온라인을 포함한 홍보물 여기저기에서 아직도 ‘김치’를 ‘파오차이’로 표기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다시금 크게 논란이 일어났다. 더 더욱 이해가 안가는 것은 이를 질타하는 국내 여론이 비등하자 ‘파오차이’로 표기된 각종 해외 홍보물을 수정하겠다며 나선 한식진흥원의 대안 행태이다. 이번에는 ‘파오차이’라는 표기 대신 ‘신치(辛奇)’라고 명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에서 조차 아예 김치의 중국어 번역 및 표기를 ‘매울 신’ 자를 써서 ‘신치’라고 호칭하겠다고 정부 훈령으로 의무화해 발표까지 한 것이다.

■ ’김치’는 김치라는 발음에 가장 근접한 현지어 음역 용어 사용해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지적자산화 해나가야 

설사, 중국어로 ‘김치’라는 단어를 정확히 발음할 수 있는 한자가 없더라도 ‘김치’와 유사한 발음과 의미의 한자를 사용하면 되는 것인데, 김치가 매우니 ‘매울 신’ 자를 사용해 ‘신치’라고 부르겠다는 정부 공공기관의 발상이 정말이지 너무 어이없게 들린다. ‘김치’에 ‘매울 신 자’를 쓰면 맵지않은 백김치와 동치미 등을 포함하는 의미가 아니라는 부분도 있다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는 본말을 흐리는 부차적인 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렇게 우리 스스로 고유의 명사를 마음대로 변형해 쓰기 시작하면, 무엇보다도 문제시 되는 부분은 우리 본연의 독자적 상징(Identity)을 띈 ‘김치’라는 고유명사를 유지 보존해 나가는 당위성이 저해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 '김치'를 '파오차이'라고 표기한 것이 비난의 화살을 받자 이번에는 '신치'로 표기할 것을 지침화한 한식진흥원 / 사진 : 채널A뉴스 화면 캡처

문화동북공정 논란이 일었던 ‘파오차이’라는 표기를 각종 대외홍보물에서 제대로 삭제하고 있지 않다가 여론의 도마위에 오르니, 후다닥 꿩대신 닭이라는 듯, ‘김치’를 ‘신치’라고 쓰겠다며 정부훈령으로 공표했다는 이야기인데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 상황이다. 우리의 전래음식인 순대를 순대(Sundae)로 표시하지 않고 ‘Blood sausage(피 소시지)’라고 표기하거나 ‘피 케익(Blood Cake)이라고 쓸 경우 적합한 호칭이 아니라는 점과 일맥상통하다는 지적도 있으나 이런 부분 조차 아주 경미한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한식에 대한 우리나라의 ‘고유지적자산화’ 추진 관점이다.

■ 음식세계화에 성공한 일본의 사례에서 배울 점 있다

자신들만의 특성을 가진 음식의 세계화에 성공한 일본의 경우를 보라.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우동’은 우동이라 칭하고, ‘사시미’는 사시미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스시’를 초밥이라고 칭하고 사시미를 생선회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일부 있지만, 그건 양국에서 공히 동일한 형태의 음식이 역사적으로 존재해왔거나 한일간의 지나간 불편한 역사에 대한 주체성 성립차원의 특수성이 가미된 경우라고 보아진다. 우리의 전통음식 ‘비빔밥’ 같은 경우도, 태국인들이 섞어서 무쳐먹는 요리 종류를 통칭해 ‘얌(ยำ)’이라 부르기에 일부 태국인들이 비빔밥의 형상을 보고 ‘카우얌까울리(ข้าวยำเกาหลี)= 카우(밥)+얌(비비다)+까울리(한국)’ 라고 칭하는 경우도 없지 않으나, 이 경우도 마찬가지 상황으로 ‘비빔밥’으로 호칭해 이런 문제점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 비빔밥을 태국에서 Bibimbap(บิบิมบับ)으로 불러야 하는 이유

즉, 태국에서의 경우, 가급적 ‘비빔밥(บิบิมบับ)이라고 불러야한다. 그래야만 비빔밥이라는 한민족의 유형유산격인 전래의 자산이 세계인들의 호평을 받는 과정에서 더욱 또렷이 우리의 것(Korean)으로 세계사 속에 각인되어 질 것이다. 이런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역사의식 부재적 문화자산에 대한 호칭이 일부 공공기관 근무자들의 획일적 작업으로 대의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사용되어지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특정집단 내에서 통용되어지는 용어(Terminology)는 그 집단의 의식을 지배한다. 그런 의식형성 과정에서 만들어진 유형과 무형의 자산들은 후대로 이어지며 문화와 역사를 구현해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김치’가 ‘파오차이’나 ‘신치’로 불리워지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문화동북공정을 꾸준히 추진하는 중국이, 언제가 세월이 흘러 후대에 “한국에는  ‘신치’라는 것이 없으니 신치는 김치와 다른 중국의 식문화 자산이다”라고 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 김치의 대외홍보 용어를 '김치'라는 고유명사 그대로 통일해 사용해야 함을 역설하는 민간 사이버 외교단체 '반크' / 사진 : 연합뉴스 화면 캡처
 

■ 빛의 속도로 이루어지는 지구촌 문화전파 상황 속에 우리 문화자산의 호칭에 깊이 주의 기울여야 

전 세계인이 날마다 지켜보는 넷플릭스(Netflix) 드라마를 통해 연일 우리의 의식주 문화가 전파되고 있는 세상이다. 그 중에서도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먹는 음식들을 통해 우리나라의 식문화 전파가 경이로울 정도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의 주인공이 김치를 먹는 장면에서 중국어 번역이 ‘파오차이(泡菜)’ 또는 ‘신치(辛奇)’라고 불리우지 않고 ‘김치’라는 발음에 가장 가까운 중국어로 칭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도대체, 우리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한 홍길동’들도 아닐진데 ‘왜 김치를 파오차이 아니면 신치로 부르게 조장하겠다’는 것인지 알길이 없다.

중국 정부에서 자신들의 지역명을 상해, 사천성, 천진 등으로 부르지 말고 상하이, 쓰촨성, 텐진으로 명기해 달라고 해서 우리는 이미 그렇게 호칭하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그런데 왜 우리 스스로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던 홍길동 노릇’을 자처해 ‘김치’를 ‘신치’라고 부르겠다고 정부 훈령화했다는 것인지 정말이지 기가 찰 노릇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세계인들이 점심시간에 일식 생선초밥을 먹고 싶을 때, “How about Sushi for lunch today(오늘 점심으로 스시 어때)?”라고 하듯이, 뉴욕에서, 파리에서, 동경에서, 밀라노에서, 베이징 거리의 사람들이 오늘 점심으로 비빔밥을 먹고 싶을 때 “How about Bibimbap for lunch today(오늘 점심으로 비빔밥 어때)?”라고 하는 모습이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