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관의 방콕세설] 스트리트 푸드 ‘꾸어이띠아우’와 ‘카우팟’ 의 소확행(小確幸)=안분(安分) 주의보
▲ Thai street food / 사진출처 : travelnostop.com
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물론 현지인들에게 조차 가성비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대표적 물가기준 산정 잣대가 있으니 다름아닌 스트리트 푸드의 대명사 ‘쌀국수’와 ‘볶음밥’ 가격이다. 남녀노소 내외국인 할 것 없이 한끼 간단히 때울수 있는 쌀국수와 볶음밥 가격이 방콕에서 한그릇에 ‘40 바트=1천 5백원’ 정도이고, 서울에서의 유사한 컨셉의 간단식을 ‘6천원=160 바트’ 하는 짜장면으로 상정해 볼때 양국간 가격 수준차는 무려 4배에 달한다.
80년대말 태국에서 쌀국수가 20 바트 정도 할때 한국의 짜장면은 1천원 정도였으니 태국에서 쌀국수 가격이 2배로 오르는 기간동안 한국에서의 짜장면 가격은 무려 5배가 인상된 셈이다. 쌀국수와 더불어 태국민들의 일반 대중식사인 ‘카우팟-볶음밥’의 노점 가격도 쌀국수와 비슷한 가격수준이고, 심지어 대중 교통수단인 택시의 기본요금도 쌀국수 한그릇 가격과 비슷한 35바트이다.
이러한 최저생계 관련 물가는 태국의 국가경제가 아직도 저임금 구조를 기반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호구지책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저물가 구조’를 지탱해주는 하나의 거대한 먹이사슬 구조라 볼 수 있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도 7080 시대를 거쳐오는 과정에서 자행된 저곡가 정책의 폐해로 파탄지경에 이르렀던 농촌의 노동인력이 도시로 유입되어 공업제품 생산현장 저임금 인력으로 충당되어지는 일종의 산업화 먹이사슬이 형성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왜곡된 임금구조와 산업생산비의 모순된 상관관계는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경제구조의 근간을 혼란스럽게 뒤흔들곤 한다.
▲ 한국 vs 태국 물가 비교 / 사진출처 : MBC 오늘아침
그런데 태국은 그에 한술 더떠서 이런 저곡가,저임금 그리고 낮은 식비 정책을 ‘외국관광객에 대한 가성비 천국 인프라’를 유지케 하는데까지 활용하는 이원적 목적의 ‘저물가 정책’을 써왔음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태국 물가도 예전 같지않다느니’, ‘한국의 짜장면의 풍미(?)에 어떻게 태국 안남미 쌀국수를 가져다 대느냐’며, ‘택시가 싸면 뭐하냐 승차거부에 뭐에 진저리 난다’ 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이러한 저비용 생계비의 메리트는 한국인을 포함한 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부정할 수만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태국 산업경제의 기본골격을 떠받쳐주는 최하단부에는 저렴한 ‘쌀국수와 볶음밥’은 물론 낮은 가격의 ‘택시비와 버스비’ 그리고 사방 팔방을 내달리는 이동수단인 ‘싼값의 오토바이’ 유지비가 존재하고 있다. 또한, 이런 물가구조에서 발생하는 ‘별리된 생계비 비교우위’, 즉 ‘외국인이 자국에서 벌던 절대금액 만큼 태국에서 벌어서 태국에서 쓰고 살아가면 자국에서 보다 상대적 생활수준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기대감속에 오늘도 무수히 많은 외국인들이 태국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태국에서 생활하며 이래저래 쌀국수 한그릇으로 한끼 식사를 때울 때면 이러한 소비지출 경제구조를 만들어 운용하는 이면에 꼽혀있는 일종의 자본 빨대(?)와 ‘꾸어이띠아우’의 경제학’ 그리고 ‘카우팟’ 정치학’을 떠올리게 된다. 이런 구조를 둘둘 엮어가며 상층부에서 그런 불가분 관계에 놓여진 산업구조의 수혜를 누리는 세력들을 말이다.
뭐랄까, 태국에 사는 외국인으로서 사무치게 이들에게 고마움이라도 느껴야 하는 것일지, 그도 아니면 태국민들을 대신해서라도 분노해야 하는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오늘도 이유 고하간에 꾸어이띠아우 한그릇 잘 먹고는 지갑에서 20 바트 2장을 내밀며 방콕키안으로의 행복아닌 행복을 느끼는 것을 보면, 어느새 너무 Very Thai 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 경제고통 가장 작은 나라 태국 / 사진출처 : 블룸버그
적은 소득으로도 분수에 맞게 여유있는 마음으로 안분(安分)의 세계를 구가하며 살아가던 태국 국민들이, 최저임금정책과 물가인상이 맞물려 발생하는 생계비 비조화로 인한 황색 경보에 시달리고 있다.
바트화 한장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이 방콕키얀으로서 불편스럽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들도 언젠가 한번은 겪어야 할 경제발전 단계에 있어서의 변곡점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상정해 본다면 희망스런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제대로된 민주화와 산업화를 각각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병행 발전시켜나가느냐 하는 숙제가 태국민들에게 주어진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