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관의 방콕세설] 동남아 진출 지렛대 국가…왜 태국인가? ①
- 가깝고도 먼나라 태국...포스트 코로나 시대 맞이 신남방 진출 변주곡
우리나라 사람들의 태국에 대한 인지도는 일반적으로 매우 높다. 그도 그럴 것이 행세 꽤나 한다는 사람은 물론이고 시골 촌로들조차, 태국 관광 한 번 안가본 사람 찾아보기가 쉽지 않을 지경이니 말이다. 1989년 해외여행 완전 자유화 조치가 취해진 이후 30여 년이 흐르는 동안 태국은 소위 가성비 좋은 단체관광지로서, 심지어 향락관광의 대표적 목적지로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져 온 데다가, 근래 들어서는 젊은이들의 힐링여행지로서도 각광받고 있다.
▲ 마스터 카드가 발표한 '글로벌 여행지수 2019'에 의해 2016년부터 연속 4년간 세계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도시로 선정된 방콕. / 사진출처 : Tourism Authority of Thailand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2019년 목적지 국가 별 출국자 순위 자료를 봐도, 연간 188만 명의 국민이 태국을 '해외여행 출국 목적지'로 삼았다. 일본 1위, 중국 2위, 베트남 3위, 4위 미국에 이어 태국이 5위를 차지했다. 태국과의 국경이 육로로 맞닿은 각별한 지정학적 위치로 자국의 지방 나다니듯 태국을 오가는 말레이시아와 라오스를 빼면, 2019년 태국 입국자 수 1위를 기록한 중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입국자 수를 보인 나라도 한국이다. 일본인 태국 입국자 수마저 추월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무역협회(KITA)가 집계한 우리나라의 '2019년 대외 교역국 순위'는 1위 중국, 2위 미국, 3위 베트남, 4위 일본 5위 말레이시아로, 위에 열거한 한국인의 '해외 출국 목적지 국가' 5위권 반열에 들어가 있는 태국이 겨우 13위에 머물러 있다. 뿐만 아니라, 태국 투자청(BOI-Board Of Investment)이 집계한 우리나라의 대 태국 투자승인 순위도 2019년 12위에 머물렀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들이 신남방정책을 논할 때면 태국은 늘상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보다 훨씬 후순위에 놓이곤 한다.
물론, 인도네시아는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아세안 제일의 경제대국인데다가 국영항공기업 ‘디르간따라’가 다목적 비행기에 대한 대량생산체제까지 갖춘 나라이다. 베트남 역시 근래 들어 '빈패스트'라는 자국 브랜드로 승용차 생산까지 시작한 국가인 동시에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글로벌 판매 물량의 절반을 생산해 내는 국가다. 그러니 ‘들이댈 곳에 들이대야지 이 무슨 뚱딴지 같은 비교냐’고 말해대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뜨는 베트남, 지는 태국’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한 것도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인도네시아에 이은 아세안 2위경제대국인데다가 '어떤 외열에도 쉽사리 눌어붙지 않고, 식었다가 이내 열을 가하면 다시 달궈지는 내마모성 재질의 테프론 프라이팬’에 비교되곤 하는 태국 경제의 저력과 특성 역시 만만히 볼 수는 없다.
▲ CLMV국가를 포함한 동남아 지역의 기술교육과 물류 운송의 전략적 허브국가 태국.
태국은 아세안 2위 경제대국이자 2억 명의 인구를 포괄하는 인도차이나 반도와 중국을 이어주는 CLMV(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베트남) 4국 경제권역의 허브국가이다. 또한, 동북아 국가들을 13억 인구의 인도와는 물론 유럽과도 연결해주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항공과 해상교역의 환승지이자 중간기착지 일 뿐 아니라, 그에 상응한 물류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이런 장점을 살려, 동부경제회랑(Eastern Economic Corridor) 중점 프로젝트인 3대공항(돈므엉-쑤완나품-우타파오 공항) 고속철 연결사업, 동부해안공업지대의 우타파오 공항 MRO(Maintenance, Repair and Operation - 유지, 보수, 점검) 항공물류 허브화 사업 등을 확대 계승해 나가고 있다. 태국의 산업구조는 농업·광업·수산업 등의 비중이 약 17%, 관광산업이 약 12%, 건설업과 제조업이 약 30%, 유통업 약 20%, 그 외 분야 약 20% 내외로 구분된다. 관광산업의 GDP 직접 기여도가 약 12%로 적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렇게 1차, 2차, 3차산업 비중이 다원화된 산업구조를 가진 나라를 오로지 관광업으로 먹고 사는 나라로 인식하는 것은 큰 오산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 태국은 연산 2백만대 규모의 세계 12대 자동차 생산국. / 사진출처 : Honda Thailand 홈페이지
태국 전체 산업의 약 30% 내외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2차 산업분야에서 제조업 분야에 속한 전기·전자 부문과 자동차 산업 부문의 수출산업 기여도는 각각 20%와 15% 내외를 차지한다. 아세안의 디트로이트로 일컬어지는 연산 200만 대 규모에 이르는 자동차 산업과 전기·전자산업 분야의 밸류체인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태국의 기축 산업이다.
태국이 '비포 코로나 시대(Before Corona)시대’에 이미 연간 외국인 여행객 4000만 명을 돌파한 기록을 가진 명실상부한 관광대국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관광산업에서 직접적으로 얻어지는 외화획득 효과 외에 태국을 방문하는 수많은 여행객들을 통해 글로벌한 마케팅 거울효과(Mirroring Effect - 보고 느낀 것에 대한 공감대 형성)가 형성되어지는 것도 자명한 일이다.
수많은 태국 방문객들이 현지에서 접한 각종 브랜드 경험(Brand Experience)은 태국 내외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제품의 브랜드 확산 효과(Effects of Brand exposure)를 연출해 주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태국에서의 브랜드 마케팅에 성공하면 인근 동남아 국가는 물론, 연간 4000만 명의 방문객을 구성하는 다양한 나라들과의 글로벌 버즈마케팅(Buzz Marketing)이 자동으로 수반된다는 의미다.
■ 태국 시장 진출 한·일 비교 연대기
인구는 소비를 의미하고 소비는 곧 생산과 판매를 유발시킨다. 따라서 인구가 많을수록 소비 시장 규모는 커진다. 소위 '규모의 경제학'이다. 다만, 소득수준에 따른 구매력 매개변수 차이가 있을 뿐인데, 일반적으로 소비자 가전업계에서는 특정 국가의 괄목할 만한 가전제품 구매력이 생겨나는 가처분소득 1차 변곡점 단계를 1인당 국민소득(GDP) 5,000달러 상회 시점으로 본다.
하지만 IMF가 발표한 2020 세계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아세안 국가들 중에서 1인당 5,000달러 이상의 국민소득(GDP)을 보유한 나라는 통틀어 싱가포르(58,484달러), 브루나이(23,117달러), 말레이시아(10,192달러)와 태국(7,295달러) 정도로 국한된다. 그 뒤를 인당 5,000달러 이하의 인도네시아(4,038달러)와 필리핀(3,372달러), 베트남(3,497달러)이 잇고 있다.
위에 열거한 1인당 국민소득 5,000달러 이상의 ‘소비력 진작 분기점 상회 국가’들 중에서 태국만이 7,000만 명에 육박하는 인구 보유국이다. 나머지는 싱가포르 570만 명, 브루나이 40만 명, 말레이시아 3,160만 명 등으로 아세안 내 1인당 국민소득 5,000달러 이상 국가라 해도 인구 규모는 태국에 비해 크게 밑도는 나라들이다.
다시 말해, ‘1인당 국민소득과 인구’라는 두 가지 잣대를 고려 시, 제조된 유통되는 상품을 다각적으로 소비해 내는 일정규모 이상의 ‘내수 구매력 보유 규모 측면’에서 태국은 동남아 국가 내에서 최고의 적정 수준으로 무르익어 있다는 이야기다.
정치·경제 체제 측면에서 보면, 20세기 격변의 이데올로기적 현대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인도차이나 반도의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그리고 베트남 등이 사회주의 체제 하에 놓여있었던 것 대비, 태국은 1932년 입헌혁명 이후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입각한 자본주의 개방경제 체제를 지속적으로 표방해 나가고 있다. 태국이 군부·왕정·관료주위에 휩싸인 특이한 체제 속에 가로놓여 상당부분 중진국 함정에 빠진 채 허우적 거리는 상황이 있다고는 해도 사회주의 공산체제에 놓여 잃어버린 반세기를 겪어내야 했던 CLMV국가들과는 그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
게다가 2000년대 초반 경까지만 해도 태국은 바트 경제권(태국을 포함한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이라는 2억이 넘는 인구가 사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항공 및 해상 물류권을 장악했다. 베트남이 인도차이나 반도의 떠오르는 제조력 보유국가로 인식되는 현재도 CLMV 국가(크메르,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를 연결하는 해상운송로와 항공물류는 태국을 기점으로 편성되어 있다.
▲ 동부경제회랑(EEC)내의 주요 수출항인 램차방 항구의 모습. / 사진출처 : EEC추진 사무국
종교적 측면에서도 태국은 대부분의 국민이 불교도임에 따라 상대적으로 종교적 규범에 얽힌 제한 사유가 적은 편이다. 반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그리고 부르나이 등은 인구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여서 회교 율법에 따른 상대적으로 짙은 종교적 색체가 사회 전체에 크게 영향을 주고 있음을 감안할 필요도 있다. 이쯤되면 일본이 1970년대 들어 ‘엔고현상’과 대 유럽수출을 위한 ‘안티 덤핑’ 판정 회피 그리고 ‘일반특혜관세(GSP)’ 수혜라는 삼박자를 노려 동남아를 우회수출기지로 선택하는 과정에서 새 둥지로 왜 태국을 택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알 법도 하다. 전자제품과 자동차라는 핵심산업의 해외생산 수출전진기지로서 뿐 아니라 규모의 내수시장 가능성이 확보된 태국은 최상의 매력 보유국이었던 것이다.
2000년대 초 삼성전자 역시 “동남아의 지리적, 문화적 중심국가로 견실한 성장이 예견된다” 면서 태국시장의 의미를 ‘미·중·러·독·인도’와 같은 강대국들과 동등 수준의 의미를 가진 전략시장으로 상정했다. 소위 ‘삼성전자 6대 핵심국가(미국·중국·러시아·독일·인도·태국) 1등화 전략’이란 것을 수립해 전사적 마케팅 역량을 '태국'이라는 상대적으로 시장 규모가 작은 나라에 투입했다. 이 당시 삼성전자는 '미·중·러·독·인도' 등과 동등 수준의 천문학적 마케팅 비용을 태국에 쏟아부었다. 당시, 세계 휴대폰 시장 1위를 독주하던 노키아 역시 유럽 선진국 대형 시장에 버금가는 마케팅 비용을 태국에 쏟아부어 '선택과 집중, 전략국가시장'으로 육성한 바 있다.
■ 신남방 정책, '아세안 최대의 제조업 집적단지국 태국'은 지고 베트남이 뜬다?
2008년 무렵, 삼성전자가 탈 중국 정책에 집중하기 시작하는 과정에서 베트남 정부가 파격적인 외자투자 인센티브를 제시하여 대규모 휴대폰 제조단지를 베트남에 건립한 반면, 태국은 2005년 경을 전후로 중진국 함정에 빠져 경제성장 속도가 더뎌졌다. 이 와중에 2011년의 대홍수 천재지변과 2014년 군사쿠데타 발발에 맞닥트려져 경제가 장기간 횡보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태국이 정정불안으로 인한 경제전략 리더십 부재에 시달리는 동안 베트남은 국가전략 차원의 파격적인 외자기업 세제 인센티브와 젊은 노동력을 무기로 내세워 삼성전자의 거대투자 유치에 성공했던 것이다. 그 결과, 삼성전자가 베트남 전체 수출액의 25%를 생산해내는 가히 기현상에 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 1990~2020년 태국의 연도별 경제성장률. / 자료출처 : World Bank
삼성전자가 자사의 전 세계 휴대폰 공급량의 절반 가량을 생산하는 대규모 휴대폰 공장을 베트남에 건립하면서 한국기업들의 대 아세안 투자 무게중심은 현저히 베트남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은 2011년 태국 대홍수 이후 자동차와 전기·전자 부품의 조달처 일부를 태국 인근국가로 분산시키면서도 태국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아세안 역내의 실세로 인정받는 일본 기업들의 동남아 역내 밸류체인 본산은 예나 지금이나 태국이라는 이야기다.
올해 파나소닉의 가전제품공장 베트남 이전이 크게 뉴스화되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 역시 파나소닉이 태국 내 운영하고 있는 10개 공장과 20개 사업부 중 800여 명이 근무하는 2개 백색가전 대형제품 사업부를 베트남으로 이전했을 뿐이다. 나머지 18개 사업부의 1만 3700명의 종업원은 태국에서 가전소형물과 밧데리 제품 등의 주력 부가가치 사업 생산공장을 태국에서 지속적으로 운영중에 있다. 뿐만 아니라, 태국 내 진출해 있는 일본의 10여개 전자회사 중 파나소닉은 태국 내 전체 전기·전자계열 사업체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외 아세안 역내외의 수출을 위한 제조사들의 생산과 상품개발 기반은 지속적으로 태국 내 유지중이다. 반면 태국 내 진출한 한국 가전업체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있을 뿐인데, 그나마 두 회사 모두 베트남으로 A/V 제품 생산기지를 옮겼으며, 현재는 백색가전 제품만을 태국에서 생산중이다.
▲ 동부경제회랑(EEC) 건설 참여 관련한 중국과의 컨소시엄 구성을 위해 북경을 방문중인 일본경제인 사절단의 모습. 일본 자본력과 중국의 장비 및 인력을 동원해 EEC 구축 후 일대일로와 연결시키려는 의도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대 태국 외국자본 투자 1,2위 경쟁다툼은 늘 일본과 중국 차지다. / 사진출처 : EEC 추진 사무국
자동차 산업의 경우 역시, 태국에는 19개의 완성차 조립 및 제조공장과 10개의 모터사이클 제조업체가 조업중이다. 또한 523개의 1차벤더와 1,667개의 2차벤더 및 그외 부품 공급업체가 이들 완성차 조립 및 제조업체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세계 유수의 자동차 생산국들과의 글로벌파트너링(GP)을 통한 유관 부품의 수출 가치사슬 역시 가동되고 있다.
동남아 신시장이 급부상하고 있는 국제정세 형국이다.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을 노려 해양을 통해 세력확장을 꾀하는 한편, 미국 역시 인도·태평양 진출 전략의 중심 교두보로 동남아를 적극적인 영향권 하에 두려 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전 세계의 공장이었던 중국으로부터 글로벌 생산기지를 이전시켜 중국 편향적 해외생산체제를 재편성하려는 국가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이런 상황에서 자동차와 전기·전자 분야 또는 자동차 계열의 제조기업이라면, 응당 오랜 세월을 거쳐 조성된 태국의 글로벌 밸류체인(GVC)에 참여해서 얻어지는 잇점을 노릴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눈여겨 검토할 필요가 있다.
→ 다음호 ②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