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글짓기를 가르치지 말라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24/07/17 11:34

글짓기를 가르치지 말라

저는 요즘 소학(小學)을 공부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번역소학(飜譯小學)을 공부합니다. 소학을 번역한 책이라는 의미입니다. 소학을 우리말로 바꾼 것에는 소학언해(小學諺解)도 있는데, 언해보다는 번역이 훨씬 우리말답습니다. 언해는 직역이 많고, 번역은 의역이 많다고나 할까요? 물론 번역이나 언해나 기본적으로는 한문을 공부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입니다. 저도 소학의 한문과 옛글을 함께 읽고 있습니다.

번역소학은 중종 때인 1518년에 간행된 책입니다. 소학언해보다 먼저 간행되었습니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지 오래지 않아서 초기의 표기가 남아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너무 어렵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읽어보시면 현재의 방언보다도 훨씬 쉽습니다. 표기법만 익숙해지면 금방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르는 단어는 나타날 겁니다. 그건 방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볼 때는 제주도 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쉽습니다. 저희 큰어머니들이 하시던 경상도 사투리보다도 훨씬 이해하기 쉽습니다.

세 명이서 같이 공부하고 있는데, 책을 읽고 발표하는 것은 제 몫입니다. 발표를 하면 더 공부가 됩니다. 같이 공부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고 행복입니다. 저는 대학교 다닐 때부터 여러 사람과 다양한 공부 모임을 했습니다. 운 좋게도 대학 1학년 때부터 박사 선생님들과 모임을 하기도 했고, 동기들과 현대문학 모임, 고전문학 공부하는 사람과 한철학 연구 모임도 했습니다. 물론 주로는 언어학 공부 모임이었습니다. 지금도 일주일에 4번 정도 공부 모임을 하고 있네요.

대학교 2학년 때는 일주일에 공부 모임만 네 번 있었습니다. 설익은 제 머리에 다양한 자극이 되었음에 감사합니다. 어학도, 문학도, 철학도 모두 좋았습니다. 공부 후에 이어지는 술자리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술 마시려고 모임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술자리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많이 나왔으니까요. 실제로 술자리에서 이것저것 메모한 것도 많았습니다. 술 마시고 돌아가는 길에 지었던 시답지 않았던 시도 여러 편 있었네요.

소학에는 가언(嘉言)이라는 아름다운 말씀이 있습니다. ‘가언’에 대한 번역소학의 번역이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아름다운 말이면서 본받을 만한 이야기입니다. 요즘 이 부분을 공부하고 있는데 글짓기를 가르치지 말라는 부분이 나와서 흥미로웠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글쓰기가 중요하지요. 따라서 글쓰기를 가르치지 말라는 말은 충분히 자극적입니다. 왜 글짓기를 가르치지 말라고 하였을까요?

글짓기를 가르치지 말라는 말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대강의 해석을 보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제(子弟)의 경박하고 날뛰는 것을 걱정하는 이는 글 읽기를 침착히 하게 하고, 글짓기는 하지 않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글쓰기에 맛을 들이면 뜻을 잃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뜻의 지향을 몰라서는 반드시 배움을 즐기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글짓기의 전제는 가벼운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글 읽기를 열심히 한 후에 쓰기를 해야 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소학의 내용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아직 여물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많이 쓰는 게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소학에서는 좋은 글을 우선 많이 읽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아니, 아예 외울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좋은 글을 많이 외우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마음과 몸에 체득(體得)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글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옛사람이 한문을 공부하는 방법, 외국어를 공부하는 방법은 그러했습니다. 좋은 글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렇게 외웠습니다. 그러고 났더니 자연히 작문도 가능해졌습니다. 지금은 이런 교육 방법을 무식한 것이나 고루한 것으로 취급하기 일쑤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옛 성인의 가르침에서, 소학의 가르침에서 오늘도 저는 깊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좋은 시를 외우고, 좋을 글귀를 외우는 것만으로도 글쓰기의 수준이 좋아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