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말이 정치다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25/07/02 12:10

말이 정치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정치는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무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뺏고 빼앗기는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 정치의 시작이 그렇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정치는 문화와 비슷합니다. 문화는 자연상태를 벗어나는 것이고, 동물의 생활과는 다른 것입니다. 한자로 보자면 글이 되는 것, 말로 하는 것입니다. 폭력과 상처는 정치도, 문화도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현재의 정치는 말로 하는 정치가 아닙니다. 말로 하더라도 윽박지르고 모욕을 주는 정치입니다. 말이라고 해서 다 말이 아닙니다. 우리말에는 여기에 걸맞은 여러 표현이 있습니다. 말이 말 같지 않다든지, 말 같은 소리를 하라든지 하는 말이 여기에 속합니다. 아예 말이 아니라든지, 말이라고 해도 다 같은 말이 아니라는 표현을 합니다. 말은 다 말이 아닙니다. 정치에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정치의 말은 설득에 방점이 찍힙니다. 당연히 설득을 위한 근거의 마련이 매우 중요합니다. 거짓과 가짜는 정치와 거리가 멉니다. 거짓임이 드러나면 그 정치는 끝입니다. 거짓말하는 정치인은 생각만 해도 공포스럽습니다. 우리는 말을 믿고 그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엄밀한 근거를 마련했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가 중요한 가치가 됩니다. 당연히 정치에서는 수사학이 중요합니다. 사실 수사학은 정치뿐 아니라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입니다. 삶을 풍요롭게 하고, 즐겁게 합니다. 서로 칭찬하고, 상처가 되지 않게 나무라는 일도 모두 수사학에서 시작합니다.

수사학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가 문제라는 생각도 듭니다. 거짓 꾸밈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수사학을 가르쳐야 합니다. 물론 수사학은 배우는 것보다는 많은 활용이 더 필요할 겁니다. 배우더라도 사용해 보지 않으면 나의 수사가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수사학의 기본에는 인문학이 있습니다. 좋은 글을 많이 읽는 것만큼 수사학에 도움이 되는 게 없을 겁니다. 고전을 읽고,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은 헛된 말이 아닙니다. 설득의 말하기, 글쓰기를 풍요롭게 하려면 좋은 인용이 필요합니다. 좋은 인용은 바로 인문학에서 나옵니다. 물론 치열한 고민과 경험에서도 인용은 나올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인간이라면 정치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을 겁니다. 정치를 하지 않으면 동물의 단계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화가 난다고 폭력으로 의회를 장악하고, 수가 많다고 다수결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이고, 모욕을 서슴지 않고, 차별을 드러내고 하는 태도는 정치가 아닙니다. 욕이나 마찬가지인 말을 하거나 아예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정치인이 아닙니다. 정치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좋은 연설이 사라진 정치가 아쉽습니다. 설득의 연설이 많아지기 바랍니다.

진정한 정치인이 정치를 하는 한국을 꿈꿉니다. 꿈이라고 쓰고 나니 왠지 허망하네요. 정치가 이루어지는 나라이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이상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이상한 생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있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일 겁니다. 이해가 됩니다. 저 스스로도 의심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정치는 분열의 현장에 필요한 것이고, 정치는 다툼과 폭력의 현장에서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정치는 평화의 다른 말이기 때문입니다.

공자께 정치를 물었을 때, 정치는 정(正)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늘 머릿속에 있습니다. 아니 가슴 속에 있습니다. 거짓으로 술수를 고민하는 정치가 아니라 바른 생각을 바르게 펼칠 수 있는 세상이기 바랍니다. 인간은 정치를 하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동물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