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시다발의 현장에서
어떤 한자어는 해석을 달리할 때마다 다른 느낌과 상황으로 다가옵니다. 최근 며칠간 머릿속에 맴도는 사자성어가 동시다발(同時多發)입니다. 같은 때에 많은 것이 일어나는 것이겠죠.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요즘의 사건은 동시다발입니다.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즐겁습니다. 행복한 동시다발이면 좋겠습니다. 폭발하기 직전의 동시다발은 사양하고 싶네요.
동시에 여러 사건이 일어날 때 우리는 주로 동시다발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때 ‘발’을 일어난다고 해석한 거라 할 수 있습니다. ‘발생(發生)’과 같은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동시다발의 현장은 정신이 없습니다. 주로 좋은 일은 동시다발이라는 표현을 안 합니다. 귀찮은 일이나 복잡한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을 때 동시다발적이라는 표현을 하게 됩니다. 하나씩 일의 처리가 안 되는 식은땀 나는 현장입니다.
이상하게 힘든 일은 한꺼번에 일어납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속담도 자연스럽습니다. 기쁜 일이 함께 생기면 우리는 금상첨화(錦上添花)라고 합니다. 비단 위에 꽃을 더한다는 뜻입니다. 꽃 수를 놓는다는 의미였을 겁니다. 아무튼 나쁜 일도 기쁜 일도 하나씩 생기면 좋겠습니다. 숨도 돌리고, 기쁨도 누리는 시간을 갖고 싶네요.
동시다발을 달리 해석하면 한 번에 여러 개를 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발을 ‘쏘다’로 해석한 겁니다. 발(發)이라는 한자에 ‘활 궁(弓)’이 들어있으니 쏘다는 표현도 자연스럽습니다. ‘발사(發射)’라는 어휘가 곧바로 떠오릅니다. 동시다발로 쏘는 것은 무섭습니다. 최근의 전쟁은 동시다발의 현장입니다. 한꺼번에 많은 미사일과 드론을 쏘아댑니다. 그 중 하나는 맞겠지 하는 태도로 보입니다. 방어용 미사일도 동시다발입니다. 일대일로 맞힐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기술이겠죠. 실제로는 여러 발로 한 발의 미사일을 떨어뜨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튼 동시다발이 동시다발의 피해를 부르는 것은 답답한 일입니다.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동시다발이 아름다운 현장은 꽃피는 봄입니다. 발(發)이라는 한자는 ‘필 발’이라고도 해석합니다. 꽃이 피어나는 것이 발입니다. 최근에는 날씨의 변화 때문인지 꽃이 한꺼번에 동시에 핍니다. 예전에는 산수유가 피고, 목련이 피고, 개나리가 피고, 벚꽃이 피고, 진달래가 폈는데 지금은 모두 한꺼번에 피었다가 한꺼번에 집니다. 제가 근무하는 경희대학교는 봄이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목련(木蓮)은 맑고 고운 자태로 나무의 연꽃이 됩니다. 벚꽃이 피면, 경희는 그대로 벚꽃 동산입니다. 경희대학교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됩니다.
꽃이 동시다발이어서 화려함은 극치를 달리지만, 떨어지는 아쉬움은 오히려 큽니다. 물론 꽃 대신 푸르름이 그 자리를 빛 내기는 합니다.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라는 표현이 생각납니다. 푸르름이 꽃을 이기기도 합니다. 민요 사철가에도 나오는 표현인데, 봄이 짧게 왔다가 가는 것을 빗대어 신록을 묘사하는 듯합니다. 푸른 날은 봄의 끝자락에서 가을의 끝자락까지 길게 계속됩니다. 우리 삶도 그러하겠지요. 푸른 날이 오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지난주까지 한창이던 꽃이 이제 바람과 함께 떨어지고, 그 속으로 새순이 돋습니다. 신록예찬(新綠禮讚)이 절로 나오는 계절입니다. 한 번 더 꽃샘추위가 다녀가면 더 푸르러질 겁니다. 우리의 꽃다운 시절은 가고, 추위도 지나갑니다. 그래도 꽃은 꽃으로 즐기고, 푸르름은 푸르름으로 즐기면 좋겠습니다. 추위라고 나쁠 건 없습니다. 꽃을 시샘하는 추위야말로 더욱 그러하지요. 꽃이 핀다는 뜻이니까 말입니다. 집 안이 아니라 밖으로 한 걸음 더 움직이는 하루이기 바랍니다.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自然)이 들려주는 소리를 들으며, 오늘 하루도 모두 행복하소서.
조현용
(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