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제 머리 못 깎는다

2026/07/30 11:45:11

제 머리 못 깎는다 요즘 저는 긍정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긍정심리학은 인간의 긍정적 사고가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지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과학적’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이런 생각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생활하면 좋은 결말이 있을 거라고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어쩌면 긍정심리학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긍정심리학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는 것은 언어교육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언어교육의 설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저도 일면 동의하는 측면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정말 언어교육은 이렇게 사라지게 될까요? 언어를 배우는 일이 무가치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해답을 저는 과거에서 찾습니다. 새로운 교육 방안처럼 이야기하는 많은 교수법이나 교육철학은 이미 오래전에 실시하였거나 구상하였거나 깊이 통찰하였던 내용입니다. 저는 통찰력의 측면에서는 현대인이 선인들을 넘어서기 어렵다고 봅니다. 고전을 수없이 읽고, 외우고, 수행하는 속에서 깨달은 사고의 깊이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그러한 사고를 찾아가면서 현재와 미래의 언어교육에 길을 보이고 싶습니다. 그중 한 방법이 속담을 살피는 겁니다. 속담(俗談)은 한국인의 사고를 나타냅니다. ‘속(俗)’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인 누구나 알 수 있고, 알고 있는 내용이 속담입니다. 풍자성과 교훈성을 주로 담고 있는 표현이죠. 그런데 속담을 잘 살펴보면 긍정심리학과 맞닿아 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라는 속담을 다시 보려고 합니다. 저는 이 속담이 심리학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심리학이 제 전공은 아니니 깊은 연구는 전문가에게 맡겨야 할 듯합니다. 과학적 연구 말입니다.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은 마음이 약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강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보다 자신감이 지나친 사람이 위험하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한 사람도 오히려 깊은 수렁에 빠지기도 합니다. 저는 이때 생각해야 하는 속담이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입니다. 이 속담은 기본적으로 자신에 관한 일은 스스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남의 어려움은 잘 도와주지만 자신의 일 앞에서는 헤매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풍자한 말이겠죠. 풍자를 교훈으로 돌리면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속담이 자신의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난하기 위한 의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혼자서 처리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충고로 보입니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때로는 고통이 됩니다. 해도 안 되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오히려 절망감이 커지기도 합니다. 남에게는 힘이 되었지만, 나의 일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자신이 한심해 보이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내가 남에게 힘이 되었듯이 남이 내게 힘이 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그의 머리를 깎아주었듯이, 내 머리를 깎아줄 사람이 있음은 행복한 일입니다. 나의 일을 내가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 어려워서입니다. 나를 저만치 떨어져서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를 객관적으로 봐줄 사람이 필요한 겁니다. 글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내 머리가 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 앞을 가리네요. 자를 때가 되었나 봅니다. 어서 글을 마치고, 머리를 자르러 가야겠습니다. 제 머리를 제가 자를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웃으며 이 글을 마칩니다. 여러분도 이 글을 읽고 웃으셨거나 머리를 자르러 가실 생각을 했다면 다행입니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

[아름다운 우리말] 또 넘어져도 나 다시 일어나

2026/07/14 11:17:48

또 넘어져도 나 다시 일어나 살면서 넘어지는 일은 언제나 있습니다. 넘어지는 일이 늘 있다는 것은 다시 일어나는 일도 늘 있다는 말입니다. 넘어져서 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는 게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잊습니다. 아니, 믿지 않습니다. 넘어지는 것은 끝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 넘어지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포기해 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늘 다시 일어난다는 말에서 간절함과 함께 짜릿한 흥분을 느낍니다. 어려움에 빠졌지만, 그 일을 딛고 일어난 이야기에 우리는 감동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주변에 너무나 흔한 이야기고, 나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살면서 넘어졌던 순간들을 기억해 봅니다. 참 힘들었던 시간을 떠올립니다. 사랑이 힘들고, 사람이 힘들고, 삶이 힘듭니다.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부럽다고 합니다. 내가 너라면 좋겠다는 말을 합니다. 행복해 보인다고 말합니다. 칭찬과 부러움일 겁니다. 이 말은 내가 남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보면 부럽습니다. 하지만 종종 나는 내가 불쌍합니다. 힘들었던 시간을 아프게 살아온 내가 가엽기도 합니다. 외로웠던 내 모습이 떠오릅니다. 거울 속에 드러나 있는 내가 가여워 눈가가 젖기도 합니다. 누구나 행복하지만, 누구나 외롭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서로에게 위로가 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나 혼자 걸어가고 있습니다. 별도 달도 모습을 감추어 희망이란 말이 사치처럼 여겨지는 나날입니다. 외로움이나 슬픔이란 말이 내 몸을 감싸고, 스스로를 가여워 하면서 길을 걷습니다. 때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수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때 나는 하늘에 별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달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단지 지금 안 보이는 것뿐인데, 나는 희망의 별마저 놓아 버렸습니다. 넘어져 일어나서 다시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봅니다. 하나둘씩 별이 보입니다. 자세히 보니 한두 개가 아닙니다. 어둠에서 숨어있던 달도 모습을 나타냅니다. 아, 별이 있었네요. 달이 있었네요. 그때 주변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길에 나 혼자 걷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둠 속에 나를 닮은 사람이 있었다는 걸 몰랐습니다. 그들도 넘어지고, 그들도 다시 일어나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혼자서 일어날 때는 참으로 힘들었는데, 옆 사람이 내민 손을 잡으니 한결 수월합니다. 먼저 이 길을 걸은 사람의 한마디 한마디가 응원이 됩니다. 나보다 먼저 넘어지고, 나보다 먼저 일어난 사람들이 하늘의 별을 이야기합니다. 저 별을 따라 걸으라고 합니다. 별이 길이 되고, 별이 희망이 되고, 별이 친구가 됩니다. 이제 넘어지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주위 사람의 모습이 잘 보입니다. 내가 이제 그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기도 합니다. 이제 이 길은 함께 걷는 길입니다. 케데헌의 ‘골든’이라는 곡으로 유명해진 ‘이재’라는 가수가 있습니다. 이재의 걸어온 길이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 역사입니다. 이재의 일어남에는 수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을 겁니다. 고통이 있었기에 기쁨이 더 컸겠지요. 좌절이 있었기에 환희도 더 컸을 겁니다. 저는 이재의 스토리를 보면서 많은 사람에게 별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유명 연예인을 스타라고 하는 것은 바로 희망의 별이기 때문일 겁니다. 이재가 2026년 월드컵 공식 주제가인 DNA를 개막식에서 불렀습니다. 세계적 거장 ‘보첼리’와 함께 하는 공연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특히 제 가슴을 뛰게 한 것은 한국어로 시작되는 가사였습니다. <또 넘어져도 나 다시 일어나>라는 가사는 월드컵을 준비한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이고, 이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할 겁니다. 그리고 그 가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물론 제 이야기이기도 하죠. 아직 넘어져서 울고 있는 수많은 사람에게 이 노래의 가사가 별이 되기 바랍니다. 다시 일어나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기쁘게 한 걸음을 내딛기 바랍니다. 또 넘어져도 우리 다시 일어나 어둠 속을 걸어가기 바랍니다. 그곳에 수많은 우리가 있습니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

[아름다운 우리말] 그대는 혼자가 아닙니다

2026/06/04 11:47:29

그대는 혼자가 아닙니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그리고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영어 공부를 했습니다. 영어는 성적의 핵심이고, 경쟁력의 주요한 도구입니다. 참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영어 공부가 재미있었다면 행복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어 공부는 좋은 겁니다.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낯선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고전이나 명작을 만날 수도 있고, 나의 삶을 바꿔줄 수도 있습니다. 저는 늘 행복한 언어 공부를 꿈꿉니다. 그런데 그토록 오랫동안 배운 영어의 내용이 하나도 생각이 안 납니다. ‘미스터 스미스, 미시스 윌슨’ 정도의 이름이 기억나고, ‘아임 파인 땡큐 앤유’가 자동으로 떠오르는 정도입니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이지만, 무엇을 소통할까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내용 없는 문법 공부,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공부는 헛공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언어교육은 헛공부입니다. 우리는 긴 시간, 많은 노력을 투자하여 헛일을 한 셈입니다. 어떤 내용이 기억에 남아있습니까? 그래도 다행스럽게 제 기억에 오래 남아있는 영어로 된 글이 있습니다. 물론 영어로 남아있는 것은 아니고, 그 내용이 기억 속에 있습니다. 영어로 남아있다면 더 좋겠지만, 기억하라고 배우지는 않았던 듯합니다. 예전에 언어교육은 좋은 글을 소리내서 읽는 것이었습니다. 입으로 소리내어 읽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언어교육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선생님이 읽는 소리를 먼저 들어야 합니다. 그러고는 그 내용을 전부 외웁니다. 여러 번 읽었기에 따로 외우려 하지 않아도 외워집니다. 그게 언어교육입니다. 제 기억 속의 내용은 대충 이런 겁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무거운 돌을 너의 모든 능력을 사용해서 움직여보라고 합니다. 아이는 힘도 써보고, 도구도 이용해 보지만 돌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아이가 들기에는 무리가 있는 돌이었나 봅니다. 아이는 포기하고 아버지께 내 모든 힘을 썼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합니다. 너는 너의 능력을 다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모든 힘을 다 썼다고 항변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나에게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도 너의 능력이다.’라고 말입니다. 저는 이 영어의 내용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능력에는 나만의 능력만 있는 게 아닙니다. 나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부모님도 있고, 형제와 자매도 있습니다. 친구도 있고, 선생님도 있고, 이웃도 있습니다. 나는 나 혼자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능력입니다. 언제든지 나를 도와주려는 사람이 곁에 있습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나를 도와줄 사람 있다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행복에도 노력이 필요합니다. 손을 내미는 노력 말입니다. 또한 나 역시 그의 능력이 일부분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변의 사람이 힘들어하면 도와주어야 합니다. 내게 도움을 청할 때 기쁘게 도와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내 작은 도움이 그에게 큰 도움이 된다면 무조건 도와주려고 합니다. 내 능력이 그의 능력에 일부가 되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도움은 주고받는 겁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서로의 능력을 키웁니다. 우리의 능력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마이클 잭슨의 노래 중에 ‘You are not alone.’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가사가 좋은 노래는 언어 공부에 큰 힘이 됩니다. 저는 이 노래를 오늘의 글에 덧붙이고 싶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그대는 혼자가 아닙니다. 든든하지 않습니까? 나는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좌절을 이기고, 외로움을 이기고,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혼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기쁨을 느끼고, 함께 즐거워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도 그대도 혼자가 아닙니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

[아름다운 우리말] 동시다발의 현장에서

2026/04/21 11:14:27

동시다발의 현장에서 어떤 한자어는 해석을 달리할 때마다 다른 느낌과 상황으로 다가옵니다. 최근 며칠간 머릿속에 맴도는 사자성어가 동시다발(同時多發)입니다. 같은 때에 많은 것이 일어나는 것이겠죠.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요즘의 사건은 동시다발입니다.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즐겁습니다. 행복한 동시다발이면 좋겠습니다. 폭발하기 직전의 동시다발은 사양하고 싶네요. 동시에 여러 사건이 일어날 때 우리는 주로 동시다발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때 ‘발’을 일어난다고 해석한 거라 할 수 있습니다. ‘발생(發生)’과 같은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동시다발의 현장은 정신이 없습니다. 주로 좋은 일은 동시다발이라는 표현을 안 합니다. 귀찮은 일이나 복잡한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을 때 동시다발적이라는 표현을 하게 됩니다. 하나씩 일의 처리가 안 되는 식은땀 나는 현장입니다. 이상하게 힘든 일은 한꺼번에 일어납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속담도 자연스럽습니다. 기쁜 일이 함께 생기면 우리는 금상첨화(錦上添花)라고 합니다. 비단 위에 꽃을 더한다는 뜻입니다. 꽃 수를 놓는다는 의미였을 겁니다. 아무튼 나쁜 일도 기쁜 일도 하나씩 생기면 좋겠습니다. 숨도 돌리고, 기쁨도 누리는 시간을 갖고 싶네요. 동시다발을 달리 해석하면 한 번에 여러 개를 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발을 ‘쏘다’로 해석한 겁니다. 발(發)이라는 한자에 ‘활 궁(弓)’이 들어있으니 쏘다는 표현도 자연스럽습니다. ‘발사(發射)’라는 어휘가 곧바로 떠오릅니다. 동시다발로 쏘는 것은 무섭습니다. 최근의 전쟁은 동시다발의 현장입니다. 한꺼번에 많은 미사일과 드론을 쏘아댑니다. 그 중 하나는 맞겠지 하는 태도로 보입니다. 방어용 미사일도 동시다발입니다. 일대일로 맞힐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기술이겠죠. 실제로는 여러 발로 한 발의 미사일을 떨어뜨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튼 동시다발이 동시다발의 피해를 부르는 것은 답답한 일입니다.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동시다발이 아름다운 현장은 꽃피는 봄입니다. 발(發)이라는 한자는 ‘필 발’이라고도 해석합니다. 꽃이 피어나는 것이 발입니다. 최근에는 날씨의 변화 때문인지 꽃이 한꺼번에 동시에 핍니다. 예전에는 산수유가 피고, 목련이 피고, 개나리가 피고, 벚꽃이 피고, 진달래가 폈는데 지금은 모두 한꺼번에 피었다가 한꺼번에 집니다. 제가 근무하는 경희대학교는 봄이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목련(木蓮)은 맑고 고운 자태로 나무의 연꽃이 됩니다. 벚꽃이 피면, 경희는 그대로 벚꽃 동산입니다. 경희대학교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됩니다. 꽃이 동시다발이어서 화려함은 극치를 달리지만, 떨어지는 아쉬움은 오히려 큽니다. 물론 꽃 대신 푸르름이 그 자리를 빛 내기는 합니다.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라는 표현이 생각납니다. 푸르름이 꽃을 이기기도 합니다. 민요 사철가에도 나오는 표현인데, 봄이 짧게 왔다가 가는 것을 빗대어 신록을 묘사하는 듯합니다. 푸른 날은 봄의 끝자락에서 가을의 끝자락까지 길게 계속됩니다. 우리 삶도 그러하겠지요. 푸른 날이 오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지난주까지 한창이던 꽃이 이제 바람과 함께 떨어지고, 그 속으로 새순이 돋습니다. 신록예찬(新綠禮讚)이 절로 나오는 계절입니다. 한 번 더 꽃샘추위가 다녀가면 더 푸르러질 겁니다. 우리의 꽃다운 시절은 가고, 추위도 지나갑니다. 그래도 꽃은 꽃으로 즐기고, 푸르름은 푸르름으로 즐기면 좋겠습니다. 추위라고 나쁠 건 없습니다. 꽃을 시샘하는 추위야말로 더욱 그러하지요. 꽃이 핀다는 뜻이니까 말입니다. 집 안이 아니라 밖으로 한 걸음 더 움직이는 하루이기 바랍니다.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自然)이 들려주는 소리를 들으며, 오늘 하루도 모두 행복하소서. 조현용 (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

[아름다운 우리말] 떡 해 먹을 세상

2026/03/24 10:22:02

떡 해 먹을 세상 굿에는 떡이 중요하고, 굿이 끝나면 떡을 나눠주고 먹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떡은 제사와 굿이라는 행사에 중요한 음식입니다. 일반적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아니었고, 아무 때나 먹는 음식도 아니었습니다. 떡은 굿 등에 제물을 바칠 때 가장 기본적인 제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굿이 끝난 후에는 ‘계면떡’을 나누어 주는 풍습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 먹는 ‘시루떡’도 가정 신앙에서 성주, 조왕신, 삼신 등에게 바치는 떡이기도 합니다. 떡을 찌는 도구인 ‘시루’는 청동기 시대의 나진 패총에서도 발견이 되었다는 것으로 봐서 떡과 제사의 역사는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루로 보이는 그림이 고구려의 안악 3호 고분벽화에 나온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떡의 의례에 관한 기능은 현시대에도 남아있습니다. 이제는 좀 희미해지고 있습니다만 개업을 하면 떡을 돌리고, 이사를 하면 떡을 이웃집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떡은 밝은 미래를 상징하고, 화목한 사이를 상징합니다. 떡은 의례적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따뜻하게 하는 음식입니다. 잔칫집에는 떡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이 모여서 음식 만드는 것을 도와주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에게 떡을 나누어 주기도 했습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라는 옛이야기에 나오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는 말은 이런 사정을 보여줍니다. ‘떡 해 먹을 집안’이라는 말은 집안이 화목하지 못하여 굿이라도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굿을 하면 떡을 먹게 되니 떡 해 먹을 집안이라고 표현한 것이지요. 집안이 엉망이라는 뜻입니다. 집안이 화목하지 않다든지, 굿이라도 해야겠다든지 하는 식으로 표현하지 않고 떡을 등장시킨 것이 재미있습니다. 자칫 떡에만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떡을 해 먹는 게 좋은 일이라고 오해할 만한 속담입니다. 한편 ‘떡 해 먹을 세상’이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이 말도 마찬가지로 화목하지 않은 세상을 나무라는 말입니다. 역시 그래서 굿이라도 해야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굿은 아무래도 큰 굿이겠네요. 나라가 엉망이고, 세상이 엉망이니 작은 굿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굿이 끝난 후에는 전 국민이 나누어 먹어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떡은 나누어 먹어야 효험이 더 있습니다. 아이의 생일에도 떡을 해서 돌리는 것은 그래야 아이가 건강해진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떡을 해 먹는 민족은 많지만, 우리만큼 떡을 좋아하는 민족은 드뭅니다. 그리고 우리의 떡은 혼자 먹는 떡이 아니고 나누어 먹는 떡입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도 먹고, 기원해야 할 일이 있을 때도 먹습니다. 이왕이면 좋은 일이 있을 때 떡을 더 많이 해 먹기 바라고, 가능하면 기원하는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우리 집안이 떡 해 먹을 집안이 아니기 바라고, 이 나라가 떡 해 먹을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떡 이야기를 한참 하고 나니 갑자기 출출해져서 떡이 먹고 싶네요. 조현용 (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

[아름다운 우리말] 부러우나 부끄러운 마음

2026/03/10 10:46:14

부러우나 부끄러운 마음 가난한 마음에 복이 있다고 안빈낙도와 청렴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되새기지만 마음속에서는 늘 부자의 여유가 부럽습니다. 조금 더 가지고 있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 때마다 부끄럽기도 합니다. 이렇게 내 마음에는 부러워서 부끄러운 마음이 천지입니다. 양면성 가득한 마음을 보면서 하루를 정리해 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평화를 사랑한다고 하나 강대국의 힘이 부럽습니다. 군사적 강대국이 아니라 문화적 강대국이 되기를 원한다며 백범 선생의 글을 인용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세계 상위권의 국방력을 자랑하고 우수한 무기 판매에 열을 올립니다. 무기는 방어에만 사용될 수는 없습니다. 평화를 위한 무기라는 말도 미사여구일 뿐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더 첨단 무기를 개발하는 모습에 우리는 자랑스러움을 느낍니다. 핵무기를 갖고 있는 나라를 부러워 하는 우리의 마음은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말로는 늘 평화주의자입니다. 환경을 이야기하면서 일회용품의 편리성에 눈이 갑니다. 기후 위기는 나에게 심각한 피해를 끼칠 때만 위기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그저 불편함일 뿐입니다. 이상기후라고 하지만, 더우면 더 에어컨을 틀고, 추우면 더 불을 땔 뿐입니다. 환경 이야기나 안 했다면 좋았겠지요. 기후 위기를 말하며, 인간의 욕심을 탓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겁니다. 말로는 늘 환경주의자입니다. 성적보다는 행복이 우선이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성적 자랑이 노골적입니다. 일등만이 대접받는 사회가 혐오스러우면서도 공부 잘하는 자식을 바라고, 명문대보다는 실력이 중요하다면서 명문대생의 숨은 실력을 믿습니다. 금수저를 욕하면서 금수저이기를 바라고, 재벌을 욕하며 대기업에 들어간 자식 자랑이 한창입니다. 의사, 변호사를 욕망덩어리인 양 이야기하면서 정작은 친척 중에 의사, 변호사가 있어서 든든하게 생각합니다. 사랑이 중요하다면서 혐오를 부추기고, 이타주의를 칭찬하면서 나 위주의 생각을 떨치지 못합니다. 외모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늘 외모에 눈이 갑니다. 그러고는 본능 핑계를 대지요. 예쁘다는 말이, 아름답다는 말이 칭찬이지요. 외모 칭찬과 외모 자랑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외모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은 모순입니다. 나도 좀 잘생겼다면 좋았겠지요. 무소유를 이야기하면서 물건에 대한 집착이 깊어지고, 욕망을 멀리하자고 하나 성욕에, 식욕에, 소유욕에, 명예욕까지 무서우리만치 갖고자 합니다. 집착은 집착을 낳고, 소유는 소유를 낳습니다. 펼쳐보지도 않은 책, 사용한 적 없는 그릇이 눈앞 한가득입니다. 없어지면 다시 구입하지 않을 물건이라면 모두 내 소유욕의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없어지면 다시 살 물건은 얼마나 되나요? 나이가 들면 철학과 종교의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책과 수행을 멀리합니다. 아니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철학과는 멀어지는 삶을 살기도 합니다. 불혹이니, 지천명이니, 이순이니 하는 말은 경전에나 담긴 이야기입니다. 유혹에는 쉽게 넘어가고, 하늘의 뜻에는 관심이 없고, 고집이 더 세지니 말입니다. 명상과 기도의 시간은 없고 간간이 조는 시간이 있을 뿐입니다.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집중력이 떨어지고 눈이 침침해서일 뿐이죠. 철학은 남의 이야기입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제 표리부동한 마음을 살펴봅니다. ‘부럽다’와 ‘부끄럽다’는 관계없는 단어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상통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정말 부러워해야 하는 일은 부러워하지 않고 회피합니다. 오히려 부끄러운 일을 부러워하면서 살아갑니다. 이제 나이를 한 살 더 먹습니다. 부러운 일이 많을수록 부끄러운 일도 많아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뼈저리게 느낍니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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