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솥뚜껑만 생각해

2025/11/04 12:09:43

솥뚜껑만 생각해 이 글의 제목을 보면 무슨 글을 쓰려고 하는지 전혀 감이 안 잡힐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원래 글의 제목을 ‘자라는 생각하지 마!’라고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 제목이 생각났습니다. 프레임 전쟁에 관한 책이죠. 저는 이 책을 악용한 수많은 정치가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환멸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수도 있겠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 극좌, 극우도 서슴지 않는 모습이 책을 쓴 저자의 의도는 아니었을 겁니다. 아무튼 어떤 개념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그것이 틀이 되어 그 속에 갇히게 됩니다. 레이코프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원래 제목은 잊으셨기 바랍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저는 이 속담을 보면서 우리의 심리 상태를 잘 표현했다고 느낍니다. 심리학 논문 제목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합니다. 자라에게 손가락을 물려본 사람은 그 고통을 알 겁니다. 저는 물려본 적이 없기에 자라 말고 다른 괴로운 상황을 상상했습니다. 나에게 가장 괴로운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어떤 일이 생각만 해도 두려울까요? 한번 겪은 괴로운 상황은 오랫동안 고통으로 남고, 트라우마가 됩니다. 자라가 얼마나 무서웠으면 자라와 그다지 비슷하지도 않은 솥뚜껑(제가 보기에)을 보고도 놀랐을까요? 아마도 심장이 두근거렸을 겁니다. 개에게 물려 본 사람은 멀리 개만 보여도 몸서리를 칩니다. 사람에게 배신당한 사람은 사람이 무섭습니다. 실수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준 사람은 실수가 너무나 두렵습니다. 그런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비슷한 상황만 닥쳐도 식은땀이 나고, 심장이 뜁니다. 공황 상태가 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 우울과 불안이 일상화됩니다. 새벽에 깨면 온통 자라 생각뿐입니다. 솥뚜껑을 생각하며, 일을 해결해야 하는데 도리어 자라 생각으로 밤을 샙니다. 혹시 다시 자라에게 물리면 어쩌나 겁이 나고, 왜 나에게만 자라가 나타나는지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 사실은 실제로 내 앞에 자라가 나타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어쩌면 괜히 자라만 억울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자라 생각이 날 때마다 솥뚜껑만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노력이라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도 자꾸 자라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닥쳐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해결해야 합니다. 솥뚜껑은 절대로 내 손가락을 물지 않습니다. 저절로 슬금슬금 나에게 다가오는 일도 없습니다. 두려울 이유가 없습니다. 실제로 속담에서 솥뚜껑은 아무런 해악이 아닙니다. 그저 닮은 꼴일 뿐이죠. 솥뚜껑은 생각보다 뜻밖의 즐거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섣불리 괴로울 거라 단정 지을 필요도 없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솥뚜껑을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요? 밥을 지을 때 김이 피어오르는 모습이 생각날 수도 있겠네요. 요즘은 보기 어려운 모습이죠. 저는 솥뚜껑이라고 하면 ‘삼겹살’이 생각납니다. 저희집 아이들이 어릴 때 자주 갔습니다. 그 날은 모두 밥도 많이 먹고, 아이들도 신이 났습니다. 묵은지를 구워먹는 재미도 좋았습니다. 솥뚜껑은 행복의 상징이고, 추억의 기억입니다. 솥뚜껑만 생각하자는 것은 달리 말하면 좋은 기억을 떠올리자는 의미기도 합니다. 자라와 같은 불안, 초조, 우울, 고통, 공포 등을 생각하면 계속해서 그 속에 맴돌게 됩니다. 불안이 걱정을 낳고, 두려움이 고통을 낳습니다. 부정적 감정은 회오리바람처럼 내 주변을 감쌉니다. 답답한 일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솥뚜껑만 생각하면 세상은 달라질 겁니다. 행복, 사랑, 추억, 기쁨, 웃음 등이 꼬리를 물고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갑니다. 긍정이 깊어지면 부정이 줄어듭니다. 솥뚜껑만 생각하세요. 이왕이면 삼겹살이 지글거리며 구워지는 모습과 함께. 솥뚜껑만.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

[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평화의 문자, 한글

2025/10/22 10:31:26

평화의 문자, 한글 외국인이 한글을 배울 때, 한국어를 배울 때 어떤 점이 어려울까요?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일리가 있는 대답은 낯선 문자, 낯선 언어라는 점입니다. 한글 학습의 어려움을 논하는 일본 학자의 글에도 한글이 낯선 문자임을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문자는 모르는 언어라도 대강은 읽을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 등에서 사용하는 키릴 문자도 그렇고,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의 문자도 그렇습니다. 의미는 모르더라도 읽는 것은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한글의 경우는 암호나 기호 같다고 이야기하는 외국인이 많습니다. 한글이 아무리 배우기 쉬운 문자라고 설명을 해주어도 외국인은 한글을 그저 기호처럼 볼 뿐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문자도 잦은 접촉이 필요합니다. 자주 본 글자가 배우기에도 쉬울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한글로 쓰여 있는 옷을 입고 다니는 외국인이 꽤 있는데, 왜 한글 옷을 입고 다니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무슨 의미인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답을 합니다. 그냥 기호 같아서 입고 다닌다는 대답도 많습니다. 이상한 글자라서 좋아하는 겁니다. 모음의 글자를 보면 기호 같다는 말이 맞다는 생각도 듭니다. 기역과 니은, 디귿, 리을 등을 보면 어떤가요?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타이틀 글씨를 보면 동그라미와 세모, 네모가 나타납니다. 물론 여기에서 세모는 한글이 아닙니다만, 외국인은 한글을 기호처럼 바라볼 것입니다. 세모도 예전에 세종대왕이 만든 글자에는 반치음이라고 하여 포함되어 있었죠. 현재 영어의 [z] 발음과 비슷하였을 것으로 추정하는 글자입니다. 아무튼 한글의 자음 글자도, 모음 글자도 외국인에게는 낯선 글자일 뿐입니다. 그런데 한류의 유행으로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한글이 낯선 글자가 아니라 어디선가 본 글자로 바뀌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수많은 한국어 간판이 등장합니다. 여전히 한글은 암호처럼 보일지 모르나 어디선가 본 문자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시청자 중에는 글자에 호기심을 갖고, 글자의 소리나 의미를 찾아보기도 합니다. 이런 호기심이 바탕이 되어 한글을 배우고, 한국어를 배우는 사도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른바 한글에 대한 접촉이 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한글을 보면 무슨 소리,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한국의 글자라는 점은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해외에서는 케이팝의 대규모 공연이 자주 있습니다. 한국에서 케이팝 공연이 적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문제점이기도 합니다. 큰 공연장이 없어서 공연을 할 수 없다고 하니 더 문제입니다. 해외에서 공연을 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엄청난 열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한류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는 공연 실황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여러 나라의 여러 민족의 사람이 케이팝 공연에 열광합니다. 정말 케이팝이 세계의 문화가 되었습니다. 공연 중에 함께 노래를 부르는 떼창은 기본입니다. 공연에는 뒷배경으로 가사가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한글 가사가 배경을 가득 채우는 일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관객들은 가사를 따라 부릅니다. 한글 가사를 읽은 것인지 아니면 가사를 외워서 부르는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한글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한글이 해외의 시위 현장에 쓰인다는 것도 매우 특이한 일입니다. 한글이 <저항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한글로 쓰였다는 이유만으로도 <젊음의 상징>도 됩니다. 또한 한글은 세계 젊은이들의 공감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한 나라에서 한글 시위를 하면 다른 나라의 많은 한류팬들이 시위를 홍보해 줍니다. 자기 언어를 한글로 쓰는 시위 형태도 놀랍습니다. 이런 모습은 인도네시아 시위에서 등장하였는데, 그 내용은 한국 사람도 알 수 없습니다. 단지 문자만 한글이기 때문입니다. 한글을 진짜 암호로 사용하는 겁니다. 한국은 문화적으로 세계에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발전하였고, 민주주의의 측면에서도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글의 새로운 역할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한글이 억압받고, 차별당하는 현장에서 <평등의 문자>가 되기 바랍니다. 전쟁과 폭력의 현장에서 한글이 <평화의 도구>가 되기 바랍니다. 한글이 낯선 문자가 아니라 문화와 문화의 만남 속에서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 문자이기 바랍니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

[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괜찮아요

2025/08/26 14:43:15

괜찮아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까운 사람일수록 오해를 하고,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가 실수하거나 실패를 하는 경우에도 토닥여 주고, 공감해 주는 게 가족인데, 현실에서는 더 화를 내기도 합니다. 저도 늘 반성하는 일입니다. 가깝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전에 일본에서 본 몰래카메라 프로그램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제목이 몰래카메라다 보니 황당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날의 내용도 역시 참으로 황당하였습니다. 이야기는 대강 이렇습니다. 결혼 후에 십여년을 아껴가면서 착실히 살아온 남편이 아내 몰래 고급 자동차를 사서 집 앞에 주차해 놓는 설정이었습니다. 황당한 일이지요. 집 안에 모든 촬영 장치를 마치고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아내는 아무 눈치도 못 챈 채 집으로 들어오면서 묻습니다. 밖에 좋은 차가 있던데 누가 왔냐고. 아니면 다른 사람이 우리 집 앞에 주차한 것인지. 남편은 쭈뼛거리며 말합니다. 오랫동안 사고 싶었던 차인데 맘먹고 샀다고.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러자 아내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합니다. 아직 돈이 나가야 할 곳이 너무 많았기에 황당하였을 겁니다. 아이도 키워야 하고, 집도 사야 하고, 돈 들어가야 할 곳이 끝이 없죠. 아내의 반응을 남편은 초조하게 기다립니다. 아내가 화를 내면서 당장 차를 갖다 주라고 하기를 모두 숨죽이며 기다렸던 것이죠. 그때 아내가 말합니다. 괜찮다고. 얼마나 사고 싶었겠냐고. 그동안 가족을 위해서 희생해 줘서 고맙다고. 다른 것에서 아끼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습니다. 남편은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웁니다. 내가 황당한 일을 했음에도 이해해 주는 아내를 진심으로 고마워합니다. 그러고는 숨어있던 카메라들이 나타납니다. 모든 것은 몰래카메라였다고 말하죠. 아내와 남편은 이미 몰래카메라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서로 고맙고, 미안할 뿐이지요. 미안하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은 이렇게 통하고 있었습니다. 그 방송을 보면서 저도 한참 동안 먹먹했습니다. 사랑이란 그런 겁니다. 그가 잘못했더라도 믿어주고, 이해하는 겁니다. 쉽지 않은 일이죠. 어쩌면 우리는 이 세상이 몰래카메라이기를 바라며 살지도 모릅니다. 상대의 잘못이 그저 몰래카메라이기를 바라는 거죠. 하지만 우리 삶은 몰래카메라가 아닙니다. 주어진 앵글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믿어주어야 하는 세상입니다. 너무나도 힘든 세상에서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더 화가 나는 일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받아들여 주어야 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믿지 못하고, 실수에 칼을 댑니다.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헤집기까지 합니다. 제발 그러지 않기 바랍니다. 이해와 믿음으로 조금은 이 세상이 살고 싶어지기 바랍니다. 오늘은 왠지 위의 몰래카메라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남편을 위로해 주고 싶은 아내의 마음이 귀하게 느껴집니다. 아내에게 미안한 남편의 마음이 짠합니다. 괜찮다는 말이 참 좋습니다.

[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욕망(欲望)이라는 말

2025/08/18 10:09:49

욕망(欲望)이라는 말 왜 사는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일 거다.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제 여한이 없다는 말이나 더 살아서 뭐하겠는가 하는 말은 욕망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인간에게 욕망은 삶의 이유이기도 하면서 삶의 걸림돌이기도 하다. 특히 인간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 식욕과 수면욕과 성욕은 삶을 다양한 방향으로 이끈다. 욕망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두 갖고 있다. 그러나 욕구를 따라 행동하면 때로 동물 취급을 받기도 하고, 동물만도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욕망은 추구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절제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욕망은 나의 가치가 되기도 한다. 종교에서는 욕망을 이겨내고, 벗어나는 것을 인생의 가치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욕망이 없다면 인간은 살 수조차 없을 것이다. 인간은 어릴 때는 자고 싶으면 자고 깨고 싶으면 깨니 괴로운 건 식욕뿐이다. 배고플 때 엄마가 젖을 주어야 하는데 엄마가 안 보이면 하늘이 무너진 듯 울어 재끼고 소리 지른다. 아기 때는 식욕이 제일 중요하다. 물론 자고 싶은데 잠이 안 와서 잠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이때 배고픈 줄 잘못 알고 젖을 주면 난리가 난다. 자라면서도 식욕은 늘 왕성하나 아이가 먹는 것보다 노는 게 재미있을 때는 부모의 속이 탄다.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고 안달 나는데, 아이는 안 먹겠다고 도망을 다닌다. 어른들이 아이는 굶기면 저절로 먹는다고 하는데, 이 말이 정답인 줄을 알지만 굶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한참 놀고 나면 밥을 찾으니 노는 게 밥보다 먼저일 뿐 밥을 멀리한 것은 아니다. 사춘기는 욕망이 분출하는 시기이다 식욕도 수면욕도 왕성하나 마음껏 잠자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배워야 할 일이 많고, 해야 할 일도 적지 않다. 그래서 자도 자도 부족하고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시기가 바로 사춘기다. 물론 낯선 성욕에 어쩔 줄 모르는 시기이기도 하다. 욕망을 제어할 수도 없고, 욕망을 실현할 수도 없다. 욕망의 균형이 맞지 않은 괴로움과 궁금함의 시간이 바로 이 시기인데, 그래서 힘이 든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과 부딪치는 게 일이다. 특히 부모님과의 마찰이 심각하다. 청년이 되면 성욕이 가장 중요한 욕망인 것 같다. 좋은 이를 만나기 위해 공부하고 돈을 벌고 몸을 만들고 나를 꾸민다. 먹는 것도 줄이고 자는 것도 줄이니 삶의 재미가 참을성에서 온다. 좋은 짝을 만나는 게 모든 것의 목표는 아니겠으나 주요 원인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일찍 짝을 만나는 것이 안정을 줄 것이다. 짝을 찾는 시간은 재미있지만 힘든 시간이다. 갱년기는 몸에서 욕망이 떨어져 나가는 시기라고나 할까. 성욕이 귀찮고, 수면욕은 충족되지 않아 불면의 밤을 이루며, 작은 식욕만으로도 배의 둘레는 한없이 불어난다. 괴로움의 시간이다. 그렇게 장년을 지나 노년으로 향하는데도 인간의 욕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앉으면 옛날 자랑, 돌아서면 자식 자랑이다. 쓰지도 않을 돈 자랑에, 다 늙은 몸 자랑까지 자랑은 그대로 집착이 되어 나 자신과 주위 사람을 괴롭힌다. 나이를 먹지만 여전히 음식에 집착을 보이고 아직도 이성에 눈과 몸이 향하니 괴로운 일이다. 잠을 못 잔다고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졸음이 쏟아진다. 그렇게 졸아대니 밤에 잠이 안 오는 게 당연하다는 말에 달리 변명할 말도 없다. 욕망이 욕구가 되고, 욕심이 된다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의 마지막이 왜 욕인지 알겠다. 욕이 사라지면 깨닫거나 죽는 거다. 내 욕망을 바라본다.

[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오늘의 어휘

2025/08/13 10:15:40

오늘의 어휘 오늘 아침,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나요? 나도 모르게 손전화로 손이 향하고, 온갖 복잡한 소식에 머릿속이 멍해진 채로 일어날 수도 있겠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데, 시작부터 나를 가라앉게 합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좋은 사람을 떠올리고, 좋은 어휘를 떠올리려고 노력합니다. 처음에는 애쓰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자연스레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좋은 어휘가 일상의 시작입니다. 어휘는 그냥 말이 아닙니다. 어휘는 세상을 잇고 있습니다. 단어와 단어를 잇고, 단어와 생각을 잇고, 단어와 사람을 잇습니다. 그러고는 기어코 사람과 사람을 잇습니다. 우리가 동물과 달리 말을 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이어져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바로 말입니다. 말이 없다면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며, 서로를 사랑하지 못할 것입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생각을 담을 수 있고, 생각을 전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오랫동안 전해져 오는 말에는 그 에너지가 더욱 큽니다. 조상의 사고를 이해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우리가 함께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말은 우리 속 무형의 유전자이며, 문화입니다. 말이 곧 사람이고, 말이 곧 가치인 셈입니다. 말에서 힘을 느껴보기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휘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쓰고, 듣고, 살아갑니다. 표면적인 뜻에만 관심이 있고, 그래서 표면적인 관심에 휘둘리게 됩니다. 드러나 있는 의미를 만나 감정의 폭풍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위험한 어휘의 세상입니다. 어휘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다른 깊은 정신의 세계를 담고 있습니다. 어휘를 공부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내 속을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어휘를 통해서 내 깊은 속을 들여다보면 종종 내 삶이 안쓰러워지기도 할 겁니다. 하루를 바둥거리면 살고 있음에 한숨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좋은 겁니다. 자신을 마주하는 일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한참을 마주하고 나면, 자신이 더 귀하게 느껴질 겁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사람들을 만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귀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귀하다는 말은 드물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드물지 않으면 귀하지 않습니다. 어휘는 나를 깨우기도 하고 나를 위로하기도 합니다. 토닥여주는 거죠.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그 순간 행복해집니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기쁩니다. 기쁜 마음은 즐거운 마음과 통합니다. 그래서 짜증과 미움을 멀리해야 하고, 귀찮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서로를 고맙게 생각해야 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어야 합니다. 서로 함께하는 삶이 좋아야 합니다. 같이 미리내도 바라보고, 어깨춤도 추면 좋겠습니다. 살면서 좋은 일이 많기 바라고, 슬픈 일이 적기 바랍니다. 어쩔 수 없이 닥친 힘든 일이라면 잘 넘길 수 있기 바랍니다. 세상은 살아가는 곳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곳입니다. 오늘 하루도 어휘를 생각하며 행복하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이렇게 바라는 일이 많고, 궁금증이 많은 삶이면 좋겠습니다. 웃음꽃 피는 하루를 기원합니다. ‘오늘의 날씨’처럼 오늘의 어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흥미로운 숫자 세상

2025/07/14 12:52:15

흥미로운 숫자 세상 숫자는 그대로 스토리의 콘텐츠이기도 합니다. 숫자 자체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밀이기도 합니다. 상징도 되고, 비유도 됩니다. 그야말로 흥미로운 숫자 세상입니다. 우선 38이라는 숫자부터 살펴볼까요? 38이라는 숫자를 보면 무엇이 생각나는가요? 혹시 삼팔선을 생각했다면 역사나 사회 현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삼팔 광 땡’을 생각했다면 화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겠습니다. 뜻밖에 여성의 날을 떠올린 사람이 있다면 놀라운 일입니다. 여성의 날이 3월 8일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는 ‘삼팔’이 욕처럼 쓰인다고 하니 중국인 앞에서는 조심해야 할 겁니다. 마치 한국에서 18을 함부로 입에 올리면 안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실 삼팔선은 위도 38도와 관련이 있는 숫자입니다. 미국과 소련이 남북한을 분단시킬 때 위도 38도를 기준으로 하였기 때문에 삼팔선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삼팔이라는 숫자가 익숙합니다. 그런데 우리처럼 자신이 사는 나라의 위도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위도를 알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게 정상일 수도 있습니다. 위도를 알고 있는 우리가 오히려 안타까운 것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한편 우리는 숫자로 의사소통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이삿짐센터의 전화번호는 거의 2424였습니다. 중고거래를 하는 곳은 4989가 대부분이었고요. 8282는 일을 빨리한다는 의미였고, 012는 ‘영원히’의 뜻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10102는 ‘열렬히’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도 많은 숫자가 의사소통에 쓰였습니다. 숫자는 그 자체로 소통의 수단이 된 겁니다. 숫자 중에서 1004는 천사의 의미로 쓰입니다. 전화번호나 차량번호에 선호하는 숫자이기도 합니다. 특히 전화번호로는 최고의 번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9988은 노인이 좋아하는 숫자입니다. 구십구 세까지 팔팔하게 살자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666은 종교적인 이유로 기분 나쁜 숫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666은 중국에서는 좋은 숫자입니다. 중국사람 전화번호 중에는 666이 포함된 경우가 많습니다. 중국 친구의 번호를 살펴보세요. 아시다시피 7은 서양에서는 매우 선호하는 숫자입니다. 우리도 북두칠성과 관련지어 7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7을 좋아하지 않는 민족도 많습니다. 중국 남부의 경우도 7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광저우에 갔을 때 엘리베이터에 4층과 7층이 없어서 놀란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4층은 병원 입원실에는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음을 상징한다고 보는 겁니다.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선이 위도 38도라고 했는데, 위아래로 가르는 선은 경도 몇 도일까요? 숫자는 의외로 모든 게 관심사는 아닙니다. 관심이 있어야 숫자가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경도와 관련이 있는 표준시간이 한국과 일본이 왜 같을까요? 북한은 왜 표준시를 30분 바꾸려고 했을까요? 경도가 다르면 시간도 달라져야 정상 아닌가요? 중국은 지역에 따라 시간이 변하지 않는데, 미국은 왜 지역마다 시간이 달라질까요? 궁금증 천지입니다. 오늘 글을 쓴 동기이기도 한 전화의 국가 번호는 어떻게 정한 걸까요? 한국의 국가 번호는 왜 82일까요? 누군가 농담처럼 말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빨리’와는 상관이 없겠지요. 아무튼 사람들에게 가르쳐줄 때는 한국인이 ‘빨리 빨리’를 좋아해서 ‘팔이’라고 농담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래 기억하겠네요. 하지만 일본이 81인 걸로 봐서 답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또 하나 서울은 왜 국번이 02일까요? 왜 01은 없을까요? 03은 없는데 031, 032 등이 있는 이유는 무얼까요?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숫자들이 수수께끼이고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미국의 911과 한국의 119도 궁금한 이야깃거리입니다. 숫자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세상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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