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의 미학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20/06/23 20:55

‘되’가 접두사로 쓰일 때는 다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어원적으로는 ‘돌다’와도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다시의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되감다’라든가, ‘되돌아가다’ 등에서 다시의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되-’라는 표현을 볼 때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나 공간을 떠올려 봅니다. 언제 어디로 다시 가고 싶은가요?

돌아가는 것이 한번이 아니고 계속 반복이 되면 우리는 ‘되풀이’라고 합니다. ‘되풀다’는 다시 푼다는 의미입니다. 묶인 것을 다시 푼다는 의미로 사전에도 설명이 나옵니다. 무엇을 다시 푼다는 의미일까요? 저는 되풀이의 힌트를 어릴 적 기억에서 찾았습니다. 기억이랄까, 추억이랄까 아련하면서 애틋한 감정이 일어납니다. 되풀이라는 단어와 다시 푸는 장면을 보면 말입니다.


제 기억 속에 다시 푸는 장면은 털실로 짠 옷을 푸는 엄마의 모습입니다. 이제는 재활용이라는 말이 유행이지만 진정한 재활용은 털실로 짠 옷을 풀어서 새로 옷을 짜는 일이었을 겁니다. 때로는 언니의 옷을 풀어 동생의 옷을 짜기도 합니다. 전과는 다른 모양으로 짜기도 하고, 새로운 실을 섞어 전혀 다른 색으로 조화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스웨터가 목도리가 되기도 하고, 장갑이 되기도 합니다. 털실의 온기는 좀 식었을지 모르지만, 사랑의 온기는 가시지 않습니다.

겨울밤 일을 마친 엄마는 자연스레 일감을 갖고 앉으시고 늦은 시간까지 일은 되풀이됩니다.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는 담장을 넘고, 엄마도 덩달아 크게 웃으십니다. 어쩌면 다시 풀어놓은 실은 우리 식구의 웃음소리와 함께 짜서 더 따뜻했을 겁니다. 살림에 여유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되풀이한 것이겠지만, 사람마다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한 추억이 아닐까 합니다. 요즘 아내가 뜨개질을 하는 모습을 보면 제 추억도 되풀이 됩니다.

시간은 세월이 되어 지나가고, 어떤 물건을 가지고 되풀이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물건이 아니어도 되풀이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되풀이하고 싶은 게 무언가요? 반복해도 지겹지 않고, 오히려 그리움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되풀이했을 때 도리어 기분이 좋아지는 건 무언가요?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의외로 많을 겁니다.

제일 많이 나올 만한 답은 노래가 아닐까 합니다. 예전에 듣던 노래는 되풀이해도 지겹지가 않습니다. 가사도 다 기억나고, 때로는 그 노래를 듣던 카페도 기억이 납니다. 함께 듣던 사람이 떠오르기도 하죠. 음악은 되풀이해서 들을수록 추억이 되살아납니다. 다시 보고 싶은 그림이나 사진, 그리고 풍경도 있을 겁니다. 가족과 함께 찍은 영상은 가끔씩 다시 보면 그리움이 됩니다. 다시 가고 싶은 곳, 그 때 보았던 풍경은 영상보다 더 짙게 마음에 남습니다.


다시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는 있는가요? 여러 번 본 영화가 있는가요? 배우를 좋아하면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는 언어 공부 때문에 여러 번 본 영화가 있는데 오랜만에 보면 언어를 배우던 시절의 추억도 함께 떠오릅니다. ‘러브 스토리’가 저에게는 되풀이해서 보는 영화입니다. 대사가 아주 훌륭한 영화입니다. 수없이 반복하여 보고 들었고, 그 때는 대사를 많이 외우기도 했는데 이제는 아련한 추억입니다. 가끔 해외에 나갈 때 비행기 영화 목록에 러브스토리가 있으면 무조건 봅니다.

다시 보고 싶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예능 프로그램도 우울할 때, 적적할 때 기운 나게 하는 되풀이입니다. 다시 보고 싶은 책도 좋습니다. 여러 번 본 책은 어떤 게 있나요? 저는 제게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의 강의를 옮겨놓은 책을 좋아합니다. 여러 번 읽고 또 읽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이 쓴 책이라면 언제나 되풀이해서 읽어도 기쁩니다.

여러 번 되풀이하면 안 보이던 곳이 보이고, 더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보고 싶은, 아니 언제나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털실을 풀어서 새로운 인연을 만듭니다. 그래서 저는 되풀이가 늘 그립고 고맙습니다.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