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사흘이 입길에 올랐습니다. 사흘을 ‘4일’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처음에는 사흘을 4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웃었는데, 그런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는 좀 놀랐습니다. 사흘의 ‘사’와 4의 혼동이겠네요. 왜 혼동되게 만들었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던데 그것도 어이없지만 재미있는 일입니다. 갑자기 병사의 계급 순서를 ‘일병, 이병, 삼병’이라고 했다는 사람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것도 농담이었겠지요.
순우리말 수사와 한자어 수사가 비슷해 보이는 것에는 ‘이틀’도 있습니다. 이틀과 2가 닮아있습니다. 요즘에는 2틀이라고 쓰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사흘과 4를 더 혼동하게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사흘을 잘못 들어서 4일로 들었다면 이해가 가지만 사흘의 뜻을 ‘4일’로 알았다는 것은 아무래도 과장이 있는 듯합니다. 아무리 국어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는 아닐 겁니다.
한자어 수사는 ‘일, 이, 삼, 사, 오, 육, 칠, 팔, 구, 십, 이십, 삼십, 사십’ 등이지만 순우리말 수사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스물, 서른, 마흔, 쉰’ 등으로 전혀 다릅니다. 한국어의 계통을 말할 때 다른 언어와 우리말 수사의 일치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특이합니다. 한국어와 제일 비슷하다는 일본어도 수사는 한국어와 전혀 다릅니다. 또한 한국어의 수사는 뒤의 명사를 꾸며줄 때는 모양이 약간씩 바뀌기도 합니다. ‘한, 두, 세, 네, 스무’ 등이 그렇습니다. ‘석, 넉, 닷’ 등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순우리말에서 수를 나타내는 말은 날짜를 셀 때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오늘 이야기의 시작이었던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여드레, 아흐레, 열흘 등입니다. 하루를 제외하고는 뒤에 ‘흘’이나 ‘새, 에’가 붙어있습니다. 새와 에는 서로 관계가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닷’이나 ‘엿’에 ‘애’가 붙은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수를 나타내는 ‘읻, 사, 나, 닷, 엿, 일, 여들, 아흘, 열’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며칠이라는 말의 어원도 ‘몇 일’이 아니라 ‘몃흘’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몇 일’이라고 쓰지 않고, ‘며칠’이라고 쓰는 겁니다.
순 우리말 수사를 정리해 보면 ‘하루와 하나’ ‘둘과 읻’ ‘셋과 사’ ‘넷과 나’ ‘다섯과 닷’ ‘여섯과 엿’ ‘일곱과 일’ ‘여덟과 여들’ ‘아홉과 아흘’ ‘열과 열’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언뜻 봐도 대부분 쉽게 연결이 가능합니다. 모습으로는 ‘둘과 읻’이 완전히 달라 보입니다. 그런데 ‘읻’의 경우는 ‘이듬해’와 관련성이 보입니다. 다음, 두 번째 정도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셋과 사’, ‘넷과 나’는 달라 보이지만 ‘사나흘’과 ‘서너 개’를 비교해 보면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와 서, 나와 너가 모음이 교체된 것입니다. 이렇게 모음이 교체되어 새로운 어휘를 만드는 예는 우리말에 아주 많습니다.
‘사’가 3의 의미로 쓰이는 재미있는 예는 동물의 나이를 셀 때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동물의 세 살을 의미하는 말이 사릅입니다. 한 살은 하릅, 두 살은 두릅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의 ‘하룻’이 사실은 하루가 아니라, 하릅이라는 연구도 재미있습니다. 즉, 한 살 먹은 강아지는 눈에 보이는 게 없다는 의미입니다. 젊으면 용감하기도 하고, 무모하기도 합니다.
오늘 이렇게 사흘에서 시작한 이야기 속에서 다양한 우리말 수사를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편 일본어의 수사는 지금의 우리말과는 닮지 않았지만, 고구려의 수사와는 매우 닮아있다는 점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제일 신기하게 생각하는 수사는 바로 ‘마흔과 쉰’입니다. 다른 단어와 연관성을 찾는 게 쉽지 않습니다. 수사에도 수수께끼가 한 가득입니다.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전공) iiejhy@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