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죄를 짓다, 복을 짓다

2020/11/11 17:37:14

<죄와 벌>이라는 유명한 소설이 있다. 그래서인지 ‘죄’라고 하면 금방 떠오르는 연관어는 ‘벌’인 듯하다. 우리는 죄를 범하는 것을 범죄라고 한다. 죄는 ‘저지르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저지르다’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는 의미다. 범하다나 저지르다는 모두 매우 부정적인 느낌이 강한 단어이다. 한편 죄를 짓는다는 말도 하는데 ‘짓다’에는 가치중립적인 느낌이 있다. 짓다는 만든다는 의미인데 없는 것을 만들기도 하고, 있는 것을 더 좋게 만들기도 한다. 짓다가 들어가는 말을 보면 미소를 짓고, 웃음을 짓고, 눈물을 짓고 한숨을 짓는다.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행위의 느낌이 난다. 짓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하고 대표적인 것은 집과 밥과 옷이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에 짓는다는 표현을 썼다. 그 중에서도 집은 짓는 것에 대명사이다. 집의 어원도 짓다와 관련이 된다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다. 지붕은 집과 어원이 관련되는 어휘이다. 여담이지만 예전에는 ‘블럭’ 장난감을 ‘집짓기’라고 했다. 집짓기 장난감으로 집만 짓는 것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짓는 것의 기본은 집이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짓는 것 중에서 제일 안 좋은 것은 아마도 죄를 짓는 게 아닐까 한다. 그런데 나는 죄를 짓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왠지 아픔이 느껴진다. 죄를 범하는 것이나 저지르는 것과는 다른 감정이 든다. 죄를 지었다는 말이나 죄를 짓는 느낌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라. 심각한 죄뿐 아니라 밝혀지지 않은 작은 잘못까지도 죄의 범주에 들어가는 느낌이다. 즉 법적인 문제만 죄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죄에는 벌이 따른다. 그래서 우리말 표현에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라는 표현도 생겼다. 당연한 말처럼 보이지만 죄를 짓고도 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이런 표현이 생겼을 것이다. 그런데 벌을 받는 방법도 다양하다. 주리를 틀고 육시를 하는 무시무시한 방법도 있겠지만 죄를 씻는 데는 다른 방법도 있다. 한국어에는 이럴 때 쓸 수 있는 표현이 있다. 그것은 바로 ‘복을 짓다’이다. 물론 복을 짓는 행위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은 아니다. 살아가는 일이 모두 복을 짓는 일이어야 하고, 그래야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되는 것도 맞다. 하지만 죄를 지었다면, 죄를 짓는 느낌이 든다면 더 열심히 복을 지어야 한다. 보통 우리는 복은 받는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열심히 빌면 복이 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많이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복을 받는 것뿐 아니라 짓는 것으로도 보았다. 적극적으로 복을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복을 짓는 것은 나를 위하는 일들이 기본적으로는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약한 이에게, 가여운 이에게, 가난한 이에게 잘해야 한다. 그게 복을 짓는 일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죄를 짓고 산다. 나는 나를 위해 열심히 살았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것도 죄가 된다. 세상에는 나만 있는 게 아니다. 내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것도 죄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내 행복을 바라볼 때 죄스런 느낌이 든다. 이럴 때일수록 복을 지어야 한다. 나도 모르는 내 죄를 위해서도 그렇고, 내가 사는 이 세상을 위해서도 그렇다. 죄가 많을수록 더 많은 복을 지어야 한다. 죄를 짓는 것에 반대는 벌을 받는 게 아니라 복을 짓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복을 많이 지어야겠다.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

[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가을가을하다

2020/10/28 14:05:24

‘가을가을하다’라는 말은 사전에 없는 말입니다. ‘가을하다’라는 말은 사전에 있는데 ‘벼나 보리 따위의 농작물을 거두어들이다.’라는 뜻입니다. 가을이 추수를 하는 계절이니 알맞게 만든 말로 보입니다. 느낌이 참 좋은 말입니다. 내친김에 봄, 여름, 겨울도 찾아보았습니다. 뒤에 하다가 붙어서 단어를 이루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가을이라고 하면 추수가 생각나는 데 비해서 다른 계절은 금방 떠오르는 느낌이 없어서였을까요? 우리말에서 여름이라는 단어는 원래 농사와 관계가 있었습니다. 옛말에 ‘녀름’이라는 말이 여름(夏)의 뜻이었는데, ‘녀름 짓다’는 농사를 짓는다는 의미였습니다. 여름을 잘 만드는 것이 농사이고 가을을 하는 것이 추수라는 생각이 드니 계절의 느낌이 더 잘 다가옵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봄은 씨를 뿌리는 계절이라는 생각이 들고, 겨울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준비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봄과 겨울에도 그에 맞는 단어가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말에도 생로병사가 있습니다. 이미 녀름 짓다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말은 태어나서 사라지기도 합니다. 어떤 말은 잘 사용하지 않기도 하고, 잘못 쓰이기도 합니다. 늙기도 하고, 병이 들기도 한다는 의미겠죠. 어떤 사람은 잘 쓰이지 않는 말을 찾아 써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은 잘못 쓰는 말에 대해 개탄하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그게 말의 숙명이요, 생애이기도 합니다. 한편 말이 새로 생겨나는 것에 대해서도 못마땅해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말을 함부로 만들어 낸다고 걱정하기도 합니다. 말에는 권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잘못된 표현이나 새로운 표현이 사고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말은 늘 새로 생겨납니다. 막을 수가 없습니다. 막을 수 없다면 이왕이면 좋은 표현이 많이 생기면 좋겠다는 기대를 해 봅니다. 우리말에서 같은 말을 반복해서 만들어진 단어를 첩어(疊語)라고 합니다. 첩어는 기본적으로 반복을 의미하기에 여러 개라는 뜻을 나타냅니다. 대표적으로 ‘집집마다’와 같은 표현이 있을 겁니다. 다음으로는 반복적인 행위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의태어가 대표적인데 엉금엉금, 살금살금, 아장아장 등은 모두 반복적인 느낌을 보여줍니다. 한 발짝, 한 발짝 걸음을 떼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우리말에는 첩어가 무척이나 발달하였습니다. 리듬감을 살리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이 반복되면 강조의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보다는 여러 번 반복하여 말하는 것이 느낌을 더 잘 나타낸다는 생각이었을 겁니다. ‘야들야들’의 느낌은 어떤가요? 특히 부사의 경우에는 반복을 하면 강조가 됩니다. ‘더욱’과 ‘더 더욱’의 느낌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반복을 하면 느낌이 더 선명해집니다. 최근에 새로 생기는 말에 이런 첩어가 많아서 재미있습니다. 말장난처럼 보이는데, 사람들이 즐거워합니다. 하긴 장난은 즐거운 것이죠. 이왕이면 장난 때문에 다치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장난도 때로 상처가 되니 즐거운 말장난을 기대해 봅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표현도 사전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가을가을하다’라는 말도 사전에는 없는 말이지만 쓰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가을의 느낌이 물씬 날 때 이런 표현을 씁니다. 가을이 두 번 쓰이니 가을 느낌이 무르익습니다. 노란 은행잎, 붉은 단풍, 가을 색을 담은 벚나무 이파리가 가을빛을 담고 있습니다. 푸르고 맑은 하늘빛도 떠오르네요. ‘하늘하늘’이라는 단어는 하늘과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데도 왠지 하늘의 느낌이 나서 좋습니다. 요즘 날씨가 그렇습니다. 가을이 깊어갑니다. 여러 가지로 힘든 봄, 여름을 지나고 이 계절도 무척이나 힘겹게 지내고 있습니다만, 가을을 느껴 보시고 새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요즘 날씨가 참 가을가을하네요. :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전공) iiejhy@khu.ac.kr

[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어울리는 사람의 어울림

2020/10/04 12:49:44

‘어울리다’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이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하나는 조화를 이룬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같이 지낸다는 뜻이다. 참 절묘한 조합이다. 그러고 보면 어울리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만큼 기쁜 일도 없다. 어울린다는 말은 나와 똑같다는 뜻이 아니다. 나랑 모든 게 같으면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나와는 다르지만 나를 밀어내지 않고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나와 어울리는 사람이다. 어울리는 것은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나에게 어울리는 장식품이 있고, 나에게 어울리는 옷이 있다. 반지가 어울리는 사람이 있고, 목걸이나 귀고리가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화장이 어울리는 사람이 있고, 맨 얼굴이 자연스러운 사람이 있다. 치마가 어울리는 사람이 있고 바지가 어울리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어울린다는 말은 종종 나답다는 의미가 된다. 내게 어울리게 꾸며야 한다. 내게 어울리지 않으면 그저 붕 떠있는 장식일 뿐이다. 유행을 숨 가쁘게 따라가다 보면 나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 나에게는 뭐가 어울리는가? 내게 어울리는 말도 있고 행동도 있다. 어떤 사람은 말을 잘하니 말을 해야 하고, 어떤 이는 생각이 깊으니 사색에 잠겨야 한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은 노래를 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그림을 그려야 한다. 남이 잘 하는 것을 나도 잘 해야 하는 것이 아닌데, 괜히 주눅이 들고 자책을 한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을 찾아야 한다. 공부를 잘 하고, 시험문제를 잘 푸는 게 능력이어서는 안 된다. 공부는 방편이다. 평생 동안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면 그것만큼 큰 행복이 없다. 일이 좋아야 한다. 일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 서로 다른 사람일수록, 서로 다른 문화일수록 어울리는 점이 많다. 한국인 끼리보다는 다른 나라 사람과 만나면 재밌는 점이 많다. 다르니까 느낄 수 있는 재미다. 외국어는 생존을 위해서도 배우지만 재미를 위해서도 배운다. 내가 그 사람의 말을 하면 그 사람은 반가워한다. 내가 다른 말 속에 담긴 문화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내 그릇도 커지고 더 많은 문화를 담을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과 어울릴 수 있다. 어울리려면 서로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소 닭 보듯이 해서는 어울릴 수 없다. ‘어울리다’라는 말을 친구 사이에 가장 많이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나는 것과 어울리는 것은 다르다. 어울림에는 기본적으로 즐거움이 있다. 보통은 같은 취미를 가지고 어울린다. 같이 음악을 듣고, 춤을 춘다. 같이 음식을 먹고, 술도 마신다. 그런데 자칫하면 이런 것이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고집을 부리기 때문이다. 자기 음악만이 좋다고 하거나, 자기의 춤이 더 낫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만남은 다툼이 된다. ‘다투다’라는 말은 경쟁에서 왔다. ‘일 이등을 다툰다.’는 말을 생각해 보라. 그 정도면 충분한데도 자꾸 1등을 하려 한다. 당연히 서로 돕는 일은 없다. 음식도 잘 못 먹으면 안 되고, 술도 잘못 마시면 안 된다. 비싼 음식이 좋은 게 아니고 비싼 술이 좋은 게 아니다. 자꾸 좋은 음식 타령을 한다. 술과 음식은 좋은 사람과 먹어야 더 맛있다. 술마다 어울리는 안주가 있고, 음식마다 궁합이 잘 맞는 음식이 있다. 먹는 거야말로 어울림이 생명이다. 지난주에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한, 유럽 세종학당 워크숍이 있었다. 나는 특별강연자로 참가하게 되었다. 한국어 교육의 열기, 한국 문화에 대한 사랑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워크숍이 끝난 후 한국과 유럽의 문화 교류 축제가 있었다. 모든 순서가 감동적이었지만 특히 우리의 악기인 가야금, 대금, 해금과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가 만들어낸 어울림에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연주가 끝난 후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서로의 느낌이 잘 어울리는 연주였다. 진정한 어울림은 따뜻하다. 행복하다. (*본 칼럼 내용은 지난 2016년에 개재되었던 내용임을 밝힙니다 : 편집자주) :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

[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오’ 이야기

2020/09/17 16:46:14

‘오’는 입술이 모아지는 음입니다. 입술이 앞으로 밀려나오는 모습입니다. 입술을 동그랗게 하는 음이어서 원순모음(圓脣母音)이라고 합니다. 밝은 모음이어서 감탄사로 표현하면 기분이 좋거나 칭찬의 느낌을 줍니다. ‘오!’의 느낌을 떠올려 보면 됩니다. ‘우’ 역시 입술이 앞으로 나오는 음이지만 무거운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감탄사로 ‘우!’를 표현하면 주로 불만이나 야유를 나타냅니다. 주로 저음(低音)으로 표현합니다. 무겁게 발음하는 겁니다. ‘오’의 글자를 보면 오가 보여준 느낌을 글자에 그대로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글자는 땅을 나타내는 ‘으’에 아래아를 더한 글자입니다. 즉, 땅 위에 하늘이 있는 것으로 해가 뜨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아’와의 차이는 오의 경우는 해가 위로 뜬다는 점입니다. 아는 동쪽에서 뜨는 것인데 말입니다. 태양이 위로 뜬다는 점에서 입을 모으고 위로 벌리는 느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양성 모음이라도 글자에 느낌을 담아 구별하고 있는 겁니다. 아와 오를 설명할 때 이렇게 글자의 느낌도 설명하면 좋겠습니다. 오는 해가 뜨는 모양을 글자에 표현한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따뜻한 느낌도 있습니다. 계절 중에서 ‘봄’에 오가 들어가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같은 입김이라도 ‘호’와 ‘후’의 느낌이 다릅니다. ‘호~’라고 하면 따뜻한 온도가 느껴집니다. 따뜻한 입김입니다. 아가의 상처에 엄마가 불어주는 바람, 얼어붙은 아이 손에 부는 입김이기에 온도와 사랑이 있습니다. 이렇게 바람을 부는 것을 ‘호호’라고도 합니다. ‘호호’는 엄마의 웃음소리를 표현하기도 하는데 참 재미있습니다. 아가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병이 다 나았을 때 기뻐하는 엄마의 웃음소리가 떠오릅니다. 호호는 행복한 기억이고, 호호는 행복한 마음입니다. 해가 뜨는 것이니 당연히 위로 올라가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첫음절에 ‘오’가 들어가는 순우리말 단어 중에는 상승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어휘가 많습니다. ‘오르다, 솟다, 돋다’ 등의 어휘가 전부 오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올라가고, 솟아오르고, 돋아납니다. 오가 들어감으로써 움직이는 방향을 명확히 하는 느낌입니다. 모음 글자를 볼 때 점의 위치와 방향을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이 나올 겁니다. 오는 원순모음이어서 원의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오라고 발음을 하면 왠지 눈도 동그랗게 뜨게 됩니다. 약간은 놀라는 느낌을 줍니다. 눈도 동그랗게 뜨고, 입도 동그랗게 벌리고 있으니 놀란 모습이기는 한데, 재미있는 느낌입니다. 알파벳에서도 ‘O’는 동그라미로 표현합니다. 입을 동그랗게 하고 내는 소리이기에 동그라미로 표현했을 것입니다. 우리말에서는 동그라미를 목구멍의 모양으로 표현했습니다. 이응(ㅇ)이라는 글자입니다. 텅 비어있는 느낌을 표현한 겁니다. 같은 동그라미지만 서로 다른 관점에서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말에서도 ‘오’는 입모양에서부터 동그란 느낌을 담고 있습니다. 글자가 아니라 소리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동그랗다’라는 단어에 오가 들어있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동그랗다’라고 발음을 하려면 입을 동그랗게 해야 하는 겁니다. ‘돌다’라는 단어에도 오가 들어갑니다. 원을 만들며 움직이는 행위입니다. 김밥을 ‘돌돌’ 마는 것에도 오가 들어가네요. 오의 글자는 태양이 떠오르는 밝고 따뜻한 이미지를 담고 있습니다. 상승의 이미지도 표현합니다. 오의 소리는 동그란 입을 통해서 나오기에 원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오의 글자와 소리의 미묘한 조화에 감탄하게 됩니다. 한글 모음 글자의 매력이 여기에 있습니다.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전공) iiejhy@khu.ac.kr

[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우리는 참 다행이다

2020/09/01 14:40:32

세상을 살면서 어려운 일을 참 많이 만납니다. 몸에도 마음에도 병이 생기고, 주변에 친구나 가족에게 불행한 일이 닥쳐옵니다. 오죽하면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했을까요? 고통의 바다처럼 괴로움의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온다는 뜻일 겁니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 보면 이런 고통을 이겨낼 자신도 사라집니다. 그럼 더 우울해 집니다. 아직 닥치지 않은 일도 걱정이 되어 괴롭힙니다.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일도 미리 당겨서 걱정을 하지만 힘든 생각을 피할 방법을 알지 못해 더 괴롭습니다. 걱정하지 않는 방법을 수많은 책에서 제시하는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 그렇게 많은 방법이 있다는 것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증거일 겁니다. 감기약의 종류가 많은 것과 같은 이치일 수 있겠네요. ‘다행’이라는 말을 공부하다가 다행은 주로 불행한 일이 있을 때 쓰는 말이라는 것을 듣고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다행(多幸)이라는 단어는 행운이 많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 단어를 불행한 상황에 사용한다니 참 아이러니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쩌면 가장 불행한 순간에도 우리는 행복을 찾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불행한 순간조차도 우리에게는 다행일 수도 있습니다. 그만하기 다행이라는 말이 보여주는 세상입니다. 더 큰 불행을 맞지 않은 것만 해도 운이 좋은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난 어떤 일이 다행일까요? 다행이라는 말이 행운이 많다는 의미이니 우리가 갖고 있는 행운의 수를 세어보면 어떨까요? 받아들이기 힘든 분도 있겠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엄청난 행운입니다. 수많은 실패를 뚫고 우리는 엄마, 아빠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말조차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내가 괴로운데 태어난 게 무슨 행복인가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태어난 게 행운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나를 세상에 나오게 해 주신 분이 있다는 것, 나를 가엽게 생각해 준 분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부모님이 어떤 분이든지 감사해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내가 행운임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인간은 함께 삽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참 다행입니다. 나를 위로해 주고, 내가 위로해 줄 사람이 있어서 말입니다.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이 잘 안 보인다면 내가 위로할 사람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주변에 나의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내가 정말 힘들다면 더 힘든 사람을 찾아 위로를 건네 보세요. 위로는 상호적이어서 위로를 하면서도 위로를 받습니다. 내가 위로를 받는 것도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겁니다. 사실 우리가 힘든 것은 위로받는 것조차 두렵고 부끄러워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나를 위로하는 사람도 내게 위로를 받는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다행이다’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적이 부른 노래인데, 많은 이들이 무척 좋아한 노래였습니다. 멜로디도 좋았지만 특히 가사가 우리에게 공감을 주었습니다. 좋은 가사가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보여주는 노래입니다. 가사 끝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다행이다’라는 말은 힘든 마음에 위로를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 큰 행복입니다. 가사 속에는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어서, 되지 않는 위로라도 할 수 있어서’라는 부분이 나옵니다. 위로를 주고받는 행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위로를 받고 있습니까? 누구를 위로하고 있습니까? 그런 사람이 있기는 있습니까? 우리가 정말 다행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은 내 옆에 서있는 사람 덕분입니다. 나도 그에게 다행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게 있으나 기억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행복을 생각해 봅니다. 참 행복한 사람인데, 우리는 종종 그걸 잊고 삽니다.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

[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사흘 이야기

2020/08/20 12:46:48

한동안 사흘이 입길에 올랐습니다. 사흘을 ‘4일’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처음에는 사흘을 4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웃었는데, 그런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는 좀 놀랐습니다. 사흘의 ‘사’와 4의 혼동이겠네요. 왜 혼동되게 만들었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던데 그것도 어이없지만 재미있는 일입니다. 갑자기 병사의 계급 순서를 ‘일병, 이병, 삼병’이라고 했다는 사람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것도 농담이었겠지요. 순우리말 수사와 한자어 수사가 비슷해 보이는 것에는 ‘이틀’도 있습니다. 이틀과 2가 닮아있습니다. 요즘에는 2틀이라고 쓰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사흘과 4를 더 혼동하게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사흘을 잘못 들어서 4일로 들었다면 이해가 가지만 사흘의 뜻을 ‘4일’로 알았다는 것은 아무래도 과장이 있는 듯합니다. 아무리 국어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는 아닐 겁니다. 한자어 수사는 ‘일, 이, 삼, 사, 오, 육, 칠, 팔, 구, 십, 이십, 삼십, 사십’ 등이지만 순우리말 수사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스물, 서른, 마흔, 쉰’ 등으로 전혀 다릅니다. 한국어의 계통을 말할 때 다른 언어와 우리말 수사의 일치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특이합니다. 한국어와 제일 비슷하다는 일본어도 수사는 한국어와 전혀 다릅니다. 또한 한국어의 수사는 뒤의 명사를 꾸며줄 때는 모양이 약간씩 바뀌기도 합니다. ‘한, 두, 세, 네, 스무’ 등이 그렇습니다. ‘석, 넉, 닷’ 등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순우리말에서 수를 나타내는 말은 날짜를 셀 때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오늘 이야기의 시작이었던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여드레, 아흐레, 열흘 등입니다. 하루를 제외하고는 뒤에 ‘흘’이나 ‘새, 에’가 붙어있습니다. 새와 에는 서로 관계가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닷’이나 ‘엿’에 ‘애’가 붙은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수를 나타내는 ‘읻, 사, 나, 닷, 엿, 일, 여들, 아흘, 열’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며칠이라는 말의 어원도 ‘몇 일’이 아니라 ‘몃흘’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몇 일’이라고 쓰지 않고, ‘며칠’이라고 쓰는 겁니다. 순 우리말 수사를 정리해 보면 ‘하루와 하나’ ‘둘과 읻’ ‘셋과 사’ ‘넷과 나’ ‘다섯과 닷’ ‘여섯과 엿’ ‘일곱과 일’ ‘여덟과 여들’ ‘아홉과 아흘’ ‘열과 열’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언뜻 봐도 대부분 쉽게 연결이 가능합니다. 모습으로는 ‘둘과 읻’이 완전히 달라 보입니다. 그런데 ‘읻’의 경우는 ‘이듬해’와 관련성이 보입니다. 다음, 두 번째 정도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셋과 사’, ‘넷과 나’는 달라 보이지만 ‘사나흘’과 ‘서너 개’를 비교해 보면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와 서, 나와 너가 모음이 교체된 것입니다. 이렇게 모음이 교체되어 새로운 어휘를 만드는 예는 우리말에 아주 많습니다. ‘사’가 3의 의미로 쓰이는 재미있는 예는 동물의 나이를 셀 때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동물의 세 살을 의미하는 말이 사릅입니다. 한 살은 하릅, 두 살은 두릅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의 ‘하룻’이 사실은 하루가 아니라, 하릅이라는 연구도 재미있습니다. 즉, 한 살 먹은 강아지는 눈에 보이는 게 없다는 의미입니다. 젊으면 용감하기도 하고, 무모하기도 합니다. 오늘 이렇게 사흘에서 시작한 이야기 속에서 다양한 우리말 수사를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편 일본어의 수사는 지금의 우리말과는 닮지 않았지만, 고구려의 수사와는 매우 닮아있다는 점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제일 신기하게 생각하는 수사는 바로 ‘마흔과 쉰’입니다. 다른 단어와 연관성을 찾는 게 쉽지 않습니다. 수사에도 수수께끼가 한 가득입니다.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전공) iiejhy@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