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소응대의 비밀
쇄소응대(灑掃應對)는 전통 교육의 핵심입니다. 물 뿌리고, 쓸고, 응대를 잘하라는 의미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소학에도 여러 번 쇄소응대가 등장합니다. 쇄소응대는 말 그대로 청소 잘하고 사람 접대 잘하라는 말입니다. 주변을 깨끗이 하여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충고이고, 사람에게 진실되게 응대해야 인간관계를 잘할 수 있다는 권고일 겁니다. 그래서 우리 교육에도 주요 내용이 되었을 겁니다.
어릴 적 기억 속에는 쇄소응대의 장면이 남아있습니다. 어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물을 뿌리고, 마당과 집 앞을 쓸었습니다. 아침 풍경이지요. 저는 그때 그 모습이 쇄소응대인 줄은 몰랐습니다. 일찍 일어나서 집 앞에 물을 뿌리면 흙냄새가 확 올라옵니다. 아침 기억의 냄새네요. 물은 조리개로 뿌리기보다는 바가지의 물을 손으로 조금씩 뿌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을 뿌리는 행위가 배려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먼지가 나는 것을 막아서 주변 사람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쇄소의 쇄에서는 청소의 의미뿐 아니라 배려의 의미도 읽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지런함의 의미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앞서 집 앞을 쓰는 겁니다. 자기 집 앞만 쓰는 것도 아닙니다. 골목을 여기저기 쓸고 다닙니다. 골목 끝까지 물을 뿌려가며 청소를 하고 나면 깨끗한 길 위로 사람들이 출근을 하는 겁니다. 맑은, 깨끗한 아침을 시작하는 것이지요.
응대는 접대(接待)와 대접(待接), 대답, 응답 등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대접과 접대는 같은 단어인데 전혀 다른 느낌으로 되었습니다. 접대는 왠지 직장에서 목적을 가지고 하는 행위로 보이고, 대접은 신세를 갚는 느낌이 있습니다. 원래의 의미는 손님을 잘 모시는 겁니다. 즉 남을 잘 대하는 것이 응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살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다른 사람은 누구나 같아야 할 겁니다. 힘 있는 자, 돈 있는 자와 못 가진 자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면 응대는 실패한 겁니다. 그런 응대를 가르치고자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응대는 어른에 대한 태도를 담고 있습니다. 공손하게 응답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팔짱을 끼거나, 뒷짐을 지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딴청을 부려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잘 듣는다는 것은 듣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점점 많아집니다. 상대에 따라서 내 듣는 태도는 달라지기도 합니다. 응대에 실패하고 있는 겁니다. 눈높이에 맞추어 듣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응대입니다.
예전에 스토니부룩의 박성배 교수님께 불교를 배울 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선생님이 불교를 잘 모르던 시절에 다른 절에 가서도 대접을 받는 방법을 스님께 물었더니, 가는 절마다 남보다 청소 열심히 하고, 인사 잘하라는 대답이었다고 합니다. 참 쉬운 방법이었습니다. 박성배 선생님은 가는 곳마다 먼저 청소하고, 먼저 인사하였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모두 환영하고 좋아해 주었다고 하네요. 성자가 나타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성자가 되기도 쉽습니다.
그게 바로 쇄소응대였습니다. 쇄소응대만 잘하면 성자가 됩니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먼저 마음의 인사를 하고, 가는 곳마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내가 먼저 하려고 한다면 참다운 사람이 될 겁니다. 나이가 들면서, 힘든 일은 남에게 미루고, 인사는 하기보다 받으려고 합니다. 그것도 사람을 가려가면서 말입니다. 성자는 남의 이야기입니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