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세상이 ‘죽어라 죽어라’ 할지라도…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21/01/07 14:12

‘설상가상(雪上加霜)’을 순우리말로 바꾸면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합니다. 눈 위에 서리가 내린 모습, 괴로움이 연이어 닥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아마도 견디기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순간일 겁니다.

이럴 때 우리가 자주 쓰는 표현으로는 ‘죽어라 죽어라 한다’도 있습니다. 입에 담기도 끔찍한 단어인 ‘죽다’를 두 번이나 반복해서 쓴 표현으로, 나는 살고 싶은데 주변 상황이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자연재해는 나를 늘 위태롭게 합니다. 살아있는 게 얼마나 운이 좋은 것인가를 느끼는 순간도 많습니다. 갑자기 태풍이 불기도 하고, 큰비가 내리기도 합니다. 내가 지나는 길에 언제든지 산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지나친 걱정이 나를 해치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입니다. 우리나라에 지진이 적은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지진이 일상이라면 어떨까요. 늘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느낌입니다.

전염병은 현대사회에서 좀 덜한 위험이 됐지만 예전에는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제일 무서워한 게 호환과 마마였습니다. 호환은 호랑이에게 피해를 입는 것이니 호랑이만 조심하면 별로 피해를 입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마마’는 다릅니다. 한 번 천연두나 홍역이 돌면 누구도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내게 닥치지 않고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입니다. 예전에는 왕비를 비롯한 왕족들도 ‘마마’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 ‘마마’가 원래 왕이나 왕비 등 왕족을 부르는 호칭인데 마마에 마마가 세상을 떠나는 일마저 생긴 것입니다.

뜻하지 않게 가족이 아프거나 다치거나 세상을 떠나기도 합니다. 가족의 일이지만 그대로 내 일이기도 합니다. 애타는 마음에 가슴을 치고, 가슴을 쥐어뜯습니다. 그야말로 죽어라 하는 듯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는 것도 참을 수 없는 고통입니다. 내 배 곯는 것은 참을 수 있을지 모르나 자식이 배고파하고 늙으신 부모님이 굶주리는 것은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아픔입니다. 돈이 없어서 먹지 못하고, 치료받지 못하고, 배우지 못합니다. 벌이가 늘어가기는커녕 빚이 늡니다. 도대체 하루하루를 버텨낼 재간이 없습니다. 죽어라 죽어라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 중에 경제적 원인이 제일 크다고 하니 그 고통이 감히 짐작됩니다.

사람에게 받은 배신은 삶을 고통으로 몰아넣습니다. 등 뒤에 칼을 꽂는다는 표현에서 고통을 마주하게 됩니다. 배신은 주로 가까운 사이에서 일어납니다. 등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어야 하니까요. 사랑이 배신이 됩니다. 믿음이 배신이 됩니다. 그래서 더 아픕니다.

죽어라 하고 노력했는데 끝내 이뤄지지 않았을 때 절망은 죽음에 가까이 갑니다. 살 의지가 생기지 않습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배신으로 다가옵니다. 하고 싶은 일, 되고 싶은 자리에서 끝내 멀어집니다. 그냥 낭떠러지에 서 있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죽어라 죽어라 한다고 해서 따를 수는 없습니다. 듣지 말아야 할 명령입니다. 아니 환청입니다. ‘살아라 살아라’ 하는 소리를 잘못 듣고 있는 겁니다. 힘이 드니까 힘을 내야 합니다. 힘이 들어가는 일에 힘없이 서 있을 수는 없습니다.

세상은 나를 죽어라 죽어라 하는 것 같지만 나는 살아야겠다, 살리라 하며 이겨내야 합니다. 알고 보면 힘들지만 살아내는 게 행운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행운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불운이 계속됐다면 이제부터는 행운이 올 차례입니다. 작은 운부터 찾아가며 기다려야 할 때입니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으로 경제가 파탄 나고, 사람이 사람을 믿지 않게 됐습니다. 그래도 살아야 합니다. 살아내야 합니다.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