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러움에서 다움으로
한국어의 ‘-스럽다’와 ‘-답다’는 접미사입니다. 주로 명사 다음에 붙어서 형용사로 만드는 기능을 합니다. 스럽다와 답다는 서로 다른 단어에 붙기도 하고, 같은 단어에 붙기도 합니다. 물론 같은 단어에 붙더라도 의미나 뉘앙스의 차이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다른 단어에 붙는 경우에는 그 의미가 좀 더 뚜렷해집니다. 예를 들어 사랑스럽다는 가능하지만, 사랑답다는 어색합니다. 남자답다는 가능하지만, 남자스럽다는 어색합니다. 어른스럽다와 어른답다는 모두 가능합니다. 스럽다와 답다는 각각의 기능이 있고, 의미의 차이도 분명해 보입니다.
스러움은 그런 느낌을 나타내는 반면, 다움은 그러하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어른스럽다는 말은 어른의 느낌이 있다는 말이지만, 어른답다는 어른으로서의 행위를 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어른스럽다는 주로 아이에게 쓸 수 있는 말이고, 어른답다는 어른에게는 쓰는 말입니다. 스럽다와 답다가 구별되어 사용하는 경우는 주로 사람에 해당하는 명사입니다. 물론 사람에 해당한다고 해서 두 접미사가 모두 쓰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 이유가 궁금해지는 겁니다.
스럽다와 답다에 사람이 오지 않는 경우에는 의미를 구별하거나 설명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믿음직스럽다, 정성스럽다에는 믿음직한 느낌, 정성이 가득한 느낌을 나타낸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반면 정답다는 정 그 자체라는 의미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아름답다의 경우는 아름이 독립적으로 쓰이지 않기 때문에 어원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아름이라는 단어를 중세국어에서 나를 의미하는 아름으로 연결하는 것은 답다 앞에 주로 사람에 해당하는 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스러움은 강조되어야 할 일이 있을 경우에 사용되기에 사회언어학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어른스럽다는 가능하지만 아이스럽다는 안 됩니다. 여성스럽다는 가능하지만 남성스럽다는 어색합니다. 여기에서 어른이나 여성은 사회적 가치를 요구받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른스럽게 행동해야 하고, 여성스럽게 행동해야 하는 겁니다. 아이나 남자에게는 ‘스러움’은 필요하지 않고, ‘다움’만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가치가 작동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구를 담고 있는 것이 스럽다이고, 그 자체의 가치를 담고 있는 것이 답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답다에는 다양한 행동의 주체가 자연스럽게 결합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를 정의하는 가치에 걸맞다는 의미를 나타내게 됩니다. 나답다, 너답다, 그답다, 그녀답다, 한국답다, 미국답다, 서울답다, 부산답다 등의 말이 모두 여기에 해당합니다. 답다는 접사 중에서는 매우 열려있는 접미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산적인 접사인 것입니다. 다만 다움이 긍정적인 가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범인이나 악마에도 범인다움이나 악마다움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움과 스러움을 보면서 여러 사회적인 가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때로는 다움은 필요하지만 스러움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성다움과 여성스러움의 간격을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아이는 아이다우면 되는데, 어른스러움을 요구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한편으로는 다움도 일종의 규정지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자가 꼭 남자다울 필요도 없습니다. 여자가 꼭 여자다워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규정지음으로 인해 그 세상에 갇혀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러움과 다움의 벽을 벗어나는 사고도 필요한 세상입니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