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하게 지내세요
‘친하다’라는 말은 물론 한자 친(親)에 ‘하다’가 붙은 말입니다. 저는 1음절 한자에 ‘하다’가 붙는 말을 볼 때마다 우리말에 한자가 폭넓게 들어와 있음을 새삼 느낍니다. 친이라는 말은 혼자는 쓰이지 않는 말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친하다의 반대말은 한자로는 잘 나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굳이 만들어 쓰자면 ‘혐(嫌)하다’ 정도를 쓸 수 있을까요? 아무튼 반대말이 없는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쁜 말은 가능하면 만들지 않고, 쓰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말 쓰며 살기에도 짧은 세상 아닌가요?
‘친’이 들어가는 말은 다정한 느낌이 있습니다. 친의 기본적인 의미가 가깝다는 의미니까 그런 느낌이 들 겁니다. 친하다라는 말은 이런 느낌의 시작점입니다. 다른 단어도 생각해 볼까요? 친하니까 친구(親舊)이고 친척(親戚)입니다. 친밀하고 친숙하며 친절하다라는 말에서 정을 느끼게도 됩니다. ‘친’이 들어가는 표현을 많이 쓰며 살면 좋겠습니다. ‘친’을 쓰면서 가까운 사람도 많아지면 좋겠네요.
‘친’은 또한 닮았다는 의미입니다. 친의 가장 정확한 의미는 닮았다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 당연히 닮았다는 말은 가깝다는 말과 연결되는 말입니다. 가까우니까 닮는 것이겠죠. 아는 형, 누나, 언니, 오빠, 동생은 많지만 ‘친’이 붙으면 그야말로 피를 나눈 사이입니다. 친형제와 아는 형은 전혀 다른 관계입니다. ‘친’이 붙으면 물보다 진한 사이라는 말입니다. 친형제와 잘 지내야겠습니다. 물만도 못한 피도 많습니다. 형제간의 다툼은 불효의 시작입니다.
사실 ‘친’ 중의 ‘친’은 부모님입니다. 나랑 가장 가깝고, 내가 가장 닮은 사람이 부모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님은 양친(兩親)이라고 합니다. 나누어 말하면 모친(母親)과 부친(父親)이 됩니다. 친어머니, 친아버지, 친형, 친언니, 친누나, 친오빠, 친동생의 무게와 따뜻함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오륜 중에서 부자유친에도 친이 보이지요. 이때 친도 단순히 친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장 닮았다는 의미입니다. 부모와 자식은 더 가까워야 합니다.
이런 ‘친’이 종종 나쁜 의미로도 쓰입니다. 가장 나쁘게 쓰이는 말이 친일입니다. 친일에 파까지 붙으면 상종하지 못할 사람이 됩니다. 친북도 만만치 않습니다. 종북이라는 말도 사용하지만 시작점은 친북입니다. 친미나 친중도 관점에 따라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표현이 됩니다. 요즘엔 정치에도 ‘친’이 쓰입니다. 친노, 친박, 친이, 친문 등으로 쓰입니다. 자신이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선호도가 달라지는 표현들입니다.
어떤 나라나 어떤 사람하고 친하게 지내는 것이 나쁜 일이 된다는 게 참 어려운 숙제입니다. ‘친’은 원래 좋은 것인데 말입니다. 친하게 지내고, 가깝게 있으며, 서로 닮아가려고 하는 사이인데 문제가 되는 겁니다. 저는 ‘친’이라는 말이 문제가 될 때마다 더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친한 게 왜 잘못일까에 대해서 고민해야 합니다. 친해서 싸우지 않으면 더 좋은 것일 텐데 친하다면서 편 가르기를 하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면 친의 역할을 잘못하는 것이겠죠. ‘친’은 싸우지 말자는 것이고, 평화롭게 살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류나 외교를 이야기하면서 친한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 외국인은 친한파라면서 칭찬을 합니다. ‘친’의 이중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말들입니다. 친한파도 누군가에게는 나쁜 표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친한파뿐 아니라 모든 ‘친’이 좋은 관계이기 바랍니다. 긍정적인 의미이고 따뜻한 느낌이기 바랍니다.
어찌 ‘친’이 나쁠까요. 저는 매국이라는 표현과 친일이 동일한 의미처럼 사용되어 친의 의미가 타락한 것이라고 봅니다. 매국은 매국으로 쓰고 친일은 좋은 의미로 쓸 수 있기 바랍니다. 일본과 친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니까요. 일본과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어찌 나쁜 일일까요? 특히 친한은 좋다고 하면서 친일이나 친중이나 친미를 미워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서로가 서로에게 ‘친’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친’이 아닌데 그들이 ‘친’일 리가 없습니다.
혐하다는 말은 없는데, 세상에 온갖 저주의 말, 상처의 말, 혐오의 말이 난무합니다. 혐한이 생기고 혐일, 혐중이 생깁니다. 미워해서 해결되는 것은 없습니다. 말이 거칠어질수록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친(親)’은 평화와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