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걷고 나서 숲이 보입니다. 나무가 보입니다. 풀이 보입니다. 눈을 조금 들면 나뭇가지가 보이고 그 끝으로 하늘이 보입니다. 구름이 그런 모습이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숲을 걷고 나서 길이 보입니다. 흙이 보입니다. 바위도 보이고 자갈도 보입니다. 정성껏 쌓아놓은 돌탑도 보이네요.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곳에는 돌탑이 참 많습니다. 걸으며 돌탑을 보면 온기가 느껴지고, 저도 돌 하나를 올려놓곤 합니다.
숲을 걷고 나서 꽃을 알게 되었습니다. 칡꽃이 천지네요. 바람꽃도 마타리도 배웁니다. 모르는 꽃이 많아 반갑습니다. 나무도 배웁니다.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 편백나무, 자작나무 등등 숲은 그대로 나무의 집입니다. 그 깊은 초대에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나무가 떨어낸 또는 떨어뜨린 나뭇잎은 길을 덮고, 흙보다 더 흙 같은 모습으로 길을 보여줍니다.
숲길을 걷고 나서 새를 만나고, 곤충을 만납니다. 새는 소리입니다. 모습보다 소리가 먼저 나를 지납니다. 휘파람으로 따라해 봅니다만, 새가 웃겠네요. 어설픈 모방이나 새를 닮으려 애쓰는 것으로 이해해 주겠지요. 곤충은 때로 적응이 안 됩니다. 잠자리나 메뚜기나 방아깨비 등 익숙한 모습도 있지만 낯설거나 여전히 피하고 싶은 곤충도 많습니다. 길을 따라오면서 눈앞을 뱅뱅거리는 ‘눈에놀이’나 길을 막고 선 거미는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숲길을 걸으니 뜻밖에도 사람이 보입니다. 먼저 길을 걸었던 사람을 만납니다. 길은 한 사람의 뒤를 다른 한 사람이 이어갔기에 길이 되었을 겁니다. 쌓아놓은 돌탑도, 나무에 묶인 리본도 길을 보여줍니다. 발자국이 발자국을 덮습니다. 앉아서 곤한 다리를 쉬었을 평평한 바위도 만납니다. 분명 내가 처음이 아니었을 겁니다. 왠지 먼저 길을 걸었던 사람이 고맙습니다. 나와 같은 사람이 나처럼 걸었을 겁니다. 위로를 받았을 겁니다.
길을 걸으면서 옆을 봅니다. 함께 걷는 사람이 고맙습니다. 함께 숲길을 걷습니다. 새로운 숲을 만나고 새로운 하루를 만나고 새로운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내와 걷는 하루는 왜 아내가 반려자이고 동반자인지 알게 합니다. 반려자(伴侶者)라는 말은 짝이 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반(伴)도 려(侶)도 짝이라는 뜻입니다. 반이라는 글자가 예쁘네요. 나의 반이 되는 사람입니다. 나도 그의 반이 되어야겠지요. 동반자(同伴者)의 반도 같은 글자입니다. 어떤 일을 함께하는 나의 나머지 반이 동반자인 셈입니다.
반은 도반(道伴)이라는 말에도 쓰입니다. 도반은 함께 도를 닦는 벗이라는 의미이지만, 저에게는 함께 길을 걷는 짝이라는 의미로도 보입니다. 함께 걷는 벗이 있음은 고마운 일입니다. 같이 걷는 이가 모두 도반입니다. 도를 닦는다는 말을 하면서도 우리는 종종 도(道)가 길의 의미라는 점을 잊습니다. 글자의 모양을 보면 산에 사는 사람이 선인(仙人)입니다. 산을 걷고 숲을 걸으면 선인이 됩니다. 도를 깨닫게 됩니다. 도가 엄청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자연에서 배웁니다. 숲에서 배웁니다. 숲길에서 깊이 느낍니다.
오늘도 나를 치유하는 숲길을 걷습니다. 위로와 희망의 숲길을 걷습니다. 걷기가 올곧게 위로입니다. 깨달음의 숲길입니다. 거창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차분히 스스로를 바라보게 합니다. 한참 숲길을 걷고 나니 숲 밖의 세상도 보입니다. 사람도 보입니다. 숲길을 걸으니 앞이 보입니다. 길은 여러 모습으로 내 앞에 놓여있습니다. 제가 가야할 길이기에 한 걸음을 더 옮깁니다. 앞으로 말입니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