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접시, 불안한 지갑
태국 경제, 위기의 그림자와 돌파구 모색
한때 저녁 시간마다 활기 넘치던 방콕의 레스토랑 거리, 이제는 심심찮게 빈 테이블이 눈에 띈다. 흥겨운 대화 소리와 맛있는 음식 냄새 대신, 깊은 한숨과 불안감이 감도는 풍경. 태국 경제가 깊은 수렁에 빠지면서, 태국 국민들의 일상과 소비 패턴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니, 지갑부터 닫는 거죠." 한 식당 주인의 씁쓸한 미소는 현재 태국이 처한 현실을 대변한다.
얼어붙은 소비 심리 : "일주일에 한 번 외식도 사치"
타니완 쿤몽콘 태국레스토랑협회 회장의 진단은 충격적이다. 과거 주 4~5회 외식을 즐기던 태국인들이 이제는 한 달에 한 번 식당을 찾을까 말까 할 정도로 외식 빈도가 급감했다는 것이다. 일부 고급 외식업체의 경우 최대 95%의 감소율로, 이는 단순한 허리띠 졸라매기를 넘어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 사람들은 식당에 가더라도 주문하는 음식 가짓수를 줄이고, 화려한 스무디나 특제 음료 대신 저렴한 생수나 탄산음료를 선택한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1인당 1,500바트(약 5만 6천 원)짜리 뷔페 패키지는 이제 700바트(약 2만 6천 원)짜리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실정이다. "예전엔 가족들과 푸짐하게 시켜 먹는 게 낙이었는데, 이젠 아이들 좋아하는 메뉴 하나 시키기도 망설여져요." 한 방콕 시민의 말이다.
이러한 소비 절벽은 식당 운영자들에게 직격탄이 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 감소, 퇴근 후 직장 동료들과의 간단한 회식 문화 실종, 여기에 임대료, 에너지, 원자재 가격 상승이라는 삼중고가 겹치면서 수익은 반 토막 나기 일쑤다. 특히 자금력이 부족한 신규 창업자들은 직원 감축, 재투자 포기, 심지어 폐업이라는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 탄탄한 현금 보유고를 가진 대형 프랜차이즈들도 힘겨운 버티기에 들어간 상황. 태국 경제 전반의 침체와 글로벌 경기 둔화라는 안팎의 악재는 식당가의 불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흔들리는 경제, 커지는 불안 : "정치 안정부터 되찾아야"
식당가의 한숨은 태국 경제 전체의 불안감을 비추는 거울이다. 태국 재계는 현재의 정치적 불안정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훼손하고, 이미 취약한 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 "언제 정책이 바뀔지 모르는데, 누가 선뜻 투자하려 하겠습니까?" 익명을 요구한 한 기업인의 목소리에는 깊은 우려가 배어 있었다.
순톤 사타폰 주택사업협회 회장은 태국 경제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자본 시장은 다른 아세안 국가들에 비해 뒤처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투자자들의 신뢰 하락을 반영하는 명백한 증거라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신중하고 사려 깊은 정책을 통해 장기적인 불안정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청소년이나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현금 살포 정책은 경제적 효율성이 낮고 대중의 비판을 받으며 정부 신뢰도만 떨어뜨렸다는 뼈아픈 지적도 덧붙였다. 경제계는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 엔터테인먼트 단지 조성과 같은 사회적으로 민감한 정책을 충분한 국민적 합의 없이 추진할 경우, 정치적 반발과 광범위한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글로벌 주식 시장이 회복세를 보이는 와중에도 태국 자본 시장이 유독 부진한 것은 투자자들이 해외 요인보다는 태국 국내 상황에 더 큰 우려를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경제 성장 둔화, 미중 무역 갈등의 여파, 환율 변동성,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핵심 요인들이다.
위기 극복을 위한 제언 : "단기 처방 아닌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 찾아야"
그렇다면 이 깊은 터널을 빠져나갈 해법은 무엇일까? 태국 경제 전문가들과 재계는 한목소리로 단기적인 현금 살포나 인기영합적 정책보다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신뢰 회복'이다. 정부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정책 추진을 자제하고,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정책 운영을 통해 국내외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경제 주체들이 안심하고 활동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실질적인 구매력 증진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장기적인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 순톤 회장이 제안한 복선 철도 건설 및 방콕-나콘랏차시마 고속철도와 같은 대규모 교통 인프라 프로젝트뿐 아니라, 스마트시티 조성, 재생 에너지 확충 등 미래지향적 투자도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투자는 건설 경기 활성화는 물론, 지역 경제 발전과 고용 창출, 그리고 방콕 외곽 지역의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돈을 푸는 것을 넘어, 경제 성장의 온기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한,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와 경제 구조에 발맞춘 산업 지원책도 필요하다. 단순히 과거의 성공 방식에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접목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려움을 겪는 요식업계에는 단순 자금 지원을 넘어, 온라인 플랫폼 활용 교육, 메뉴 개발 컨설팅, 위생 관리 시스템 개선 등 실질적인 경쟁력 강화 방안을 제공해야 한다.
태국 경제는 지금 국내외적으로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그 여파는 국민들의 식탁에서부터 국가 경제의 근간인 투자 심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위기 속에서도 희망은 있다. 정확한 현실 진단과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현명한 정책 결정, 그리고 단기적 부양책을 넘어선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태국은 다시 한번 '미소의 나라'다운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이 위태로운 경제 줄타기를 성공적으로 완수해야 할 때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는 결단과 혁신이 태국을 다시금 ‘미소의 나라’로 되돌릴 열쇠가 될 것이다.
[기사참조 : 더네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