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2020/06/15 17:28:39

이미 많은 사람이 언급하고 있지만 세상을 휩쓴 전염병이나 전쟁 등은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전염병은 문화를 바꾸기도 하고, 사람의 이동을 촉진하기도 합니다. 놀라운 의학의 발전을 이루기도 하겠죠. 어떤 결과는 힘든 시간이 가져다준 축복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결과는 우리들 마음에 씁쓸함을 안겨줍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간에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 놓았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바꾼 혁명도 우리를 급격히 바꾸어 놓습니다. 농업혁명이나 산업혁명은 인류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고방식이나 세계관이 변했음도 물론입니다. 수렵 채취의 시대에서 농업 목축의 시대로 바뀌었을 때 놀라움은 상상 이상이었을 겁니다. 긴 시간을 지나며 천천히 이루어진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던 농경사회가 산업혁명을 맞이했을 때는 그야말로 경천동지(驚天動地)의 일이었을 겁니다. 수천 년간 그다지 변하지 않았던 문화가 짧은 시간에 변화합니다. 기차와 자동차, 비행기를 본 농경사회 사람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비행기를 처음 봤을 때 놀라움과 두려움은 어땠을까요? 비행기를 처음 본 게 폭탄을 투하하는 모습이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폭탄 실은 공포의 비행체는 말할 수 없는 악몽입니다. 혁명도 놀라움과 두려움, 씁쓸함의 결과를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인간의 역사를 구분할 때 문자를 주요한 기준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의 전환은 많은 사고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문자의 사용도 혁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자 문화로 바뀌는 시기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는 시기와 겹치는 측면이 있습니다. 나와 나 아닌 것의 구별이 이루어지는 시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문자의 사용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의외로 부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문자는 분별의 문화와도 관련이 됩니다. 더 작게 나누는 느낌이고, 서로 믿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한자를 만들었다고 하는 창힐도 문자가 생기면 서로 믿지 못할 것이라 걱정합니다. 이집트 문자를 만들 때도 인간의 문자로 인해 게을러질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문자는 확실한 증거로 작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온갖 사기의 원인이 됩니다. 법이 자세하면 할수록 빠져나가는 사람도 늘어납니다. 법률에 안 나오면 죄가 되지 않는 세상이 되는 겁니다. 문자사회로 바뀌는 과정이 성인들에게는 큰 고민이었습니다. 문자만이 원인은 아니지만 구별하고 나누려는 태도는 역으로 성인을 낳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스승으로 모시는 주요한 성인은 이 시기에 주로 나타납니다. 공자나 소크라테스, 부처나 예수가 모두 이 때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분들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당시의 상황을 더 깊이 고민하며 살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문자 사회마저 넘어서 영상이나 정보가 순식간에 세상을 감싸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정보화 사회는 우리에게 기쁨과 두려움을 동시에 줍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전환기를 사는 우리에게 스승이 필요합니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未曾有)의 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은 비대면(非對面)의 세상으로 급격히 바뀔 거라고 예측합니다. 맞습니다.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 바뀌었듯이, 수렵 채취 사회에서 농경 목축의 사회로 바뀌었듯이 이는 우리가 지키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현상일 겁니다. 그러나 한편 우리는 대전환의 시기에 인류의 지성과 영성에 한 단계 도약이 있었음도 기억해야 할 겁니다. 소크라테스나 예수, 공자나 부처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인류의 스승이 들려준 답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은 고전(古典)을 읽어야 할 시간이기도 합니다. 고전은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 사랑과 자비가 중요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가 악인이고 죄인이라 할지라도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함께 하라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세상은 비대면 사회로 바뀌어 갈 겁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사람을 만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 합니다. 만나서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 깊이 생각하는 우리여야 합니다.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전공) iiejhy@khu.ac.kr

[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관전평을 하다

2020/05/26 12:48:12

세상이 점점 거칠어진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정(情)이 메말라 간다는 말도 자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도 줄어들고 만나더라도 형식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친척도 잘 모릅니다. 사돈의 팔촌은 커녕 가까운 친척도 잘 모릅니다. 5촌이면 거의 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는 적어졌는데 친척마저 멀어졌으니 피붙이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더 거칠게 메말라가고 있는 걸까요? 말도 삭막해지고 있습니다. 거칩니다. 우리는 삶이 전쟁이라는 말도 자주합니다. 일하는 직장이 전쟁터가 된 지 오래입니다. 다른 회사와의 전쟁일 뿐 아니라 같은 직장의 동료와도 전쟁입니다. 먼저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전쟁을 일으킵니다. 막상 올라가고 나면 현기증이 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나를 흔드는 사람도 많아집니다.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일터는 때로 전우가 적이 되기도 하는 살벌한 전쟁터입니다. 모두 알다시피 학교도 전쟁터입니다. 친구들과의 경쟁은 어제 오늘일이 아닙니다만,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전부터 있었던 일이겠지만, 따돌림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왕따가 이제 새 단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총성 없는 전쟁이라는 말도 자주 씁니다. 총소리가 없으니 덜 무서워야 할 텐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총성이 없기에 지금이 전쟁인 줄도 모르고 생활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늘 전쟁 상태라는 것과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전쟁보다 더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말이 총알이 되고 우리의 입은 서로를 향한 총구가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오히려 진짜 전쟁이 덜 두렵습니다. 물론 실제로 전쟁을 겪게 된다면 무섭겠지만, 그 전까지는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전쟁을 느 끼지 못하고, 두려워하지 않아서일까요? 우리는 이렇듯 쉽게 표현마다 전쟁을 입에 올립니다. 마치 난리라는 말이 추임새처럼 입에 붙어있듯이 말입니다. ‘난리 났어, 왜 난리야, 난리도 아니야.’처럼 말입니다. 전쟁이 난리입니다. ‘관전평(觀戰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관전평은 주로 스포츠 경기에 대한 평가에 쓰는 말입니다. ‘관전(觀戰)’이라는 말이 전쟁을 본다는 의미이니 스포츠 경기를 전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스포츠는 경쟁이 일어나는 현장이어서인지, 주로 싸움이나 전쟁에 비유합니다. 서로를 때리고 부수는 일부터 시작해서 폭격을 하기도 합니다. 상대를 초토화시키기도 하고 전멸시키기기도 합니다. 스포츠에서는 이렇게 무서운 용어를 전부 모아놓고 관전평을 합니다. 그런데 무섭지는 않습니다. 그저 멀찌감치 서서 평가를 하고 있는 겁니다. 남의 일로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전쟁을 보며 평가한다는 말 자체가 이상한 말이네요. 저는 종종 제가 세상을 관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합니다. 요즘 더욱 그렇습니다. 전염병으로 세상이 뒤숭숭한데 타인의 아픔을 내 감정으로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저 구경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각 나라의 환자 숫자를 경쟁하듯이 바라봅니다.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의 환자 수가 적으면 안심을 합니다. 다른 나라의 시스템을 평가하고 비난합니다. 때로는 그 나라의 지도자들이 잘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힐난을 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아픈 사람, 차별받는 사람, 죽어가는 사람, 세상을 떠난 사람의 가족과 친구는 왜 눈에 덜 띄었을까요? 왜 나는 구경을 하고 있는 걸까요? 아침마다 뉴스에서 들려오는 세계의 환자 수, 사망자 수를 보면서 왜 별다른 느낌이 없을까요? 스포츠 경기를 보듯이 어느 나라가 다른 나라를 앞섰다는 내용에 무덤덤하게 지나가게 될까요? 사람을 보지 않은 채 뉴스를 보고, 전쟁을 그저 바라보고 있는 스스로를 반성합니다.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

[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한글뒤풀이 이야기

2020/05/12 17:03:34

국문뒤풀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나요? ‘뒤풀이’라고 하면 어떤 모임이 끝나고 모여서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는 즐거운 모임이 생각나겠네요. 국문뒤풀이라고 하니 국문과의 뒤풀이거나 국어와 관련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뒤풀이에는 그런 뜻도 있습니다. 그런데 뒤풀이에는 그것 말고도 다른 뜻이 있습니다. 뒤풀이는 ‘어떤 말이나 글 아래에, 그 뜻의 풀이 비슷하게 노랫조로 지어 붙인 말.(표준국어대사전)’이라는 뜻입니다. 대표적으로 국문뒤풀이가 있는데 이는 국문의 글자를 풀어서 노랫조로 붙였다는 의미입니다. 즉 우리 글자를 배우기 위해서 노래로 만들었다는 것이죠. 저도 어릴 때 한글을 배울 때 ‘가갸거겨’하면서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노래는 아니었지만 노래처럼 리듬을 타고 외웠습니다. 4.4조의 리듬이죠. 예전에 송창식 선생이 불렀던 ‘가나다라’라는 노래도 생각이 나네요. ‘가나다라마바사자차카타파하’로 시작하는 노래여서 한글자모의 발음 연습에 도움이 될 만한 노래였습니다. 물론 가사는 한글을 배우는 것과는 관계가 없었지만 말입니다. 가사를 보면 ‘일엽편주(一葉片舟)’ 등의 어려운 단어도 나옵니다. 아무튼 ‘가나다라’를 송창식 선생의 특이한 동작과 함께 무척 즐겁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국문뒤풀이는 민요입니다. 언문뒤풀이라고 하거나 한글뒤풀이라고도 합니다. 한글 자모를 익히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민요를 하는 사람의 발음을 연습하는 효과도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민요공부는 목청을 틔워야 하고 정확하게 발음을 하는 것이 시작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하는 발음과 민요의 발음은 좀 다릅니다. 목청을 열고 단전(丹田)에서 발음이 올라오게 연습해야 한다고 합니다. 국문뒤풀이는 다른 민요에 비해서 길기 때문에 민요를 연습하는 곡으로 효과적인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민요를 배울 때는 국문뒤풀이로 시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국문, 국어’라는 말은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더 이상 못 쓰게 됩니다. 우리가 ‘한글’이라는 표현을 새로 만들게 된 원인이기도 합니다. 우리글을 국문이라고 하면 안 되었던 겁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글마저 못 쓰게 된 설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국문뒤풀이는 민요로 남아 부르게 됩니다. 귀한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문뒤풀이를 통해 재미있게 한글을 배울 수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아이들보다는 글을 모르는 어른에게 더 맞는 노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가사가 주로 사랑과 이별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노래가사를 좀 볼까요? 노래를 모른다면 좀 설명이 어려울 수 있겠습니다. 꼭 노래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가사는 ‘가갸거겨’부터 ‘돠둬롸뤄’까지 한글자모를 이용해서 각 장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문학 장르로 보자면 조선시대의 4.4.조의 가사(歌辭)같은 느낌입니다. ‘가갸거겨/가이없는/이 내 몸이/그지없이/되었구나.’ ‘고교구규/고생하던/우리낭군/구관하기가/짝이 없구나.’와 같이 4음보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노래의 모든 줄은 기본적으로 ‘가갸거겨’처럼 시작하고, 그 뒤를 이어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의 각 글자로 시작하는 어휘 표현을 담았습니다. 국문뒤풀이는 여러 가지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널리 민중 속에서 불리지는 않은 듯합니다. 아마도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사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도적으로 만들었음에도 가사 간의 논리가 부족한 점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전체적인 흐름에 짜임새가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래서 민요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너무 논리적이라면 어색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민요는 민중 속에서 살아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민중이 좋아할 수 있게 끊임없이 변화하여야 할 겁니다. 굳이 옛 가사만을 고집할 이유도 없습니다. 옛 가사는 그대로 두더라도 새로운 국문뒤풀이가 계속 나온다면 어린아이도 즐겁게 배울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민요도 더 널리 생명력을 얻을 겁니다. 외국인을 위해서 조금 더 쉽고 재미있는 내용으로 한글뒤풀이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한글뒤풀이의 변신을 꿈꾸어 봅니다.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

[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디귿 이야기

2020/05/07 09:06:32

디귿은 다른 한글의 자모와는 달리 이름이 좀 특이합니다. 모두 두 번째 음절이 모음으로 시작하는데 유일하게 디귿만 기역으로 시작하는 ‘귿’이 되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읃’에 해당하는 한자가 없어서 받침에 디귿이 들어가는 한자를 찾아본 겁니다. 그런데 한자에도 디귿이 받침인 말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받침에 디귿이 들어가는 우리말 중에서 다시 찾게 되었는데, 모음으로 시작하면서 받침이 디귿인 말은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궁여지책으로 찾은 것이 ‘귿’입니다. 지금은 소리가 달라졌지만 ‘끝[末]’의 옛말입니다. 디귿에 끝의 의미를 담은 말(末)을 쓴 것은 디귿의 느낌에 마지막의 느낌이 있어서는 아닐까요? 끝을 발음해 보면 더 잘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현재 북한에서는 원래의 생각을 살려 ‘디읃’이라고 합니다. 남북한에 부르는 방식에 차이가 있습니다. 디귿 음은 청각적인 이미지가 강합니다. 즉, ‘소리’의 느낌이 납니다. 좀 ‘딱딱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두드리는’ 소리의 느낌이 나고, ‘뛰고’ ‘달리는’ 느낌도 납니다. 지금 쓴 단어에도 디귿이 한 가득이네요. 아무래도 디귿은 울림소리가 아니고 닫힌 음이기 때문에 a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단 마무리가 되는 느낌인 겁니다. 하나가 끝나고 다음이 시작할 때는 소리가 나게 마련입니다. 부딪치는 소리, ‘떨어지는’ 소리가 납니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길 때도 소리가 나죠. 특히 빠르게 움직이면 소리가 더 크게 납니다. 세상의 소리 중 디귿과 쌍디귿으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어떤 느낌이 날까요? 디귿이 소리라고 한다면 의성어(擬聲語) 중에 디귿에 해당하는 예가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길게 이어지는 음보다는 끊어지는 음에 많을 것 같습니다. 북소리나 장구소리 등 타악기를 표현하는 소리에 디귿이 많이 보입니다. 예를 들어 북소리는 ‘둥둥’ 울립니다. 장구소리를 구음으로 표현하면 ‘덩 덩 따 쿵 따’라든가 ‘따 구 궁 따 쿵 따 쿵’처럼 표현이 됩니다. 쌍디귿 소리는 좀 더 강조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더 짧게 끊어지는 소리입니다. 덩에 비해서 ‘따’는 더 짧게 끊어지는 소리입니다. 장구채로 치는 소리로 긴 소리가 아닙니다. ‘딱’이나 ‘똑’의 느낌도 비슷합니다. 시계소리를 ‘똑딱똑딱’이라고 표현한 것도 소리의 울림이 없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똑딱’에는 받침의 기역도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빗소리의 ‘후두둑’이나 빨리 움직이는 ‘후다닥’에서도 디귿의 느낌을 알 수 있습니다. 각각 끊어지면서 서두르는 느낌이 있습니다. 빠른 움직임이 느껴지는 거죠. 그래서일까요? 우리 신체 부위 중에서 ‘다리’가 디귿으로 시작합니다. ‘달리다, 뛰다’도 모두 디귿으로 시작하는 어휘입니다. 후다닥 뛰고 달리는 다리의 모습이 상상이 됩니다. 촉감으로 보자면 디귿은 아무래도 굳어있는 느낌이 납니다. 여러 개가 겹쳐져 있는 느낌도 있습니다. 다닥다닥, 덕지덕지 붙어있는 느낌입니다. 굳어 있다 보니 딱딱한 느낌도 납니다. 한편 디귿으로 시작하는 의성어와 촉감에 해당하는 표현이 연결되고 있는 듯합니다. 딱딱한 것에 부딪치면 딱 소리가 나니 말입니다. 막힌 것을 뚫는 것도 디귿의 느낌입니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로 보이나 돌이나 땅이 디귿과 연관이 됩니다. 돌은 들이나 달과도 관련이 됩니다. 모두 땅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닫다’와 ‘굳다’의 받침이 디귿인 것도 느낌을 보여줍니다. 저는 디귿을 보면 북소리가 들리고 장구소리가 들립니다. 둥둥둥, 따궁따 소리는 우리의 심장을 더 뛰게 한다고 합니다. 심장마비가 왔을 때 북소리를 들려주면 응급 상황을 벗어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하는데 북소리가 심장박동을 닮았기 때문이겠죠. 전쟁터에서 북소리를 울리는 것은 단순히 큰 소리로 응원하는 것만은 아닐 겁니다. 심장을 뛰게 하여 힘을 북돋는 것이죠. 디귿 소리 속에서 우리 모두 더 큰 힘을 얻기 바랍니다.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

[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다시 윤동주

2020/02/15 15:05:42

한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시라면 윤동주의 ‘서시’와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달래꽃에 한국인의 사랑과 정서, 한이 담겨있다면 윤동주의 서시에는 절실함 또는 처절함이 있습니다. 김소월도 윤동주도 상황은 다르지만 요절을 하였기에 더 슬픈 감정이 듭니다. 윤동주의 서시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로 시작합니다. 이 시는 젊은 시인의 의혹 가득한 죽음과 맞물려 슬픈 감동을 주고, 반성의 시간을 주고, 다짐의 시간을 줍니다. 시인의 다른 작품 자화상, 참회록, 슬픈 족속, 쉽게 씌어 진 시 등과 이어지며 감정의 흐름이 깊어집니다. 저는 시에 관심이 깊어지던 중학교 시절부터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좋았습니다. 제가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서시를 흉내 낸 시를 써 보기도 했습니다. ‘초의 기도’라는 시였었는데 참혹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 여러 기회에 윤동주를 만났습니다. 오래전에 연길에 특강을 갈 일이 있었습니다. 잠깐의 시간이 남았을 때 저는 용정에 있는 윤동주 선생의 생가를 가 볼 수 있었습니다. 휘어있는 나무 굴뚝이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지금은 생가 앞에 중국 조선족 시인 윤동주라고 쓰여 있다고 하는데 좀 씁쓸합니다. 종로구에는 연희전문을 다니던 윤동주의 하숙집 터가 있습니다. 서촌에서 수성동 계곡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데 시도 한 편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윤동주 선생이 살았던 연희전문의 기숙사가 윤동주 기념관으로 개관하였습니다. 수성동 계곡을 올라 청운동을 넘어가면 윤동주 문학관이 있고,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있습니다. 그 언덕에는 ‘서시’와 ‘슬픈 족속’이 새겨진 시비가 햇살 속에 있었습니다. 시인의 이야기가 언덕을 풍요롭게 합니다. 교토에 갔을 때는 동지사 대학과 교토 조형예술대학에서 윤동주 시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동지사 대학에 다니던 시인은 교토 조형예술대학이 있는 곳에서 하숙을 하였습니다. 지금 두 대학에는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서 있습니다. 시비의 소개에는 한국 시인이 아니라 코리아 시인이라고 되어 있네요. 교토 조형예술대학에서 동지사 대학으로 가는 길에는 교토인이 사랑하는 가모가와 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강변에 윤동주 시인을 잡아간 시모가모[下鴨] 경찰서가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때와 모습이 달라졌지만 감정은 그때로 금방 달려갑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시인이 걸었을 길을 저도 조용히 걸어보았습니다. 세월에 겹쳐진 다양한 환영(幻影)을 만납니다. 윤동주 시인은 시모가모 경찰서에서 잡혀 재판을 받은 후 고종사촌 송몽규 선생과 함께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힙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국의 해방을 불과 반년 앞에 두고 옥사를 합니다. 한 달 사이에 같이 잡혀간 사촌 송몽규 선생도 옥사를 합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의혹이 가득합니다. 저는 후쿠오카에 갔을 때 형무소 자리에도 찾아가 보았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의 놀이터로 변한 모습입니다. 아이들의 모습에 자꾸만 시인의 슬픔이 겹쳐집니다. 마음 한켠에 쌓인 감정을 추스르기가 어렵네요. 돌이켜보니 저는 윤동주 선생의 생가부터 다니던 학교, 하숙집 그리고 잡혀간 경찰서와 형무소까지 모두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생을 기리는 언덕과 문학관, 시비도 만나게 되었네요. 지금은 일본 교과서에도 윤동주 시인의 시가 실려 있다고 합니다. 슬픈 족속으로 쉽게 쓰여 지는 시를 쓰는 자신을 돌아보고, 참회하며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어 하던 젊은이를 만납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말하는 시인에게서 폭력이나 복수보다는 평화와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12월 30일은 윤동주 시인의 탄신일이었습니다. 2월 16일은 시인이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겨울이 되면 저는 다시 윤동주 시인이 생각이 납니다. 얼마 전에 태국 한국교육원에서 새로 한국어 강의실을 여는데 교실 이름으로 어떤 게 좋겠냐는 물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소월’과 ‘동주’를 추천하였습니다. 태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에게도 윤동주 시인의 삶과 시가 잘 전해지기 바랍니다.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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